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너머 어딘가 #5. 꿈?

백두사이다 작성일 17.09.16 11: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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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꿈?  

 

얼마나 잤을까? 

벌써 열시가 지난 건 아니겠지?

잠자면서도 내심 오전 10시를 기다렸다. 

실눈으로 핸드폰을 들어보니 아직 6시이다. 

더 자자.

다시 눈을 떠서 시계를 봤다. 아직도 8시 반이다.

하지만 쉬이 잠이 들지 않는다.

몇 번을 뒤척이다 샤워를 했다. 

그 저께 처음 그녀를 만났고, 어제 저녁을 먹었고, 어제 밤에 사랑을 나눴다.

그리고 난 지금 혼자다. 

근데 나에게 오늘 10시에 기분이 좋으면 온다고 했다.

왜? 오전 10시일까?

나이도 스물 아홉이라면 직장인일텐데.

나 처럼 학원 강사인가?

그러고보니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냥 예뻐서 그녀가 하자는대로 다 끌려왔다. 

정말이지, 그녀는 선수가 아닐까? 

그럼 난 당한건가? 

당한 것 치곤 기분이 나쁘진 않다.

다만 불편하다.

잠자는 내내 또 샤워하는 동안에도 시간을 의식하고 있는 내가 낯설다.

앞에 만났던 친구들과의 연애에서는 전혀 생각지 못한 행동이다.

내 시간에 맞춰 그녀들을 만났고, 내 스케줄에 맞춰 약속을 바꾸거나 때때로 취소하기도 했다.  

미안하긴 했지만 일부러 그러한 것이 아니기에 내 사과를 받아주지 않으면 그게 곧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왜 사회생활을 이해하지 못하냐며. 

하지만 지금은 난 뭔가?

낯선 모텔에서 혼자 멍하니 핸드폰과 시계를 번갈아 보고 있다. 

'꼬르륵'

배가 고프다. 

잠깐 요기를 할 겸 해서 모텔을 나섰다.

남들 출근하는 시간에 나와서 밥을 먹으러 나서는 건 매번 어색하다.

직장인들과 다른 시간으로 생활한다는 것이, 같이 동화되지 못한다는 것이. 

편의점에서 간단히 먹을까하다 학원강사는 체력이라는 원장님 말이 떠올랐다.

근처 해장국집으로 들어갔다.

벌써부터 소주 한 병에 해장국을 말아드시는 아저씨들부터, 말쑥한 정장에 허겁지겁 먹는 직장인.

그리고 나.

조용히 먹었다.

이따금 습관처럼 시계를 보긴 했지만.

아 이거 진짜 못해먹겠네.

연락해볼까?

모텔에서 생각해보다 오전 10시라는게 남편이 출근하고 난 이후에 나온다는 건 아닐까란 생각에 까지 이르자 먼저 연락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괘씸했다.

원나잇이든 섹파든 좋지만 유부녀라면 뭔가 내가 손해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하루의 사랑을 나누는데 서로의 상황과 이름, 나이는 필요없다.

필요없다고 들었다. 

그게 쿨한거고 그게 선수라고 했다.

근데 난 겨우 어제 처음으로 그 경험을 했는데 오만가지 상상에 소설을 쓰고 있으니 참 한심했다.

시계가 어느새 9시 반을 가리켰다.

밥을 몇 숟갈 더 떼고 다시 모텔로 향했다.

내 기분과 상관없이.

9시 50분이다. 

전화기는 조용했고, 방문 밖도 조용했다. 

갈까?

몇 차례 침대에서 엉덩이를 떼다가도 오후 출근까지 할 일 없음을 깨닫고 다시 앉기를 여러차례 반복했다. 

10시가 되었다.

문 밖에서 잠시 기척이 있는 듯 했으나 나가는 사람인 듯 했다.

나도 모르게 한 숨이 나왔다.

가자, 어제 하루 잘 놀았지.

독백 아닌 독백을 내뱉으며 방문을 열었다.

그 때 핸드폰에서 소리가 들렸다.

- 어디야?

- 아직 모텔

- 잘 잤어?

- 어, 지금 막 일어났어.

- 진짜? 나 온다고 했으면 씻고 있어야지.

- 올지 안올지 모르는데 뭘 씻고 있냐?

- 화났어?

- 아니? 

- 말투가 쌔한데.

- 아냐, 근데 너 올거야?

- 고민중?

-

- 나 점심 약속있어서 지금 나가야해

- 그래? 알겠어, 그럼.

- 그래.

-

-

-

- 언제 또 보지?

- 언젠가 보겠지.

- 그래.

- 그래, 잘 쉬어. 

- 응. 

핸드폰 화면의 불이 꺼졌다.

어제였다면 아니 그저께였다면 쿨한 여자랑 쿨하게 놀아야지라고 마음 먹었는데 그게 안된다.

그리고 마음이 불편하다.

오후 복잡한 마음을 추스리고 출근을 했다.

같이 간 강선생은 그 날 홈런치고 두 명의 여자랑 연락한다고 했다.

얼굴은 약한데 몸매도 좋다고 했다. 

주말에 누굴 만나고, 평일엔 누굴 만나야겠다고 벌써부터 계획을 자랑했다.

평소 여자 얘기에 잘 끼지 않던 주선생이 넌지시 그렇게 두 사람씩 관리하면 안 피곤하냐고 물었지만, 한 명 갖곤 만족이 안된다며 호기롭게 대답했다.

'참, 김선생은 연락 온 사람 있어?'

없어요, 번호는 주고 연락은 안주네.

'그거 쉽지 않아, 짧은 시간 내에 매력어필을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

매력이 없나

'매력은 있지, 근데 여자가 보는 매력은 다르니까.'

그렇군요. 전 이만 수업하러 갈께요.

수업 하는 내내 그녀 생각만 났고, 이러고 있는 내가 참 한심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몇 번을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 했는지 모른다.

잠도 쉬이 오지 않고 그냥 다시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원나잇이 문제가 아니라 갑자기 나한테 와서 날 이렇게 흔들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왜 내가 주도적이지 못하고 끌려가는가에 대해서 답을 얻고 싶었다.

연락할까?

유부녀면 어쩌지? 아까 그것 정도는 물어볼걸. 아, 바보

그냥 자자. 

원나잇이야, 원나잇.

아니 투나잇이구나. 젠장

기분 별루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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