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가지 인생 - 01

갑과을 작성일 13.12.04 19: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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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공에 이런 곳이 있는지 몰랐네요. 다른 곳에서 연재하고 있는 소설을 여기서 연재해보려고 합니다. 가급적이면 주 2회 연재를 하도록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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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1. 로키


1623년 3월 26일

요새 들어 봄이라고 노릇노릇한 햇살이 땅을 덥히나 싶었는데 오늘은 꽃샘추위가 불어 닥쳐와 내 옷깃을 파고든다. 나도 모르게 어께가 움츠러드는 그런 날씨다. 기차 플랫폼에는 나뿐만 아니라 제법 많은 사람들이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플랫폼에는 가끔가다 들려오는 역내 직원의 안내방송만 들릴 뿐,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들어볼 수가 없다. 일 방향적인 전달은 있을지언정, 쌍 방향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없다.


이윽고 열차가 왔고, 나는 그 안을 바라본다. 유리 안에는 사람들이 마치 면발인양 뒤섞여있다. 그리고 그 36.5℃짜리 면발이 내뱉는 물기에 유리창은 뿌연 김이 서려있다. 보기 만해도 숨이 턱 막히는 것 같다. 하지만, 문이 열리고, 몇 사람 빠져나가지 않은 그 지옥과 같은 곳에 사람들은 별다른 불만 없이 꾸역꾸역 들어간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말이다.


이렇게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놀랍기 그지없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괴롭게 만드는 일을 아무런 불평 없이 행하는 것일까. 심지어는 자발적으로 세계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이렇게 엽기적인 행각을 벌이는 것은 인간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놀랍고 그리고 한심하다.


열차 안은 역시나 사람의 팔과 다리가 잔뜩 엉켜있어 마치 면발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 속에 들어가도 플랫폼만큼이나 조용하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열차 내 방송만 제외한다면 마치 진공에 가까운 곳에 버려져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내 버릇이 가끔 그렇다. 내 입은 과묵한 친구이지만, 내 머릿속은 세상 어떤 수다쟁이보다 말이 많고 산만해서, 한번 페이스에 말려들면 스스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만큼 많은 말을 늘어놓고는 한다. 오늘도 그런 경우여서, 다음 정류장은 워터 프론트 역이라는 안내 방송을 듣고 나서야 간신이 정신을 차리고 열차에서 허겁지겁 내릴 수 있었다. 오늘은 오랜만의 외근이다. 어제 퇴근시간에 다음날 있을 외근을 준비하는 동안, 지부장은 내게 ‘약속시간에 1분 일찍 올 때마다 1점씩 먹고 들어간다.’라고 말을 했었다. 그래서 나는 약속시간에 15분 늦게 도착하기로 마음먹었고 그리고 나는 해냈다.


워터 프론트 역은 역에 들어가고 나가는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이곳 역시 출근시간에 야외라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죽음 같은 침묵만 감돈다. 나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역사 구석에 있는 개방형 화장실로 향한다. 이곳은 출근시간 애연가들의 작은 쉼터다. 저 근처로 가보니까 입구 근처에 몸에 착 감기는 양복을 걸친 양복쟁이와, 때가진 점퍼로 제 몸을 간신히 가린 노숙자가 나란이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 둘은 한때 같은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월은 흘렀고 그들이 걸친 옷이 증언해 주듯이 그들은 각자의 인생행로를 걸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같은 담배를 피운다. 1파운드 35센트짜리 담배, 납세자의 형편에 따라서 세금을 내는 것이 공정한 조세의 원칙이라고 하지만, 담배에 있어서는 간접세율을 적용을 받는 게 어쩌면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노숙자와 양복쟁이를 보며 내 머리가 하는 수다를 듣노라니 누군가가 내게 다가와 알은체를 한다. 아, 오늘도 찰리와 합을 맞추는 모양이다.












Channel 2. 아이리스


1623년 3월 26일

겨우내 하늘을 완전히 뒤덮은 추위가 시나브로 가시면서 노릇노릇한 태양이 대지를 감싸는가 싶었는데, 동장군의 마지막 숨결이라는 꽃샘추위가 이곳 이스트민스터로 찾아왔습니다. 겨울이 다 지난줄 알고 봄옷을 내놓는 바람에 애꿎은 원생들만 낭패를 입었습니다. 어께를 맞대고 삼삼오오 모여 학교로 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노라니 정말로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저는 마지막으로 일어난 페터를 보내고 아이들의 공동 침실로 들어갑니다. 역시나, 침대에는 잔뜩 구겨진 이불이며 잠옷들이 산사태의 잔해처럼 쌓여있었습니다. 제 하루는 이렇게 아이들이 남겨둔 허물들을 정리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각기 다른 색채를 가진 아이들이라 그런지, 이불들이나 옷가지들이 널 부러진 모습도 각양각색입니다. 하지만, 모두들 깨끗한 정리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똑같더군요.


전 빨아야 할 것은 바구니에 담고, 개어야 할 것은 개어가는 식으로 정리를 해나갑니다. 이젠 이런 것도 오래하다 보니, 기술이란 게 늘어서 이젠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네요. 사실 이외에 더욱 제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걸요.


얼추 정리를 끝내고 빨래바구니에 담긴 세탁물을 세탁실에 옮긴 뒤에, 저는 본당으로 올라갑니다. 벌써 많은 신도와 수녀님들이 머리에 베일을 얹고 미사에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사람들이 사도신경을 외는 걸 보니, 아직 미사가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이네요, 서둘러 온 보람이 있었습니다. 허리가 구부정한 사제님이 수전증으로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서 복음서를 봉독해 주십니다. 낮고 담담한 음색에 담긴 이야기는 사람의 아드님이 대중에게 설파할 때 사용되었던 이야기 한 토막 이었죠.


아버지에게 있어서 걱정거리였던 불효자가 아버지의 재산을 미리 상속받아 먼 외국으로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아들은 재산을 허랑방탕하게 소모하다가 결국 거지로 전락해 버리죠. 낯 두꺼운 그 아들은 결국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는데, 아버지는 탕아를 꾸짖고 벌하는 대신 당신의 반지를 끼어주고 그를 위한 잔치를 벌입니다.


‘인간에 대한 신의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것이 이 이야기를 관통하는 메타포라는 걸 머릿속으로는 잘 알고 있었지만, 하도 들었던 이야기였던 모양인지 저는 영혼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제 감흥을 표현합니다. 반면, 무엇이 그리 슬픈지 맞은편에 앉은 자매님들의 새빨개진 눈에서는 훔칠 새도 없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립니다.


어떤 이가 그러더군요. ‘세상은 단 하나의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수만큼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왜 그런고 하면 사람들이 세계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각자’, ‘나름대로’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라고 해요. 그 의미부여의 재료는 바로 자신의 과거 경험이고요. 다시 정리하자면, 사람들은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살며, 그 과거에 따라서 사람들은 세계에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하기에, 세상은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같은 일이 두 사람에게 닥친다고 하더라도, 어떤 이는 감사를, 또 다른 이는 원망을 늘어놓게 되겠죠.


그래서인걸까요? 저는 눈물을 글썽이는 형제, 자매님을 보노라니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Channel 1. 로키


찰리는 싱긋 웃더니 ‘선생님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담배 한 개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라고 묻는다. 나는 담배 몇 개비를 곽에서 집어 그에게 건넨다. 그는 호들갑스럽게 기뻐하며 공손하게 두 손으로 담배를 쥔 내 손을 어루만진다. 그의 손에 들려있던 종이쪽지가 이젠 내 손에 들려있다. 그는 고개 숙여 인사하며 내게 속삭인다.


“지옥에서 꼭 한잔 합시다.”


나는 총총걸음으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확인하고, 내 손에 쥐여진 메모지를 펼친다. 메모지에는 7110이라는 숫자가 적혀있다. 나는 메모지의 내용을 확인한 뒤에 로터리 너머 전당포로 걸어간다. 이번엔 도로시가 나를 맞아준다. 그녀는 마약에 절어있는 것처럼 언제나 눈이 풀려있는 문신쟁이이다. 오늘도 눈만큼이나 혀가 풀려버린 목소리로 내게 손을 흔들며 알은체를 한다.


“어이, 로키 오랜만이네. 이번에는 워터프론트로 파견 온거야?”

“..........”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그녀에게 종이쪽지를 건넸다. 그녀는 종이쪽지의 내용을 확인하고는 쭉 하고 기지개를 켠다.


“급할 거 있어? 일단 자리에 앉으라구. 커피나 한잔 할래 자기?”


그녀는 질문과 동시에 커피를 내와 내 무르팍에 가져다 둔다. 극단적으로 마이페이스인지라, 나에게 제안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통보를 하는 것인지 때로는 분간이 되지 않는 화법을 구사하는 게 그녀의 특징이다. 그래도, 근본이 나쁘진 않아 남에게 뭔가를 대접하는 걸 좋아하는 것이 나로 하여금 그녀를 미워하지 못하게 만든다. 겉보기에는 멍청한 것 같지만, 아마 능구렁이 100마리를 뱃속에 넣어두고 다닐 여자다.


커피를 홀짝이는 동안, 그녀는 캐비닛장으로 걸어가서 메모에 적힌 번호와 일치하는 캐비닛을 찾아 물건을 꺼내 내게 건네준다. 봉투에는 잘 벼려진 잭나이프와 장갑, 그리고 푸른색 약병이 들려있다.


“내가 자기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지만, 규정이니까 하도록 할게. 약은 캡슐로 되어있으니까 의뢰가 시작되기 직전에 물었다가 의뢰가 끝나면 입에서 빼도록 해, 만약에 체포되겠다 싶으면 주저 없이 그걸 깨물어. 그렇게 하면.”

“진짜로 지옥에서 한잔하게 되겠지.”

“그리고 장기 털이범들은 다른 시체를 챙겨 갈테고.”


그녀는 키득거리며 웃는다. 대상이 누가 되던지 간에 사람의 죽음은 그 자체로 그녀에게 즐거움을 주는 모양이다.


“내게 죽지 않기를 기도할건가?”

“기도가 무슨 소용이겠어, 자긴 어차피 이번에도 성공할 텐데 뭐........ 굳이 기도를 해주길 바란다면, 자기가 살짝 곤란해지는 쪽으로 기도해볼거야. 자긴 매력적인 남자긴 하지만, 너무 뻔해. 그런 남자는 완전 재미없지 않아? 자기가 나랑 좀 더 친밀해지고 싶으면, 그렇게 기도하길 바라던가.”

“뭐래, 미친년이?”


내말이 퍽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는 꺄르륵 하고 웃는다. 그녀는 본성은 착한 것이 분명하지만, 타인의 고통이나 죽음을 즐거워하고, 자신에게 욕을 하는 것에 기뻐한다. 확실히 말해......... 그녀는 정상이 아닌 것 같다. 하기사, 내가 ‘정상’을 운운할만한 입장은 되지 못한다만 말이다.

 

 

 

 

 

 



Channel 2. 아이리스


제 하루는 아침 미사가 끝난 뒤에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저는 본당을 나서, 같은 장소에 배속 받은 동료 수녀와 함께 사역 장소로 향합니다. 미리 말씀을 드리자면, 우리 교구에서는 석 달을 간격으로 장소를 바꿔가며 사역을 수행하고는 합니다. 저는 이번 회기에 빈민 구제소에서 사역을 수행하기로 되어있습니다.


백만의 사람들이 사는 이 거대한 라스알게티라는 도시에는, 타인의 도움이 없이는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소위 ‘빈민’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살고 있습니다. 어찌나 많이 살고 있던지, 라스알게티에는 빈민층들이 주민의 다수를 이루는 장소, 즉 ‘빈민가’ 혹은 ‘할렘가’가 이 도시에 있습니다. 아마 다섯 군데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곳을 사람들은 5대 우범지역이라고 부르죠. 이 빈민구제소는 바로 그 5대 우범지역중 하나에 자리잡고 있고요.


이 구제소의 건물은 퍽 노후되어 있어서, 농담을 즐겨하는 이들은 이 건물을 가리켜 ‘발로 툭 치면 와르르 무너질것 같다.’라고 묘사하고는 합니다. 사실,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한 농담이긴 해요. 건물의 외벽에 금이 쩍쩍 가있기도 하지만, 실제로 몇 군데는 쥐가 파먹은 것처럼 벽이 떨어져 나가긴 했거든요.


내가 봐도 이곳에는 발길도 주기 싫어 보이지만, 언제나 이곳은 만원사례입니다. 그들이 병들고 도움이 필요할 때, 등을 비빌 수 있는 곳은 오로지 이곳뿐이거든요. 매일 아침 이곳으로 출근 할 때면, 우리보다도 먼저 도착해서 페인트가 다 떨어진 벽에 기대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는 합니다. 처음에는 죄송한 마음에 출근시간을 앞당겨 보기도 했지만, 어느 시간대에 출근을 하더라도, 항상 이분들은 저희를 기다리곤 했어요. 이곳에서 밤을 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라구요. 결국은 저도 두 손 두 발 다 들고 정상적인 시간에 출근하게 되더군요.


당신들은 가난한 자들을 본 적이 있습니까? 사람의 아드님은 가난한 자들을 지칭해 이렇게 말씀 하셨죠. ‘가난한 자들은 행복하다. 천국이 바로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라고요. 하지만, 제가 그 천국의 주인들을 보다보면, ‘그들이 빨리 자신의 소유를 찾기 위해 떠나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곤 하더군요. 그 정도로 그들의 삶은 생각보다 훨씬 비참합니다. 물론 자신의 소유를 찾기 위해 천국으로 떠나는 대신에, 현세에서 이 가난의 사슬을 끊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이들이 퍽 많습니다. 아니, 제가 잘못 말했군요. 소위 빈민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이 도시에 사는 어떤 계층보다도 더 근면하며,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경우는, 냉정하게 말하자면 많지 않습니다. 아니, 거의 없어요. 대부분은 자신의 노력에 훨씬 못 미치는 대가를 받으며 실컷 혹사만 당하다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몸이 상해, 버려지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슬프게도 거의 그런 경우입니다.


우리의 임무는 그들을 ‘죽지 않을 정도로.’ 치료를 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기도력을 이용한 치료에 대해서는 강한 법적 규제가 걸려있거든요. 저는 이곳에 처음 배치되었을 때, 중견 수녀님이 19년간 다리를 움직이지 못했던 보행 장애인을 기도력으로 일으키는 것을 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수녀님을 다음날부터 이곳에서 볼 수가 없었죠. 그것을 본 누군가가 그녀를 고발했거든요. 그녀가 경찰에게 끌려가던 날 수많은 자매님들이 그녀를 위로하러 모였을 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비열한 것도, 악한 것도 신의 섭리에 합당하기만 하다면 선에 귀결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신의 섭리에 어긋난 모양인가 보죠.”


나중에 알게 된 일이었지만, 그녀는 이 일을 하면서, 법적인 규제에 불만을 품고 있었고, 그것에 대한 항의이자 자신의 마지막 봉사로서 그런 기적을 행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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