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4

NEOKIDS 작성일 13.12.13 00: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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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 4

 

 

그래.....물을 마셨었지......그리고 정신을 잃었어.....그런데.....

 

정신을 차렸을 때 남자는 자신의 목에 칼날이 와 닿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공기와 칼날은 차가웠고, 몸은 묶였다. 아주 조금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치밀하게 묶여진 몸. 바이스 같은 것으로 완전히 고정되어 돌릴 수도 움츠릴 수도 없게 된 머리.


남자는 흰자만 잔뜩 보이는 눈으로 사방을 돌아보았다. 몸을 세운 채로 있게끔 묶어놓았기 때문에 주변을 보는 데는 무리가 없었고, 빛의 양은 적었지만 눈은 이미 그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남자의 눈이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트렌치 코트로 몸을 감싼 정장차림의 한 사람을 발견했다. 코트로 시체에 염이라도 한 것 같은 느낌으로, 정장의 남자는 자신을 꼭 감싸매고 있었다.


“정신이 들었군.”


마치 친구를 대하는 듯한 포근한 말투. 묶인 남자는 경악했다. 그리고 자신의 목에 와닿은 칼날에 뭔가 기계장치가 되어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이.....이게 뭐야.....날 왜.......”

“별다른 이유는 없어. 그게 또 이 일의 매력이지.”

“무슨 정신나간 짓이야.......날 놔줘!”

“놔주려고 이렇게까지 공을 들였을까. 머리가 있다면 생각 좀 해봐.”


정장남자의 말은 그 어떤 감정의 흔들림도 느껴지지 않는 말투였다. 남자는 온힘을 다해 몸을 움직여보았다. 그러나 쓸데없는 짓일 뿐이었다.


“자넨 피해갈 수 없다네.”


정장남자는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을 내뱉었다.


“미안하지만 자네 담배도 좀 얻어 피우는 중이야.”

“빌어먹을! 대체 넌 누구야! 누가......그래......내 거래처 중의 한놈인가!”

“거래처?”

“그래. 앙심을 품을 놈들 쯤이야 쎄고 쌨지. 그 중의 하나겠어. 그래. 이제야 알겠군. 돈이 얼마가 됐든 다 지불할 테니.....아니,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를 불러줄테니 마음껏 빼서 쓰라고. 그러니까 이것 좀.......”

“왜 이러나. 실망스럽게.”


정장남자는 한 모금을 다시 깊게 빨았고, 순식간에 담배는 중간까지 재로 변했다.


“어제의 자신감 넘치던 자네는 어디로 간 건가. 마치 인생에서 무슨 일이 닥쳐와도 코웃음치면서 의연할 것 같던 자네는 말이야. 그런데도 이런 꼴이 되고 나서는 돈 따위를 운운하다니. 그 정도밖에 안됐던 건가?”


그제서야 남자는 정장남자가 누구인지를 알았다. 어쩌다 술자리에 같이 하게 된 남자였다. 그리고 꽤 깊은 밤까지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면서, 조금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괜찮냐고 물어보던 상대가 물을 한 잔 건넸다. 그 물을 마셨고, 그리고......


“칼은 보다시피 기계장치가 되어 있다네. 정확히 10분마다 1mm씩 자네 목으로 파고 들어가게 되지. 그렇게 파고 들어가다가, 자네 목에 위치한 경동맥까지 들어가게 될 거야.”

“씨발! 씨발!”


버둥거려보려 하지만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남자를 바라보며 정장남자는 다시 담배를 한 모금 빨아내고는 꽁초를 던진다.


“그래. 처음엔 다들 자네처럼 그러더군. 욕을 하고, 저주하고, 난리를 치지. 하지만 다들 체념한 채로 저 세상에 가지.”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오!”


정장남자가 박수를 한 번 탁 쳤다.


“죽어가는 와중에도 이유를 알고 싶은 호기심이라. 이것도 뻔한 반응이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자네가 한 5분 정도는 더 빨랐어. 그 정도면 쓸 만한 걸.”

“뭐? 뭐가 쓸만해?”

“자넨 내게 이야기를 잘 들려줄 것 같다는 기대감을 들게 하는 게 말이야.”


정장남자는 자신의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어깨를 움츠렸다.


“인간이란 게 얼마나 허망한 존재인지 아는가. 그렇게 위세등등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신의 존재를 포장하던 인간들이, 꼭 이런 상태만 되면 자기 바닥을 내보이고 추해지고 더러워져. 마치 은밀한 곳에서 창녀를 만나 성욕을 내보이지만 생식기는 기능도 못하는 늙은이 꼴 같단 말이지.”


정장남자의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에 남자는 깨달았다. 자신이 이렇게 되어 있는 이유란 건 사실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그저 거미줄에 걸린 벌레, 그것과도 같은 것이 자신의 상황이라는 것을. 다른 것이 있다면 거미는 먹기 위해 그렇게 하지만 이 남자는 그런 의미조차 없다는 점이 틀릴 뿐.


“그래도 나는 그들의 마지막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지. 학자면 학자대로, 창녀면 창녀대로, 위선자는 위선자대로, 성직자는 성직자대로. 그런데 왜 그렇게 한결같이 똑같을까. 인간이라는 존재는 말야. 그러니까 자네라도 날 재밌게 해주기 바라네. 혹시 아는가? 내가 자네를 살려주게 될지도.”

“살려준다고?”

“자네가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보여준다면 말이야.”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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