맨 오브 스틸 (3)

NEOKIDS 작성일 13.07.09 03:4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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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10여 년 후. 
사람들은 문을 열고 들어온 외지 사람, 초라한 행색의 클라크에게 관심을 보였지만, 이내 그것은 시끄러운 음악과 사람들의 목소리 사이로 사라져 갔다. 낯선 사람이긴 해도, 그들이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는 사람 같았기에. 
“물 한 잔만 먼저 주세요.”
클라크는 바텐더가 고깝다는 눈빛으로 내놓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구도 자신에게 신경쓰는 사람은 없었다. 바텐더를 빼고는. 
“꽤 먼 곳에서 오는 길 같군.”“캔자스에서 왔어요.”“캔자스에서 여기 알래스카까지 무슨 일로 왔나? 석유회사 일?”“별 일은 아니고.....그저.....”
클라크는 물컵 안으로 시선을 떨구면서 말했다. 
“사람이 없는 곳으로 좀 가보려고 합니다.”“하! 그런 곳이라면 여기 어디든 널리고 널렸지. 아예 북극을 찾아가 보는 건 어때?”“사실 그러려고 왔습니다.”
바텐더는 클라크의 대답에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는 다시 클라크를 뜯어보았다. 탐험을 한다거나 과학자처럼 조사를 하는 인간 같은 분위기도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차림새부터가 뭔가 이상했다. 옷차림이 이 지역을 왕래하는 사람치고는 너무 얇은 것이었다. 조금 두툼한 코트 하나에 바지도 솜바지가 아니었고, 신발은 방한화도 아닌 그냥 운동화였다. 
“북극까지 가기에는 너무 추운 차림새 같군.”“역시, 그렇겠죠?”
클라크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 때 또 다시 가게의 문이 열렸다. 이번에는 보안관이었다. 
“여기 있는 분들, 도움이 필요합니다.”“무슨 일입니까?”
음악이 꺼지고 술렁거렸다. 
“65번 도로에서 사고가 있었는데, 큰 일이 벌어졌소. 사람들이 많이 다쳤소. 다들 도와주시오.”
사람들이 전부 벗어놓은 옷가지들을 챙기고 웅성대면서 급히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클라크는 그저 지켜만 보고 있을 뿐,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바텐더가 말했다. 
“자네는 왜 가지 않지?”
클라크는 물컵에 시선을 여전히 고정한 채 대답했다. 
“제가 가야 할 이유가 없잖아요?”“사람들이 다쳤다지 않는가.”“그렇다고 해서 제가 뭘 할 수 있겠어요.”“거 참.”
바텐더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비쳤다. 
“다른 사람들은 뭔가 하려고 가는 걸세. 다들 잘나지도 않은 인간들이 말이야. 그런데도 자넨 거기서 물만 들이키고 있군. 왜 북극에 가려는 건지 알만 하겠어. 자네 같이 살다간 아무도 자네와 친해지려 하지 않겠지.”
바텐더는 클라크가 마시던 물잔을 치우고 모자를 챙겨썼다. 
“가게 문을 닫아야 하니 나가주게.”
클라크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다시 길로 나섰다. 사람들은 클라크가 가려는 방향과는 반대로 차를 몰고 급히 떠나가고 있었다. 그들을 뒤로 한 채 클라크는 천천히, 다시 길을 떠났다. 
그런 클라크의 머릿속에서, 다시 그 날이 떠올라왔다. 로드빌 1409번지로 차를 몰고 가서, 제시 로빈슨을 태우고 댄스 파티로 가던 그 날을. 
클라크에게는 아무런 해도 끼칠 수 없는 차가움이었지만, 그 차가움 속에서 모든 기억은 선명했다. 제시 로빈슨의 진분홍색 타이트한 원피스도, 그 파티가 재미없다며 다른 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했던 것도, 차를 달리다가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세워달라고 했던 것도. 
아, 그리고는 네빌 패거리들이 왔었지. 
“나와! 얼치기 자식아!”
제시가 막 입맞춤을 하려는 무렵에 네빌 패거리는 클라크의 목덜미를 잡아 차 밖으로 끌어냈다. 천천히 일어난 클라크의 눈에 제시 로빈슨의 웃음이 보였다. 완벽하게, 비웃고 있는. 그제서야, 클라크는 이 모든 것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멍청이는 멍청이답게 살아야 한다는 걸 가르쳐주려고, 모두 꾸몄다.”
"갑자기 네 아버지가 나타난 건 계산 밖이었지만. 큭큭큭큭~"
“바보야, 내가 널 좋아하기라도 할 줄 알았니?”
패거리들이 던진 말과 낄낄거리는 패거리들, 제시 로빈슨의 조소. 일그러진 마음, 인간의 추하고 더러운 그 모습들이 예민해진 클라크의 마음을 건드렸다. 그리고, 클라크는 진짜 분노란 것을 느꼈다. 어둡고, 끝이 보이지 않는 지독한, 진짜 분노를. 
다시 네빌의 주먹이 날아왔을 때 클라크는 맞는 연기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부를 강화했다. 아픈 건 네빌의 주먹뿐이었다. 네빌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클라크는 네빌의 그 표정에서 묘한 쾌감을 느꼈다. 패거리들의 분위기가 일순간 굳어졌다. 클라크는 네빌의 멱살을 한 손으로 휘어잡은 후, 될 수 있는 한 멀리 던져버렸다. 
클라크는 어둠으로 잘 보이지 않는 속에서 입김을 짧고 강하게 내불었다. 그 입김은 강풍이 되어 나머지 패거리와 제시 로빈슨을 날려버렸다. 마치 사막에서 뭉쳐 굴러다니는 식물의 찌꺼기들처럼, 인간의 패거리들은 온통 옥수수밭 뿐인 공간 속을 저만치 굴러가버렸다. 그들이 죽었던 살았던 클라크에겐 그것이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당장 눈앞에서 보이지만 않으면 되었다. 
클라크가 차에 올라타고 집으로 돌아온 다음에도 그 분노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을 먼저 깨달은 것은 조나단이었다. 
“잘 안됐던 거니?”
조나단의 물음을 등 뒤로 하고 클라크는 자신의 방에 들어가는 척을 했다. 그리고는 어두운 색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전에 보아둔 또다른 빈 집으로 향하기 위해서. 
허공으로부터 클라크의 몸이 땅으로 떨어졌다. 어둠 속에서도 정확한 몇 번의 점프로 그 곳에 도착한 것이다. 그리고, 그제서야 참고 참았던 모든 것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악!!!!!!!!!!!”
터져나오는 고함과 함께 클라크의 몸이 빠르게 집으로 쳐박혔다. 박살난 집 구조물의 조각들이 온 사방으로 흩어져 갔다. 클라크의 눈빛은 달빛을 받으며 살벌하게 빛났고, 마치 집을 세우고 있던 단 한 조각이라도 남아있으면 참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듯 철저하게 두들겨 부숴댔다. 땅이 쿵쿵 울리고, 클라크의 힘을 배길 수 없는 것들은 부러지고 찢어진 몸뚱아리를 흩뿌려댔다. 
얼마나 그렇게 부수고 있었을까. 클라크는 뽀얗게 일어난 먼지 속에서 그제서야 등 뒤에 누군가 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나단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천천히 잔해들 사이를 헤치며 클라크의 옆으로 걸어왔다. 그리고는 주위를 한 번 휘둘러보면서 말했다. 
“이제, 좀 속이 시원하니?”
클라크는 그 말에 속이 더 뒤집혔다. 
“전혀요.”
클라크는 되려 더 비뚤어진 생각 속에서 조나단에게 뭔가를 보여주기로 맘먹었다. 
“최근엔, 이런 것도 할 수 있게 됐죠.”
클라크의 눈 주변 혈관으로 강한 빛들이 모이더니 눈에서 광선이 뿜어졌다. 강한 두 줄기 광선이 왼쪽에 있던 모든 잔해들을 완전히 녹이고 있었다. 광선이 꺼지자 녹고 있던 것들의 온도로 그 주변에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이 힘으로 그 추하고 더러운 개자식들을 녹여버릴 수만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죠. 이렇게, 이렇게!!!!!!!”
눈에서 광선이 단속적으로 여러 번 쏘아지면서 다시 똑같은 일들이 반복되었다. 그 순간 클라크의 양 어깨가 조나단의 손에 붙잡혔다. 
“그만 해라.”
클라크의 빛나는 눈 앞으로 조나단이 버티고 서 있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광선을 쏴댈 듯 이글거리고 있는 클라크의 눈 앞에서 조나단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것을 마주보며 클라크의 양 어깨를 감싸쥐고 있었다. 천천히, 혈관에서 올라오는 불빛들이 사그러들었다. 
다시 클라크의 눈빛이 원래의 것으로 돌아왔을 때, 조나단은 클라크를 품 안으로 느릿하게 끌어당겨 안았다. 
“원래, 인간들은 이렇게 잔인한가요.”“그렇단다.”
조나단은 클라크를 감싸안은 채 다시 한 마디를 더 꺼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훨씬 더 많지.”
알래스카의 차가운 바람이 다시 클라크의 얼굴을 때리고 있었다. 지금 여기에 그 조나단의 따스한 품의 기억은 따라오고 있지 않았다. 클라크는 외투의 주머니에서 코덱을 꺼내 바라 보았다. 검정색이면서도 투명한 재질처럼 보이는 코덱이 클라크의 손바닥 안을 꽉 채우고 있었다. 
클라크는 이 여행의 끝이 어떻게 될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이 여행을 발길 닿는 곳까지는 계속해야 한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점프 따위로 가야 하는 목적지도 없는 이상, 걷는다는 것은 지금의 클라크에겐 중요했다. 그리고 더 이상 발길이 닿을 수 없을 때, 그래서 여행이 끝날 때, 그 때 어렴풋이, 뭔가를 깨달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클라크에게는 중요했다. 
그 때 느꼈던 그 끝없는 어둠, 슬픔, 증오, 분노.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고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는, 그 곳으로, 클라크의 걸음은 천천히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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