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거실이 컴컴했다. 주무시네. 그렇지. 열한 시 넘었으니까. 준수는 아직 안 들어왔고. 배고프다. 중간에 뭘 먹어야겠다. 이거는 아니다. 나는 주방으로 향했다.
“지금 온 거야?” 어머니 목소리였다.
“네.” 나는 냉장고를 닫았다. 어머니가 주방에 들어왔다.
“계속 주무시지.” 내가 말했다.
“잠이 와야 자지. 왜. 뭐 찾아.” 어머니가 물었다.
“뭐 먹을 거 없어요?” 나는 서랍을 닫았다.
“밤 늦게 뭐 먹는 거 안 좋다고 그랬지.” 어머니가 말했다.
“저녁 못 먹었어요.” 내가 말했다.
“왜?” 어머니가 물었다.
“시간이 없어서요.” 내가 대답했다.
“저녁 먹을 시간도 없어?” 어머니가 물었다.
“수업이 네 시부터 시작이라서. 시간이 빡빡하더라고요.” 내가 대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밥 먹을 시간은 줘야지. 뭐 그런 데가 다 있냐.” 어머니가 말했다.
“이십 분 정도 비는데. 애매하더라고요. 근데 점심을 늦게 먹었어요. 세 시 넘어서.” 내가 말했다.
“매일 그래?” 어머니가 물었다.
“아마도.” 내가 대답했다.
“그럼 어떡하냐. 응? 매일 이 시간에 밥을 먹을 수도 없고.” 어머니가 말했다.
“내일부터는 이동하면서 간단히 먹으려고요. 샌드위치 같은 거.” 내가 말했다.
“어디로 이동해?” 어머니가 물었다.
“이게 학원이 아니라. 과외예요, 과외. 알고 보니까.” 내가 말했다.
“과외? 학원이라며.” 어머니가 말했다.
“그러니까 학원은 있는데. 교실에서 애들 모아놓고 수업하는 게 아니라고요. 학생 집으로 내가 가야 돼요.” 내가 말했다.
“아. 옛날에 그거구나? 너도 했었잖아. 그 이름이 뭐였지?” 어머니가 물었다.
“아니, 그거랑은 달라요. 과외라니까요. 그냥 과외 생각하면 딱 맞아요.” 내가 말했다.
“근데 경환이는 왜 너한테 학원이라고 그랬어?” 어머니가 물었다.
“걔도 몰랐을 걸요. 근데 상관없어요. 어차피, 뭐. 오래 다닐 거 아니니까.” 내가 말했다.
“그럼 하루 종일 밖에서 돌아다니는 거야?” 어머니가 물었다.
“아니요. 수업은 네 시부터 시작이니까. 그 전에는 사무실에 있다가. 네 시부터 열 시까지. 세 군데.” 내가 대답했다.
“거기 냉장고 옆에 열어 봐. 빵 남은 거 있다.” 어머니가 말했다.
“여기요?” 나는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에 비닐 봉지가 들었다. 호두였다.
“응.” 어머니가 대답했다.
“없는데요.” 내가 말했다.
“얘는 찾아보지도 않고. 거기 있잖아. 없어?” 어머니가 다가왔다.
“없다니까요.” 내가 대답했다.
“그거 아니야?” 어머니가 물었다.
“호두예요.” 내가 대답했다.
“어? 어디 갔지?” 어머니가 냉장고를 열었다.
“누가 먹은 거 아니에요?” 내가 물었다.
“이상하다. 분명히 여기에 놔뒀는데.” 어머니가 서랍을 열었다.
“없으면 됐어요.” 나는 냉장고를 열고 우유를 꺼냈다.
“아빠가 버렸나?” 어머니가 말했다.
“아빠가 그걸 왜 버려요.” 내가 말했다.
“봉지에 들었으니까 쓰레기인줄 알고. 너네 아빠 원래 보지도 않고 잘 버리잖아.” 어머니가 말했다.
“누가 먹었겠죠.” 내가 말했다.
“먹었으면 봉지가 나왔을 텐데.” 어머니가 말했다..
“됐어요. 우유 마시면 돼요.” 내가 말했다.
“저녁 안 먹었다며. 그걸로 돼? 과일이라도 먹어.” 어머니가 말했다.
“네.” 나는 방으로 향했다.
“갖다 줘?” 어머니가 물었다.
“아니요. 제가 갖다 먹을게요. 주무세요.” 내가 대답했다.
중간에 이십 분 정도 비니까. 편의점에 가서 간단히 먹자. 아니면 미리 사서 가방에 넣어 놓든가. 그래도 되지. 샌드위치 같은 거.
나는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삼십 분만 놀다가. 씻고. 열두 시에 자야지.
“야.”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발소리가 들렸다.
“네.” 내가 말했다.
“여기 있다. 밖에다 내놓고 엉뚱한 데서 찾았네.” 어머니가 비닐 봉지를 내밀었다. 빵이었다.
“안 버렸네.” 나는 봉지에서 빵을 꺼내 포장을 벗겼다.
“많이 먹지 마. 소화 안 된다.”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빵을 뜯어 입에 넣었다.
“그래서. 거기 원장도 만났어?” 어머니가 물었다.
“당연히 만났죠.” 내가 대답했다.
“뭐래?” 어머니가 물었다.
“뭐가요?” 내가 물었다.
“여기 왜 왔냐고 안 물어봐?” 어머니가 웃었다.
“그런 거는 안 물어보던데.” 내가 대답했다.
“그럼 뭐 물어봤는데?” 어머니가 물었다.
“그냥, 뭐. 예전에 애들 가르쳐 본 경험이 있는지.” 내가 대답했다.
“그래서 뭐라고 그랬어?” 어머니가 물었다.
“있다고 그랬죠.” 내가 대답했다.
“네가 언제 애들을 가르쳐 봤어?” 어머니가 물었다.
“대학교 때요. 과외 했었잖아요.” 내가 대답했다.
“아. 맞다. 그랬지, 정말.” 어머니가 말했다.
“그.” 내가 웃었다. “애들 앞에 서서 하는 건 줄 알고 긴장하고 있었는데. 잘됐어요. 나는 그게 더 편하지. 근데 문제는.”
“응.” 어머니가 말했다.
“설마 불법은 아니겠지.” 내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왜 불법이야?” 어머니가 물었다.
“과외는 대학생만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런 걸로 알고 있는데. 찾아봐야겠다.” 나는 인터넷에 접속했다.
“사무실이 있다며.” 어머니가 말했다.
“네. 사무실은 있는데. 잠깐만요. 아니구나. 교육청에 신고를 하면 되네. 대학생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대학생은 신고를 안 해도 되는 거네.” 내가 말했다.
“그러니까. 불법이면 그렇게 대놓고 하겠어? 어디 숨어서 몰래 하겠지.” 어머니가 말했다.
“어쨌든 다행이네.” 내가 말했다.
“내일은 몇 시에 나갈 거야?” 어머니가 물었다.
“일곱 시요.” 내가 대답했다.
“그 시간에 사람 많던? 지하철에?” 어머니가 물었다.
“많죠.” 내가 말했다.
“그래도 버스보다는 지하철이 낫잖아.” 어머니가 말했다.
“네.” 내가 말했다.
“일찍 자. 커튼 꼭 치고. 새벽에 춥다.” 어머니가 말했다.
“주무세요.” 내가 말했다.
“얘는 어디서 뭘 하는데 아직까지 안 들어와. 열한 시가 넘었는데. 하여튼.” 어머니가 방을 나갔다.
원서를 학교에 가서 내야 되네. 그냥 인터넷으로 하면 되는 줄 알았더니. 평일은 안 되니까. 토요일에 갔다 와야겠다. 가서 원서 내고. 교수님도 뵙고 와야지.
“그냥 자자. 피곤하다.” 나는 컴퓨터의 전원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생각보다 피곤하네. 한 것도 없는데. 교수님한테 메일 보내야지. 내일. 학원 가서. 양치해야 되는데. 잠깐만. 오분 만 누웠다가.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