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_(25)

김정욱 작성일 15.06.24 19:55:55
댓글 0조회 698추천 1

 


25.




삼 층에 미용실은 여기 하나다. 나는 문을 잡아 당겼다. 남자가 나를 쳐다보았다. 여자가 돌아섰다.

저기. 머리 자를 수 있나요?” 내가 물었다.

그럼요. 들어오세요.”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미용사다.

손님 오셨으니까 나는 가봐야겠다.” 남자가 일어섰다.

. 더 놀다 가지.” 미용사가 말했다.

아니야. 아들 올 시간 다 됐어. 집에 아무도 없어서 가 봐야 돼.” 남자가 말했다.

민이 엄마는 어디 갔어?” 미용사가 물었다. 나는 가방을 소파에 내려놓았다.

놀러. , 왔나 보다.” 남자가 휴대폰을 귀에 댔다. “여보세요? . 키 안 가지고 갔다며.”

이쪽에 앉으세요.” 미용사가 의자를 가리켰다.

.” 나는 의자에 앉았다. 

집에 왔대?” 미용사가 물었다.

. 거의 다 왔대. 그럼 수고해요.” 남자가 문을 밀었다.

들어가세요. 내일 또 놀러 와.” 미용사가 말했다. 문이 닫혔다.

어떻게 해 드릴까요?” 미용사가 물었다.

다듬기만 해 주세요.” 내가 대답했다.

다듬기만?” 미용사가 내 머리를 만졌다.

. 단정하게.” 내가 대답했다.

처음 오신 거 같은데.” 미용사가 말했다.

.” 내가 말했다.

이 동네 사세요?” 미용사가 내 목에 보자기를 둘렀다.

아니요.” 내가 대답했다.

그럼 일 때문에?” 미용사가 물었다.

.” 내가 대답했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미용사가 내 머리에 물을 뿌렸다.

저 옆에 식당 아주머니가 알려 주셔서.” 내가 대답했다.

, 정말이요? 예쁘게 해 드려야겠네.” 미용사가 말했다. 내가 웃었다.

, 잠깐만요.” 미용사가 밖으로 뛰어나갔다.

  나는 거울을 쳐다보았다. 내 얼굴이다. 머리가 그렇게 길지는 않은데. 그래도 최대한 단정하게 하고 가야지. 옆하고 뒤만 조금 다듬으면 될 것 같다. 근데 이 아줌마 어디 간 거지? 문도 열어 놓고.

  미용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미용사는 비닐 봉지를 들고 있었다.  

미안해요.” 미용사가 문을 닫았다. “땅콩 먹을래요?”

아니요.” 내가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아요.”

이거 진짜 맛있는데. 일반 마트 같은 데서 파는 거랑 달라요. 여기 옆에 세탁소 있는 거 봤죠. 거기 사장님이 우리 가게 단골이거든요. 그 아저씨 동생이 지방에서 땅콩 농사를 하는데 매년 한 포대씩 보내준대요. 그거 얻어온 거예요. 한 번 먹어 봐요. 내가 까 줄게요. 진짜 맛있어요.” 미용사가 땅콩의 껍질을 깠다.

아니, 정말 괜찮은데. 방금 점심 먹고 와서요.” 내가 말했다.

여기요. 한 번만 먹어 봐요. 딱 한 번만.” 미용사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땅콩을 받아 입에 넣었다.

맛있죠?” 미용사가 물었다.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먹을래요?” 미용사가 물었다.

아니요.” 내가 웃었다.

다듬기만 한다고요?” 미용사가 내 머리를 만졌다.

. 여기 옆하고 뒤쪽만 조금 다듬어주세요. 단정하게요.” 내가 대답했다.

.” 미용사가 내 머리에 물을 뿌렸다.

근데 얼마예요?” 내가 물었다.

칠천 원이요.” 미용사가 대답했다.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요?” 내가 물었다.

. 한 이십 분 정도.” 미용사가 가위를 들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근데요.” 미용사가 내 머리카락을 잘랐다.

.” 내가 말했다.

저 땅콩 진짜 맛있죠.” 미용사가 물었다.

.” 내가 대답했다.

이따가 가져 가세요.” 미용사가 말했다. 내가 웃었다.

왜요?” 미용사가 물었다.

아니에요.” 내가 말했다.

정말로요. 맛있잖아요. 저런 거는 아무나 못 먹어요. 가지고 가요. 나는 또 얻어 오면 되니까.” 미용사가 말했다.

.” 내가 말했다.

어차피 저 집은 먹을 사람이 없거든요. 세탁소 말이에요. 아저씨랑 아줌마 둘이 사는 집이라. 두 아들은 전부 지방에서 학교 다니고요. 큰 애는 이번에 졸업한다고 그러던데. 걔네 둘 꼬마였을 때부터 내가 머리 잘라줬잖아요. 그랬는데 벌써 그렇게 커서 군대도 다녀오고 말이야. 시간 참 빨라. 근데 군대 갈 때는 좀 다른 데 가서 잘랐으면 좋겠어. 기분이 이상한 거 있죠.” 미용사가 말했다.

  면접은 아침 아홉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다. 그럼 몇 시간이야. 세 시간, 다섯 시간. 여덟 시간이네. 도대체 뭘 하길래 면접을 하루 종일 보지?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이제 한 오십 명 정도 남았을 텐데.

둘 다 잘 생겼어요. 아빠랑 엄마가 인물이 좋아요. 거기에 성격 좋지, 키도 크지. 그런데 딱 하나, 학교가 걸리네. 그거 말고는 진짜 완벽한데. 둘 다 공부는 못했어. 그게 참 아쉬워. 보통 형제 중에 공부 잘 하는 애가 한 명은 있잖아요. 그런데 이 집은 아니에요. 둘 다 지방에 있는 학교로 갔어요. 그것 때문에 아저씨가 무지 걱정하잖아요. 취직 안 될까 봐. 요즘도 그래요? 요즘도 어느 학교 나왔는지가 중요해요?” 미용사가 물었다.

저는 잘 모르겠는데.” 내가 웃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몰라요?” 미용사가 말했다. 나는 눈을 떴다.

잠깐만요.” 미용사가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아니, 괜찮아. 남자 한 분만 자르면 돼. 지금 오세요. 거의 끝났어. 오전에? 집에 있었지. 아닌데. 열한 시에는 여기 있었는데. 민이 아빠 머리 자르고 갔거든. , 언니는 모르나. , 그 농구선수마냥 키 크고 덩치 좋은 언니 있잖아. 아니, 머리는 길고. 맞아. 목소리 크고. 그 언니 남편. . 알았어. 빨리 내려와.” 미용사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지금 몇 시예요?” 내가 물었다.

지금. 두 시 오십 분이요. 고개 좀 들어볼래요?” 미용사가 내 머리를 당겼다. “. 이대로 있어요. 그래서.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죠? , 취직. 취직 때문에 걱정이라고요.”

.” 내가 말했다.

세탁소는 안 하려고 할 텐데. 솔직히 조금 그렇지 않아요? 스물여섯, 스물일곱에 세탁소에서 일하기는 조금 그렇잖아요.” 미용사가 말했다.

.” 내가 말했다.

친구들은 양복 빼입고 회사 다니는데. 아마 안 하려고 할 거야.” 미용사가 말했다.

  두 시 오십 분. 이십 분 정도 걸린다고 했으니까. 세 시 십 분. 사십 분은 쓸 수 있겠네.

아니면 그것도 괜찮은 거 같아요. 공무원이요. 공무원 어때요? 괜찮지 않아요?” 미용사가 물었다.

. 괜찮죠.” 내가 대답했다.

공무원은 정년까지 잘릴 걱정도 없고. 퇴직하면 연금도 나오고. 그건 시험만 잘 보면 되죠? 학교는 안 보죠?” 미용사가 물었다.

그렇죠. 시험만 잘 보면.” 내가 대답했다.

아니, 한 층 내려오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려.” 미용사가 말했다. 나는 눈을 떴다. 여자 둘이 안으로 들어왔다.

아직 손님 계시네.” 여자가 말했다.

. 앉아.” 미용사가 내 머리카락을 잘랐다. 나는 눈을 감았다.

얼마나 걸려?” 여자가 물었다.

한 십오 분? 십 분?” 미용사가 대답했다.

이건 뭐야?” 다른 여자가 물었다.

땅콩. 먹어 봐.” 미용사가 대답했다.

어디서 난 거야?” 여자가 물었다.

  세탁소에서 얻어 온 거다.

세탁소 아저씨한테 얻어 왔지요.” 미용사가 대답했다.

세탁소 아저씨?” 다른 여자가 물었다.

  세탁소 아저씨의 동생은 시골에서 땅콩 농사를 한다.

. 동생이 시골에서 땅콩 농사 하잖아.” 미용사가 대답했다.

그래? . 맛있네.” 여자가 말했다.

  일반 마트에서는 살 수 없는 거다.

맛있지. 일반 마트에서는 그런 거 못 산다.” 미용사가 말했다.

진짜 맛있네.” 다른 여자가 말했다.

그래서. , 공무원 어때요? 괜찮죠.” 미용사가 물었다.

.” 내가 대답했다.

무슨 공무원?” 여자가 물었다.

아니. 세탁소 아저씨 말이야. 아들이 둘 있잖아. 둘 다 잘생겼거든. 키도 크고. 성격도 서글서글하고.” 미용사가 말했다.

그래? 그런데?” 여자가 물었다.

그런데 공부를 못한다.

그런데 뭐랄까. 공부 쪽에는 소질이 없어.” 미용사가 대답했다.

  그래서 둘 다 지방에 있는 학교를 다닌다.

그래서 둘 다 학교를 지방으로 갔잖아. 그것 때문에 아저씨가 걱정을 하는 거야. 취직 안 될까 봐.” 미용사가 말했다.

근데. 요즘에는 뭐, 좋은 학교 나와도 마찬가지야. 다 힘들어.” 여자가 말했다.

그래서 아저씨는 세탁소 일을 가르칠까 하는데.” 미용사가 말했다.

  그거는 조금 그렇다.

그거는 조금 그렇지 않아?” 미용사가 물었다.

뭐가?” 여자가 물었다.

  친구들은 양복을 빼입고 회사를 다닌다.

아니. 친구들은 양복 쫙 빼입고 회사 다니는데. 자기는 세탁소에서. 조금 그렇지. 아마 안 하려고 할 걸.” 미용사가 대답했다.

아들이 둘이라며.” 다른 여자가 말했다.

. 승주 말이야. 그 집 둘째 아들. 저번에 머리 자르러 왔을 때 내가 물어봤거든. 세탁소 일 배울 생각 있냐고. 그랬더니 걔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차라리 시골 내려가서 농사 짓겠대.” 미용사가 말했다.

그거, 농사 짓는 게 얼마나 힘든데. 안 해 봐서 모르는 거지.” 여자가 말했다.

그거 맛있지?” 미용사가 물었다.

. 맛있네.” 여자가 대답했다.

언니도 가서 조금 달라고 그래. 한 박스 있어.” 미용사가 말했다.

됐어. 사 먹으면 되지.” 여자가 말했다.

파는 거보다 훨씬 맛있지 않아?” 미용사가 물었다.

몇 번을 물어봐. . 맛있어요.” 여자가 말했다.

내가 얻어다 줘?” 미용사가 물었다.

됐어.” 여자가 대답했다.

얻어다 줄게.” 미용사가 말했다.

나중에.” 여자가 대답했다.

잠깐만.” 미용사가 말했다.

머리 자르다 말고 어디 가.” 여자가 말했다. 나는 눈을 떴다. 미용사가 밖으로 나갔다.

저러면 안 되는데.” 다른 여자가 말했다.

저런 건 진짜 싫더라.” 다른 여자가 말했다.

  머리가. 나는 머리카락을 잡아 당겼다.

. 가서 얘 좀 데리고 와.” 여자가 말했다.

오네.” 다른 여자가 말했다. 문이 열리고 미용사가 들어왔다.

  차라리 짧게 잘라야겠다.

언니. 땅콩.” 미용사가 비닐 봉지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아이고. 빨리 머리나 마저 자르세요. 손님 기다리시잖아.” 여자가 말했다.

. 다 했어.” 미용사가 말했다.

저기, 죄송한데요.” 내가 말했다.

.” 미용사가 말했다.

아예 짧게 잘라 주세요.” 내가 말했다.

? 짧게요? 다듬기만 한다고 그랬잖아요.” 미용사가 물었다.

. 근데 짧게 자르는 게 더 나을 거 같아서. 머리가 너무 뻗치니까.” 내가 대답했다.

워낙 뻗치는 머리라서 그래요. 조금 길면 괜찮아 질 텐데.” 미용사가 말했다.

제가 토요일에 중요한 일이 있어서요.” 내가 말했다.

. 그러면요. 지금 문제가 여기하고, 여기잖아요. 앞머리. 너무 뻗치니까.” 미용사가 말했다.

.” 내가 말했다.

그럼 차라리 파마를 하는 게 어때요? 옆하고 앞에만.” 미용사가 물었다.

파마요?” 내가 물었다.

. 그러면 괜찮을 거 같은데. 더 잘랐다가 마음에 안 들면 어떡해요.” 미용사가 말했다.

파마는 한 번도 안 해봤는데.” 내가 말했다.

잘 어울릴 것 같은데요.” 미용사가 말했다.

그건 얼만데요?” 내가 물었다.

이만 원만 주세요. 커트 포함해서.” 미용사가 대답했다.

시간은 얼마나 걸려요?” 내가 물었다.

사십 분? 오십 분?” 미용사가 대답했다.

지금 몇 시죠?” 내가 물었다.

지금.” 미용사가 말했다.

세 시.” 여자가 대답했다.

세 시요. 시간 안 돼요?” 미용사가 물었다.

  세 시. 세 시 오십 분.

시간은 되는데.” 내가 대답했다.

그냥 짧게 칠까요?” 미용사가 물었다.

오십 분이요?” 내가 물었다.

. 오십 분. 옆하고 앞만 하는 거니까. 금방 해요.” 미용사가 대답했다.

.” 나는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어떻게.” 미용사가 물었다.

그럼 한번 해 볼게요.” 내가 대답했다.

. 그게 나을 거 같아요. 갑자기 짧게 자르면 이상하거든요.” 미용사가 말했다.

파마는 해 본 적이 없어서.” 내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예쁘게 해 드릴게요.” 미용사가 웃었다.



 

 

김정욱의 최근 게시물

짱공일기장 인기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