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너머 어딘가 #4. 처음 또 처음

백두사이다 작성일 17.09.16 00:4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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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처음 또 처음 

 

30분후 우린 거짓말처럼 가까운 모텔에 다다랐다.

'쉬고 가실건가요?'

어떡할까? 

뭘 어떡해, 자고 가야지.

자고 갈께요.

'네, X만원입니다.'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어색어색.

삐삑

방문이 열렸다.

그 때 였다.

미선이의 입술이 내 입술을 덮쳤다.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입술을 포갠 채 옷 하나하나 벗어가며 침대로 향했다.

그리곤 늘 해왔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사랑을 나누었다.

단 한 마디 말도 없이,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듯이.

그 뜨거운 시간이 지나자 급 쑥쓰러운 상황이 연출되었다.

야, 뭘 그렇게 봐.

아까 제대로 못 봤어.

뭐야, 그렇게 열심히 봤으면서.

아냐, 아깐 정신없이 해서 제대로 못 봤다니까.

넌 현자 타임 없어?

현자타임? 너 그런 말도 알아?

우리집에 인터넷 깔려있거든. 

정말 못말린다. 

어땠어? 

뭐가? 

나랑 하고 나서 어땠냐고? 좋았어?

당연히 좋지,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치? 사실 너 좀 쑥맥 같아서 내가 해보고 싶은 대로 해봤어. 근데 금방 분위기 타더라. 

그런 상황에서 흥분 안 할 남자가 어딨냐? 영화에서처럼 진짜 격정적으로 덤비는데.

너도 은근 바랬구나?

솔직히 영화보면서 한 번쯤 저렇게 해보고 싶단 생각했었는데 진짜 좋네. 큭큭.

내가 말했잖아, 나랑 처음으로 해볼게 많다고. 

아, 그렇네. 나이트에서 만나서 밥 먹은 것도 또 사랑을 나눈것도 처음인데.

혼자 순진한 척 말하지마, 그런 말은 안 믿어.

티 났어? 

완전 티났거든. 

난 좀 씻어야겠다, 넌?

나 뭐?

같이 씻을래? 

야, 아서라. 나 그 정도로 오픈한 건 아니니까. 

넌 진짜 신기해.

뭐가?

어떤 때는 정말 카리스마 넘치다가도 어느 때 보면 정말 애 같다고 해야하나?

애?

아니 뭐 다큰 애는 앤데, 뭔가 챙겨줘야 할 것 같은.

됐다, 오바하지 마라. 누나한테.

아, 네. 이모.

아, 뭐야. 

나 우선 씻을께, 쉬고 있어. 

알겠어. 

 

샤워를 하고 오니 그녀는 어느새 옷을 다 입고 있었다.

어, 안자고 가?

당연하지, 집 있는데 어떻게 여기서 자고가냐?

그럼 왜 아까 방 잡을 때 자고 간다고 했어?

대실이라고 하면 뭔가 사랑만 나누러 온 사람 같잖아, 선수같이. 

뭐야, 그 이상한 논리는. 

넌 여기서 푹 자, 내가 내일 기분이 좋으면 아침에 다시 올께.

아침에? 기분 좋으면?

응, 아침에. 

그냥 자고 가면 안돼?

어떻게 한 번 보고 같이 잠자리에 드냐.

아니 우리 방금 섹스도.

그거랑 잠자는 건 엄연히 다른거야.

뭐가?

한 이불 덮는다는건 평생 같이할 때 하는거라고. 

지금은?

엔조이지. 나도 좋고, 너도 좋고. 

완전 헷갈린다. 

헷갈릴 것 없어, 오늘은 그 시작일 뿐이니까. 

너도 여친하고 해보고 싶은 로망 있으면 생각해둬, 각자 로망을 펼쳐보자고.

진짜?

응, 우리가 서로 사귀는 사이는 아니니까. 

나 좀 애매하다. 

너 섹파 원하지 않아?

아니 그게 뭔가 좀 당황스러워서.

쿨하게 가자.

아니 이게 쿨한건가? 내가 생각한 거랑 좀 다른데.

뭐가?

아니, 난 너랑 사랑을 나누긴 했어도 진짜 편하고 좋아서 한 느낌이란말이야.

나도 좋아서 했어, 너 괜찮아서. 

난 잘 모르겠다, 이 상황이.

너 지금 현자타임 와서 그런거고 어쨌든 잘자. 

내일 다시 연락하자. 10시 전에 안오면 그냥 너 볼일 보고.

그래, 그럼 잘가. 

안녕. 

그녀는 그렇게 모텔을 나섰고, 난 그 방에서 혼자 멀뚱히 몇 시간 전의 만남을 곱씹었다.

할 땐 좋았는데, 급격히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한건 인스턴트 사랑이긴 했지만 막상하고나니 공허하고 허전했다.

더욱이 미선이가 말한 사랑과 별개인 한 이불 덮고 잔다는 말이 머릿 속을 멤돌았다.

내가 금사빠였나? 

침대 위에서 하릴 없이 생각하다 에로영화를 보며 내 자신을 위로하고 잠을 청했다.

신기했다, 모텔에 둘이 와서 혼자 자는 경험.

이 또한 처음이었다. 

 

4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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