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나는 휴대폰을 닫았다. 안 받는다. 몇 시야. 세 시 사십 분이지. 오십 분까지만 기다려 보고. 그래도 안 오면 학교로 간다.
“저기요! 아저씨!” 남자 목소리였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경비원이었다.
“네?” 나는 경비원 쪽으로 움직였다.
“어디 가세요?” 경비원이 물었다.
“구 층.” 내가 대답했다.
“구 층 몇 호요?” 경비원이 물었다.
“구 층. 잠시만요.” 나는 가방을 열었다. 파일이 없었다. 책상에 놓고 왔다.
“네? 몇 호 가시냐고요.” 경비원이 물었다.
“몇 호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이쪽 복도 끝에 있는 집이요.” 나는 팔을 뻗었다. “그러면 몇 호죠?”
“끝이면 삼 호인데. 구백삼 호 오셨어요?” 경비원이 물었다.
“네. 구백삼 호.” 내가 대답했다.
“무슨 일로 오셨는데요?” 경비원이 물었다.
“그, 과외 하러 왔는데요.” 내가 웃었다.
“과외요? 거기는 노인 두 분만 사시는 집인데.” 경비원이 말했다.
“네? 어. 아닌데.” 내가 말했다.
“잠깐만 일로 와 보세요.” 경비원이 몸을 돌려 걸어갔다.
구 층 맞잖아. 그리고 왼쪽 끝에 있는 집. 맞는데. 잠깐만. 구 층이 아닌가?
“네? 일로 와 보세요.” 경비원이 말했다.
“네.” 나는 경비원을 따랐다.
경비실이었다. 경비원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문 앞에 섰다.
“들어와요.” 경비원이 말했다. 나는 안으로 들어왔다.
“혹시 어제도 여기 왔었어요?” 경비원이 물었다.
“아니요. 어제는.” 내가 고개를 흔들었다. “안 왔는데요.”
“확실해요?” 경비원이 물었다.
“네. 어제는 십 동하고 십삼 동 갔으니까.” 내가 대답했다.
“십 동하고 십삼 동은 왜 갔는데요? 과외 하러요?” 경비원이 물었다.
“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학생이에요?” 경비원이 물었다.
“아니요. 대학생은 아닌데. 잠깐만요. 구 층이 아니었나?” 내가 웃었다.
“그럼 몇 층인데요?” 경비원이 물었다.
“그게 적혀있는 파일을 놓고 와서. 가서 확인하고 다시 올게요.” 나는 문 쪽으로 움직였다.
“어, 잠깐만요.” 경비원이 내 팔을 잡았다. “잠깐만 있어 봐요.”
“왜 그러시는데요?” 내가 물었다.
“잠깐만요. 잠깐만 앉아 봐요. 확인할 게 있어서.” 경비원이 말했다.
“근데 제가 네 시까지 거기 가야 돼서.” 내가 말했다.
“잠깐이면 돼요. 여기 앉아요.” 경비원이 의자를 내려 놓았다. 나는 의자에 앉았다.
“어쨌든 여기는 온 적 없다는 거죠.” 경비원이 수화기를 들었다.
“네. 어제는 안 왔어요. 여기 십이 동 맞죠?” 내가 물었다.
“여보세요. 네, 여기 경비실인데요. 어제 그 사람이요. 일단 내려와서 확인 좀 해 주세요. 네. 지금요.” 경비원이 말했다.
어제 그 사람. 어제 여기에 누가 왔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다.
“네.” 경비원이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여기 십이 동 맞죠?” 내가 물었다.
“네. 십이 동.” 경비원이 대답했다.
이 선생님도 안 받네. 나는 휴대폰을 닫았다. 세 시 오십 분. 이제 가야 된다.
“저 이제 진짜 가야 되는데요.” 내가 말했다.
“왜 안 내려오지.” 경비원이 수화기를 들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잠깐만 있어 봐요.” 경비원이 말했다.
“아저씨. 뭐 때문에 그러는지 말씀을 하세요. 아니면 저 갈 거예요.” 내가 말했다.
“아니, 그게. 신고가 들어왔어요. 어제 어떤 남자가 와서 여기 사는 꼬마한테 이것 저것 물어봤대요. 몇 살인지. 유치원은 어디 다니는지. 집에 누가 있는지. 요즘 하도 험한 일들이 많으니까. 잠깐만 기다려 봐요. 안 받는 거 보니까 지금 내려오고 있는 거 같은데.” 경비원이 말했다.
세 시 오십 분. 학교로 바로 가야겠다. 아니지. 엇갈릴 수도 있다. 그냥 학원으로 가서 파일을 가지고 오자. 조금 늦더라도 그게 낫겠다. 학교에 갔는데 없으면 어차피 학원으로 가야 되니까. 그러면 너무 늦는다.
“왜 다들 전화를 안 받으실까.” 나는 휴대폰을 열었다. 준영이가 계단을 올라왔다.
“어.” 나는 문을 열었다. “준영.”
“안녕하세요. 거기서 뭐 하세요?” 준영이가 물었다.
“너 왜 전화 안 받아.” 내가 웃었다.
“전화하셨어요?” 준영이가 휴대폰을 열었다. “어? 진짜네. 몰랐어요.”
“이 학생이에요?” 경비원이 물었다.
“네. 준영아, 너네 집 몇 층이었지?” 내가 물었다.
“구 층이요. 구백삼 호.” 준영이가 대답했다.
“아, 구백삼 호 맞아?” 내가 물었다.
“네.” 준영이가 대답했다.
“구백삼 호 살아요?” 경비원이 물었다.
“네.” 준영이가 대답했다.
“어? 구백삼 호가 아닌가? 잠깐만.” 경비원이 말했다. 사람들이 걸어왔다.
“아저씨.” 여자가 말했다. 여자 아이가 여자 옆에 섰다.
“오셨네.” 경비원이 웃었다. “근데.”
“이 사람이에요?” 여자가 나를 쳐다보았다.
“아니요. 이제 그걸 물어보려고 했었는데.” 경비원이 모자를 벗었다.
“어제 이 아저씨가 물어봤어?” 여자가 물었다. 여자 아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여자가 물었다.
“아니야.” 여자 아이가 대답했다.
“저는 어제 여기 안 왔어요.” 내가 말했다.
“아니라고 하네요.” 여자가 웃었다.
“아, 이거. 죄송합니다. 키가 크다고 그래서. 정말 죄송합니다.” 경비원이 고개를 숙였다.
“아니에요. 그럼 이제 가도 되죠?” 내가 물었다.
“네. 죄송합니다.” 경비원이 대답했다. 나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움직였다. 준영이가 따라왔다.
“뭐예요?” 준영이가 물었다.
“누구 찾나 봐. 근데 그런 거 물어보면 안 되나?” 나는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육 층에 있었다.
“뭘 물어보면 안 돼요?” 준영이가 물었다.
“오늘 늦었네.” 나는 준영이를 쳐다보았다.
“아직 네 시 안 됐는데요.” 준영이가 말했다.
“축구 했어?” 내가 물었다.
“네.” 준영이가 대답했다.
“너 공 잘 차더라. 그때 보니까.” 내가 말했다.
“근데 밑창이 다 닳아서.” 준영이가 발을 굴렀다. “자꾸 미끄러져요.”
“하나 새로 사.” 내가 말했다.
“산 지 얼마 안 됐어요. 육 개월 됐나.” 준영이가 말했다.
“너 축구 매일 하지.” 내가 물었다.
“네. 아, 근데. 이 축구화가 싼 거라서 그래요.” 준영이가 대답했다.
“축구가 그렇게 좋아?” 내가 물었다.
“재미있잖아요.” 준영이가 대답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럼 아예 축구 선수가 되는 게 어때. 응?” 나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에이. 제가 어떻게 축구 선수가 돼요.” 준영이가 말했다.
“왜. 잘하잖아.” 내가 말했다.
“저보다 잘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준영이가 말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근데 왜. 야, 눌러야지.” 내가 말했다.
“아.” 준영이가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였다.
“그럼. 나중에 뭐 하고 싶은데? 혹시 생각해 본 적 있어?” 내가 물었다.
“저요? 의사요.” 준영이가 대답했다.
“아, 의사 되고 싶어?” 내가 물었다.
“네.” 준영이가 대답했다.
“그렇구나.”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준영이가 말했다.
“왜 의사가 되고 싶은데?” 내가 웃었다.
“좋잖아요. 돈도 많이 벌고.” 준영이가 대답했다.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문이 열렸다.
“내려.” 내가 말했다. 준영이가 밖으로 걸어나갔다.
“축구 선수도 돈 많이 버는데.” 내가 말했다.
“축구 선수 되는 건 어렵잖아요.” 준영이가 말했다.
“의사 되는 것도 어려울 걸.” 내가 말했다.
“그래도 축구 선수 되는 것보다는 쉽죠.” 준영이가 말했다.
휴대폰 벨이 울렸다.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이 선생의 전화였다.
“확실해?” 나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까 전화했어요?” 이 선생의 목소리였다.
“네. 준영이네 집 주소를 몰라서.” 내가 대답했다. 준영이가 현관문 앞에 섰다.
“거기 파일에 있잖아요.” 이 선생이 말했다. 현관문이 열렸다.
“파일을 책상 위에 놓고 왔어요.” 내가 웃었다.
“십이 동 구백삼 호요.” 이 선생이 말했다.
“네. 준영이 만났어요.” 나는 현관문을 닫았다. 준영이가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걔 또 늦게 왔죠?” 이 선생님이 물었다.
“아니요. 네 시 전에 왔어요.” 내가 대답했다.
“알았어요. 수고해요.” 이 선생이 말했다.
“네. 수고하세요.” 내가 말했다. 전화가 끊어졌다.
준영이가 책상에 앉았다. 나는 점퍼를 접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선생님 오늘은 왜 양복 안 입고 오셨어요?” 준영이가 물었다.
“불편하잖아.” 내가 대답했다.
“그러면 저번에는 왜 입고 오셨는데요?” 준영이가 물었다.
“첫 날이었으니까.” 나는 의자에 앉았다.
“첫 날에는 양복 입어야 돼요?” 준영이가 물었다.
“보통 그렇지 않나? 그건 왜 물어보는데?” 내가 물었다.
“그냥이요. 궁금해서.” 준영이가 대답했다.
“계속 양복 입고 와?” 내가 물었다.
“아니요.” 준영이가 고개를 흔들었다.
“책 펴. 오늘은 수학 하는 날이네.” 내가 말했다. 준영이가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저번 시간에 뭐 했어?” 내가 물었다.
“도형이요.” 준영이가 책장을 넘겼다.
“줘 봐. 어디까지 했는데?” 내가 손을 내밀었다.
“아, 숙제도 있었어요.” 준영이가 공책을 펼쳤다.
“그럼 그거 먼저 줘 봐.” 내가 말했다. 준영이가 내게 공책을 건넸다.
“야. 글씨가.” 내가 웃었다. “잘 좀 써 봐.”
“빨리 써서 그래요.” 준영이가 말했다.
“일단 그 다음 거 풀고 있어.” 내가 말했다.
“네.” 준영이가 연필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