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어머니가 소파에 누워 있었다. 어머니는 자고 있었다. 또 여기서 자네.
“엄마.” 나는 어머니의 어깨를 잡았다. “엄마.”
“어?” 어머니가 눈을 떴다.
“들어가서 주무세요.” 내가 말했다.
“어, 왔어?” 어머니가 눈을 깜박였다. 나는 소파에 앉았다.
“몇 시야.” 어머니가 몸을 일으켰다.
“열한 시 다 됐어요. 리모컨 어디 있어요?” 내가 물었다.
“깜박 잠들었네.” 어머니게 내게 리모컨을 건넸다. 나는 버튼을 눌렀다. 텔레비전이 켜졌다.
“얘는 왜 오자마자 텔레비전이야. 가서 옷 갈아입고 손부터 씻어.” 어머니가 말했다.
“네. 잠깐만 쉬었다가요.” 내가 말했다.
“김준수 이거 아직도 안 들어왔지.” 어머니가 물었다.
“들어오겠죠.” 내가 하품을 했다.
“피곤하면 빨리 가서 씻고 자.” 어머니가 말했다.
“안 돼요. 할 거 있어요.” 내가 말했다.
“뭘 하는데. 내일 해.” 어머니가 물었다.
“면접 준비해야 돼요. 대학원.” 내가 대답했다.
“너 진짜 대학원 가게?” 어머니가 물었다.
“생각 중이에요.” 내가 말했다.
“생각 잘 해. 응?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어머니가 말했다.
“네. 아빠는요? 아직 안 들어오셨어요?” 내가 물었다.
“몰라. 들어오든가 말든가. 몸이 아프니까 모든 게 다 귀찮다.” 어머니가 배를 문질렀다.
“계속 그래요?” 내가 물었다.
“야, 김철수. 가서 위암의 증상이 뭔지 좀 찾아 봐.” 어머니가 말했다. 내가 웃었다.
“응? 알았지?” 어머니가 웃었다.
“아이고.” 내가 한숨을 쉬었다. “참.”
“이건 그냥 체한 게 아니야. 뭔가 문제가 있어.” 어머니가 말했다.
“위 내시경 언제 했는데요?” 내가 물었다.
“작년 겨울에 했던 거 같은데. 맞아, 작년 겨울에 했어.” 어머니가 대답했다.
“그럼 일 년 된 거네요.” 내가 말했다.
“일 년 됐지.” 어머니가 말했다.
“그럼 내시경을 해 보세요. 문제가 있는 거 같으면.” 내가 말했다.
“근데 어떤 사람은 또 내시경을 너무 자주 하는 것도 안 좋다고 하더라고.” 어머니가 말했다.
“일 년에 한 번 하는 게 너무 자주 하는 건 아니죠.” 내가 말했다.
“근데 음식을 잘못 먹어서 그런 것도 있어. 음식을 계속 조심해서 먹어야 되는데. 조금 괜찮아졌다 싶으면 또 아무거나 막 집어 먹는 거야. 어쩌면 이렇게 미련하냐, 사람이. 어제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조금 괜찮았는데. 밥을 먹었으면 됐지. 밥 먹고 바나나를 왜 먹냐고, 바나나를. 그때부터 또 배가 아픈 거야.” 어머니가 말했다.
“바나나 먹었는데 배가 왜 아파요.” 내가 말했다.
“과일이니까.” 어머니가 말했다.
“과일 먹으면 배 아파요?” 내가 물었다.
“배 아프지.” 어머니가 대답했다.
“왜요?” 내가 물었다.
“그게 속을 다 긁어 놓으니까. 위벽을.” 어머니가 대답했다.
“바나나가 위벽을 긁는다고요?” 내가 웃음소리를 냈다. “뭐, 껍질까지 다 드셨어요?”
“하여튼. 저번에 텔레비전에 의사가 나와서 그랬어. 밥 먹고 과일 먹는 거 안 좋다고. 과일은 꼭 밥 먹기 전에 먹으라고.” 어머니가 말했다.
“왜요?” 내가 물었다.
“무슨 산화가 돼서 안 좋다고 그랬는데.” 어머니가 대답했다.
“엄마, 산화가 뭔지는 아세요?” 나는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얘가 왜 이렇게 따져. 그렇다면 그냥 그런 줄 알지. 설마 의사가 텔레비전에 나와서 없는 말 하겠어?” 어머니가 말했다.
“내가 봤을 때는 기능이 떨어져서 그런 거 같은데.” 내가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야?” 어머니가 물었다.
“약해져서 그렇다고요. 장이.” 내가 대답했다.
“약해졌는데 왜 아프냐고.” 어머니가 말했다.
“불편한 거겠죠. 아픈 게 아니라.” 내가 말했다.
“아니, 아프다니까. 얘는.” 어머니가 말했다.
“그거는 엄마가 너무 예민해서 그래요. 내가 말했잖아요. 속이 늘 편한 사람은 없다니까요. 나도 가끔 불편해요. 그건 아빠나 준수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보통은 거기서 끝이에요. 밖에서 다른 일 하느라 정신 팔려서 그걸 잊어버려요. 그리고 조금 지나면 괜찮아져요. 그런데 엄마는 누워서 계속 그거만 생각하잖아요. 속이 왜 불편하지? 뭔가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그때부터 속이 꼬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내가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돼?” 어머니가 물었다.
“운동을 하라니까요. 운동하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 안 나잖아요. 장도 튼튼해지고.” 내가 대답했다.
“무슨 힘이 있어야 운동을 하지. 힘이 하나도 없는데.” 어머니가 말했다.
“운동을 해야 힘이 생기죠.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돼요.” 내가 말했다.
“날씨가 좀 풀려야 산에 갈 텐데.” 어머니가 말했다.
“이제 십이 월인데. 그냥 체육관에 가세요.” 내가 말했다.
“거긴 너무 멀어.” 어머니가 말했다.
“걸어서 십 분이면 가요.” 내가 말했다.
“일단 저 약부터 다 먹고. 조금 나아지면. 입맛이 없으니까. 뭘 먹어야 힘이 나는데.” 어머니가 말했다.
“그리고 제발 그 이상한 것 좀 먹지 마세요.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면서.” 내가 말했다.
“그럼 돈 주고 산 걸 버려?” 어머니가 말했다.
“효과도 없잖아요.” 내가 말했다.
“효과가 왜 없어. 상윤이 엄마도 몇 년 전부터 그렇게 속이 안 좋았는데, 그거 먹고 나아서 지금은 엄청 건강해졌잖아.” 어머니가 말했다.
“몇 년이면 그거 안 먹어도 저절로 나아요.” 내가 말했다.
“다녀왔습니다.” 아버지 목소리였다.
“다녀오셨어요.” 내가 말했다.
“안 잤어?” 아버지가 물었다.
“방금 왔어요.” 내가 대답했다.
“당신 요즘 매일 술 마시는 거 알아? 오늘은 또 누구랑 마셨어?” 어머니가 물었다.
“술 안 마셨는데요.” 아버지가 말했다.
“그럼 왜 이렇게 늦었어?” 어머니가 물었다.
“밥 먹고 얘기하다가.” 아버지가 대답했다.
“남자들끼리 무슨 얘기를 밤 열 시까지 해? 술도 안 마시면서.” 어머니가 말했다.
“그런 게 있어요. 준수는? 아직 안 들어왔나?” 아버지가 물었다.
“걔는 그냥 내버려 둬. 공부를 하든 말든. 나중에 취업을 하든 말든. 자기가 알아서 하라 그래.” 어머니가 말했다.
“학교 간 거 아니야?” 아버지가 물었다.
“수업 끝난 지가 언제인데.” 어머니가 말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다음 주. 다음다음 주부터 시험일 걸요.” 내가 말했다.
“야. 걔가 참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겠다.” 어머니가 말했다.
“왜. 공부하고 있을 수도 있지. 당신 작은 아들을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야?” 아버지가 말했다.
“내가 언제 걔를 무시했다고 그래. 그냥 그렇다는 거지. 가서 빨리 씻고 자. 나도 자게. 힘들어 죽겠어.” 어머니가 말했다.
“먼저 들어가서 자.” 아버지가 말했다.
“밖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시끄럽게 하는데 어떻게 자. 아, 배 아파.” 어머니가 말했다.
“약 먹었어?” 아버지가 물었다.
“먹으면 뭐해. 하나 효과도 없는 걸. 왜 이러지? 진짜 뭔가 잘못됐나 봐.” 어머니가 말했다.
“내시경을 해 보세요.” 내가 말했다.
“내시경? 무슨 내시경을 해?” 아버지가 물었다.
“위 내시경이요.” 내가 대답했다.
“여보. 위암 증상이 어떻게 돼?” 어머니가 물었다. 내가 웃었다.
“참. 당신 큰일났다, 진짜.” 아버지가 말했다.
“응. 나 큰일났어.” 어머니가 웃었다.
“그것도 병이야.” 아버지가 말했다.
“아니, 근데. 어차피 해야 되잖아요. 일 년 됐으니까.” 내가 말했다.
“당신 내시경 올해 했잖아.” 아버지가 말했다.
“무슨 올해야. 작년 겨울에 했는데.” 어머니가 말했다.
“아, 작년 겨울에 했나? 그러면 할 때 됐네.” 아버지가 말했다.
“근데 내시경을 너무 자주하는 것도 안 좋다네.” 어머니가 말했다.
“왜?” 아버지가 물었다.
“그러니까 일 년에 한 번 하는 건 너무 자주 하는 게 아니라고요.” 내가 말했다.
“몰라, 하여튼. 먹는 걸 조심해야 돼.” 어머니가 말했다.
“저녁 뭐 먹었어?” 아버지가 물었다.
“죽 끓여서 조금 먹었어.” 어머니가 대답했다.
“점심은?” 아버지가 물었다.
“점심은 지영이 엄마랑 같이 먹었지. 식당까지 한 십오 분 걸었나? 그거 걸었다고 어지럽대. 막 식은땀이 나고.” 어머니가 대답했다.
“운동 부족이에요.” 내가 말했다.
“그래서 뭐 먹었는데.” 아버지가 물었다.
“밥. 밥하고 생선 구운 거. 나물도 조금 나오고.” 어머니가 대답했다.
“밥만 먹고 바로 들어온 거야?” 아버지가 물었다.
“요 앞에서 차 한 잔 마시고.” 어머니가 대답했다.
“잘 노셨네.” 아버지가 말했다.
“저기 마트 가자고 하는 걸. 지영이 엄마, 나 힘들어. 다음에 가자, 다음에. 그리고 집에 와서. 근데 걔도 답답할 거야. 저번에 내가 얘기했지? 남편이 올해 퇴직해서 집에 있다고.” 어머니가 말했다.
“그래?” 아버지가 의자에 앉았다.
“밖에 나가지를 않는데. 그러니까 걔도 밖에 나갈 수가 없지. 또 무슨 잔소리가 그렇게 많은지. 하루 종일 졸졸 따라다니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자기는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면서 말이야. 얄미워 죽겠다는 거야. 하루 세 번 꼬박꼬박 밥도 해 줘야지. 아니, 오십이 넘어서 무슨 반찬 투정이냐고. 집에서는 다 그렇게 먹는 거지. 어떻게 매 끼니마다 맛있는 걸 해서 갖다 바쳐. 그게 싫으면 본인이 직접 해 먹든가. 그건 또 싫거든. 그러면 그냥 주는 대로 먹어야지. 누구 말대로 이제 돈을 벌어오는 것도 아닌데 뭐가 예뻐서 맛있는 걸 해 줘.” 어머니가 말했다.
“그 아저씨가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됐네.” 아버지가 말했다. 내가 웃었다.
“그러니까. 그리고 걔도 그러면 안 돼. 그걸 다 받아주니까 남편이 계속 그러는 거잖아. 이제부터는 혼자 하는 버릇을 들여야지. 부인이 외출하면 밥도 혼자 해먹고, 청소도 하고, 세탁기도 돌리고. 할 줄 모르면 가르쳐야지.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밥하고 빨래 했대? 다 해야 되니까 배운 거지. 아니면 아예 밖으로 내보내든가. 남자가 답답하지도 않나? 왜 집 안에만 있으려고 하지? 나가서 친구들을 만나든가 취미를 찾든가 해야지. 앞으로 몇 십 년을 더 살아야 될 지도 모르는데. 아니면 다시 취직을 하든가.” 어머니가 말했다.
“근데 그게 좀 힘들지. 그 아저씨가 잘 나갈 때야 뭐, 나가서 친구들도 만나고 운동도 하고 그러는데. 이제는 퇴직해서 별 볼 일 없으니까. 그. 뭐라고 할까? 자존심이라고 해야 되나? 하여튼, 그런 게 있어. 내가 잘 나갈 때는 먼저 전화해서 만나자고 하고 그러는데. 내가 좀 안 좋으면 피하게 되더라고. 당신도 근태 알지?” 아버지가 물었다.
“이근태? 알지, 그럼.” 어머니가 대답했다.
“걔도 봐. 예전에 잘 나갈 때는 주말마다 전화해서 술 마시자고 했잖아. 근데 요즘에는 아예 전화 안 와. 자기가 힘드니까. 저번에 대학 동기들끼리 모인다고 내가 전화했었거든. 나오라고. 그랬더니, 알았대. 나오겠대. 그리고 결국 안 나왔잖아.” 아버지가 말했다.
“걔는 왜 그래? 친구끼리.” 어머니가 말했다.
“아무리 친구끼리라도. 그런 게 있어.” 아버지가 말했다.
“그럼 평생 집 안에만 있을 거야? 자기처럼 퇴직한 친구들도 있을 거 아니야. 그런 친구들이랑 어울리면 되지. 그리고 어차피 언젠가는 다 퇴직할 텐데.” 어머니가 말했다.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거죠.” 내가 말했다.
“맞아. 시간이 필요해.” 아버지가 말했다.
“다녀왔습니다.” 준수 목소리였다.
“어, 왔어?” 아버지가 말했다.
“열한 시 넘으니까 하나 둘 기어들어 오네.” 어머니가 말했다.
“기어들어 오다니, 이 사람이.” 아버지가 말했다.
“아, 빨리 가서 씻고 자. 시끄러우니까.” 어머니가 말했다. 준수가 거실에 들어왔다.
“김준수. 지금 몇 시야.” 어머니가 말했다.
“뭐예요? 무슨 일 있어요?” 준수가 물었다.
“아니야. 아무 일 없어.” 아버지가 웃었다.
“근데 왜 다 모여 있어요?” 준수가 물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조금만 하고 자. 너무 늦게까지 하지 말고.” 어머니가 말했다.
“네.” 나는 방으로 향했다.
“당신도 빨리 가서 씻어.” 어머니가 말했다.
“네.” 아버지가 말했다.
“엄마. 내일 일찍 깨워 주세요.” 준수가 말했다.
“왜.” 어머니가 물었다.
“학교에 여덟 시까지 가야 돼요. 수업 있어요.” 준수가 대답했다.
씻자. 씻고. 열한 시 반. 열두 시 반. 한 시간. 한 시. 한 시간 반. 한 시까지만 하자. 한 시까지만 하고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