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가지 인생 - 28

갑과을 작성일 15.11.03 00: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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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1 로키


"아이리스씨, 오래 걸리겠지?"
"밥은 먹었냐? 밥먹자."

나와 토라는 지부에서 나와 운터브룩 시장을 가기로 했다. 시장통은 점심시간을 맞아, 갖가지 음식을 파는 이들과 그것을 먹는 사람들로 빠글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사람들을 헤치고 나가기를 수없이 반복한 끝에, 우리가 늘상 들르곤 했던 국수가게에 다다를 수 있었다. 가마솥 안에서 피어올라 가게 전체를 휘감는 몽글몽글한 김과 그 속에 숨어있는 얼큰한 냄새는 오랫만에 방문했어도 변함이 없었다.

"이모, 여기 라면 두 그릇이요."
"아이고 이게 누구야. 잘들 지냈는가?"

제법 육덕진 가게 주인은 우리를 보곤 사교적인 웃음으로 알은체를 했다. 우리는 고개를 꾸벅하며 인사를 하는 것으로 답례를 했다. 그녀는 우리의 어께를 쓸어주고는 가마솥으로 갔다. 조금의 시간이 지난 뒤에, 탁자에는 보글보글 끓고있는 라면 두 공기가 놓여졌다.

여담이지만, 이 라면이라 불리는 국수는 매우 특이한 면발을 가지고 있었다. 곱슬머리 마냥 꼬불거리는 면...... 어찌보면 거부감마저 들 수 있는 이 특이한 외양이 라면이라는 국수가 가진 장점의 근원이 아닐까 싶다. 꼬불거리는 면은 그 사이사이로 칼칼한 육수를 품었고, 면 자체로는 여느 국수와 달리 매우 쫄깃했다.

나와 토라는 잠시 대화를 멈추고 정신없이 국수를 들이켰다. 칼칼한 육수 탓에 이마에는 금새 뜨거운 땀방울이 맺히다 못해 흘러내렸지만, 우리는 아랑곳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하아..... 속이 다 후련해 지는데?"
"살아 생전 다시는 못 먹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다시 먹을 수 있게 되니 다행이구먼."

토라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입가에 묻은 국물을 쓱 하고 훔쳐냈다. 나 역시 그녀가 건네주는 휴지로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닦아냈다.

"그래, 뭐가 됐든 살아있다는건 좋은 것 같아....... 죽은 사람에게는 미안 하지만."

내가 빈 그릇을 만지작거리는 동안, 토라는 나를 빤이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무슨 꿍꿍이일까?

"오빠, 그..... 아이리스라는 사람 말이야. 어떻게 하다가 알게 된 사람이야? 대충 듣기로는 오빠가 그 분에게 신세를 진 것 같던데."
"아...... 그 답답이?"
"답답이?"
"하는 생각이나 짓거리가 좀 답답해야 말이지. 너도 며칠 보면 복창이 터져나갈껄?"
"하하........그래? 그랬구나."

토라는 찬바람이 쌀쌀하다 할 정도로 차갑게 웃고는 더 말 없이 젓가락을 만지작거렸다.

"나와 녀석은........ 그 뭐냐, 이스트 민스터의 원장 수녀를 암살하는 의뢰에서 알게 되었었지."
"선요원이었던 거야?"
"아니, 그녀의 수양 딸이었지."
".......뭐?"

토라는 자신이 들은 말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는지, 머리를 긁적였다. 하기사, 설명을 하는 나 조차도 이 관계가 기이하게 느껴지는 판국에 듣는 입장에서는 내 말이 얼마나 기묘하게 느껴지겠는가.

나는 토라가 이해할 수 있을 때 까지 꾸역꾸역 설명을 이어갔다. 이번 의뢰에서 펜릴을 잃고 그로기 상태였을 때, 그녀가 나를 구해준 일..... 그리고 부채감에 내가 답답이에게 부탁을 들어주겠노라 했을 때 녀석이 했던 선택.

"왜 나와 함께하려고 하느냐고 물었을 때, 녀석은 '당신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어요 라고 대답하더라......."

토라는 입맛이 쓴지 입맛을 다시더니 젓가락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두 사람...... 내가 볼땐 서로 지독하게 일그러진 것 같아."







Channel 2. 아이리스


"저희 요원을 구해 주셨으니 저도 그에 맞는 답례를 해 드려야 할텐데......"
"아니에요. 대가를 바라고 한게 절대 아닙니다."

노인은 제 대답이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감았던 눈을 치켜뜨며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눈은...... 뭐랄까 제 머릿속의 생각을 읽어 내려고 하는 것 같아서 저도 모르게 그의 시선을 피할 수 밖에 없었답니다.
노인은 제가 그의 시선을 불편이 여긴다는걸 알았는지 자세를 고쳐잡고 펜을 잡았습니다.

"산술적으로 생각해 보도록 할까요?"

노인은 종이에 슥슥 적어나가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는 한명의 요원을 만들어 내는데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합니다. 예컨대 B급 요원을 한명 양성하는데는 3년의 시간과 10만 파운드의 돈이 필요합니다. A급 요원의 경우는 어떨까요? 6년이라는 기간과 30만 파운드의 돈이 들어간답니다. 마지막으로 아이리스씨가 구해낸 로키의 경우를 생각해 볼까요? 로키는 A급 요원보다 높은 수준인 '크로스'라고 분류합니다. 그런 클래스의 요원을 양성해 내려면 15년의 시간과 150만 파운드의 돈이 투자된답니다."
".........."
"당신의 선행 덕분에 '우리'는 엄청난 시간, 금전적인 이득을......"

노인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저도 모르게 로키군이 딱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다. 우선, 로키군은 여기에서 15년 이상의 긴긴 시간동안 살인기계로서 훈련 받아왔다는 것과........ 다음으론 그는 어찌본다면 그에게 있어 최후의 보루, 안식처가 되어야 할 곳에서 조차 시간과 돈이라는 경제적인 잣대를 통해 평가받고 받아들여졌기 때문이겠죠.

저는 이분의 이야기를 더는 듣고만 있을 수 없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노인의 말을 가로막았습니다.

"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잘 알겠습니다. 다만."
"다만?"
"저는 금전적인 대가를 바라고 그를 구해준 것이 아니라는거죠. 제가 이곳에 오기전에 로키군에게도 이야길 했지만, 전 그에게 바라는게 따로 있어요."
"아...... 따로 바라는게 있었나요?"

제 말을 듣는 노인의 얼굴이 부쩍 밝아졌습니다. '뭔가 보상을 해 줄 수 있다.'라는 사실에 대한 안도감과, '혼자서 착한척은 다 하더만 결국 이년도 매일 반이구나.'라고 저를 경멸하는 감정이 반쯤 섞인 기쁨에서 비롯된 것 이겠지요.

어찌되었든 이젠 제가 노인에게 제안을 할 시간입니다.

"전 로키군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습니다."
"......네?"
"로키군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의 이상은 무엇인지, 그가 무엇에 기뻐하고 무엇에 증오하며 무엇에 슬퍼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 모든것이죠."

노인은 제 말을 전혀 예상이라도 하지 못했다는 듯, 눈을 껌뻑이며 절 바라봤습니다.

"그게....... 답니까?"







Channel.1 로키


우리 둘은 라면 집에서 나와 소화를 시킬겸 시장통을 더 걸었다. 시장통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났다.

시장통을 걷다보니 문득 답답이와 운터 브룩에 오면서 함께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대 소동 뒤에 깨끗하게 정리된 뉴빌리지의 거리를 보면서 답답이는 몸에 상처가 나면 그속의 모든 세포들이 합심을 하여 상처가 낫도록 만든다고 했었다. 다만 상처는 나아도 흉터는 남는다고 했었지..... 몸이 그러하듯 이 사회역시 뼈아픈 진통을 겪은뒤, 그것이 아무일도 없었던 듯이 정리가 되어도 알게 모르게 무언가가 바뀌어..... 이전의 사회와는 전혀 다른 것이 된다고 말했었다.

그 당시엔 내 나름의 논리를 세워 녀석의 주장을 반박하느라 그 주장 자체를 곱씹어 보질 않았었는데...... 지금와서 새삼 녀석의 말을 곱씹어보니 가슴팍이 먹먹해졌다.

녀석은.... 사건 자체 뿐만 아니라, 내 동료들의 죽음에도 의미를 부여해 준 거였다. 내 동료들은 의미 없이 스러져 간 것이 아니라, 사회 발전에 어느정도 기여를 한 거라고...... 물론 그건 우리에게 큰 의의가 될순 없겠지만, 녀석은 녀석 나름대로 추모를 해준 셈이었다. 난...... 그걸 무시했었고, 내 손으로 내 동료들의 죽음을 의미 없는 것으로 여겼다.

토라가 나를 빤이 바라봤다. 나는 녀석에게 '무슨 생각을 하느냐.'라고 물었고 녀석은 어물어물하며 거리로 눈을 돌렸다.

"오빠."
"어."
"오빠 말이야..... 내가 알던그 오빠 맞지?"
"뜬금없이 뭔 개소리야?"
"아니..... 갑자기 오빠가 조금은 바뀐것 같아서."
"사람이 어떻게 한결같을 수 있겠냐. 환경이 바뀌면 당연이 맞춰서 살아야지."
"틀린말이 아니긴 한데....."

토라는 뭔가를 말하려다가 갑자기 울컥했던게 있었는지 벤치를 가리키며 잠깐 쉬어가자고 했다. 셔벗상인이 지나가길래 그에게서 셔벗을 두개 사서 먹었다. 토라는 셔벗을 햝아먹다보니 마음이 진정되었는지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부터 오빠가 복귀하기까지 지부는 정말로 지옥같았어. 소식은 속속들이 들려오는데 누가 어디에서 죽었네, 누가 어디에서 체포당했네 라는 소식들 뿐이었다구..... 거기에 찰리 녀석은 오자마자 한다는 말이 '우리와는 더는 일하지 못하겠다.'였다니까 이게 말이야 똥이야?"
"........"
"몇날 몇일 지부에선 향냄새가 가실 날이 없었어. 처음엔 모두가 무사히 돌아오길 빌었어. 며칠뒤 '모두'에서 셋이 빠지더라. 그 다음엔 다섯이 빠지고.... 일곱이......"
"......."
"오빠는 무사하길 빌어야할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게 어떤 기분인지 이해하지 못할거야."

토라는 내친김에 그간의 울분을 토해 내야겠다고 생각 했는지 나에 대한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평소의 토라를 아는 나로선 절대 그럴 녀석이 아니란걸 알기에 그동안 토라가 얼마나 힘들어 했을지 짐작이 되었다.

토라는 울상인 얼굴로 녹아내려 제 손에 범벅이 되어버린 셔벗을 닦아냈다.

"어리광 피워서 미안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오빠가 왔었어. 그때 내가 얼마나 기뻣을거 같아? 난 오빠가 당장에라도 수비대 본부를 박살이라도 낼 줄 알았어. 아니면 하다못해 계획이라도 세웠을거라 생각했어. 근데...... 오빠는 내가 알던 그 오빠와는 좀..... 달라진거 같아."













Channel 2. 아이리스


노인은 복잡한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겨있다가 한참만에 입을 열었습니다.

"당신은 둘 중에 하나로군요."
"네?"
"숭고한 영혼을 가지고 있거나, 지독한 머저리 이거나요."

하하..... 전자가 마음에 들긴 하는데, 어째 노인의 말에는 후자쪽에 더 무게가 실려있는 것 같았습니다.

"지부장 님..... 이라고 하시던데, 혹시 로키군에 대해서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아마 당신이 알고 있는 바와 큰 차이가 없을 텐데요? 유능한 요원입니다. 당신들 입장에선 잔인한 살인마겠지만....."
"살인마....."
"로키는 당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을 우리와 함께 보냈습니다. 또한 당신이 생각한 것 보다 훨씬 더 추악한 일을 해왔고요. 장담컨대, 앞으로 그보다 더한 일도 할 수 있을 겁니다."
"너무 단언 하시는거 아닐까요? 사람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죠....... 그런데 그것도 사람 나름 아니겠어요?"

노인의 말을 듣다보니 어르신에게 이래선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부아가 슬슬 치밀어 올랐습니다. 이렇게 자신에게 악평을 하는 사람과 오랬동안 함께 해왔다는게 이해가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불쌍하다 싶죠? 로키 녀석."
"........."

노인은 제 마음을 귀신같이 읽어냈을 뿐만 아니라, 제 무반응을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요원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입니다."
"잔인한 살인마가 어떻게 칭찬이 됩니까?"
"그렇지 않으면 도태되니까요. 물론 '당신의 입장'에선 당신처럼 생각할 법 해요.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당신의 입장'이죠 당신의 환경과 삶의 과정속에 만들어진 것을 로키의 환경과 삶의 과정속에서 형성된 '로키의 입장'에 들이대는게 옳은 일일까요? 그건 연민이 아닙니다 교만이자 폭력이죠."

저는 노인의 말에 대해 반박을 할 수가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신은 할 수는 있었습니다.

"절....... 쫓아내시겠군요?"
"아니요. 저는 로키의 생각을 존중해줄 생각입니다. '우리'의 규율상 계약은 어찌되었든 지켜져야 하니까요. 덧붙여 로키는 아까도 말했듯이 유능한 요원입니다. 전 녀석이 뻘짓을 한 걸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건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테고요."
"로키군을 신뢰하시는군요."
"아니요 신용합니다."







Channel 1. 로키


시장통 산책을 마치고 우리는 지부로 돌아왔다. 처음에 답답이와 왔을 때는 경황이 없어서 눈치채지 못했었는데, 지부에는 향냄새가 안개마냥 자욱이 퍼져 짙게 떠돌고 있었다.

나와 토라는 영현실로 들어갔다. 그곳엔 예전부터 있어온 오래된 위폐 외에, 옻칠이 채 마르지 않은 위폐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나는 화로에 향을 피우고 위폐 앞에 손을 모아 묵념을 했다. 토라는 주변에 떨어져 있던 재들을 모아 내 머리 위에 뿌려 주었다.

긴 잠에서 깨어난 것 같은 느낌이다. 답답이가 내게 던졌던 화두 '나라는 사람에 대해 알고 싶다.'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내가 두 다리로 떡 버티고 서서 마주 해야 할 현실에 눈을 돌려 버렸가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가슴을 콱 막히게 만들었던 응어리가 목구멍에서 뭉그러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주먹에 힘이 싣리고, 두 눈시울이 뜨끈해졌다. 이것이 어떠한 감정에 뿌리를 두고있는 생리적 현상인지는 알지 못하겠으나, 그것이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 길을 알려주는 지표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쉽게 말해, 내 동료들이 당했을 곤란과 고초를 그들에게 돌려주지 않고는 도저히 버틸 수 없을것 같다.

내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토라는 내 손을 잡고 나를 병실로 안내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병동은 전쟁터와 같았다. 생과 삶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는 요원들과 그들을 어떻게든 생의 경계 안쪽으로 끌어오기 위해 부단이 애를 쓰는 의무 요원들......

타인의 죽음으로 삶을 영위하는 우리가 이번 이 순간 만큼은 죽음과 맞서 싸우는 것이 제법 애처로워 보였다.

나와 토라는 의무 요원들의 안내를 받아 병실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온몸에 붕대가 친친 감겨있는 요원이 있었다. 의무 요원의 설명에 따르면 이 요원은 퇴각 길에 동료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길을 뚫던 도중, 불이 붙은 이정표가 넘어지는 바람에 거기에 깔리는 사고를 당했단다.

나는 환자의 상태를 보고 고개를 끄덕인 뒤에 자리를 뜰려는 찰나에 환자와 눈이 마주쳤다. 환자는 떨리는 손을 다잡아가며 내 손을 잡았다.

".....누구냐?"
"이렇게 다시만났고 건강해 보이니 다행입니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나와 함께 이번 의뢰를 수행한 바가 있었다. 그는 폭도들을 제압하는데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고, 나는 그런 그를 일벌 백계로 삼자는 뜻에서 그를 다른 요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곤죽이 되도록 두들겨 팼었다. 그 결과, 이 요원을 필두로 모두가 미쳐 날 뛰듯이 의뢰를 수행했었지......

"살아있으니...... 다행이구먼."
"그때, 저희는 크로스님이 지시하신대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동료들도 구했고요.....저....... 잘한거 맞죠?"

붕대에 친친 감겨버려 그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가 울고 있다는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아 주었고, 그는 남은 팔로 제 얼굴을 가렸다.









Channel 2. 아이리스

신뢰와 신용에 대해 굳이 강조를 해가면서 차이를 둔 노인의 의도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우선은 다른 의문을 먼저 풀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노인은 '규율'과 로키군의 판단에 대한 '신용'을 거론 했지만, 저를 이곳에서 쫒아내지 않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저는 노인이 숨겨 놓았을 이유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요량으로 그의 얼굴 표정과 행동거지를 유심히 살펴 보았지만, 그는 평온하게 찻잔을 비울 뿐 어떠한 여지도 제게 남겨주지 않았습니다....... 실로 얄미울 정도로 철저한 사람이었습니다.

"계약은 계약이니 저희도 당신이 만족스러운 답을 찾아낼 때 까지 최대한 협조 하겠습니다. 일단 당장에 필요로 하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음........."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 제가 먼저 제안해 볼까요? 우선 로키와 같은 방을......."
"아뇨. 사양하겠습니다."
"........"

잠깐이었지만, 노인의 얼굴에서 '실망이다.' 라는 사유가 스치고 지나간 것 같았습니다. 아무래도 저 노인이 더 괴상한 제안을 하기전에 제가 먼저 나서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지부장님...... 실에 오기 전에 이곳을 관리 하시는 아주머님을 뵌것 같습니다."
"아, 만나 보셨어요? 정말 대단한 분이죠. 혼자서 이곳 살림살이 전반을 담당하시니까요."
"만약에 그분에게 조수가 생긴다면...... 일손이 크게 줄지 않을까요?"

노인은 제 말을 차와 함께 천천이 음미 했습니다. 이윽고, 그가 자신의 생각을 모두 정리했는지, 차를 한번에 털어버리고는 다시는 찻잔에 차를 붓지 않았습니다.

"네, 좋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세요. 다른 요구사항은 더 없는걸로...?"
"일단은 그렇게 할게요. 혹시나 생각이 더 나면 그때그때 말씀드리도록 할게요."

노인은 만족스러웠는지 손바닥을 쓱쓱 문지른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저를 안내 해 주었습니다.

"아, 저희가 협조를 하는 만큼, 아이리스씨 역시 이곳에서 살면서 지켜주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저희 지부에선 관계자 외에 출입이 제한되는 구역이 하나 있습니다. 그쪽으론 무슨일이 있어도 절대로 가시면 안됩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노인은 문을 열기 전에 제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제의했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Channel 1. 로키


병동을 나온뒤 나는 방에 돌아왔다. 방에는 답답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일찍왔네? 지부장이 뭐라던가?"
"여기에 머물러도 된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제가 가진 의문이 풀릴때까지 할 수 있는 모든 협조를 약속하셨구요."
"그래...... 그럼 이 방에서 머무는 건가?"

내 말에 답답이는 화들짝 놀라며 내게 눈을 흘겼다.

"어떻게 다 큰 처녀가 낯선 남자의 방에서 머무를 수가 닜어요? 당신 참......."
"그렇게 치면 나 역시 다 큰 총각이 낯선 여자의 방에 머무른 적이 있었던 거 같던데..... 그때 날 데리고 온 사람이......"

답답이는 내 말을 더는 듣고 싶지 않았는지 귀를 막고는 악악 소리를 질러댔다. 그 모습을 보니 좀 더 놀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어떻게 하려구? 여긴 빈 방이란게 없다고."
"관리인 아주머니를 좀 도와 드리려고요. 아주머니 혼자서 이곳 살림을 모두 맡는게 힘들어 보이시기도 하고...... 그리고 저도 식객마냥 하는거 없이 머무르기도 찝찝하구요."
"종교인다운 갸륵한 생각이다마는..... 그래서는 나에 대해 잘 알 수 있기까지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겠어?"

답답이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항상 붙어있는다고 그 사람의 모든걸 안다는 보장도 없지 않나요?"








Channel 2. 아이리스


로키군은 더 이상 제 말에 토를 달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의 뜻을 밝혔습니다.

"그래 찾고 싶어하는 것도 찾는 방법을 정하는 것도 모두 너이니 네 맘대로 해."
"고마워요. 그럼 말이 나온김에 지금 바로 아주머니에게 데려다 줄 수 있어요?"
"너무 의욕이 지나친 거 아니야? 하루 정도는 쉬고 내일 부터......"

로키군은 제가 걱정되었는지 저를 말렸지만 저는 단호하게 그의 호의를 거절했습니다.

"기왕 돕기로 마음 먹은거 지금 당장 시작해야죠. 아주머님이 바쁜걸 뻔이 아는데, 제가 하루를 쉰들 편히 쉴 수 있겠어요?"

로키군은 제 말을 한참동안 곱씹다 그 말이 옳다 싶었는지 곧바로 아주머니에게 데려다 주겠노라고 했습니다.

"어어? 왠일이에요 로키씨?"
"답답이 녀석이 아주머니 하는 일을 돕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데려다 주려고요."
"아이고 젊은 아가씨가 참 생각이 깊네요. 하지만 제가 원체 혼자 일해버릇을 해서 굳이 도와주지 않아도......"
"아주머니, 저 이래보여도 수녀원 일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이 넓은 곳을 아주머니 혼자 관리하는게 쉬운 일이 아니란 것도 잘 알고요."
"아니..... 그래도."

아주머니는 고마움과 미안함이 반쯤 섞인 얼굴로 애꿏은 반디나를 매만졌습니다. 저는 아주머니의 손에 들려있던 손걸레를 빼앗다 시피하며 받았습니다.

"바닥 덜 닦은 부분을 마저 닦을테니까 다 하고 나면 어디를 해야 할지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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