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그 사내가 생각하기에,
어느때 부턴가 아파트 단지내 마트 옆 화단에 자리를 잡고 살기 시작한 그 조그마한 녀석을 열흘 정도 지켜보며 집에 들일까 말까 고민했던 것도 사실이고 그렇게 고민했던 이유는 집에 이미 고양이 두 마리와 개 한마리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노랗고 하얀 녀석이 그냥 아무런 고민도 없이 덮석 집어 들고 오기에는 조금 못생겼다고 해야할지 못생겼다고 해야할지 암튼 좀 미묘하게 생긴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고 그렇기에 그가 오랜 고심끝에 어느 폭우가 내리고 천둥이 심하게 치던 여름 밤 그 녀석을 품에 안고 집에 들어오게 된 것은 전적으로 그 사내의 성품이 동물을 사랑한다던가 아니면 뭐 생명을 존중할 줄 아는 고상함이라던가 그런 류의 그 사내 자신에게 속한 어떤 미덕 때문이지 결단코 그 조그맣고 건방진 녀석에게 속한 장점때문이 아니었고 그 얘기는 다시말해 그년을 집에 들이냐 마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의 주도권은 전적으로 그 사내에게 있었던 문제였다는 말인 것인데,
그렇게 2년 가까이 시간이 지나고 보니 길에서 불쌍하게 흙이나 파먹던 그 쪼그만 녀석에게 사내가 은혜를 배푼 것이 아니라 반대로 언제나 기운이 넘처서 인간으로 치면 마치 올림픽 국가대표팀 레스링 대표선수-이미 집에 있던 두마리의 고양이가 평균적인 인간이라 친다면-정도 될 법한 그 조그만 놈이 사내의 보잘것없고 하찮은 존재 옆에 같이 있어주는 배려를 해주는 그런 모양새가 되고 말았으니 왜 그런가 하면,
그 사내는 하루종일 집 안에 틀어밖혀 딱히 하는 일도 없이 하루 내내 몇 번이라도 죽음을 생각하고 또 생각-예를 들면 실행을 한다면 그 방법은 무엇이 적당할 것인지, 시기는 언제쯤이 좋을 것인지,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마지막 순간에 모진 진상이라도 떨듯 잔뜩 과시하는 그런 형태가 좋을 것인지, 문득 떠오르는 그런 기억으로 남을것인지 아니면 모질게 마음을 할퀴어서 두번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런 악몽으로 남을 것인지 등등-할 뿐이었는데,
그 하루 종일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 사내 곁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아 대체로 시선만 돌리면 눈 닿는 곳에 있는 그 녀석을 사내가 처음 집으로 데리고 들어올때 했던 다짐 중 하나가 무엇이었는가 하면 비록 자신이 이 놈의 탄생에는 조금도 기여하거나 관여한 바가 없을 지언정 이 녀석이 죽는 순간까지는 자신이 교통사고로 비명횡사를 한다거나 하는 류의 그런 일만 없다면 어떻게든 자신이 돌보아 주겠노라 그렇게 생각하였던 것이었기에,
고양이의 평균 수명이 16년 정도인 것에 반해 이 녀석이 이제 겨우 두살 정도 먹었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그 사내에게는 아무튼 엄청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어 주도권을 빼앗겼다고 해도 무어라 불평할 여지가 없는 것이었는데,
그 와중에 또 그 사내가 생각해보면,
만약 비록 그 사내가 그 노랗고 하얀데다 건방지기 짝이없으면서도 활기가 넘치는 그놈을 집에 들인 적이 없었다면 과연 그 사내가 집에 처밖혀 하루종일 생각해 본다는 그 소위 죽음이라는 것에 나아갈 수 있었을 것인가에 대해 솔직하게 물어보았을때,
사내의 극도로 겁이 많은 성격이라면 아마
그건 단지 어린시절 엄마에게 혼나고 난 후 방에 누워 서럽게 울면서 혹시 나는 정말로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는 아닐까, 아니면 정말로 내가 그렇게 밉다면 나가 주겠어. 나가서 거지처럼 살아주겠어. 학교도 다니지 않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길거리에서 구걸이나 하고 있는 나를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면 꽤나 마음이 아프시겠지? 하는 류의 극도로 유아적이고 자기 기만적이고 자기 만족적이면서도 유난히 달콤해서 좀처럼 멈출수 없는 그런 종류의 자학적 공상의 일종일 뿐인 것인데 그러한 유치함을 조그만 고양이를 핑계로 하여 스스로에게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길한" 결론에 이르고 마는 것으로 보아,
그 어느 쪽이 되었든지 간에, 그녀의 존재는 정말이지 그 사내에게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