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2.
둘은 같은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이런 저런 달콤한 열대과일들을 갈아 섞었다는데, 왠지 야채 주스 맛이 나는 음료였다. 늦더위에 막바지에 아스팔트의 열기에 지쳐있는 두 사람이었다.
“만나서 싸울 바에야 차라리 처음부터 안 만나는 편이 좋지 않나요?”
여자의 말에 남자는 생각한다.
여자 나이 서른 둘. 그런데도 애들 같고 미성숙해.
세상 살다 보면 좋은 사람 좋지 않은 사람 모두 뒤섞여 일할 수 있다. 남자들은 심지어 그런 인간들과 2년 여의 시간을 한 공간에서 나라를 지킨다는 의무 아래 산다. 그러다 보면 싫은 일 좋은 일 다 있고 그것을 정신적으로 어떻게든 넘겨야 한다.
연애라고 별 다를 바 없다. 사람 만나서, 의견 맞지 않으면 싸울 때도 있고, 그러다 보면 서로를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모난 곳을 깎고, 둥글게 만들었을 때 결혼이란 것도 할 수 있겠고.
처음엔 나랑 맞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호르몬이 주는 착각이고, 진짜는 차가운 머리가 생각해야 한다. 머리가 가야 할 곳들은 너무나 넓고 깊어서, 아직도 수많은 것들을 더 이해해야만 하고 돌아보아야만 한다. 물론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좋을 때도 있을 것이지만, 그것도 머리가 그 범주들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는 바탕이 있을 때의 일이다.
그럼에도 남자는 감정을 쉽사리 내놓을 수가 없다. 아마도 그러다 보면, 자신이 저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을 들키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리라. 남자는 자신이 어떤 사람들에 끌리는 지를 알고 있었다. 덜 되고, 미성숙하고, 비틀린 여자들이 있다. 자신은 그런 여자들을 좋아했다. 물론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는 영역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자신을 막아설 수 없었다. 고작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포커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 뿐.
남자는 생각했다. 이 사람과 사랑하면 정말 잘 될 수 있을까?
“글쎄요. 뭐 그럴 수도.”
남자의 말에 여자는 생각한다.
남자 나이 마흔이란 건, 따분하네.
여자는 머리로 이룰 것은 다 이뤘고, 지식이란 건 쓸데만 쓰면 된다고 믿었다. 머리로 하는 싸움에선 누구와도 져본 적은 없었다. 자신이 모르면 입을 다물고, 안다면 아는 것으로만 이야기하면 되니까. 때문에 지식에 관한 해석들도 그리 깊진 않았다. 그보다는 잡다한 세상의 정보들에 더 관심이 있었다. 연금보험이 어떤 게 더 이익이라거나, 어떤 옷이 가격 대비 효용이 높다든가, 하는 것들.
타인은 타인이고, 얽히고 싶지 않다. 타인의 손이나 신체가 몸에 닿는 것도 싫을 지경이었다. 그녀는 결혼이란 걸 한다면, 절대로 침대는 따로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옆에서 누가 계속 닿으면서 신경 쓰이게 만들어 잠을 못 자면 어떻게 하나, 그게 그녀는 두려웠다.
몸이나 건강 또한 그녀의 관심사였다. 그녀는 지금 트레이닝 코스에 주 3회 나가 날렵한 근육을 키우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몸매를 예쁘게 한다든가 하는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조깅도 하고, 그 외 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것저것 그에 필요한 장비나 옷들을 사느라 깨지는 돈이 또 한 두 푼이 아니었지만.
그녀도 자신의 성격이 그렇게 썩 좋지 않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그 다혈질은 사실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다. 오빠라는 저주스런 존재를 이겨내야 하는 둘째의 숙명 같은 거였으니까. 그래서 그녀는 지금도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예의와 전투감각으로 대한다. 여자라는 생물을 만약 나긋나긋함과 성격, 몸매, 외모 같은 것으로 따진다면 자신은 하위권에 위치할 거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지만, 그런 건 괘념치 않았다. 지금 앞에 있는 남자에게도 불끈불끈 튀어나오는 호승심을 예의라는 이름으로 겨우 다스리고 있는 것일뿐.
여자는 생각했다. 이 사람과 사랑하면 정말 잘 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