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습니다. 1주 2회 연재라고 했는데 바로 그다음부터 꽤나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미숙한 글을 읽어주시는 35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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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1. 로키
국빈관에서 나온 뒤에, 나는 사람들의 행렬 속에서 찰리를 발견한다. 그는 더 이상 내게 담배를 권하지 않는다. 그는 스쳐지나가면서 내 호주머니에 종이쪽지를 집어넣고는 그대로 인파속으로 사라진다. 나는 호주머니에 있는 쪽지를 펼친다. 쪽지에는 ‘50m 뒤 골목길, 종량제 쓰레기봉투’라고 전보문 형식의 문구만이 적혀있다. 나는 그것을 구겨서 버린 뒤에 그의 지령대로 50m를 걸어가 골목길에 들어간다. 역시 쪽지의 내용대로 종량제 봉투가 쓰레기 더미 속에 빠꼼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종량제 봉투 속에서 나는 지령장을 챙긴다. 지령장에는 5분 뒤에 이곳으로 타깃이 지나갈 것이며, 그는 호위대를 두 명 대동할 것이라고 적혀있다.
지령장을 보고나서야, 나는 비로소 ‘의뢰를 하게 되었구나.’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느낌을 받을 때 마다, 내 몸은 정직하게 반응을 보인다. 미세한 손의 떨림, 그토록 오랬동안 이 일을 해왔음에도 이런 증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처음에도 그랬고, 바로 전 의뢰에도 그랬으며, 이번 의뢰에도 그럴 것이고, 다음 의뢰, 그리고 그 다음 의뢰를 하더라도 이런 증상을 떨쳐버릴 수 없을 것이다. 아마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을 가진 이 처럼, 나도 이 반응을 평생 안고 살아야 할 지도 모른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기다리는 동안, 골목 귀퉁이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정말로 타깃이 오는 모양이다.
손의 떨림이 멈췄다.
Channel 2. 아이리스
빈민 구제소에서의 사역을 끝내고 수녀원에 돌아와 식사를 하고 있을 때, 페터가 두 뺨이 부루퉁해진 채로 터덜터덜 걸어서 돌아옵니다. 아무래도 이 아이의 표정을 보아하니,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한 모양입니다.
“누나, 나 학교 안가면 안되?”
이렇게 포문을 연 페터는 자신이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을 쪼르르 일러바치기 시작합니다. 발표를 하기 위해 손을 번쩍 들었지만, 그런 자신을 짐짓 무시하는 선생님으로부터, 쉬는 시간이면 교실 뒤편에서 자신을 가지고 레슬링 놀이를 하는 그의 말마따나 ‘죽여 버리고 싶은’ 학급 친구들, 그리고 그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야 이것도 해봐 쟤 존나 병신인거 같애.’라며 약을 올리는 그의 말마따나 ‘찢어죽이고 싶은’ 비겁한 친구들 이야기까지.......
물론, 저도 이런 이야길 듣노라면 마음이 무거워 지는 걸 넘어서 화가 납니다. 그래서 몇 번이고 그 말썽쟁이들을 혼내주기도 하고,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요청해 보기도 했지만, 가시적인 변화를 찾아볼 수가 없었어요. 가끔은 정말로 이 아이의 말대로 학교를 그만두게 하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것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제가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지금 당장은 아플지 몰라도 분명 지금의 이 경험이 페터에게 큰 도움 혹은 교훈이라던지를 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긴 뭐....... 애초에 제게 페터를 학교를 떠나게 할 수 있는 입장에 있는 것이 아니기도 하지만요. 저도 페터 나이또래 때부터 친구들이 저를 괴롭히곤 했습니다. 그 때 느꼈던 무력감, 그리고 굴욕감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추악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온 노력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나를 만드는데 밑거름이 되어주었죠. 그래서 저는 결국 이 아이에게 늘 상 해오던, 그 아이는 그닥 달가워하지 않을 그런 이야기를 해야만 합니다.
“학교를 그만두면 안 돼. 페터.”
“왜? 학교는 지옥 같단 말이야.”
“음......... 아마, 네가 그만두는 건 널 괴롭히는 녀석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 일 테니까. 넌 걔네들을 기쁘게 해줄 참이니?”
페터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한숨이 나옵니다. 사랑을 전파해야 할 제가, 한 어린 아이의 마음에 증오와 오기를 심어주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Channel 1. 로키
“시간이 늦었습니다. 대표님. 이쪽 길로 돌아가면 금방 도착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래, 고맙네, 자네가 아니었으면 천신만고 끝에 잡은 약속을 그대로 송두리째 날릴 뻔 했지 뭔가.”
“너무 그렇게 감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야 대표님께 도움이 되어드릴 수 만 있다면 제 월급 값을 하게 되어 다행인걸요. 그나저나 이곳 분위기를 보니 대표님이 오신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무리 위기에 처했다고 하더라도, 일단은 귀족이니까.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윗대가리가 직접 머리를 조아리고 찾아와야 그들도 체면이 살지 않겠나?”
“귀족이란 참........ 복잡하군요.”
“그래, 일단은 표면상으론 그들이 갑이고 우리가 을이지만, 그건 상관없네, 중요한건 그들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것이 중요하단거야. 그나마 늦기전에 그들이 깨달아서 다행이야. 그들이 키운 것이 강아지가 아니라 호랑이 새끼란걸 말이지.”
나는 그들의 대화를 끝내고 나에게 주의를 끌어야 할 필요성을 느껴서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알데라민 경제인 연합회 대표 주벤샤예마리님 되십니까?”
그들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경호원으로 보이는 두 사내가 경계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을 들은 셈이다. 이제부턴 진짜로 시작이다. 나는 품안의 잭 나이프를 꺼낸다.
“이제부터 당신에게 천벌을 내리겠다.”
경호원들 역시 품안에서 단도를 꺼낸다. 타깃으로 보이는 이는 경호원의 뒤로 빠져서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질문을 던진다.
“로스차일드의 개인가?”
“.............의뢰주에 대한 정보는 알려줄 수 없다.”
“로스차일드도 웃기는 놈들이군, 고작 이 늙은이 하나 없앤다고 이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나보지? 개방은 시대의 흐름이다. 그 흐름에 늦게 올라탈수록 손해를 볼 뿐이라고!”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경호원중 하나가 내게 빠른 속도로 달려 들어온다. 그는 단도를 높이 치켜든 채로, 자신에게 힘을 불어넣을 요량으로 크게 소리를 지른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도 내 뇌는 꽤나 산만해서, 수다를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이런 식으로 임전 상황에서 크게 소리를 지르는 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들의 대다수는 실력의 부재를 기세로 메울 수 있다고 믿는 순진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내 판단은 틀린 것이 아니라서, 이번 상대는 자신의 어께죽지의 움직임을 노출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왼쪽 어께가 앞쪽으로 튀어나왔고, 뒤편의 오른쪽 어께가 높이 들려있다. 이것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내리긋겠다고 내게 알려주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내가 그와 좀 더 차분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최대한 그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는 목소리로, 그에게 ‘목소리 보다는, 어께를 신경 썼어야 했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어쨌든 일은 일인지라, 나는 반 발자국 앞으로 가서, 그의 타이밍을 빼앗고 그가 앞으로 내딛을 왼발을 걷어차 버린다.
균형을 잃어버린 상대는 그대로 꼴사납게 고꾸라져버릴 수밖에, 나는 엎어진 상대의 팔을 잡아 꺾은 뒤에, 세 사람에게 나의 의도를 정확히 밝혀둔다.
“타깃 이외의 사람은 죽일 생각이 없다. 그러니 굳이 죽자고 달려들기 보다는, 눈치껏 자리를 비켜줬으면 좋겠다.”
어차피 그들은 금전관계로 맺어진 사이일 테니, 대충 내 힘과, 의도를 명백히 밝혀두면 불가피한 살상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이 내 의도였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내 생각은 잘못된 모양이다. 내 손아귀에 잡힌 한 녀석이 발버둥 치는 사이에, 다른 녀석이 나를 향해 달려들고 있으니 말이다. 설상가상으로, 동료의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내 손아귀에서 발버둥 치던 녀석은 탈출을 포기하고, 내 몸을 물고 늘어진다.
이대로 가다간 옴짝달싹 못하고 당할 판이다. 별수 없이, 나는 신속하게 인질의 경동맥을 그어버리고 나서야 상대의 칼을 재빠르게 피해 전투태세를 갖춘다. 나는 녀석의 움직임을 주시한다.
상대는 아무래도 맨 처음의 녀석보다는 실력이 좋은 것이 분명하다. 내게서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기 위해서 나에게 쉴 새 없이 공격을 퍼붓는다. 나는 가까스로 공격을 피해 다니다가, 반격을 하기위해 칼을 튕겨내고, 명치를 향해 니킥을 날려보지만, 녀석은 별다른 큰 동작을 취하지도 않고서 잘도 그걸 피해낸다.
이 녀석을 쓰러뜨리는데는 아까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 같다. 이렇게 되면 타깃이 도망치게 될 시간을 벌어주게 될 것이 분명한데........ 아무래도 생각보다 상황이 더 복잡해진 것이 분명하다.
나는 한참동안 상대와 대치한다. 손의 떨림은 이미 사라졌지만, 또 다른 종류의 긴장감이 내 근육을 뜨겁게 만든다. 아마도 이건 가위바위보와 비슷할 것이다. 내가 이길 확률은 1/3, 내가 질 확률도 1/3, 그리고 비겨서 상대와 또 다른 대치국면에 접어들 확률도 역시 1/3이다.
가위바위보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약간의 꼼수와 눈썰미가 필요하다. 꼼수라 함은 상대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만 나의 패를 늦게 내는 것이고, 눈썰미라 함은 약간 늦게 나의 패를 내는 사이에 상대가 내려는 패를 재빠르게 알아차리는 것이다. 일단, 그럴 수가 있는 것이, 녀석이 처음에 내게 쉴새없이 공격을 퍼붓느라 체력을 많이 빼놓아서, 자신의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 녀석도 공격을 누그러뜨리고, 나의 기색을 살펴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나는 녀석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재빠르게 살피며, 혹시나 있을 공격의 징후를 살펴본다. 상대의 시선이 내 오른발을 향한다. 음.......... 내 다리를 걸 참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에, 녀석의 머리카락이 빠르게 왼쪽으로 기울어진다. 몸이 오른쪽으로 빠르게 움직이면서, 그 반동으로서 머리카락이 왼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이다. 나는 재빠르게 그의 손을 본다. 역시나 그의 손은 내 다리를 걸기 위해 잔뜩 벌어져있다. 이제 상대의 패는 보았고, 대응을 할 차례다. 난 왼발을 축으로 삼아 몸을 회전시킨다. 그리고 녀석이 한때 내 오른쪽 다리가 있던 곳을 향해 허망하게 날아가는 동안, 재빠르게 녀석의 등 뒤에 다가붙은 다음, 녀석의 등에 칼을 꽂는다.
상대는 자신의 생각을 나에게 들켰고, 그래서 죽었다.
Channel 2. 아이리스
식사를 마친 뒤에, 저는 다음 일정을 향해 교육관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오후에 제가 해야 할 일은, 학교에 돌아온 아이들의 학습을 보충해 주는 것이거든요. 학습 보충이란 건 솔직히 말해서 별거 아닙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적어온 알림장을 점검 해주고, 숙제를 함께 해결해 주는 것 정도인걸요.
이런 프로그램은 비교적 최근에 생겨났습니다. 원장 수녀님이 아침마다 읽는 신문에 교육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었는데, 그 기사를 원장수녀님이 읽어보신 것이 이 프로그램의 시작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던 거죠. 기사의 제목은 ‘콩 심은데 팥은 날 수 없는가?’라는 다소 도발적인 냄새가 풍겼었죠. 기사를 쓴 글쓴이의 주장에 따르면, 부모의 자녀교육에 대한 물적인 지원과, 지속적인 관심이 자녀들의 학업 성취와 직업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더군요.
기자는 그 논리를 끌어서, 왜 가난이 대물림 되는 것인지를 설명하더군요. 노동자 계층의 부모는 자본가 계층에 비해 자녀교육에 있어서 물적인 지원과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기 어렵기에, 자녀의 학업성취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콩 심은데는 팥이 날 수가 없듯이, 노동자 계층에서 자본가가 생길 수 없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라며 약간은 자조적인 목소리로 기사를 끝마쳤습니다.
원장수녀님이 그 기사를 읽은 뒤에, 수녀님들 중에서 고학력자들을 대상으로 삼아서, 원생들의 학업 성취를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계획하셨고, 그 결과가 바로 제가 하는 오후 스케쥴이랍니다. 마치 부모와 자녀처럼, 멘토와 멘티를 1:1로 지정해 주기도 했답니다. 물론 수녀님들의 수가 워낙 부족하기에, 인근 대학교의 학생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고요.
제가 맡기로 한 아이는 캐서린입니다. 페터의 단짝이어서, 페터와 함께 저를 약간은 귀찮다 싶을 정도로 따르는 아이죠. 다만, 아이의 학업성취는 많이 부진한 편이에요. 오늘은 캐서린과 함께, 내일 있을 시험을 대비한 공부를 할 참이랍니다.
“안녕 캐시, 오늘은 제법 일찍 왔는걸? 친구랑 안 놀고 바로 온 거야?”
“응응, 근데 언니, 나........ 오늘은 일찍 끝내주면 안돼? 공부 끝나구 애들하고 놀기로 했단 말이야.”
책상에 턱을 괴고서 간절한 눈길로 올려다보는 이 똥그란 눈을 보자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네요. ‘끝내고 자시고 할게 있어? 그냥 지금 당장 놀러가렴.’이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안 될 말이겠죠? 전 재빨리 웃음기를 지워버리고, 짐짓 엄격한 표정을 지으며 캐시에게 대답해 줍니다.
“내일 시험이잖니. 좋은 성적을 받으면 기분이 정말 좋을껄? 하지만......... 너 하는거 봐서, 일찍 보내줄 지도 모르지.”
캐서린의 얼굴이 확하고 밝아집니다. 하하. 확실히 애는 애네요.
우선 저와 캐서린은 실과 교과서를 펼쳐봅니다. 캐서린은 제게 이번에는 ‘나의 옷입기와 관리하기.’라는 단원이 시험범위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교과서를 보니, 옷에 묻은 오물들을 닦아내는 방법들이, 오물의 종류별로 정리되어있네요. 특히 보기 쉽게 표로 정리된 내용에는 별표가 잔뜩 그려져 있습니다.
“선생님이 중요하다고 알려주셨어.”
오, 정말 좋은 출제정보로군요. 물론, 선생님들도 적잖이 고민일겁니다. 애들이 모두가 만점을 받지 않으면서도, 어느 정도 좋은 성적이 나오도록 해야 할 테니까요. 전 캐서린과 함께 표의 내용을 읽어보면서, 선생님들이 문제를 낼 만한 소위 말하는 ‘이쁜 문제거리’를 찾아봅니다. 아, 이게 보이네요.
“자, 캐시 언니가 질문 해 볼게. 이 표를 다 외울 수 있겠니?”
“그걸 말이라고 해? 언니?”
역시나 캐시는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그럴 수 밖에요. 스무 종류가 넘어가는 이 많은 오물의 종류별 대처방법을 외우는건 어른인 저도 무리인걸요. 그렇지만, 이 방법을 다 외울 필요는 없다는 것이 아마, 이 표의 핵심일 것입니다.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수준은 비교적 낮으니까요.
“그럼 다시 한 번 질문을 해볼게. 네 옷에 얼룩이 묻었어, 근데 근처에 비누가 없다면, 넌 그걸 어떻게 없애볼 거니?”
“음........... 털지 않을까?”
“그렇지이~ 하하. 머리 좋은걸? 그럼 퀴즈! 어떤 방향으로 털어볼꺼니? 1번, 옷의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2번, 옷의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음................”
캐서린의 미간이 찌뿌려지는 것이, 여기에서 고민에 봉착한 모양입니다. 교사는 이런 무거운 침묵을 참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누군가가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 무거운 침묵 속에서, 아이의 내는 이전의 자신을 깨고, 새로이 태어난다고 하더라구요. 물론 지켜보는 입장에선 답답할 지도 모르겠지만, 여기에서 정답을 알려주면, 아이의 성장은 멈추고, 평생 사과 나무아래 드러누워 입만 벌리고 있을 답답한 곰이 되고 말 테니까요.
캐서린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잡아뜯어버립니다. 전 캐서린의 노력을 칭찬해 주면서, 교과서를 보라고 말해줍니다. 교과서에서는 ‘안에서 밖으로 턴다.’라고 써있네요. 당연한 소리겠지만, 정답을 안 캐서린의 표정은 썩 밝지 않습니다. 굳이 캐서린이 지은 표정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이제 한 문제 해결했으니, 다른 걸로 빠르게 넘어갑시다.’라고 나를 재촉하는 표정이에요. 전 그런 표정이 싫습니다.
“캐시, 왜 안에서 밖으로 털어야 하는 걸까?”
“음..........”
이제 캐시는, ‘아 왜! 언니 자꾸 질문만 계속해!’라고 원망하는 눈초리로 나를 쏘아보네요. 하긴, 지금 캐서린의 머릿속에는 빨리 끝내고 놀고 싶다는 생각만이 가득할테니까요. 하지만, 왠지모를 욕심이 듭니다. 뭔가를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다는 그런 생각말이에요.
“생각해보면 간단해 캐시. 자, 한번 생각해 보자구, 밖에서 안으로 때리면, 얼룩이 어떻게 될 것 같아?”
저는 캐서린이 이해하기 쉽도록, 직접 제 옷을 팡팡 때리면서 질문을 해봅니다. 캐서린은 한참 동안 제가 하는 동작을 지켜보다가 ‘아하!’하는 표정을 짓습니다.
“아!!! 알겠어 언니!! 밖에서 안으로 때리면 얼룩이 옷감 안쪽으로 파고 들어갈거야. 그럼 얼룩이 빠지는 게 아니라 더 없애기 힘들어지는 거지, 그래서, 얼룩을 없애려면, 옷감의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털어줘야 얼룩이 밖으로 빠져 나가는 거야. 그럼 모든 얼룩들이 다 그런거야?”
“글세, 굳이 알고 싶다면, 표의 내용을 확인해 보는게 어때? 어떤 종류의 얼룩이건,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턴다는 내용이 들어있으면, 네 생각이 맞겠지 뭘.”
캐서린은 빠르게 표의 내용을 확인해보고, 씩하고 웃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거겠죠. 전 뿌듯함을 느끼면서 한마디를 덧 붙여줍니다.
“우와........... 진짜 이 표, 언제 외우냐하고 걱정하고 있었는데, 별거 아니네?”
“그래, 생각해보면, 별거 아닌거야. 그걸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일 뿐이지. 그걸 두려워 하면 안돼 캐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