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가지 인생 - 27

갑과을 작성일 15.10.04 23: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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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1. 로키

지부장은 자신이 애지중지 하는 난 잎파리를 정성스럽게 닦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그래 다친데 없이 돌아왔는가?"
"걱정해 주신 덕에 다친곳은 없습니다."
"다행이구먼, 일단.... 차나 한잔 마실까?"

지부장은 다기를 기울여 차를 따라주었다. 따라주니 일단 마신다마는, 솔직히 나는 차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입에 들어올때 감도는 쓴맛도 쓴 맛이지만, 끝에 입에 감도는 텁텁한 기분은 여간 불쾌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아무리 물이라 해도 그 특유의 뜨거운 온도는 갈증을 해소하는데 아무런 쓸모가 없다. 지부장은 이런 비효율적인 음료를 꺼뜻하면 마시는 걸까?

내가 그를 두고 그런 생각을 하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지부장은 눈까지 감아가며 그 정취에 한껏 빠져든 눈치다.

"이번 의뢰...... 정말 피해가 많았어."
"구체적으로 얼마나 손실이 있었습니까?"
"크로스 하나를 잃고 둘은 체포 됐네. 요원들은 열 다섯을 잃었고 넷은 중경상을 입었지. 한명은 실종됐어. 살아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선요원들은....."
"사실상 와해됬지. 총책인 찰리가 협력관계를 파기 했으니."
"........"

지부장의 목소리는 담담하다 못해 감정이 몽땅 메말라서 국어책을 읽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제 잘못 입니다."
"물론 자네의 잘못이 없다고 할 순 없어. 자네는 일을 잘하는 요원이 될 순 있지만 왕재는 아니었거든 내가 저번에 승진 평가때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지만.... 그건 차치해 두고, 이번 의뢰가 끝나고 우리도 나름 반성회를 가졌네. 그리고 그 결과 이번 일은 크로스 개인의 일탈 보다는 의사 소통 과정에서의 문제가 더 큰 원인이라는 결론을 내렸어. 욕심부리다 체한거야."
"......."
"그리고 '이번 일의 책임을 누가 져야 하나?'라는 소모적인 질문보단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라는 질문이 지금의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 같고."
"그렇습니다"
"계획은 세우고 있어. 다만 제한점이 있지 아무래도 선요원과의 공조를 기대할 수 없으니, 인력이 빡빡해 질 테니까...... 에휴, 내가 이 사단이 날까봐 외주에 맡기는 시스템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그렇게 회의때마다 이야기를 했는데 참..."

지부장은 열통이 터졌는지 책상 위 궐련갑에서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당겼다. 대마향이 연기와 함께 훅 끼쳐왔다.

".......그나저나 로키 너, 여자 데리고 왔다면서?"
"그걸 어떻게....."
"사람은 자고로 짬이 될 수록 입은 닫고 귀는 열어야 하는 법이지."

지부장은 장난기가 어린 표정으로 제 귀를 톡톡 두드렸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을 작살내 놓는다던데, 일밖에 모르는 것 처럼 굴더니, 깜빡이도 안 켜고 차선을 막바꿀 줄이야......."
"그런 관계 아닙니다."

지부장은 내가 말을 하거나 말거나 들을 생각 따윈 애초에 없었다는 듯이 남은 차를 재떨이에 쏟아버렸다.

"데리고 와봐, 의뢰주가 아닌 일반인이니 하다못해 면접이라도 봐야 하지 않겠어?"

 

 

 

 

 

 

 

 



Channel 2. 아이리스

생각지 못한 갑작스러운 첫 만남에 이렇다할 대화도 몇마디 섞어보지 못했지만, 제 앞에 앉은 저 여자분에 대한 강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 확신이라 함은.....

"로키군하고 많이 친한 사이인가 보네요."
"친하죠..... 어릴 때 부터 함께 자라왔고 같은 일도 하니까."

이 여자와 친하게 지내는건 거의 불가능 할 것 같다는 것?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녀 역시 저와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같은 일이라면....."
"혹시 정말로 몰라서 물어보는 거에요, 아니면 모르는 척을 하는거에요?"

그녀는 제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탁자위에 뻗은 손을 천천이 제 쪽으로 뻗었습니다.

"전...... 그런거 정말 싫어 하거든요. 뻔이 다 알고 있으면서 공연이 모르는 척 하는거, 굳이 설명을 안 해도 되는데 설명을 하게 만드니까요."

나지막한 그녀의 목소리에는 칼날 같은 섬뜩함이 숨겨져 있어, 저는 제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습니다.

"그런건 시간낭비잖아요.......그렇죠?"
"맞...... 맞아요."

그녀는 득의연한 표정으로 씩 웃더니, 제 손을 꼭 잡았습니다.

"제 이름은 토라에요. 그쪽은?"
"전 아이리스라고 합니다. 잘......부탁드려요."
"암요, 로키오빠의 손님인데 여부가 있나요?"

그녀의 표정, 그리고 제 손을 쥐는 그 힘에서, 저는 그녀가 저에 대해서 기선을 제압했으며, '어떻게 이 여자를 요리해 볼까?'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독하게.... 기분이 나빳습니다.

"그나저나 죄송해서 어쩌죠? 지금 로키오빠가 부재중이라...... 꽤 멀리 일하러 갔거든요. 그래서 당분간은 만나기가 어렵지 않을까 싶은데."
"로키군, 저랑 같이 왔어요. 저는 방을 둘러본다고 먼저 올라온거고, 그는 아까 관리인 어머님과 이야기를 나눈다고 나중에 온다고 했어요."

제 지적에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당혹감으로 살짝 일그러졌습니다.

"아..... 그랬어요? 이 오빠는 왔으면 왔다고 이야기를 하던지 참......."
"내가 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있나?"
"엑?!"

난데없이 들려온 그의 목소리에 저와 토라씨는 화들짝 놀랐습니다. 로키군은 저희 둘의 등 뒤에 팔짱을 낀 채로 저희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로키......군?"
"가자 지부장이 널 보고 싶다고 하더라."

 

 

 

 

 

 

 

 

 


Channel 1.로키

답답이를 지부장실 앞에 데려다 주고 돌아서려는데 답답이 녀석은 문을 여는 대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아로새겨진 근육의 궤적과, 문고리를 잡은 손에서 보이는 미세한 떨림은 나에게 '혼자서 들어가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고 있는것 같았다.

어찌 해야 할까..... '괜찮아. 널 잡아죽일 위인이 아니고,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번에는 그런 용무로 널 부른게 아니니, 걱정말고 다녀와.'라고 이야기를 해줘야 할까, 아니면 그녀가 내게 던진 그 모든 메시지를 무시하고 내 방으로 가야 할까?

나는 답답이의 손에 문고리를 쥐여주며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녀의 귀에 '다녀와라.'라고 딸막하게 속삭여 주고서 그녀를 지부장실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답답이는 그렇게 지부장실로 들어갔다.

"와...... 이게 웬일이야. 오빠에게 이런 다정한 구석이 있었을 줄이야."

문이 닫히자마자 토라가 기다렸다는 듯이 운을 뗏다. 녀석은 벽에 몸을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있었다. 안면 근육의 궤적을 살펴볼 필요도 없었다 토라는 내게......

"날 안지 몇년인데 설마 고작 빈정거리는 걸로 날 화나게 할 생각인건 아니겠지?"
"감정도 없는 사람에게 그런 짓을 뭐하러 하겠어? 차라리 이스트 민스터의 성모상 젖가슴을 만지고 말지."

토라는 삐쭉거리면서도 내게 바싹 붙어 나를 훑어보았다. 나는 그 집요한 시선을 더는 느끼고 싶지 않아서 그녀의 눈을 피했다.

"저기 오빠. 둘이 그거.......했어?"
"그거?"
"있잖아.......그거."

토라는. 한손으론 주먹을 쥐고 다른 손으론 손바닥을 폈다. 그리고 그 둘을 맞부딪치는 시늉을 했다. 그녀 딴에는 꽤나 노력을 해 놓은 것 같은데 나로서는 미안하게도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 무반응이 정말로 답답 했었는지 녀석은 종종주먹으로 제 가슴을 탕탕쳤다.

"아오 이 벽창호야, 둘이서 배꼽이라도 맞췄냐고! 그걸 굳이 내 입으로 말해야겠어?"
"......성관계?"
"그래!"
"남 녀가 성관계를 가지면, 내가 저 여자한테 했던 행동을 해야 되는건가?"
"아이고...... 말을 말자."

토라는 두 눈을 흘기면서 내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저 여자한테 해준거 반 만이라도 내게 했어봐라. 내가 이런 생각을 하나."
"...... 할 필요가 없지."
"그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오빠가 그만큼 평소랑 달라보인다는 거야."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하지 그걸 왜 복잡하게 빙빙 돌려서 말한 거야?"
"하아...... 그거 알아 오빠? 오빠랑 이야기를 하다보면, 뭔가 비정상적인게 정상적인걸로 느껴지고, 정상적인게 비정상적인 걸로 느껴진다니까......."

 

 

 

 

 

 

 

 

 



Channel 2.아이리스

"다녀와라."

로키군은 찬바람이 쌩하고 불 정도로 차갑게 말하면서 저를 방안으로 밀어 넣어 버렸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이토록 매정할 수가 있는 걸까요? 심지어 그는 절 밀치다시피 하는 바람에 저는 문설주에서 발을 헛디뎌, 하마터면 넘어질 뻔하기까지 했답니다.

마침 제 왼쪽에 서있던 동상이 아니었다면....... 저는 볼썽 사납게 바닥에 쳐박혔을 테지요.

"아이고..... 그래도 아픈건 어쩔 수가 없네."
"허허, 생각보다 귀여운 아가씨가 들어왔군요."

빈방이 아니었던 걸까요? 예상치 못한 사람의 존재에, 저는 화들짝 놀란 나머지 제가 안고있던 동상을 밀쳐버렸습니다. 그 동상은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지면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아악! 죄송합니다. 너무 놀라서 그만....."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제가 놀래켜서 난 사고인걸요. 물론..... 그덕에 저 동상을 만들기까지 도공이 들였을지도 모르는 노력과 시간이 그대로 물거품이 되긴 했지만요."

인자해 보이는 노인이 싱긋 웃으면서, 안경을 닦고 있었습니다.

"데법 다이나믹하게 들어오시느라 힘드실 텐데 자리에 앉으시겠습니까? 이대로 더 서 계시다 보면, 이 방안의 물건들이 남아나지 않을까 걱정이기도 하고요."

노인의 친절한 어투속에 감춰진 독설에, 저는 끌려 내려가듯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의 말을 곱씹을수록, 저도 모르게 뒷목이 뜨끈뜨끈해졌습니다.

노인은 안경을 쓴 뒤에 저를 그 특유의 인자한 표정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낯선 남자에게 이런 시선을 느껴본 것이 처음이라, 저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로키 이 새끼 처음치곤 제법인데?"
"네?"
"아니에요. 혼잣말 입니다."

........으응? 뭔가 이상한 소리를 들은것 같은데? 노인은 제가 이런 생각을 하고있는걸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당겼습니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로키가 당신에게 신세를 졌다죠?"
"아니에요. 저 뿐만 아니라, 그 상황에선 누구라도 그렇게 나섰......."
"저는, 결과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그런 점에선..... 당신이 어떤 과정을 거쳤건 간에, 결과적으로 우리 요원을 구한건 사실입니다. 그것은 분명 칭찬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아.....네."

그의 떠맡기는 것 같은 칭찬을 받노라니 정말로 민망해져서 저는 도통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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