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가지 인생 - 98

갑과을 작성일 20.04.09 00: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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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1. 로키

 

16241019

 

기쁜 소식을 전해드리러 왔습니다.”

 

마치 전날부터 줄을 서고 기다린 사람인양, 토라는 ‘The Cloud’의 셔터를 올리자마자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녀는 요 근래 내가 본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활기가 넘쳤다. 모두가 어둠속에 침잠한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밝은 빛을 내는 그녀의 모습을 보노라니..... 참으로 눈꼴사나웠다.

 

기쁜 소식이유?”

. 그동안 오래 기다려 오셨어요. 드디어 찾았습니다. 그놈들 소재지요.”

 

토라의 말에 주설은 아니 벌써?’라는 얼굴이었다. ..... 그래, 왕도 외의 도시와 왕도의 시간 관념은 다른 편이니..... 비 왕도권에서 살아온 그녀에겐 그들의 일 처리속도에 입이 떡 벌어질 법도 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토라가 오랫동안 기다려왔습니다.’라고 말할 법 했다는 거지 뭐. 첫째론 PBRC그들의 앞마당인 라스알게티에서 행동을 했다는 것. 그리고 둘째론 매주말마다 그 많은 인원을 동원해 가며 난리를 쳤다는 것 이 두 가지를 고려해 볼 때는..... 그들의 일처리 속도가 결코 빠르다고 할 순 없거든. 물론...... 왕도의 시간관념 기준으로 말이다.

 

그래도 필그림들과 좋은 관계를 가지려고 하는 그들의 지부장 앞에서 굳이 이걸 언급해가면서 면박을 주어봤자..... 내게 떨어질 것은 무엇이며 감수해야할 기회비용은 무엇인가. 그냥 계산기 두드릴 것도 없는 간단한 질문이다. 나는 암산에 능했고, 그래서 입을 다물었다.

 

잘 자셨소? 듣자허니 싹수 없는 작것들 소굴을 찾은 거 같던디, 한번 알랴 주시오.”

. 그놈들은 지금 뷔킴 버그에 있더군요.”

? ‘뷔킴 버그?”

 

주설, 리겔과는 달리, 답답이가 화들짝 놀라며 대화에 끼어든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뷔킴 버그운터 브룩만큼이나 다수의 이민족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거든. 굳이 구별을 하자면...... ‘운터 브룩라스알하게 계가 지배적이라면, ‘뷔킴 버그는 어느 누가 다수라고 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족속들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운터 브룩은 쓰레기산에 터를 잡고 있어서 부지가 좁은 반면, ‘뷔킴 버그라스알게티스피카를 잇는 라스피카 메갈로 폴리스라인의 한 축을 맡은 위성도시거든. 자연적으로 형성된 여타 도시들과는 달리, 이 도시들은 왕실의 계획 하에 세워진 것이었다. 그래서 도시부지가 넓었고, 자연스럽게 인종의 용광로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인종들이 어울려 살고 있게 되었다. 나는 이에 대해서 주설과 리겔에게 설명해 주었고, 그제서야 그들은 답답이의 반응에 대해 공감할 수 있었다.

 

똥 묻은 개새끼가, 겨 묻은 개새끼를 욕허구 있었는갑소.”

코메디가 따로 없네유.”

, 왕도에선 그런 상황을 두고 내로남불이라고 말해요.”

그게 뭔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그래, 저게 바로 합리적인 반응일 것이다.

 

요원들이 대기하고 있어요. 말씀만 하시면 당장이라도 정화작업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정화작업이요?”

아 네. 더러운 걸 흔적도 안 남기고 치워버리는 거죠. ...... 그러니까.”

몰살시켜버린다는 것이지.”

. 맞아요. 그거에요. 말씀만 하시면.”

..... 아녀유. 솔직히 말 혀서 치워버렸어유.’라는 말만 듣고 있기엔..... 지들이..... 겪은 그..... 마음의..... 기스가 날거 같지는 않거든유. 긍께......”

아아, 직접 현장을 보고 싶다는 거죠?”

그렇쥬. 아 근디.”

네 말씀하세요.”

지들이..... 요게 다가 아니걸랑유. 한 명이 지금 볼일이 있어 밖으로 나갔는디..... 그 친구가 오믄 함께 가시쥬.”

네네 그렇게 하시죠.”

 

 

 

 

 

 

 

Channel 2. 아이리스

 

16241019

 

주설씨가 말한 그 친구는 다름 아닌 알 샤인씨였습니다. 그는 마침 기사단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오는 길이었어요. 이젠 자연인이 되었지만, 그래도 일하던 가락은 있었는지, 그는 ‘The Cloud’에 들어오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토라를 알아본 모양이었어요.

 

이게..... 아니. 이 사람......”

안녕하세요?”

 

머뭇머뭇 거리는 그에게 토라는 그녀 특유의 사교적인 웃음으로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는 토라의 손이 마치 지네라도 되는 듯 움찔했지만, 주변의 반응에 입술을 꾹 깨물고 그녀의 손을 맞잡았어요.

 

....... 반갑습니다. 알 샤인이라고 합니다.”

아아 그렇게 되시군요. 저는 토라라고 해요. 잘 부탁해요.”

 

악수를 하는 그의 얼굴은 툭 건드리면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울상이었습니다. 현직 하샤신..... 그것도 지부장과 마주한 것도 모자라 악수를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 알 샤인씨에게는 극도로 혐오스러웠겠지요.

 

콱안! 눈까리 똑바로 안뜨냐? 어디서 내로남불이여 내로남불이?!”

 

그새 주워들은 내로남불을 써먹는 리겔의 이죽거림은 덤이었겠습니다. 언뜻 보면 맥락에 안 맞는 예시인가도 하지만, 그간의 일들을 생각한다면...... 맞는 말이긴 하네요.

 

그려, 그렇게 똑바로 악수를 혀야제. 눈도 마주치고.”

크흡......”

...... 저랑 악수하는 게 무슨 벌칙 같은 건가요?”

아녀라, 그럴 사정이 있어유.”

 

토라는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못했지만, 그 자리의 어느 누구도...... 이 악수의 맥락을 설명해주지는 않았습니다. 토라는 나를 보며 이게 무슨 일인데?’라고 속삭였어요. 저는 토라에게 귓속말로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토라는 사정을 이해하고 나선 더욱 더 활짝 웃어보이며 알 샤인씨의 손을 흔들었어요.

 

악당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해요.”

“......”

자 그러믄 뷔킴 버그인가 뭔가로 가 볼려유?”

아 네 좋아요 따라오세요.”

 

‘The Cloud’밖에 나가보니, 검은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신기한 것이, 마차에...... 말이 없었습니다. 으응?

 

새로 하나 장만했어요. 이건 자동차라고 하는거에요.”

자동차? 그게 뭐당가요?”

자동으로 움직이는 마차라는 건데요. 말 없이 스스로 움직이는 마차에요.”

음마? 요런 쐿덩이가 혼자 움직인다 이거요? 음마 겁나게 신기허네잉.”

신기하긴 뭐가 신기해. 여기 올 때 기차타고 온 놈이.”

요거랑 고거랑 같다냐. 긍께 요것이 짝은 기차라고 생각허믄 되는 거제잉?”

그렇지.”

 

 

 

 

 

 

 

Channel 1. 로키

 

토라가 가지고 온 자동차는 우리를 싣고 쭉쭉 뻗은 도로를 달렸다. 도로는 이제 막 포장이 되었는지, 금하나 가지 않고 똑발랐다. 토라는 바람을 맞으며 요게 최근에 건설된 47번 국도라고 해요.’라고 설명했다. 물론..... 아무도 그것에 대해 궁금해 하지는 않았다.

 

뷔킴 버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입간판을 지나자, 도로의 폭은 더욱 넓어졌다. 도로 옆에는 네모반듯한 건물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뻗어있었다. 라스알게티의 우중충한 건축물과는 차원이 달랐다.

 

나중엔 여기에다가 지원을 차릴까봐.”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근데 일거리는 넉넉하냐 여긴?”

그럼, 온갖 인종들이 뒤섞여 살다보니, 알력다툼이 장난 아닌 걸? 이 도시에 대해서 농담이 있는데 말이야...... 어이쿠!”

 

갑작스럽게 차가 덜커덩 소리를 내며 흔들리더니, 우리 모두 공중에 붕 떠올라 차 천장에 머리를 박았다. 불의의 습격에 모두들 얼굴을 찡그리며 머리를 쓰다듬어야 했다.

 

과속방지턱이 있는 줄은 또 몰랐네.”

말하던 거나 마저 말해봐. 이 도시 농담이 뭔데?”

..... ..... 썩 유쾌한 농담은 아냐. 알 샤인씨는 알고 있을 텐데요?”

유쾌하지 않는 농담도 있는갑소? 아야, 그게 뭔디?”

나도 썩 그 농담은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푸르체리마 호수에서는 사람으로 퍼즐을 맞출 수 있다.’일껄요?”

으윽..... 안 그래도 속이 미식거렸는데, 그 말 들으니까 더 메쓰꺼워 지는 거 같아요.”

언니 좀만 참아. 곧 도착해!”

 

토라의 장담과 달리, 우리는 바퀴가 달린 강철 통 속에서 20분을 더 달려야 했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답답이는 샛노래진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인적이 드문 곳으로 달려가 버렸다. 그 뒤로 우리는 약 5분간이나 영 듣기 거북한 소리를 애써 못들은 척 해야만 했다.

 

안 늦게 잘 도착허셨네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와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익숙한 빨간 머리가 보였다.

 

응 좀 밟았어. 주변 통제는 잘 해놨지?”

잉 당연허쥬....... 여그 공뭔덜 섭섭지 말라구 잘 찔러놨어유.”

 

스벤은 토라에게 상황을 보고하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펜릴이 떠오르는 그 머리카락에 반가운 마음이 솟구쳤지만,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하는 녀석의 태도에 나 역시 어정쩡한 고갯짓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답답이의 손을 잡고 그들에게서 나올 때에 느꼈던 그 비장한 마음이...... 시간이 지나 이런 어색한 영수증으로 돌아와 버리고 말았다.

 

어색한 재회를 빨리 털어버리려는 듯, 스벤은 평소답지 않은 빠른 템포로 보고를 이어갔다. 녀석의 보고를 종합해 보자면, 이곳은 푸르체리마 호수와 접하고 있는 포말하우트 공단이었다. ‘부엔나 꼼미다에서 시작된 추격에 도망을 거듭하던 데네브 일행은 이곳을 최후의 농성장소로 선택한 모양이더군. 그건 꽤나 영리한 판단이었는데, 물리적으로는 포말하우트 공단은 공단 건설 초창기 시절의 건물들이 무질서하게 들어서있고, 관계적으로는 여러 족속들이 자신들의 이권을 두고 건물들보다도 더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지. 즉 이곳은 2개의 유 무형의 장벽이 보호해주는 천혜의 요새 같은 것이다.

 

배타적이며 자존심이 강한 여러 족속들이 난립한 이곳에 멋도 모르고 발을 디디면 그들의 알력다툼에 휘말려 제대로 발도 못 붙이고 쫓겨나리란 게 그들의 계산속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꽤나 영리한 생각이었지만, 상대가 그들이라는 걸 간과한 게 녀석들의 문제였다. ‘그들은 쾌도난마와 같이 빠르게 이곳의 족속들을 정리했고, 이곳의 공무원들이 원하는 바를 적절하게 제공해버렸다. PBRC가 믿던 두 가지 장벽 중에 하나가 허물어져버린 셈이었다.

 

남은 비빌 언덕이었던 난잡한 구조도, ‘그들에게 된서리를 맞은 족속들이 자신들의 새로운 압제자를 어떻게든 빨리 보내겠다는 일념 하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 그 많던 건물들 중에 하나를 특정할 수 있게 되어버렸다. 이렇게 되면 녀석들로선 자신이 믿던 두 개의 장벽 모두가 허물어져버린 채 그들의 목숨을 노리는 이들에게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버린 셈이다.

 

스벤의 보고를 들으면서, 내가 밑도 끝도 없이 턱없이 강대한 힘을 가진 거대한 존재에게 개겨 버렸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도로시 년이 아니었다면 감히 시도조차 하기 어려웠겠지. 내가 답답이와 함께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것은 단지 나의 능력 뿐 만이 아니라, 억세게 운이 좋았기 때문이었던 것이었다.

 

요원들 쭉 깔아놨으니께...... 신호만 주시믄 언넝 들어가서 털어버릴게유.”

..... 좋아. 잘 들으셨죠? 이제 말씀만 하시면 저희 요원들이 바로......”

 

나는 보고를 듣는 도중에 그들이 특정 지은 건물을 쳐다봤다. 창문도 없었기에 뭐 하나 보일 턱이 없었지만...... 참으로 이상하게도 나는 그 벽 너머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강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뭔가 잘못됐나 싶어 다른 곳을 쳐다봤지만, 정체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이 강렬한 시선은 여전히 내 피부를 콕콕 찔러댔다. 확실히..... 무언가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더 이상 피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시선이 느껴지는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 순간

 

허억!”

 

누군가가 내 등 뒤에 얼음을 쏟아 넣은 것 같은 전율감이 들면서 나는 그대로 다리가 풀려버렸다.

 

 

 

 

 

 

 

Channel 2. 아이리스

 

주변 단속은 잘 해놨지?”

잉 그러믄 당연허쥬. 주사덜 섭섭지 않게 뽀찌덜 잘 찔러놨으니께, 걱정 안혀두 되유.”

 

담담하게 보고를 이어가는 스벤과, 보고를 들으며 꼼꼼하게 상황을 체크해나가는 토라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문득 올해 초 한 노인과 나누었던 대화가 불연 듯이 떠올랐습니다. 노인은 제게 휠맨의 총책을 맡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었고...... 저는 한동안 그 이야기를 곱씹으며 고민에 빠졌었지요.

 

만약 제가 그때 그래요 제가 한 번 해보죠 뭐.’라고 대답을 했다면...... 지금의 토라 자리엔 제가 서 있었겠지요?

 

딱히 질투가 나거나, 부럽지는 않아요. 그때의 저는 신념에 따른 선택을 했었고, 지금도 그 선택에 대해선 후회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상상은 자유니...... 숲속에 있는 두 갈래 길 중에 내가 선택한 길 말고 다른 길을 걸었을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도 딱히 나쁜 건 아니잖아요?

 

스벤의 보고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상상의 나래를 한참동안 펼쳐본 결과...... 지부장님의 제안을 받았을 평행 세계의 저는, 지금 토라의 역량에 반에 반도 못할 거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물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만...... 그것도 그것 나름일 테니까요. 저는 저에게 예비된 올바른 길을 갔던 것이고, 토라는 토라의 길을 밟은 것입니다.

 

역사엔 가정이 없다.’는 논제가 이렇게 가슴 절절이 다행스럽게 느껴질 줄은 몰랐어요. 저는 상상속의 손을 흔들며 제 머리위에 뭉게뭉게 피어올랐던 망상의 생각 풍선을 지워나갔습니다. 그런데

 

!”

 

로키군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풀썩 주저앉았습니다. 저희는 놀라서 그쪽을 바라봤습니다만...... 이상한 것은 그 만이 아니었어요.

 

히익!”

 

주설씨와 알 샤인씨도 로키군 만큼이나 덜덜 떨며 휘청거렸답니다. 저와 리겔, 토라와 스벤 모두 그 모습에 어리둥절했어요.

 

무슨 일이에요?”

저 쪽에...... 뭔가가 우릴 지켜봤어.”

?”

 

로키군은 건물을 가리켰습니다만...... 그 행동은 우리에게 아하 그렇구나!’하는 느낌 보단 오히려 저게 무슨 귀신 싯나락 까먹는 소리래?’라는 의문만 가져다주었습니다. 로키군이 가리킨 건물에는 누군가가 우리를 바라볼 창문 따위는 보이지 않았거든요. 그들이 무슨 투시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창문도 없는 꽉 막힌 건물에서 어떻게 시선을 느끼는지 참 알 도리가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하지만 더 알 수 없는 건....... 로키군 뿐 만 아니라, 주설씨와 알 샤인씨 역시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이었어요. 아니 셋이서 단체로 헛것이라도 본 걸까요?

 

생각이 바뀌었어유.”

? 어떻게......”

여그는 우덜이 직접 들어가겄슈.”

?”

 

주설씨의 폭탄선언에, 저와 토라 그리고 스벤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뜯어말렸어요. 하지만 로키군과 알 샤인씨 마저도 그녀의 주장에 가세를 했어요.

 

우리 셋이 동시에 그걸 느꼈다면..... 이건 너희같은 일반인들이 낄 만한 스케일의 것이 아니야.”

언제부터 우리일반인의 범주에 포함된거지?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토라는 주설씨의 팔을 바라보며 말을 흘렸습니다. 침묵은 짧았지만, 의미는 확실했어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곳에 팔 한쪽이 없는 그녀를 호위도 없이 보낼 순 없다는 거겠지요. 이 부분에서는 다들 논파할 만한 거리가 없었는지, 로키군은 둘 간을 조율해서 나머지는 5분 뒤에 합류하는 것이 어떠겠냐는 중재안을 내밀었습니다.

 

토라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그래 뭐 5분 사이에 무슨 일이야 있겠어?’라며 동의를 했습니다만...... 저와 리겔은 달랐어요. 저희 둘은 같은 가족끼리 말이나 되는 소리냐며 함께 하겠다고 말했지만, 주설씨와 알 샤인씨는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여건...... 우덜이 나서야 헐 일이유.”

 

그 말에 설득력은 없었지만, 그 무게감에 짓눌려 우리는 머뭇머뭇 뒷걸음질을 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셋은 건물을 둘러싼 하샤신 요원들을 통과해, 문 앞에 섰습니다. 로키군은 알기에바, 주설씨는 쉐다르, 그리고 알 샤인씨는 카프리조를 발동했어요.

 

......”

?”

그거, 폭주 시키지 않을 자신 있어?”

이놈...... 거칠긴 하지만, 바보는 아니에요.”

 

 

 

 

 

 

 

Channel 1. 로키

 

우리가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나는 알기에바를 최대한 전개했다. 상대의 정체는 알 수가 없지만, 보통 놈은 아닌게 분명한 이상, 이쪽도 방심해선 안 된다. 이 말을 들으면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럴 것이다. 여지껏 내가 말해온 것을 들어왔다면...... 내가 일면식도 없는 존재를 두고 보통놈이 아닐 것이다라고 속단하는 적을 본 적이 없을테니까.

 

답답이와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면서 내가 학습한 것이 있다면, 세상일은 4+5=9처럼 마냥 깔끔하게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내 말이 논리적이지 않고, 뭔가......그래, 신비주의적인 경향을 보이는 것이 이성은 버리고 원시 종교 시절로 회귀한 것이냐라고 비웃을 지도 모르겠는데...... 강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으로 퉁치면 안될까? 아니..... ‘느낌이라는 단어론 부족하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일단 어디에 짱 박혀있는지는 확인해야겠지? ...... 이거 영 기분이 별로이긴 한데.”

 

나는 촉수 하나를 내 눈에 찔러넣었다. 무언가가 쑥 들어오는 불쾌한 기분이 머리통을 훑어내린 뒤에...... 내 촉수들 하나하나의 시야가 내 머릿속에 그대로 들어왔다. 나는 그대로 촉수들을 길게 늘여 건물 이곳 저곳을 훑어나갔다.

 

1층은...... 먼지와 쓰레기들 뿐이고, 2층은...... ...... 저 역겨운건 뭐지? 피웅덩이와 갈기갈기 찢긴 시체들인가? 이 안에서 집단 살인극이라도 벌어진 걸까? 3..... 4..... ? 어디에도 녀석들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분명 이곳에서 강렬한 시선을 받았는데, 우리가 건물로 들어온 사이에 연기처럼 사라져버리기라도 한 걸까? 자기 모순적인 발언이겠으나, ‘상식적으로 그럴 리가 없다.’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건물을 더욱 더 촘촘하게 살펴보았다.

 

..... 저기 통로가 있는거 같은데?”

 

편의상 ‘37번 촉수라고 명명한 촉수가 실마리를 발견했다. 녀석은 1층 바닥을 한참동안 훑으면서, 바닥에 실금이 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이 그 주변을 한참동안 수색한 결과, 실금 주위에 경첩과 손잡이의 흔적까지 찾아냈다. 저기에 뭐가 있어도 있을 것 같군.

 

나는 다른 촉수들로 하여금 37번 촉수 근처에 위험요소들이 있는지 확인하도록 했다. 흡사 그물과 같은 감시망 속에서 다행이 위험요소는 감지되지 않았다.

 

여기다.”

“....... 뭔가 으스스 헌디?”

그러게요. 대놓고 숨어있으니까 목숨 보전 잘해라.’라고 경고하는 것 같은걸요?”

 

주설이 경계를 서는 동안, 나와 알 샤인은 입구를 열었다. 입구 너머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이 있었고, 그곳을 향해 계단이 끝없이 이어졌다. 시야의 폭이 넓은 내가 선두에 서고, 주설이 중위를, 마지막으로 알 샤인이 후위를 맡아서 계단을 내려갔다.

 

...... 이거 이젠 아무것도 안보이는데요?”

빛도 없는 태초로 돌아가는거 같어유.”

어째 답답이가 전염된거 같은데?”

불안허니 그런거 아니겄냐?”

불안은 공포랑 다르다. 공포는 대상이 있지만, 불안에는 대상이 없어. 그냥 허깨비 같은 감정이지.”

말은 잘 하네요.”

 

나는 그들에게 시덥잖을지 모르는 이야기를 해줬다. ‘그들의 일원인 휠맨들이 하는 일 중에는 히트맨이 임무를 마치고 난 뒤에 남겨둔 물건들을 회수하는 것도 포함이 되어있다. ‘로타네브라는 군수산업가와 제휴를 맺기 전, 그들은 장비 하나하나 재활용을 해야 했는데, 특히 날붙이의 경우에는 피가 묻어 장비가 녹이 슬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항상 도금을 해야했다.

 

그때 사용한 것이 황산이었다. ‘휠맨들에겐 없어선 안 될 소중한 친구였던 셈이지. ‘황산특유의 유용한 쓰임새 덕분인지, ‘휠맨들은 황산을 가지고 7행시를 지을 정도였다. 그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7행시는 땅속으로 들어가 보라, 거기서 마음가짐을 바로하면 숨겨진 돌을 발견할 수 있을지니’ (Visita Interiora Terra, Rectificando Occultem Lapidem)였다고 하는군. 어느 소설가의 설정 집에서 그대로 배껴 온 것 같은 시상이었지만, ‘휠맨들 사이에서 나름 먹물깨나 먹었다는 사람이 제시했던 시상이였던 지라, 그들 사이에서 꽤나 인기리에 회자되었고, 급기야는 그들의 비밀 시설인 ‘Ge-Uters’의 입구를 찾는 실마리의 역할까지 수행하게 되었다.

 

연금술에 미친놈들이 이뤄낸 작은 성과라고나 할까? 이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우리는 무저갱의 끝에 다다랐다. 그리고 그곳에는

 

.”

 

통로 너머에는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촉수하나를 나의 귀에 꽂고, 나머지 촉수중 하나는 알 샤인에게,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주설의 귀에 꽂았다. 그런 식으로 청각을 공유하면서, 나머지 촉수들을 길게 늘였다. 그것들은 저 너머에 있는 소리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주님이시여. 최후의 순간이 도래하였습니다. 저는 주님의 뜻에 따라 모든 악업을 행하였습니다. 저는 거짓을 이야기 하고, 민족을 불화하게 하였으며, 만인에게 증오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저의 임무는 여기에서 끝이 나는 것입니까?”

 

데네브의 목소리였다. 구트 그라스에서 승리자행세를 했던 때와는 달리, 그의 목소리는 지쳐있었고...... 두려움에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촉수를 눈에 찌르지 않아 그의 모습을 알 수는 없었지만..... 그가 울고 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의 아들아, 내가 너에게 진실로 말한다. 너는 나머지 보다 더 위대한 존재가 될 것이다. 하지만 너의 위대함을 기억하는 이는 없을 것이고, 너의 이름과 무덤에 침을 뱉고 저주할 자들만이 태양 아래 남을 것이다. 오로지 어머님만이 너의 헌신과 희생을......”

 

정체를 알 수 없는 대화 상대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우리 셋은 전율감에 몸을 떨었다. 그것이다. 우리를 덜덜 떨게 만든 존재가...... 그들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그것을 방해할 권리는 우리에게 없었지만...... 더는 그 대화를 들어선 안 된다는 강한 예감이 우리 셋의 머리를 관통했다.

 

넘의 집에 왔으니, 인사라도 혀야지?”

 

주설은 쉐다르의 시위를 물었다. 무형의 화살이 바람을 일으켰다. 주설은 쉐다르를 대화가 들리는 쪽으로 크게 튼 뒤에 살을 날렸다. 바람을 잔뜩 머금은 쉐다르의 화살은 우리와 그들을 가로막고 있던 장벽을 와장창 박살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벽 너머로 데네브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막을 때는 수줍은 처녀처럼, 몰아칠 때는 토끼같이 하라는 어록이 있다. 이걸 우리의 상황에 적용해 본다면...... 그들에게 대비할 찰나의 시간조차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주설이 낸 구멍 속으로 알기에바의 촉수를 밀어넣었고, 알 샤인은 칼을 빼들었다. 나와 알샤인, 그리고 주설은 벽에 난 구멍으로 몰아쳐 들어갔다.

 

“.......뭐 뭐야?”

뭐긴 뭐야? 네놈에게 높은 확률로 다가올 죽음이다.”

 

알 샤인은 파편을 뚫고 들어가서 데네브를 들이받아 넘어뜨리고, 그의 머리통에 칼을 휘둘렀다. 그런데

 

.......”

 

누군가가 데네브와 알 샤인 사이에 끼어들어 검신을 움켜잡았다.

 

이익......!”

알 샤인은 기합을 내며 검 손잡이를 그었다. 놀랍게도 알 샤인의 도신을 움켜잡은 그것의 손에서 불꽃이 번쩍번쩍 일어났지만, 그것은 고통에 찬 비명은커녕 덤덤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으아악!”

 

칼을 잡은 손을 휘돌려, 그대로 알 샤인을 날려버렸다. 알 샤인은 칼과 함께 벽에 쳐박혔다. 삐죽하게 박살난 벽에 부딪혀, 그것에는 알 샤인의 피가 퍽 하고 튀었다.

 

기다리......”

 

나는 알 샤인에게 정신이 팔린 녀석을 향해 알기에바를 뻗었다. 날카롭고..... 빨라야 한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강한 것...... 그것은 트라이던트와 같은 뾰족한 꼬챙이가 되어 그것의 주위를 빠르게 날아들었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녀석은 저주인형마냥 온몸이 침에 콕콕 꿰인 신세가 될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제발......

 

퍼버벅!”

 

대다수의 알기에바는 녀석의 비늘에 튕겨져 나갔지만, 이쯤되니 알기에바도 악에 받쳤는지, 어떻게든 그것의 틈을 찾기위해 내가 시키지 않고 무던이 애를 썼고, 알기에바 몇 가닥이 그것의 비늘 틈을 파고들었다. 지금이다. 나는 알기에바의 촉수를 크게 부풀렸다. 비늘이 벌어졌다. 이전에 튕겨져 나갔던 알기에바를 수복해 녀석의 팔을 움켜잡았다.

 

...... 너는 꽤 다루는 편이구.....”

그렇게 여유 부릴 수 없을 텐데?”

 

알기에바는 녀석의 팔을 게걸스럽게 삼키고 그대로 녹여버렸다. 간만에 알기에바를 그 본질에 맞게 사용한 듯 하다.

 

자꾸 말 끊으면 나도 화......”

이거 뭐야?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편인가본데?”

으윽..... 머리통이 깨진거 같은데.”

괜찮으셔유?”

 

자신의 팔이 녹아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신음소리는커녕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아 보였다.

 

 

 

 

 

 

 

Channel 2. 아이리스

 

저와 남은 사람들은 가만이 앉아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설씨가 그렇게 엄포를 놓았는데 무시하고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저는 그저 발만 동동 구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야, 정신 사나븐께 좀 가만 있어봐라잉.”

지는?”

 

리겔도 저 만큼이나 우리 일행들이 걱정되었는지 손가락에서 피가 나도록 손톱을 질겅질겅 물어뜯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럴진대 하샤신들은...... 그래요 뭐. 그럴 수 있지, 아무리 실용주의라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들을 배신한 것이나 다름없는 이들을 돕는 게 달가울 리가 있겠어요? 요원들이 미동도 하지 않고 건물을 응시하고 있는 동안, 스벤이나 토라는 여기 무슨 일이 있었나?’라는 듯이 벤치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언니도 좀 와서 마셔.”

아냐. 괜찮아. 마음만 받을게.”

걱정돼서 그래? 괜찮아! 독 안탔어.”

그러니까 더더욱 걱정 되는걸?”

 

현실성 있는 농담에 안 그래도 없던 입맛이 뚝 떨어져, 저는 그저 마른 침만 삼켰습니다. 리겔은 한참을 더 손톱을 물어뜯다가, 더는 안 되겠는지 그들의 테이블에 앉았어요.

 

나도 한 잔 줘 보씨요.”

하하, 그래요. 여기 있어요.”

음마, 향이 허버 향기롭소잉? 요거 이름이 뭐시요?”

깔라만시에요.”

아따 고맙소...... 스토옵. 스토옵...... 스톱!”

 

시간이 지나도 스벤은 넉살이 그대로였는지, 리겔의 잔이 찰랑거릴 정도로 가득이 깔라만시를 따라주곤 씩 하고 웃어보였습니다. 리겔은 하샤신이 건넨 호의가 기분 나쁘지 않았던지, 역시나 씩 웃으며 차를 후루룩 들이켰어요.

 

오매 맛이 참 요상지네, 달면서 써브요?”

그렇쥬? 요즘 구하기 힘든거니 양껏 드셔유.”

야 이년아, 니는 안 묵냐?”

됐어.”

지미 생각을 혀 줘도 지랄이네. 쟈꺼 꺼정 나한테 줘보씨요잉. 프로하기온 총독도 지 싫음 그만이제.”

 

리겔은 차를 한 번 더 받더니, 저를 약 올리듯 눈앞에 찻잔을 흔들며 꿀떡꿀떡 마셔댔어요. ...... 참아야 합니다. 여기서 저 삼류 양아치의 도발에 넘어가는 건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요. 뒷감당을 생각해야 합니다. 저기에서 제가 소리라도 빽 지르는 날에는 일행들이 돌아왔을 때, 리겔 놈이 저를 두고 얼마나 놀려댈지는 불 보듯이 뻔해요.

 

...... 킥킥.”

음마? 뭐가 그리 웃기시오? 웃길라는 의도는 없었는디?”

아이리스 언니한테 이런 식으로 대하는 사람은 처음 봐서요.”

아따 그러요? 시야 좁게 사셨소?”

네 그런가봐요. 전 여지껏 아이리스 언니는 어딜 가도 예쁨만 받는 줄 알았거든요.”

...... 내가 봉께로 쟈가 어딜 가두 알랑방구를 존나게 뀌어 싸니 끔뻑 속아 넘어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요. 그려두 나가 프로하기온 뒷골목 짬밥이 있어븡께로, 한눈에 딱...... 거시기 혀브렀기에 망정이제.”

, 나 착한 거 맞거든? 너한테만 그러는 거야 너한테만.”

음마? 나한티만 그렸냐? 들었소? 저것이 저러게 사람을 갖다가 차별 한당께요. 명색에 종교인이라는 작자가 사람을 가려브네...... 너그 교주가 니 꼬라지 봐블믄 존나게 좋아하겄다잉?”

이익......”

 

화는 났지만, 리겔놈의 말에서 구구 절절 뜯어봐도 틀린 말은 없었어요. 아무리 날건달 놈이여도 아드님께서 활동하셨던 프로하기온 출신이라서 그랬던 걸까요? 그는 걸판지지만, ‘아드님께서 말씀하셨던 바로 그 비유를 들어 제 행동의 잘못된 점을 지적해 버렸고, 그대로 의표가 찔린 저는 아무런 반박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야 이거 참 재미있는데요? 아이리스 언니가 신학적 지식에서 밀려버리는 날이 올 줄이야.”

그래..... 내가 리바이고, 바리사이였지..... 이거 참 할 말이 없네.”

그려 마, 실천이 없는 지식은...... 뭐시냐, 부도수표? 그거랑 뭐가 다르겄냐? 담부턴 이 오래비 말씀 잘 듣고......”

내가 이 치욕은 언젠가는.....”

 

머리로는 수긍했으나, 마음으론 승복할 수 없어, 저는 대놓고는 하지 못했지만 작은 목소리로 복수를 다짐했습니다. 두고 봐요. 내가 진짜 저녀석을.......

이렇게 복수를 다짐하는 동안, 요원 하나가 스벤과 토라에게 다가와서 무언가를 보고했어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토라는 반색을 했답니다.

 

무슨 이야긴데?”

, 언니도 반가워 할 소식인데. 최근에 그 녀석, 그루미엄으로 출장을 갔었거든. 거기에서 일 처리 잘 하고 돌아 온다네?”

...... 그래?”

“‘우리랑 떨어져 있으면서 많이 기다려 왔을 텐데 반응이 좀 그렇다?”

아냐...... 잘 살아있으면 됐지 뭘......”

 

토라의 말을 듣다보니, 스테반 로스차일드씨가 주최하던 파티에서 마주쳤던 그 저주받을 년이 떠올랐습니다. 그년도 그 아이에 대한 소식은 알지 못했었지요. 대륙 제 1의 부잣집 고명딸도 손에 넣지 못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 아이는..... 그 빌어먹을 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거에요. 그래, 그 아이가 행복할 수만 있다면.....

 

그래 뭐...... 어떤 형태로든 살아만 있으면 되는 거니까......으악!”

 

토라가 씁쓸한 얼굴로 제게 위로의 말을 건네다가, 별안간 터진 폭발에 머리를 감싸쥐었습니다. 토라는 스벤이 재빠르게 나선 덕에 파편을 맞지는 않았지만, 저와 리겔은 우리 앞에 있던 건물이 폭발하면서 날아온 파편을 그대로 뒤집어 써야만 했어요.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지축이 한참동안 흔들거렸고, 우리는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어요.

 

건물 앞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가 걷히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일이 많지 않아보였습니다만...... 리겔의 생각은 좀 달랐습니다. 그는 파편을 얻어맞아 머리통에서 피가 흘러내렸지만, 개의치 않고 내 손을 움켜잡았습니다.

 

뭔 일 난거 같은디? 얼렁 가봐야 쓰겄다.”

? ! 그래!”

 

 

 

 

 

 

 

Channel 1. 로키

 

손이 녹아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개의치 않는 저 괴물자식의 행동에, 우리는 솔직히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주설은 그것의 모습에 자신의 옛 기억이 떠올랐는지 특히나 더 진저리를 치는 것 같았다. 이거...... 이쯤 되니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겠군.

 

넌 누구지? 데네브의 보디가드라도 되는건가?”

그닥 재미없는 농담을...... 내가 이 저열한 유기물 덩어리를 보호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나? 이 치는 그냥......”

? 주님?? 이건 말이 조금 다..... !”

 

그것의 대답은 우리는 물론이고, 데네브까지도 예상하지 못했는지 눈이 똥그래져 그것에게 항변을 하려는 순간, 그것은 남은 팔로 데네브의 목을 움켜잡았다. 데네브는 발버둥을 치며 그것에 발길질을 했으나...... 그것은 데네브의 머리통을 자신의 잘려버린 단면에 쳐박아버렸다. 뼈와 뼈가 부스러지는 소리가 나면서 데네브의 머리통이 박살나버렸다.

 

너네를 끌어들일 미끼정도 밖에 안됐지. 지금은 그......”

아니..... 질문 하나 잘못했다고 그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나?”

“......냥 단백질 공급원.....”

우욱! 토 할거 같아.”

 

그것의 어께가 쫙 하고 벌어지더니, 마치 입이라도 되는 양, 데네브의 몸을 와그작 와그작 씹어 삼켰다. 데네브의 몸통이 어느정도 삼켜지자, 미처 삼켜지지 않은 그의 팔과 다리는 마치 그것의 손가락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르가 고어물이 될 줄은 몰랐는데......?”

기가 막힐 노릇이군요. 순수한 라스알게티가 어쩌고 하던 놈들의 대빵이란 작자가, 이런 사람인지 뭔지 구분도 안되는 괴물새끼였다 이거군요.”

세상 살면서...... 말 되는 일을 몇 번이나 겪었다고 새삼.....”

그래 뭐 맞는 말이라 치고...... 넌 누구냐?”

목양견......”

목양견? 양떼를 돌보는 개 말 하는 건가?”

그래..... 나는 어머님의 뜻이 이 땅에 임재하는 것을 위해 예비된......”

내가 잘못 들은건가?”

 

뒤에서 들려온 낯익은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리겔과 답답이였다. 이 자식들......괜히 끼어들지 말라고 그렇게 말을 했건만, 이 두 고집불통들은 내 말을 그냥 대놓고 무시를 해버렸다. 어쨌거나, 그들도 저것이 보여주는 그로테스크한 모습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목양견은 갠디? 저건 암만 봐두 개랑은 거리가 멀지 않어? 굳이 거시기 혀보믄...... 도마뱀?”

 

그 와중에 등장하자마자 뺨을 시원하게 올려 붙여버리는 리겔의 말에 그것은...... 처음으로 감정적이라 할 수 있는 반응을 보였다.

 

메타포라고는 모르는...... 무식한 불순물이 섞여이......”

아무리 찌꺼기여두 갠줄 아는 도마뱀 보단 난 거 같소?”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맞받아치는 리겔의 입담에, 그것은 순간 울컥 했지만...... 이내 크게 한숨을 내쉬면서 멘탈을 정리했다.

 

그래..... 이런 불순물을 섞어놓은 데는 어머님의 숭고한 뜻이 있겠지...... 창조는 다양성의 어머니일 것.....”

푸핫!”

 

리겔은 그것이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껄껄 웃으며 녀석에게 독설을 날렸다.

 

오매 꼬라지 짠허다. 이 상황서두 즈그 애미나 찾고 있네잉. 아야, 기왕 찾는 김에, 빤스도 한 장 가따 달라고 혀라와. 가까븐 미래에 피똥을 존나게 지릴거 겉은디.”

“.......”

 

기왕 선을 넘어버린 김에, 패드립을 시원하게 날려버린 그의 모습에...... 우리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이래서 무식한데 신념만 있는 놈 만큼 위험한 건 없는거 같......

 

으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Channel 2. 아이리스

 

솔직히 말해서.....

 

으아악!”

“.......”

아야, 뭣들 허냐, 나 죽는다! 나죽어!”

 

리겔은 뿌린 대로 거뒀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아무리 감정이 상해도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지...... 부모님 욕을 해버리는건..... 입이 백개라도 할 말 없는 거죠 뭐.

 

어쨋거나, 그것의 분노도 참 대단했어요. 그것은 리겔이 던진 마지막 말폭탄에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하고 괴성을 질렀습니다. 거기까지는 그래..... 뭐 상식적인 선에서 보일 수 있는 반응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상식선을 넘어선건 바로 그 직후였지요. 그가 소리를 지르면서...... 그것의 어께가 별안간 쭉하고 찢어져버린거에요.

 

생각지도 못한 모습이었죠. 통상적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고 어께가 찢어지진 않잖아요. ‘턱이 빠지게 하품한다.’라는 말은 있어도, 어께가 찢어지게 소리를 지른다는 말은 없잖아요? 그런데 그 놀라운 일이 바로 우리 눈 앞에서 벌어져 버린 거에요. 어쨌거나, 그것의 어께가 찢어지면서...... 벌어진 틈 사이로 날개가 쫙하고 돋아났습니다. 살 속에서 파묻혀 있다가 튀어나온 만큼...... 그 날개는 피로 잔뜩 얼룩져 있었지요.

 

적당히 깨우쳐 주려고 돌아가려 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너희의 순수성을 위해서라도, 저 불순물을 미리 제거해 버리는게 나을 것 같다. 고마워 하도......”

 

그것은 날개를 쭉 펼치더니, 리겔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습니다. 그 풍압에 우리 모두의 몸이 휘청일 정도였지요. 리겔은 그 기세를 막아보고자 팔을 'x'자로 겹쳤지만...... 그것은 리겔을 그대로 들아 박아버렸고, 둘은 그대로 벽에 쳐박혔습니다. 내키지 않지만 리겔 녀석을 위해 기도문이라도 읊어줬어야 했을 텐데...... 워낙 눈 깜짝 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입도 떼기 전에 벽에선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어요.

 

으윽...... 더럽게 아프잖아.”

 

기차를 들이박은 듯 한 충격에 이건 누가 봐도 죽을 수 밖에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놀랍게도 그리고 살짝 아쉽게도 리겔은 멀쩡했어요....... , 다만 이건 충격에 비해라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리겔의 머리통을 비롯한 곳곳은 피범벅이 된 상태였습니다. 어쨌거나, 저 징그러운 내구성에 그것도 조금은 놀란 눈치였어요.

 

저 씨발럼이...... 깜빡이는 켜고 들어와야제 뭣허는 짓이여?”

생각보다 단단한 편이군. 그런 의미에서 한 번 더......”

 

그것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알기에바의 촉수가 그것의 목에 칭칭 감겼어요.

 

모가지에 절취선 그어졌으니 거기까지 하지?”

“.......”

팔 가지고 놀라긴 했지만...... 머리 잘리는데 과연 장사가 있을까?”

 

 

 

 

 

 

 

Channel 1. 로키

 

혹시나 해서 오해를 할지 몰라 다시 한 번 설명을 하자면, 나는 분명 경고를 했다. 하긴 생각해보면, 내가 그들에 속해있을 때부터 나는 늘 이래왔었다. 피에 굶주린 인간 백정이라는 세간의 인식에 대한 반발감이었던 걸까? 어쨌건 나는 피를 볼 상황이 올 때면 늘 그만둘 것을 권했다. 이븐타운에서도 그랬잖아? 하지만 생명존중에 대한 나의 꿈은 번번이 부서지곤 했지. 이쯤되면 뭐랄까...... 클리셰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것은 나의 경고를 무시했다. 경고를 했는데 무시를 하면 뭐...... 어쩔 도리가 없지. 녀석의 목을 절취선 대로 잘라줄 수 밖에. 나는 알기에바에 힘을 주었고, 알기에바의 촉수는 그것의 목에 매끈한 절단면을 남겼다. 그것의 목이 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대개의 두부 절단 사망자들의 행동이 그러하듯이, 목을 잃어버린 육신은 몇 발자국을 비틀거리며 걷다가...... 힘을 잃고 푹 쓰러졌다.

 

디진겨?”

생물학적으론 그럴 가능성이 크지?”

별 것도 아닌 것이 뭘 믿고 저렇게 나댄것이여?”

 

리겔은 놈의 시신을 발로 툭툭 건드렸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것의 반응은 없었다. 내가 이제까지 해온 이야기들 중에서 공포라는 장르에 속한 것은 없었으니, 갑자기 시신이 움직일 리는 없을 것이다.

 

가능성이 크다고 해서 100 퍼센트 그렇다는 보장은 없는거 아......”

우악!”

 

아니, 이젠 공포물의 클리셰에까지 도전할 참인건가? 분명 목이 잘렸음에도 불구하고, 리겔이 몇 차례 톡톡 건드렸을 뿐인데, 그것은 자신을 건드리던 리겔의 다리를 꽉 움켜쥐었다. ...... 음 이런 상황에 꺼낼 말은 분명 아니겠으나, 언급을 안하고 넘어가다가는 직무유기가 될 거 같기에 굳이언급을 하자면....... 그때 리겔은 나도 모르게 오줌을 지릴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리겔이 어버버 하는 사이에 그것은 리겔의 다리를 잡고 그를 들어올려 사정없이 패대기를 쳤다. 리겔의 입에서 옥수수를 닮은 하얀 물체가 후두둑 튀었다.

 

나는 죽음과 반대편에 서 있는 존재. 너희의 상식으론 나를 가증스러운 위선자에게 보낼 수......”

 

잘린 머리가 이야기를 이어가는 모습이 역겨워 보였다. 그건 알 샤인도 의견을 함께 했는지, 녀석이 말을 끝내기 전에, 그것에게 달려들어 녀석의 몸을 반으로 토막내고, 리겔의 다리를 움켜쥔 그 손을 잘라내버렸다. 나는 그것이 더는 개소리를 늘어놓지 못 하도록, 머리를 밟아 으깨버렸다.

 

공포에 질려있구나.”

 

으윽...... 분명 머리통을 으스러뜨려버렸음에도, 내 발 아래에 깔려있던 그것은 여전히 아가리를 놀려댔다. 나는 그것을 걷어차 버렸다.

 

죽음은 나를 정복하지 못한......”

으아악!”

 

주설은 공포에 반쯤 미쳐버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바로 쉐다르의 시위를 당겨, 남은 잔해들에게 바람살을 쏘아댔다. 알 샤인이 반으로 갈라버린 그것의 육신이 폭죽 터지듯 산산조각이 났다.

 

이게 너희가 생각하는 죽음의 정의인가? 나를 원자 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으깨버리면 내가 생물학적인 죽음을 맞이할 거라고 생각하나보지만......”

이거...... 완전 미친놈 아니야?”

앞서 말했듯이, 죽음은 나를 어쩌지 못한다.”

 

 

 

 

 

 

 

Channel 2. 아이리스

 

무서워 말아라. 너희는 어머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다. 비록, 저주받은 가증스런 물건을 상속받았으나, 그로 인하여 너희는 복된 이가 될 것이다. 너희는 어머님을 완전하게 만들 자들이니.”

 

고깃덩어리가 됐다고 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지만...... 그것의 조각은 하나 하나 모이기 시작하더니, 처음의 그 모습으로 돌아왔어요. 산채로 박살이 난 자가 죽기는커녕,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걸 제 눈으로 똑똑히 본 마당에 두려어 하지 말라.’라니...... 그것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담력의 기준선이 지나치게 높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깨끗하게 육신을 수복한 그것은 리겔을 쳐다보며 자신의 말을 이어갔습니다.

 

어머님의 종된 자 나 다비흐가 너에게 말한다. 너는 이 세상 끝 날까지 네가 원하는 것은 머리터럭 하나, 먼지 한 톨도 얻지 못할 것이다. 네가 손을 대는 모든 것은 손아귀 속 모래처럼 사라질 것이고, 네가 사랑하던 자들은 너를 욕하며, 저주하고, 희롱할 것이다.”

 

모두가 두려움에 질려 입도 못 떼는 상황에서 리겔은...... 달랐어요.

 

뭐래 씨벌럼이...... 내 운명은 내 것인디 니가 뭐라고 훈수를 두고 지랄이냐?”

 

리겔은 뚜벅뚜벅 걸어가, 그것의 머리통을 후려쳤어요. 리겔의 일격을 전혀 예상치 못했는지, 그것은 크게 휘청거렸습니다.

 

뭐여? 저 기괴한거에는 암스롱또 안 허믄서, 고작 요 주먹질에 휘청거리는거여?”

..... ............”

뭔가 맥이 탁 풀려브네, 어려운 말로 하믄, 네넘은 물리적 오류 앞에선 무적일지 몰라두...... 요 간단한 물리적 원리 앞에선 맥도 못 춘다는 거 아녀?”

크윽......”

 

리겔은 그것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박치기를 하듯 자신의 머리를 그것의 이마에 가져다 대었습니다. 그것은...... 이제까지의 일들이 마치 거짓말이라도 되는 듯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했지요.

 

깡패새끼덜이 깡패짓을 어떻게 허는지 아냐?”

“......”

의외로 간단혀. ‘은혜는 못 갚아두, 원수는 꼭 갚아븐다. 고로 저새끼를 건들믄 좆되븐다.’ 하는걸 대그빡에 깊이 박아브러야 써. 그려야 다시는 못 개깅께.”

“.....”

그걸 기억하며 디져라잉. 이 명제를 갖다가 넘덜이 잊거나 의심을 안 헐라믄, 니는 지금 디져야쓴다.”

 

리겔은 그것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는 말을 이어가며 차근차근 그것을 걷어차고, 후려치고....... 짓이겼어요. 그것은 마치...... 사형대 앞에 꽁꽁 묶인 죄수처럼....... 아무런 반항도 하질 못했답니다.

 

그리고 그것은..... 퉁퉁 불어버린 얼굴을 하며....... 그 자리에 쓰러졌어요. 다신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아오 씨벌! 존나게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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