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1.
“그러니까, 사랑을 하라고. 그래서 결실도 좀 맺고.”
“왜 내가 그래야 한다는 건데?”
“안 그러면, 지구가 멸망하니까.”
그 존재와 처음 만난 날은 모든 게 혼란스럽고 생소해서 세세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이 대화를 했던 것만은 기억한다.
나는 천천히, 다음 대사를 이렇게 말했었지.
“저기, 이해가 잘 안되거든.”
“아, 몇 번을 말하냐고.”
라고 하며 그 존재는 내게 이렇게 말해줬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도.
“내가 존재하면 신도 존재한다는 건 알겠지. 그런데 그 신이란 놈이 기한을 정하기를, 이 지구상에서 서로 사랑하는 자가 한 명도 없으면 그 때 지구를 멸망시키겠다고 정해놨다고. 그런데 막상 니네들의 별 지구가 없어지면 우리 악마들도 별로 재미를 볼 데가 없거든. 그래서,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와서 손을 좀 써보려는 거야. 그리고 그나마 마지막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게 바로 너라는 존재란 말이지.”
그리고, 나는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냐면.
“그럼 저 밖에 돌아다니고 있는 연인들은 다 뭔데?”
“저게 다 사랑하고 있는 애들로 보이냐, 니 눈엔?”
어이가 뺨을 회축차기 하고 있다는 듯한 표정과 함께 그 존재는 말했다.
“다 지 좋은 것들만 바라보고 있잖아. 그런 건 사랑이라고 하지 않는 거야. 쾌락이라고 하지. 진짜 사랑과 쾌락도 구분못하면서 사랑을 지조때로 정의하고 행동하는 애들한테 뭘 바라냐? 야, 당장 쟤네들 알거지에 성격 단점 뽀록나게 조작해볼까? 당장 관계 집어치우고 다른 사람 만나러 도망갈걸? 도망 안가면 이번엔 그게 뭔지 아냐? 집착으로 변해간다는 거야. 상대를 포용하겠다 어쩌겠다 하면서 실질적으로는 그냥저냥 살아가게 되는 거라고.”
“싫은 걸 피하는 건 인간으로서 당연한 거 아냐?”
“그래, 그래. 인간으로서 당연한 거 쫒다가 지구 멸망하게 생겼다니까? 그래도 좋은 거냐, 넌?”
“뭐, 사실 멸망한다고 해도 어쩔 수 있나.”
“헐?”
그 존재는 왼쪽 뺨에 맞은 회축차기를 오른쪽 뺨에도 맞은 것 같은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아니, 좀 더 확실하게 말하면, 아예 멸망해버리는 게 좋겠어.”
“뭐래는거니 이 새끼가.”
“인간들이 좀 바보 같냐? 넌 악마라고 했지? 그리고 니들도 재미를 본다고 했지? 그런 것들에나 휘둘리는 존재 밖에 안된다는 거잖아? 봐라. 신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들도 죄다 이게 신을 믿는 건지 돈을 믿는 건지 모를 지경이 되어가고 있고, 니가 사랑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저 바깥의 애들도 전부 자기는 상대를 죽도록 사랑하고 있다고 믿지 않냐 이거야. 그렇게 착각 속에 살아가면서 진짜 진실들은 하나도 알지 못해. 이런 세상이 무슨 필요가 있어. 단박에 망해버려도 될 것들이지.”
“하아.........”
내가 이런 임무를 띄고 온 악마라도, 나같은 놈을 상대하고 있자면 답이 없겠지.
“그 착각으로도 이쁘게 알콩달콩하게 살아갈 수 있는게 인간들이잖냐. 그리고 너도 인간이라고. 좀 생각이란 걸 해볼래?”
“그 생각이란 걸 너무 많이 해서 그런가 보다. 인간들이 만든 심리학이란 걸 알고는 있냐?”
“모를 것 같냐? 그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가 태어난 건데?”
“그럼 잘 알고 있겠네. 인간이란 게 얼마나 우둔한 존재인지를. 진짜 진실을 보면서도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면 똥과 된장도 구분 못하고, 여러 사람이 좋다고 떠들면 진짜 좋은 건줄 알고, 힘과 돈 앞에서는 낭창낭창 엎드리고, 자기는 현실적인 인간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지만 그 현실이란 걸 바라보는 눈을 스스로의 마음속에서 바꿀 수 있다는 것 자체는 뜬구름잡기로 여기고. 그러면서 주제에 지가 아는 것 하나만 붙잡고 그게 진실이라고 우겨요. 남 얘기는 들어볼 의지도 생각도 없어. 말로는 이해했다 어쩐다 하면서도 이야기는 쳇바퀴로 굴러가고. 허참. 이거 가만 늘어놔 보니 니들이 좋아하는 지옥이네.”
“그래서, 그게 네가 사랑할 수 있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그렇게 잘 알면 사랑도 잘 하겠네.”
“너, 악마 중에서도 최악의 바보냐?”
내 도발에 존재는 콧방귀도 안뀌는 듯한 눈치지만 그에 아랑곳없이 나는 말을 이어간다.
“네 말대로, 바깥엔 진짜 사랑이란 게 없다고 했잖아. 그런 걸 하고 있거나 알고 있는 사람도 없고. 그럼 이 지구상 60억 넘어가는 인구 중에서 너와 내가 말한 이 우둔한 모습들을 전부다 피해 가면서도 나라는 존재와 진짜 사랑이란 것의 의미를 찾아내고 만들어 갈 수 있는 존재를 도대체 어디에서 찾느냐고.”
존재는 말했다.
“그래서, 내가 왔잖냐. 도와주려고.”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