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지금 이 순간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일까? 지금까지 살면서 한번도 의식해 보지 않았던 별 대수로울 것도 없는 기억일 뿐인데. 주마등? 아니 아니. 내가 분명 그것을 위한 일련의 과정의 한 중간에 있다 할지라고, "기술적으로, 엄밀히" 말해서 아직은 아니지. 주마등의 예비적 단계에서 보게되는 기억이 이렇게 뜬금없는 어린시절의 기억이라면, 정작 주마등때 보게 되는건 대체 뭘까? 훗, 꼭 그 프로이드식 농담같네.
'하늘을 나는 꿈이 사실은 섹스를 하는 꿈이라면, 섹스를 하는 꿈은 무슨 의미지?'
어쨌든 초등학교1학년? 아니면 2학년?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던 같다. 방학하면 받게되는 탐구생활의 한 탐구 과제였는지 혹은 별도로 선생님이 부여해준 방학 과제였는지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 해 방학 프로젝트 중 하나는 강남콩을 기르고 탐구일지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벌써 30년도 더 된 기억이지만, 당시의 기억의 단편들이 짧은 플래쉬 짤방 영상처럼 떠오른다. 흙을 담아 강남콩을 심었던 유리잔이라던지, 그 작업을 했던 현관 앞 계단 참이라던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보는 무언가 굉장하고 두근두근 하면서도 감히 이것을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싶은 그런 흥분과 초조함에 휩싸여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엄마에게 보챘던 기억과 그런 나를 상당히 귀찮아 하며 짜증을 내었던 엄마의 반응같은거.
그렇게 씨앗을 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싹이 텃다. 그때 내가 느꼈던 흥분을 어떻게 잊을수 있을까? 도저히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생명의 순환이라는 일련의 과정에 내가 참여해서 그것을 성공시켰다는 그런 성취감. 생전 처음으로 요리-달걀 후라이-를 성공시켰던, 뭐 시기적으로는 그 강남콩 프로젝트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그때의 흥분도 그에는 미치지 못했다.
난 매일 싹이튼 강남콩을 관찰했고 열심히 물을 주었다. 하지만 나의 프로젝트는 뭔가가 이상했다. 메뉴얼에 따르면 커다란 대가리가 땅속에서 솟아오르고 그것이 두갈래로 갈라져 커다란 잎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나의 강남콩은 그저 가느다란 한줄기 가닥일 뿐이었고 그 주위로 가느다란 솜털이 나 있을 뿐이었다. 그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강남콩은 뿌리가 위로 자라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게 된 것은 시간이 좀더 지나 수업시간에 강남콩의 성장 과정을 배운 이후였고, 당시에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른 강남콩은 뿌리가 하늘을 향해 솟아나고 있었고, 그렇게 시들어 죽었다.
흙에 뭍은 강남콩이 싹을 틔우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 아니었기에, 나의 그 프로젝트는 방학이 끝날때까지 몇번이나 반복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실험은 모두 정상적으로 대가리가 땅 속에서 솟아 났다.
하지만 방학이 끝날때까지 나는 강남콩 키우기를 성공시키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후의 실험에서 솟아난 강남콩은 나에겐 모두 거꾸로 자라난 강남콩이었고, 나는 일일히 그것들을 파 내어 다시 제대로 심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방학이 끝나고 난 후 1미터 가까이 자라난 강남콩 화분을 들고온 친구도 있었지만, 나는 내가 일부러 거꾸로 다시 심었다는 인위적 조작을 은폐한 상당히 불성실한 탐구일기를 제출할 수 밖에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이었을까? 아예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