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생각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생각들이 많아지기는 했는데 그것이 무슨 생각인지는 몰랐다.
정리되지 않고 정리할 생각도 없었다. 그냥 그렇게 생각들은 머리속을 마구 굴러 다녔다.
혼자가 된 뒤 더욱 그런거 같기도 하고 그런 생각들이 많아지고 난 뒤에 이혼을 하게 된건지는 분명하지가 않다. 내 공간을 가지게 된것은 큰 아이가 진학을 위해 서울로 가게 된 이후였다. 보통은 혼자 하는 사업 때문에 마련한 사무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생활은 되었지만 큰 벌이는 되지 못했다.
본능적으로 내 삶에서 돈은 많이 벌지도 못할 것이고 능력있다는 말도 듣지는 못할 것이었다.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 아내는 아무런 반대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최소한 그때 나보다 용감했다. 그건 내 일을 잘몰라서가 아니었다. 아내의 눈빛에는 나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나는 그때 정말 큰 힘을 얻었었다. 그렇게 시작한 사업이었고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스트레스를 아내는 묵묵히 들어 주었다. 크지는 않지만 몇년 지나지 않아서 사업은 어느 정도 안정 되었다. 그건 몇가지 아이템이 몇몇 업체에 안착한 것이 주효했고 안정적인 판매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또한 그 몇몇 업체가 더 이상 사용을 하지 않게 되면 금방 어려워질 터 였다.
그렇게 사무실에 혼자 주저앉게 되었다. 안정은 내가 가장 바라는 형태였다.
그런데 스마트 시대라는 건지 사무실에도 나가지 않게 되는 날이 많아지고 내 서재가 된 딸 아이의 방은 내 물건으로 차곡차곡 쌓이고 그 방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금방 내 체취로 더럽혀져 버렸다. 아내는 좀 체로 이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내는 나를 혼자 머물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멍한 상태로 한 시간이고 두시간이 그냥 지나갈 떄가 많았다.
"이야기 좀 해요."
그 날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른다. 아내의 표정과 몸짓은 나에게 아무런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보통은 화가 난 표정이든지 심심하든지 무엇이든지 아내의 표정과 말 소리에는 어떤 감정들이 있었다. 아내는 말 했다. " 우리 이혼해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냥 아내의 손을 끌어당겨 가만히 내 손으로 그러쥐었을 뿐이다.
며칠을 아무 말도 않고, 집안에서 마주쳐도 서로 아는 척도 하지 않고 지냈다.
어느 정도의 긴장은 하고 있었는데 막내는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내년이면 수능을 치러야 했기에 자신의 인생을 결정지을 한판 승부에 집중을 해도 될가말까 하는 시간 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에게 공부 잘하라는 소리를 거의 하지 않고 살았다. 성적이 좋으면 기뻐해주고 칭찬했고 성적이 나쁘면 웃어주고 다음에 잘 할거라고 믿어 주었다. 사실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그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믿었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은 자신의 인생을 나름 잘 책임져주어 왔다.
그건 또 아내에게 고마운 일이었다. 알량한 사업을 한답시고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아내는 불평없이 아이들을 잘 건사해 주었다.
나는 아내에게 답을 주어야 했다. 화가 나고 허탈하고 무언가 드라마에서 보듯이 그런 감정적인 변화를 표현해야만 했다. 그런데 나는 아내의 그 제안이 전혀 이상스럽지가 않고 당연하고 충분히 받아드려질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이제 답을 해야 할 타이밍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시인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