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가지 인생 - 102

갑과을 작성일 21.08.24 02: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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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오라비의 생존을 확인하고, 감격에 겨워 서로를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라는 결과를 원하는 이라면, 내 말을 더는 듣고 싶지 않을 것이다.

팀장이라는 여자가 들고온 서류뭉치는 ‘사망자’ 명단이었고, 그곳에 이름이 올라있다는 것은, 그 의미를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될 것이다.

 

소녀는 비정한 현실을 맞닥뜨리자,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잘못들었기를 다른 누군가에게 확인받고 싶기라도 한 듯, 우리를 쳐다봤다. 나를 제외한 어느 누구도, 소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지 못했다. 소녀는 애원하다시피 내게 매달렸다. 나는 소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제 너희 오라비를 만나러 가자.”

 

소녀는 내 말을 듣고는 화를 내며 내 가슴팍을 탕탕 두드렸다. 그녀는 나를 향해 온당치 않은 분노를 쏟아냈다. 그녀는 무슨 자격으로 제 3자인 내게 화를 내는 것인가. 내가 그 오라비의 죽음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내가 한 것이라곤, 그녀가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을 환기시켜 준 것 뿐인데, 왜 소녀는 오라비를 죽음에 내몬 광산의 책임자 대신 내게 분노를 쏟아붓는 것인가.

내가 혼란을 느끼는 동안에도 그녀는 나를 한참이나 두들겨 패더니, 결국 자리에 주저앉아 목놓아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얼얼해진 팔뚝을 움켜잡았지만, 어느 누구도 내게 동정의 눈길이나, 격려의 토닥임을 보내지 않았다. 모두들 소녀에게 달라붙어 그녀를 쓰다듬고, 눈물을 닦아주고, 끌어안았다.

그 선두에는 답답이가 있었다. 그녀는 둑이 무너진 듯이 눈물을 쏟아내며 소녀를 안아주었다. 한참을 같이 흐느낀 그녀는 나를 보며 쏘아붙였다.

 

“쓰레기.”

“…….”

 

필그림들은 소녀와 함께 관계자들의 인솔을 따라갔다. 나는 가슴만큼이나 얼얼한 머리를 감싸쥐며 그들의 뒤를 쫓아갔다.

붕괴 현장의 모습은…… 뭐랄까, 거인이 산비탈에 주먹을 내리 꽂은 것 같이 잔뜩 구겨져 있었다. 산비탈은 찌그러져 있었고, 내려앉은 바위 사이로 흙먼지가 끊임없이 피어올랐다. 우리 발아래에는 더러운 진창이 고여 있었다. 나로서는 이 흙이 머금은 것이 지하수인지, 핏물인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그저 피비린내가 우리의 코를 매캐하게 만들 뿐이었다.

수 많은 노동자들이 무너진 현장에 달려들어서 돌들을 들어 올리거나, 바위 틈새를 파고들려고 어떻게든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노라니, 죽은 방아깨비에 매달린 개미 떼 들이 떠올랐다.

 

“팀장님 오셨어요?”

“네네. 지금 유족분들 왔습니다.”

“아 그래요? 이름자가 어터 된대요?”

“알……알……”

“알비래오에요!”

“아아! 그래요? 산들머리서 왔다는 그 아 말이오?”

“예 맞아요.”

“산들머리믄 시큰 소래기 질러두 소식 전하기가 에로울텐데 어터 이리 빨리 오셨소?”

“그게…….”

“소식 듣고 온 건 아니구, 여기 소녀애가 오빠에게 먹을 걸 좀 가져다 주려다가 이 소식을 접한거라.”

“허허 참……. 인생사 참 얄궂소.”

 

얼굴이 흙범벅인 인부는 사정을 듣고는 혀를 끌끌 찼다. 인부는 소녀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고, 소녀는 울음을 참아보려는 듯 연신 어께가 흔들렸다.

 

“함 살펴볼래? 이기 니 오래비 맞나?”

“…….”

 

인부는 천을 걷어 한 사내의 시신을 보여주었고, 소녀는 우뚝 멈춰 그것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필그림 모두가 그녀의 얼굴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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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이런 일이 꼭 이루어 졌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많았어도, ‘제발 이런 일이 현실이 되지 않았으면…….’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그만큼 속 편이 살아왔다고 할 수있을 지도 모르겠어요. 그 대가로, 저는 오늘 평생 해야 할 분량을 거의 다 쓴 것이 아닐까 했습니다.

 

팀장이라는 사람의 입에서 “이건 사망자 명단이에요.”라는 말이 나왔을 때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길 바랬고, 사고현장을 수습하던 아저씨가 “알비레오”라는 이름을 모르길 바랬으며, 마지막으로

 

“오빠아아…….”

 

소녀가 시신을 알아보질 않길 바랬습니다. 하지만 오늘 그 모든 바람들은 차력꾼 손아귀의 사과가 되어, 산산이 바스라져 버렸지요.

 

천 아래에는 곤죽이 된 시신이 놓여 있었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투성이와 멍자국이 선명했지만, 더 우리의 가슴을 저며왔던 것은, 소년의 손이었어요. 소년의 손은 어느것 하나 성할 것 없이 손톱이 모두 벗겨져 있었습니다. 시시각각 자신을 조여오는 흙과 돌더미 사이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무던히 벽을 긁어왔을 그 공포, 고통, 절망, 생의 마지막 순간을 짓눌러온 그 감정들 하나하나를 소년은 죽고 나서도 놓을 수 없었나 봅니다. 여느 시신과 달리 그의 손은 잔뜩 오그라들어, 소녀가 아무리 어루만져도 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어요.

 

토악질이 밀려왔지만, 저는 더럽다고 생각할 계재도 없이 꾹하고 삼켰습니다. 욕지기를 토해내는 것 조차도 떳떳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요. 같은 재난을 겪었지만, 우리는 그것에서 살아남은 반면, 소년은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잘나서 그런걸까요? 아뇨, 순전히 운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필그림 중에서 그걸 이겨낼 능력이 있는 자가 있던 것도 순전히 우연이었습니다. 소년이 죽은 것도, 순전히 우연이었던 것이구요.

 

우연에 의해 생과 사가 갈렸습니다, 그 사실이 저를 오싹하게 만들었습니다. 오싹함은 이내 뼈가 저리는 시리는 느낌이 되었고, 저는 그 잔인한 삶의 진실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버님이여 언제까집니까? 나를 영영 잊으셨습니까? 아버님의 얼굴을 언제까지 나를 외면 하십니까? 언제까지 내 영혼이 이 아픔을 견디고 괴로워해야 합니까? 언제까지 내 앞에서 의기양양해 하는 원수의 꼴을 보고만 있어야 합니까? 나를 굽어 살펴봐 주십시오. 내게 응답해 주십시오. 아버님 내가 죽음의 잠에 빠지지 않게 제발 나의 눈을 띄워주십시오.”

 

소년을 살리려고 한 기도는 아니에요. 그저 이 삶의 진실 앞에서 저절로 내 입에서 흘러나온 것 뿐, 그것을 읊음으로서 나의 두려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한 기도였습니다. 죽음 앞에서 저는 두려웠고, 피하고 싶었고, 차라리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그래 이대로 계속 허우적거리다보면, 언젠가 지푸라기라도 잡지 않겠어?”하는 심정이었다는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독히 이기적인 마음에서 우러나온 추악한 기도였지만, 제 어께에는 손이 얹어졌고, 모두들 나를 격려하듯이 제 어께를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그 지독한 괴리감이 잔뜩 고여있는 스푼을 마시노라니, 저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버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있음을 알고 의지합니다. 아버님께서 내게 손을 내밀어 주실 그 때에, 내 마음은 기쁨으로 넘칠 겁니다. 아버님. 제발 나를 너그럽게 대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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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5년 1월 10일

 

그 일이 있은 후 9일이 지났다. 필그림들은 원래의 목적도 잊어버리고, 사람들과 함께 돌더미를 나르며 그 속에서 시신 조각이라도 찾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사람들의 손길 덕분에, 가족을 잃은 이들이 하나 둘 어둠속에서 나와 빛을 보았고, 가족들은 시신 앞에서 토하듯이 오열을 쏟아냈다.

 

가장 먼저 가족과 만난 소녀는, 오히려 멍하니 그런 타자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그런 소녀의 행동이 이해가 되질 않아, 그녀를 계속해서 살펴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답답이 이후로, 이렇게 나로 하여금 궁금증을 일으키는 존재는 처음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소녀는 답답이보다는 내게 호의적이었는지, 며칠 지나지 않아 내게 해답을 주었다. 그녀는 텅 비어버린 것이다. 나이가 나이다 보니, 감정이라는 것을 담을 그릇이 턱없이 작았던 터라, 격렬하게 모든걸 쥐어짠 끝에, 그걸 쏟아낼 힘도 모두 고갈된 것이겠지.

 

그러나 미싱은 돌아가듯이, 자연의 손으로 막혔던 광산 입구는 사람의 손에 의해 다시 한번 모습을 드러냈고, 그나마 몸이 성한 광부들과 구조대를 자처한 사람들 모두 우르르 그 속으로 몰려 들어갔다. 그 덕분에, 이제까지 꺼내왔던 시신들보다 더 많은 수의 시신들이 속속들이 빛의 영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현장 소장은 그리고 오늘, 물리력으로는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구역을 제외하고 모든 구역에서의 구조작업을 종료하기로 선언했다. 이제야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는 모든 일이 마무리 단계에 이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 조차도 쉽지 않았다. 소장을 위시한 간부들은 전염병의 창궐을 우려해 ‘매장’ 할 것을 주장했지만, 유족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힌 것이다.

 

“딴거는 몰라두, 장례는 반드시 풍장으로 할거래요!”

 

유족들의 주장은 이 마을의 고유한 풍습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이곳에서는 장례를 매장이 아닌, 풍장으로 치르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그에 대한 근거로 ‘혼이 하늘로 돌아가려면 반드시 바람을 쐬여야 한다.’라고 것을 들었지만, 현장소장에겐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였다. 소장은 ‘혼이 어디있으며, 죽어서 하늘로 가는건 또 무슨 헛소리냐.’고 일갈했다. 답답이는 소녀를 부여잡고 같이 흐느껴 주는 것 밖에 할 일이 없는 모양이었다.

현장소장과 그 임직원들은 시신에서 유족들을 떼어내느라 무진장 애를 썼다. 답답이를 비롯한 나머지 필그림들이 유족의 역성을 들었지만, 나는 옆에서 지켜만 보았다.

나에게 입장이랄게 있겠냐마는, 굳이 어느 한쪽을 손들어줘야 한다면, 소장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유족들이 ‘영혼’을 운운하지만, 사실 풍장이라는 풍습은 그들이 살고 있는 이곳의 환경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거든.

 

IATP 연수 ‘인류학’에서는 인간 겨레의 풍습과 자연환경의 관계에 대해 각종 사례를 들어 설명한 바가 있었다. 그중에서 고산지대는 자현환경상 풍장을 할 수 밖에 없다고 하더군. 저지대의 경우야, 사람이 죽었을 때 삽 들고 몇 시간 땀만 좀 흘려주면 사람 한 명 묻을 만한 구덩이를 파는 것은 일도 아니겠다만, 고지대의 경우는 차원이 다르다. 돌보다 만년설 얼음덩이가 더 흔하게 채이는 곳에서는 지하수마저도 꽝꽝 얼어버리곤 하거든.

그런 곳에서 사람이 죽었다고 삽을 드는 순간, 그 사람은 흙과 얼음이 뒤섞인 사실상 얼음덩어리를 깨야하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 유족들의 선조들도, 이런 곳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을 무렵, 죽은 동료를 묻기 위해 무던한 시도를 해왔을 것이고, 사실상 그것이 불가능하다는걸, 동료를 그냥 바람 속에 던져놔야 한다는걸 인정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비인간적인 행위를 정당화 하기 위해, ‘영혼’이라는 개념을 도입했겠지.......

 

물론 이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격한 감정으로 몸도 추스르기 힘든 사람들 앞에서 잘난 듯이 떠들어 봐야, 씨알이나 먹히겠는가? 결국 인간은 자기 믿고 싶을 대로 현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동물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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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5년 1월 10일

 

기어코 현장소장과 간부들, 그리고 그들을 따라야만 했던 노동자들의 손에 의해, 유족들은 내팽개쳐지고, 나동그라지고, 주저앉아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옷을 찢으며 애통해 했어요.

하지만 그들의 애통함 따위는 먼 산에서 들려오는 메아리보다도 가치 없게 들렸나봐요. 현장소장은 거대한 중장비를 다루는 인부를 불러, 얼른 그들을 파묻을 구덩이를 만들라고 지시하고는 쌩하니 가버렸어요. 중장비의 거대한 팔이 하늘을 휘둘러 땅에 내리꽂히고, 흙이 온 사방으로 튀어 올랐습니다. 유족들은 튀는 흙이 입에 들어갔지만 오열을 그치지 않았어요.

 

“아아…….”

 

저희는 속절없이 구덩이가 만들어지고, 그곳에 시신들이 하나 둘 들어가는걸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답니다. 사실……. 유족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소장은 비정할지언정, 맞는 판단을 했다고 생각해요.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에, ‘흑사병’이라는 질병이 대륙을 지배한 적이 있었거든요. 이제는 그 원인이 쥐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대대적으로 ‘쥐잡기 운동’을 벌이면서 그 질병이 인류에게서 더는 발톱을 드리울 수 없게 되었지만……. 그걸 모르던 시절에는 속절없이 죽어나갔다고 합니다. 그때 사람들은 죽은 유족을 추모하기 위해 긴긴 장례식을 치렀고, 그 바람에 더 많은 사람들이 질병에 감염되면서 죽어나갔다고 해요.

소장은……. 그때의 교훈을 잊지 않고 있었던 거지요. 다만, 그 방식이 너무나도 비인간적이었을 뿐이라는게 문제일 뿐.

 

그냥 저는 소녀를 비롯한 유족들을 안아주고 되도 않은 말로 위로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물론 같이 분노의 말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만……. 그거야 말로 사실 지독하게 위선적인 것이지요. ‘당신들은 틀렸어!’라고 생각하면서, 그들의 말이 옳다고, 저 소장이 못 되먹은 인간이라고 험담을 하는 꼴이란 참…….

 

그래도 소장은 마냥 명령만 하고 현장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었어요. 그는 한참 후에 돌아왔는데, 그때는 이곳의 ‘사제’와 함께였습니다. 아, 깜빡했네요. 사제를 따르는 무희와 악사 이 둘과도 함께였습니다. 이곳의 사제는 ‘보편종교’와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차림새였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이곳의 ‘전통 종교’를 신봉하는 분이었나봐요.

 

“다 준비 됐는가?”

“예.”

“시작하지.”

 

현장소장의 말에 따라, 중장비는 흙을 퍼 올려서 시신위를 덮기 시작했습니다. 사제는 그곳의 전통적인 축문을 읊으며 혼을 위로하고, 악사의 반주에 맞춰 무희는 춤을 추며 시를 낭송했어요. 그 시는 이곳에서 죽은자를 보낼 때 자주 읊어지는 모양이에요. 무희의 선창에 따라, 유족들은 눈물을 삼키며 후창을 해나가더라구요.

 

“나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채로, 시계는 가는채로 손목에 달아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마차에 싣어.”

“군산에 가서”

“검문이 심하거든 곰소쯤에 가서”

“조각 판에 옮겨 싣어다오.”

“바람을 이불로 덮고 화장도 해탈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 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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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비가 마지막 흙을 덮음으로써, 아비규환과 같은 장례식이 끝나고, 채 자리를 뜨지 못한 유족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 둘 자리를 떠났다. 망자에 대한 예는 그 정도면 됐다는 거겠지.

소녀와 끝까지 함께하기로 한 답답이를 남겨두고, 우리는 우리대로 장례식장을 떠나 마을로 내려왔다. 고작 3야드 떨어졌을 뿐인데, 이곳은 죽음이 억만리라도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돈을 뿌리지 못해 안달이라도 난 듯, 소위 명품관에는 사람들이 미어터지다 시피했고, 거리에는 연초를 맞이하는 손님들을 유혹하는 각종 음악들이 흘러넘쳤다.

 

“이곳은 디오니소스의 영역이네잉.”

 

알 샤인은 거리를 보며 울화통을 터뜨렸다.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사람들의 행태가 불만이라면, 답답이와 남아있으면 되는 일인가. 내가 지켜보기에는 타인을 비난함으로써, 자신이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디오니소스가 뭐당가?”

“거 있지 않소? 술이나 맨 퍼마시는 신이제라.”

“아따 팔자가 존나게 늘어진 신이네잉. 기왕 술을 마실 것이면, 장례식장이나 와가지고 위로주나 한 잔 하제는 어디서 뭣허고 자빠져 있는거시여?”

“뭐혀? 실없는 소리 말구 방이나 잡어.”

 

주설은 둘에게 윽박지르고는 성큼성큼 여관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그녀의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갔다.

 

“쥔장 거기 있소?”

“아 예예 오짐 누고 오느라 늦었어요.”

“오짐이고 뭐고, 여그 방 있는가?”

“어디보자…….장부가……. 어매요 작금 방 있소?”

“야!”

 

부엌에서 커다란 아낙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남자가 미심쩍긴 했지만, 일단 방이 있다고 한 마당이니, 방 하나를 잡고 식사를 주문했다. 남자는 부엌에 대고 뭐라뭐라 소리를 질렀다. 아낙과 남자는 한참동안 실강이를 벌였고, 드디어 테이블에 음식이 놓일 수 있었다.

 

“거…… 짠겨?”

“……?”

 

주설의 말에 나와 리겔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끔뻑거렸지만, 알샤인은 달랐다.

 

“일단 업무와 관련되서 사고가 났으니, 빼박 업무상 재해고, 급여는 유족급여로 신청해야겄소. 장례식을 갖다가 고따위로 혀브럿으니 장례비도 솔찬이 받아내야 할 것이고……. 아 그러고 봉께 이참에 산업안전 보건법도 통과 되었소, 해당 사업장이 「광산 안전법」 적용을 받아버릴 것인디……. 아 맞다. 산업안전 보건법에도 적용 대상이요. 몰긴 혀도 상시 근로자가 한 오백은 되지 싶소.”

 

알 샤인은 머리를 찡그려가며 자신이 아는 모든 법률 사항들을 나열해나갔다. 리겔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가 법률조항을 나열할 때마다 주설의 눈은 안광이 형형이 이지러졌다. 사업장으로부터 적잖이 많은 돈을 받아낼 수 있게 되었다는 거겠지.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주설과 알샤인 나름의 추모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더 깊숙이 들어가면, 자신들도 결국 ‘타인’ 이상이 되지 못함을 자책함과 동시에, 그 마음을 스스로 감추고 정당화 하기위한 발버둥처럼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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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비가 마지막 흙을 덮음으로서, 눈물과 비탄이 눅진하게 눌러붙은 장례식이 끝이났어요. 몇몇 유족들은 자리를 차마 뜨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망연자실했지만, 꽤나 많은 사람들은 차마 떨어지지 않을 발걸음을 애써 떼어가며 흙더미에서 멀어져갔습니다.

소녀의 경우는 전자였어요. 그녀는 앉았다가 일어섰다 그러다가 다시 주저앉았다를 반복하며 이곳에서 벗어날 기색이 없었지요. 매우 위선적인 행동임은 분명하지만, 저는 적당한 돌을 찾아 그 위에 주저앉고 소녀와 함께하기로 했답니다.

 

“옥시기라두 한 줌 입 안에 넣어 줄 거를…….”

“…….”

 

머릿속에는 위로의 말과, 이제 그만 일어나자는 재촉과, 그래도 너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질책이 머리카락처럼 잔뜩 엉켜있었지만, 그 모든 사상의 끈들이 서로를 의지해 뒤엉켜버리는 통에, 어느 것 하나도 제 입밖에서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옆에 주저앉아 소녀를 바라보는거 말곤 도저히 뭘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인간은 결국 지겨움을 싫어하는 생물이고, 반복은 지겨움을 낳기에, 저는 그 지겨움이 만들어내는 하품을 애써 감추기 위해 때때로 고개를 푹 수그려야 했답니다.

소녀는 한참을 뱅뱅돌다가, 무언가를 결심했는지, 보따리를 풀어 옥수수를 꺼냈어요. 그리곤 산바람에 잔뜩 튼 손가락으로 옥수수 알을 한 줌 털어냈습니다.

 

“저승 갈 때 출출하지 않게 잘 챙겨가래요.”

 

그녀는 흙더미 앞에 조그맣게 구멍을 파선 그 안에 옥수수를 한 줌 밀어넣었습니다. 그게 그녀 나름의 추모의식이었을 테지요. 저는 그녀 옆에서 그 조그만 어께를 토닥거려줬습니다.

 

“그거 가지고 삼도천이나 건너가겠나?”

“?”

 

고개를 들어보니, 아까 초혼의식을 했던 무희와 악사가 서 있었습니다. 먼 발치에서 볼때는 잘 몰랐는데, 이들의 모습도 제법 짠해 보였습니다. 새하얀 소복을 입은 그녀의 얼굴은 햇볓에 검게 그을려있었고, 악사의 눈은 초점없이 허공 어딘가를 향해 있었습니다. ‘왜 저러지?’하는 저의 의문은 그의 손에 들려있는 가느다란 지팡이를 보고 풀렸습니다. 그들도 남들에게 말하기 어려운 사연 하나를 온 몸으로 견디고 있었던 거에요.

 

무희는 소녀가 파놓은 구멍 옆에 비슷한 크기의 구덩이를 팠어요. 그리곤 그녀의 동료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악사는 주머니에 손을 더듬어 지폐 꾸러미를 꺼내 그녀에게 건네줬습니다.

 

“이걸로는 한참 모자라겠다만, 뱃사공한테 좋은 자리 얻어 타시오.”

 

그녀는 꾸러미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 구덩이 안에 집어넣고 그 위를 덮었습니다. 저는 망연해하는 소녀 대신에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려고 했는데

 

“어?”

“왜 그래요?”

“혹시 우리 어디에서 본 적 있지 않아요?”

“글쎄요, 나는 그런 쪽 취향은 아닌데.”

“아니 그게 아니라……. 아!”

 

어디서 많이 봤다 싶더라니, 검게 그을린 피부와 헝클어진 머리로도 감추지 못한 익숙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저를 모를 것이 분명합니다만, 저는 분명 그녀를 알고 있었어요. 그녀가 부른 노래를 들으며 어려운 시절을 이겨냈고, 그녀를 응원하며, 잡지에서 나오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팬심으로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는걸요. 그러다가 홀연이 사라져버려 우리 모두 그녀를 걱정하고 빨리 돌아오길 빌었습니다. 그녀는 바로

 

“빅또리아씨! 빅또리아씨 맞죠!?”

“……에헤이 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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