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가지 인생으로는 너무 오랫만에 찾아왔습니다.
세상에 얼마나 안 올렸는지, ‘나도 작가’게시판이 사라진 줄도 모르고 있었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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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1. 로키
낭패다. 아니 그냥 낭패라고 하기에는 우리가 목도한 일의 스케일이 너무나도 거대하기에 단 세 글자로 상황을 묘사하는건 무리가 있을 것 같군. 이해를 돕기위해, 내 부족한 언어적 상상력을 동원해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자면
“엎드려 엎드려!”
음…….
“와지직!”
거친말로 ‘jot됐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으아아악!!”
거대한 눈사태가 열차를 덮쳤다. 눈의 물결은 자기 자신 뿐 만 아니라, 눈과 함께 얽혀있던 돌, 나무라는 친구들과 함께 기차를 향해 다가왔지만, 열차는 안타깝게도……. 승객들이 체감할 만한 속도로 이 위기에서 벗어날 생각은 없어보였다. 우리 ‘필그림’들을 비롯한 열차칸의 승객들은 좌석 밑에 기어들어가 몸을 옹송그리며 이 거대한 재난이 ‘운좋게도’ 나만은 피해가기를 바라며 울부짖었다.
그런 그들에게 이런말을 하면 비난을 받기 딱 좋겠지만……. 양심도 적당히 없어야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살기를 바란단 말인가?
물론 나 역시 죽고싶은 마음은 결단코 없었다. 죽는것은 사양이지만, 운에 기대고 싶지도 않았기에, 나는 알기에바를 전개해 유리창을 감쌌다.
“아야 로키야!”
“어? 왜?”
“혹시 시간 되믄…….”
주설은 열차의 천장을 가리켰고, 나는 그녀의 요구대로 천장에 사람 하나 빠져나갈 만한 구멍을 만들어줬다. 그녀는 아득바득 천장위를 기어올랐고
“믿어도 되냐?”
“뭘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시신 형체정도는 남겨줄 수 있게 노력해보지.”
나는 여분의 알기에바로 그녀의 몸을 친친 감았다. 주설은 열차를 향해 쏟아져 내려오는 눈사태를 바라보다가…….
“쩌그를…... 조지믄…... 쓰겄는데…….”
주설은 이를 악물고 ‘쉐다르’를 당겼다. 쉐다르의 앞으로 엄청난 바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주설이 시위를 문 입을 놓자, 바람살은 산비탈에서도 움푹 파인 곳을 향해 날아갔고, 이내 엄청난 바람이 불면서 비탈에 거대한 구멍이 생겨났다. 하얀 눈사태는 갑작스럽게 생긴 과속방지턱을 넘지 못하고 그 속으로 쏟아져 내려갔다.
“으갸갸갸갸갸…… 뭐혀? 땡겨!”
“말이 쉽지……. 일단 목숨 줄은 잡고 있어봐!!”
쉐다르의 후폭풍에 주설은 벚꽃 잎 마냥 정신없이 흩날렸다. 나는 그런 그녀를 다치지 않게 열차 안으로 끌어당기느라 무던히 애를 써야만 했다.
“후아……. 병풍 뒤서 절 받을 뻔 했네.”
“누가 절을 받는다고……. 으윽!”
“콰앙!”
여유를 찾은 우리가 농담을 주고받으려는 찰나에, 쾅 하는 소리가 나면서 열차칸이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리겔은 엉덩이에 수북하게 털이 나려고 작정을 했는지 눈은 웃는데 입은 울부짖고 있었고, 아이리스는 이른바 ‘냥사장’이라는 고양이의 척추가 부러질 정도로 끌어안았으며, 알샤인은 나름 호신책이랍시고 늘상 가지고 다니던 법전을 머리에 올려두고 잔뜩 수그렸다.
“꽉 잡아!”
사실 이들이 지독한 겁쟁이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 대목에선 나도 움찔할 수 밖에 없었다. 다 끝나는가 싶었는데, 미처 처리하지 못한 거대한 돌덩이가 열차 허리를 때렸거든. 다행이 빈 자리 였기에 망정이지, 누군가가 있었다면…….
“오매……. 하마트면 내장탕은 영영 못먹게 될 뻔 했구마잉.”
“굳이 그렇게 말을 해야겠어?”
Channel 2. 아이리스
“흐미……. 나와서 봉께로 참말로 아찔혔네잉.”
로키군과 주설씨 덕분에 최악의 상황을 면할수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우리의 여정을 계속 이어나가는 건 무리일 것 같습니다. 열차가 정지한 뒤에 승객들은 열차 밖으로 우르르 빠져나왔고, 열차의 승무원들은 열차의 피해상황을 살펴봤어요. 열차의 옆구리에는 거대한 바위가 푹 박혀있었습니다.
“어쩌야 쓰것소?”
“음……. 눈사태로 선로도 막혔으니 보고 하러 돌아가야겠지요? 파손된 열차를 끌고 가는 건 무리일 것 같으니……. 좀 만 도와주시겠습니까?”
“아 그럼 보고가 이루어지면, 복구하러 금방오겠군요?”
“복구팀이 금방은 오겠지만……. 완전 복구하는데는 넉 달이 족히 걸릴 것 같습니다.”
차장이 내린 결정은 파손된 열차를 선로 밖으로 밀어내고, 남은 열차끼리 이어붙인 뒤에, 다시 라스알게티 역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으로선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이었습니다만……. 이 장소에 있던 모두가 그런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건 아니었어요.
“아니, 지금 그루미엄에 중요한 볼 일이 있는데 이대로 돌아가자고요? 그게 말이나 됩니까?”
“다른 열차들은 그렇게 큰 피해도 없는 것 같은데……. 그냥 이어붙여서 그대로 가도 되는거 아니에요?”
방금 전 만 하더라도 나죽는다며 울고불고 했던 사람들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빠른 태세 전환에 ‘필그림’들은 혀를 찼지만……. 사실 우리 중에서도 모두가 혀를 찬 건 아니에요.
“아….. 안뎌! 나가 뭣 한다고 활까지 쐇는디…….”
주설씨는 다급하게 소리를 치면서 차장에게 달려들었어요. 그녀의 손에는 돈다발이 들려있었습니다.
“이보쇼! 댁이 우덜을 그루미엄까지 델고 가 주믄, 이 돈다발을 그냥 주겄소! 혹시 모자람 말 허구…….”
“저기……. 아가씨? 저희 공무원들은 사적인 돈을 받을 수…….”
“아따 괜잖어유. 나가 당신보고 나쁜 짓을 하라 혔어유? 그냥 모두가 빠르게 목적지에만 도착 허믄 그거야 말로 모두에게 존일 아니겄어유? 그니까 주머니 벌리시고…….”
나는 주설씨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왔고, 그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만, 지금의 주설씨의 모습은 어디 일행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울 정도였습니다. 다급했고, 그만큼 감정을 숨기지 못했으며, 결과적으로 노골적이었어요. 그 모습을 지켜보자니 적잖이 낯이 뜨끈해졌던지라 저는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저희에겐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아아악!!”
차장님은 더는 협상은 없다는 투로 뒤돌아가버렸고, 주설씨는 그자리에 주저앉아 악을 질러댔습니다. 사람들이 수군거렸지만, 그녀의 비극에 그들의 자리는 없었어요. 로키군은 팔짱을 끼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야할까요?”
“글쎄……. 일단 저 녀석이 그만 좀 닥쳐줬으면 하는 생각 뿐이라서.”
리겔과 알샤인씨도 그녀의 비극에 캐스팅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지, 슬금슬금 자리를 피해 승무원들에게로 갔습니다. 그들과 이러쿵 저러쿵 대화를 나눈 그들은 우리를 불렀어요.
“아야! 후딱 일로 와바라잉!”
“뭘 어쩌게?”
“일단은 쩌거를 선로서 밀어야 쓴다고 사람들 보고 도우라고 허는디?”
“그래?”
주설씨가 비극에 빠져있는 동안, 우리는 좀 더 현실적으로 행동하기로 했습니다. 열차를 연결한 고리를 잘라내고, 힘을 모아 열차를 비탈쪽으로 밀어냈어요.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모두가 구령을 맞춰 밀어낸 끝에, 열차는 흔들흔들 하다가 선로를 벗어나 비탈 아래로 굴러떨어졌습니다.
차장은 조심스럽게 후진하여 앞열차를 뒷 열차 쪽으로 갖다대었고, 마침내 하나로 합칠 수 있었습니다. 이쯤 되니, 주설씨 외에도 차장에게 항의를 했던 승객들 역시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한 모양이었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열차로 다시 탑승했습니다.
“어이! 청승은 이제 그만 하고 얼른 타지?”
“.......”
“뭐더냐? 빨리 타랑께?”
“.......”
“주설씨!”
“.......내려.”
“뭐?”
“내리라고!”
Channel 1. 로키
‘ITAP’과정을 밟았던 시절, ‘인간의 심리’라는 과목에서는 이런 코멘트를 한 들은 적이 있었다.
‘인간은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의 멘탈을 지키기 위해 방어기제라는 심리적 장치를 활용하여 불안으로부터 자신의 자아를 보호하고 치유하려고 한다. 이 방어기제는 사람의 심리적 성숙도에 따라 몇가지의 단계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단계의 방어기제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심리적인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앞에 서있는 주설이라는 여자는…….
“아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내리라고!”
‘퇴행’이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IAPT에서 분류한 4단계의 방어기제중에 3단계에 해당하는 것인지라, 그만하면 뭐……. 낮은 수준이라고 볼 수 없는 방어기제였지만
“내리란 말이야! 으헝헝헝헝!!”
“오매 징허네 참말로, 아야 얼른 내리자. 낯뜨거워 죽겄네.”
지금의 맥락에서 다른 방식의 방어기제를 사용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자리에 주저앉아 발을 구르며 떼를 쓰는 모습에, 우리는 주변의 시선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진동한동 열차에서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저희 이제 출발하려고 하는데…….”
“아따 됐소! 쪽실려서 타것소? 우덜은 걱정 말고 얼른 출발들 하씨요!”
차장은 ‘사실 내가 한 말은 예의상 한 것이었어’라는 듯, 리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열차를 몰아 멀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멀어지는 열차를 망연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아이고 주설씨 우리 인제 내렸어요! 이제 그만 뚝!”
“히끅…….히끅…….”
“오매……. 오늘 기내식에 상한거 들어갔는 갑다. 야가 별안간 맛탱이가 가브렀구먼.”
“그런데……. 어쩌냐? 이대로 산에서 밤을 샐 수도 없는 마당이고.”
일단 앞 뒤 잴 거없이 내렸다지만 뒤늦게 생각해보니, 정말 대책이라곤 없는 상황이다. 여기가 어디인지도 알 도리가 없고, 어디로 가야할 지도 파악할 수가 없는 판에, 하필 지금은 살을 에는 한파가 몰아닥치는 겨울이다. 우리는 무대책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저 몸을 떨며 서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빼애액!”
멀어진 줄 알았던 기차가, 경적소리를 내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허 참, 궁하면 통한다는 걸까? 아니면 우리에게 ‘인류애’를 보여주려는 것일까? ‘필그림’들은 뜻밖에 다가온 구원의 손길에 반색을 했다. 반면, 주설녀석은 잔뜩 토라져 얼굴을 잔뜩 부풀렸다. 보나마나 안탄다고 땡깡을 부릴 기세였다. 나와 리겔, 그리고 알샤인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빛을 교환했다.
“저기 손님들!”
“아 네네! 저희가 얼른 태우겠습니다.”
“아 그건 아니고요. 도저히 손님들을 그대로 두고 갈 수가 없어서…….”
“네네! 얼른 탈게요!”
“승무원 중에, 이곳이 고향인 친구가 있어서……. 이 근처 마을로 가면 된다고, 급하게나마 지도를 만들어 봤습니다! 이거 보시고, 근처 마을에 가셔서 도움을 받으면 될 것 같거든요?”
“아니 그게 아니고……. 문을 좀!”
“그럼 행운을 빌겠습니다!”
Channel 2. 아이리스
아니 이게 무슨 희극같은 상황인거죠? 장난을 치는 줄 알았는데……. 차장은 우리에게 지도 한 장만 던져주고는 ‘이젠 정말 안녕’이라는 듯이 다시 한 번 우리의 곁에서 멀어졌습니다. 승객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더니……. 공무원들의 위선이란.
주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차장이 던져준 지도를 주워들었어요. 그 모습이 우리 ‘필그림’들로 하여금 분통이 터지게 만들었습니다.
“인자 만족허냐? 이게 뭐더는 짓이여 시방!”
“뭐혀? 짐들 싸.”
“??? 아니 주설씨, 지금 이 엄동설한에 우리를 던져놓고…….”
“그 엄동설한에 얼어죽지 않을라믄 빨랑 움직여유.”
이야……. 이게 무슨, 그녀는 ‘방금 뭔 일있었어?’라는 투로 아무렇지도 않게 태도를 바꾸더니, 우리를 채근하기 시작했습니다. 알샤인씨와 리겔, 그리고 저는 그녀의 이런 극적인 변화에 어벙벙했지만, 로키군은 묵묵히 짐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맞는 이야기다. 얼어죽기 싫으면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해.”
“아니 로키군 말 좀 해봐요. 라스알게티로 돌아가서 재정비를 하는게 맞지 않았어요?”
“이미 열차 떠난 마당에 맞고 틀리고 따져서 뭐하게? 게다가.”
로키군은 하늘을 가리켰어요. 그곳에는 초신성이 형형한 빛을 내뿜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무한정이 아니다.”
“.......”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녀가 잔뜩 떼를 쓰고 아이처럼 행동한 것도……. 우리를 이 열차에서 내릴 수 밖에 없게 만들기 위한 포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소름이 돋을 것 같아요.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체면이고 뭐고 신경쓰지 않은거잖아요. 정말 전략적인 포석이었는지, 아니면 오비이락이었는지 헷갈렸지만, 그녀가 새삼 고향에서 매국노라 욕먹기를 자처한 사람이었다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지도 보니께 여그서 2 마일만 더 가믄 마을이 나온다고 하네유. 해지기 전에 싸게 가봐유!”
로키군의 말도 일리가 있고, 확실히 가만히 있기에는 산바람이 너무나도 추웠던지라, 나머지 일행들은 투덜거리긴 했지만 짐을 싸서 주설씨가 이끄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어요. 확실히 날은 추웠지만, 다들 이것저것 매고 움직이다보니, 이내 몸이 더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헉! 헉!”
“아직 멀었어요?”
“쫌만 더 가믄 되유!”
몸이 더워져서 추위는 그럭저럭 견딜 만 해졌지만, 같은 2마일이어도 평지에서의 2마일과, 산악에서의 2마일은 그 차원이 달랐어요. 눈이 산길을 덮어버리는 바람에, 우리는 허방다리에 별 생각없이 발을 디뎠다가 몇 차례나 휘청거려야만 했습니다. 언덕길은 또 얼마나 미끌거리던지요. 처음에는 눈이 그럭저럭 뽀드득거리며 발을 잡아준 덕분에 오르는데 큰 지장이 없었지만, 다섯사람이 땀을 흘리며 아득바득 오르다보니 눈은 이내 미끌거리는 얼음으로 변해버렸답니다. 처음 길을 개척하는 사람에게는 그럭저럭 오를 만 한 산길도, 맨 마지막 사람에게는 최악의 진창길이 되어버렸지요.
“으아아……. 손 떨어지겠어요!”
“놓침 그대로 삼도천 건너는거에유!”
주설씨는 그나마 성한 팔로 저를 잡아 끌어주었습니다. 우리를 이런 시련에 던져놓았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책임감과 힘을 불어넣어준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몇 차례 뿐, 이젠 그녀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주저앉아 일어날 엄두를 내지 못했어요.
“하아……. 하아…….”
“쫌만 더 가믄…….”
“으아아! 죽겄다!”
리겔이 스스로에게 힘을 불어넣을 생각인지 별안간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모습을 보노라니, 거의 풀린 태엽인형이 마지막 발걸음을 떼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완전히……. 지쳤어요. 이젠 그냥 다 귀찮아졌어요. 대체 어디에서부터 뭐가 잘못 된 걸까요? 이젠 그만 쉬고싶어졌…….
“죽긴 뭘 죽는대요?”
“으아악!”
갑자기 우리의 눈앞에 무언가가 툭 튀어나왔고, 리겔은 화들짝 놀라 그자리에 풀썩 주저앉았습니다. 그 모습을 봤어야 하는데……. 할 수만 있다면 진짜 크게 비웃어주고 싶었습니다만, 사실 저도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살짝 지려서 말이죠……. 솔직히 리겔에게 고맙긴 해요. 안 그랬으면 내가 놀림감이 됐을 테니까요.
어쨋거나 놀란 가슴을 추스르고, ‘필그림’들은 눈속에서 튀어나온 눈복숭이를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온몸이 눈덩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눈에 잔뜩 덮여있었을 뿐, 분명히 사람이었습니다.
“아이 깜쩍이야 소리는 갑자기 와이 지른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