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가지 인생 - 66

갑과을 작성일 18.05.02 00:3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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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1. 로키

 

“......”

“......”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거지?”

 

간만의 숙면이라 그런지, 꿈도 안꾸고 한숨 잘 잤나 했더니...... 눈을 떠보니 낯선 풍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분명 주운의 방에서 베개를 벤 것 같은데, 눈을 떠보니 이곳은 주운의 방이 아니었다. 방이라기 보다는...... 야외에 가까웠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래, 황량한 벌판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풀 한포기 자라지 않고, 나무는 꿈도 꾸지 못할...... 그런 황무지에서 나는 모래를 뒤집어 쓴 채 잠을 자고 있었다.

 

주우가 나에게 지독한 장난을 쳤고, 답답이가 동조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줘도 여긴 라스알하게가 아니거든. 근 한 달 가까이 지내면서,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없는 라스알하게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여긴 라스알하게보다는 프로하기온에 가까워 보였다. 그렇다면 내가 세상모르고 쿨쿨 자고 있는 동안, 이들이 나를 프로하기온의 사막에다 버려둔 거라고? 글쎄...... 백보 양보하는 게 아니라, 천보, 만보를 양보하더라도 그 역시 현실성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아무리 피곤하기로서니 과연 그렇게까지 잠을 잘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보다보니, 나는 이상한 점을 또 하나 발견했다. 그렇게 어둑어둑하지 않고, 오히려 밝다고 해야 할 테지만, 하늘에는 해는커녕, 달도 보이지가 않았다. 해도 달도 없다면 하다못해 별이라도 많아야 할 텐데, 이곳에는 조명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을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밝았다. 대체......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무어라고 설명을 해야 한단 말인가.

 

“.......”

“.......”

 

발길 닿는 대로 아무렇게나 걷다보니, 저쪽에 희미하게 무언가가 보였다. ...... 사람인가? 모든 가능성을 염두 해야 할 것 같다. 이런 기괴한 곳에서 나 이외의 존재는, 나와 같이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영장류일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만약에 그 모든 가능성의 벽을 넘어 의사소통이 가능한 영장류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나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역시 기대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었다. 나를 지키기 위한 무기가 될 만한 것이 없나 하고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잡히는 건 주먹 사이로 줄줄 흘러내리는 모래 뿐...... 주머니를 뒤져봐도 기대할만한 물건은 나오지 않았다. ...... 그렇다면 그냥 지나칠까? 하지만 그것도 멍청한 선택인건 마찬가지다. 혹시 누가 아는가, 의사소통이 가능한 피조물이고, 그것이 나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일지. 해도 후회를 하고, 하지 않아도 후회를 할 상황이라면....... 시도나 해보고 후회를 해보는 게 더 낫지 않겠어?

 

나는 그것들을 향해 걸어가 보았지만, 그것들은 내가 오든 말든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뭐지? 눈이 먼 걸까? 그렇다면 소리라도 잘 듣는 게 정상일 텐데...... 그들은 내가 나름 가까이 다가갔다고 싶었지만 웅크리고 있는 그 상태에서 1인치도 바뀔 생각이 없어보였다. 좋아..... 한번 가보자고.

 

“......”

아씨, 이게 뭐냐고.”

 

내 모든 걱정과 염려가 바보 같아질 정도로 허탈한 결과였다. 황량한 벌판에 어울리지 않게 야자수가 드리워져 있었고, 그 사이에 해먹이 쳐져있었다. 젊은 축에 드는 피조물 하나는 해먹에서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고, 나이가 든 것으로 보이는 나머지는 야자수에 기대어 잠에 빠져있었다. 두 형체는 영장류였고, 나와 의사소통을 나누는데도 별 지장은 없을 것 같았다. 이들이 나를 경계하지 않았던 것은...... 그들도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혼곤한 잠에 빠져있었기 때문이었겠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 둘을 살펴보니, 한명은 구면이었다. 바로 주운이었다. 참으로 대책 없는 위인이지 않은가? 이런 황량한 벌판에서 모래먼지에 덮여질 동안, 그는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잠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뭐 저런 인간이 다 있나 싶다.

 

해먹 위에서 잠을 자고 있는 것은 여자였다....... ...... 내가 굳이 여자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 여자가 뭐라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운 기묘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거든. 물론 내가 인간에 대해서 그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게 사실이지만...... 그걸 고려해서라도 이렇게까지 감이 잡히지 않는 경우는 또 처음이다. 어떻게 보면 영락없는 소녀인데......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주운보다도 훨씬 더 나이가 든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쉽게 말해 나로서는 도저히 이 여성의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어쨌거나, 그나마 구면이라는 이유로 나는 그를 흔들어 깨웠다. 놀랍게도, 그의 방에서와는 달리, 그는...... 쉽게 눈을 떴다.

 

! ..... 뭐셔?”

이젠 그놈의 잠에서 깰 때도 되지 않았냐?”

 

주운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나를 바라봤다. 그 소 눈망울 같이 큰 눈을 보노라니...... 정말로 바보스럽게 느껴졌다.

 

그녀는? 그녀는 깨웠냐?”

그녀?”

 

잠에서 깨자마자 여자를 찾는 소리를 하는 통에, 이 노인장이 정신 줄을 놓았나 싶었고, 그가 허둥지둥하며 해먹에 누워있는 그녀를 깨질까 저어하며 살피는 모습을 보면서 팔 병.신이 된 니 딸이나 잘 간수해라.’라는 말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 했다. 그는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잠이든 소녀를 한참동안 뜯어보았고, 그녀가 잠에서 깨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나서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한숨을 쉬었다.

 

벽두부터 산통을 다 깨버리는게 아닌가 걱정혔는디...... 생각보담 임기응변이 좋구먼.”

 

 

 

 

 

 

 

Channel 2. 아이리스

 

그려유 뭐...... 그게 지 알바인가유. 댁덜이 유물이라는 고물로 지지든...... 볶든...... 지야 돈만 벌믄 되니께유.”

 

그녀가 장난스럽게 검지와 엄지를 맞대는 제스쳐를 취하는 모습을 보니...... 저도 모르게 사람에겐 돈이 전부가 아니잖아요.’라는 말이 나올 뻔 했어요. 어휴, 사람 마음이란게 참 이렇게 간사해요. 아드님이 자신의 제자들의 귀에 딱지가 앉도록 해왔던 말이 형식에 치우치지 마라. 거기에 치우치는 순간 그것으로 사람을 판단하게 된다.’였었죠? 사람을 판단한다는 것에는, ‘나는 옳은 사람이야. 나는 틀리지 않아.’라는 교만한 마음이 자리 잡고 있는 거죠. 알다시피 교만은...... 모든 죄의 어머니입니다. 질투도, 분노도, 나태도 탐욕도....... 모두 교만에서 비롯된 부수적인 것들일 뿐이에요.

 

다행이 입은 틀어막았지만, 제 표정은 어찌 할 수가 없었던지....... 주설씨는 제 눈치를 보며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물론 돈 많다구 행복허지는 않겄지만....... 가난하면 무조건 불행헌건 확실허쥬.”

아뇨. 주설씨 말이 맞아요. 그건 저희의 일인거고, 주설씨는 주설씨의 일이 있는 거니까요.”

아녀라. 종교인 앞에서 돈타령을 한거니께 제가 실수를 헌거.유.”

“......”

 

주설씨가 급격하게 침울해 하는 것을 보며 어찌할 바를 몰라 망설이는 동안, 침묵은 길어지고 분위기는 더없이 어색해졌습니다. 저는 애꿎은 땅바닥을 발로 긁었어요. 이런 난감한 상황을 타파해준 것은 이봉학씨였습니다. 멀리서 이봉학씨가 우리를 향해 소리치며 손을 흔들었고, 돌파구를 찾은 저희는 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자 유난스럽게 손을 흔들며 그에게로 달려간 것 같아요. 그의 손에는 나무 합판이 들려있었습니다.

 

이걸로 뭘 하시게요?”

그 뭐냐...... 쩌번에 아이리스씨가 줏어온 거 있잖아유. 그거가 살 집이 필요헐거 같어서유.”

제가...... ! 그 곰 말이에요?”

...... 아따 야가 어려서 그른가 먹성이 보통이 아니드만...... 웬만치 사냥해가지구는 어림도 없어유. 까딱하믄 남의집 담벼락도 넘겄슈.”

“......?”

...... 전번에 아이리스씨랑 사냥 갔다가 뜻 허지 않게....... 곰 사냥을 혔어. 어미는 잡았는디. 새끼가 남아가지구...... 요걸 아이리스씨가 살려두자 혔지. 근디......”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화가 났는지, 저를 보는 이봉학씨는 세모눈을 하며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키우겄다는 양반이 사오일을 잠수를 타가지구 말여.......”

아하하......”

어릴 때 어머니 말 깨나 안들었겄지...... 학교 앞에서 삥아리 팔믄....... 펜스 좀 만지작 거렸쥬?”

아니란 이야긴 안할게요.”

그띠야 대그빡에 피딱지도 안 벗겨졌을 띠구....... 지금은 다 큰 숙년께로...... 한 생명을 책임지셔야쥬. 얼렁 따라와유. 혼자서는 못짓응께.”

 

그는 제게 자신이 들고 있던 합판을 들려주고는 앞장을 섰어요. 저와 주설씨는 두 눈을 끔뻑끔뻑하며 서로를 바라보다가 그를 따라갔지요. 그의 집에 들어가기도 전에, 울타리 너머로 와장창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이봉학씨의 얼굴은 짜증과 분노로 일그러졌다가......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지요.

 

아이고 이 새끼가 또 깽판을 쳐놓는구먼. 나가 오널은 기필코 니놈 배때기에서 웅담을 꺼낼 것이여!”

 

그가 씩씩거리며 문을 박차고 들어가자마자 검은 형체가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습니다. 바로 그 곰이었어요. 새끼 곰은 제법 장난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그의 온 집안을 헤집어 놓아 이봉학씨의 성질을 있는 그대로 뒤집어 놓고도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표정으로 해맑게 그에게 달려왔거든요. 물론, 이봉학씨가 녀석을 걷어차려고 하자 재빠르게 방향을 틀어 날래게 줄행랑을 놓았습니다. 이봉학씨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새끼 곰을 쫓아다녔지만, 어설프면서도 우스꽝스러운 그 모습이...... 정말 화가 나서 그렇다기 보다는 곰과 놀아주려는 것 같이 보였답니다.

 

주설씨도 저와 비슷한 인상을 받았는지, 쫓기는 새끼곰과 쫓는 이봉학씨를 보며 쿡쿡 웃었어요. 어쨌거나 소동은 이봉학씨가 곰의 목덜미를 잡고 목에 줄을 채우는 것으로 끝이 났지요.

 

뭘 잘혔다고 코를 들이밀어! 한 번만 더 껀수 쳐봐라잉...... 그날 저녁은 곰국이여. 재료는 니고.”

 

그러면서도 이봉학씨는 새끼곰에게 잡아온 토끼 가죽을 벗겨 살코기를 던져줬고, 녀석은 능숙하게 받아 우걱우걱 씹었습니다. 그는 그 모습을 한참 보다가...... 헛웃음을 지었습니다.

 

사람 키우는게 훨씬 낫지....... 아조 저거 한 마리 키우다 보니께 결혼은 미.친 짓거리라는걸 절로 깨닫네유.”

 

우리는 새끼곰이 토끼고기를 먹는 동안, 집을 만들었습니다. 이봉학씨가 설계도를 보여주었고, 우리에게 요거는 요렇게, 저거는 저렇게 자르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우리는 도면을 보며 합판을 잘랐습니다....... , 정확히 말하자면, 합판을 자르는건 저와 이봉학씨의 몫이었고요. 주설씨는 창고를 오가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연장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요거는 자르는 톱이라 밀 때 힘을 주는게 아니구 요래...... 땡길 때, 땡길 때 힘을 주는거.유. 함 혀보슈

아아...... 이렇게요?”

, 서투른 애덜이 괜히 밀 때 힘을 줘가지구 쓸데없이 힘 낭비 허구 그러는디...... 그런 넘덜 보믄 야가 하넌 말은 걸러 들어야 되는구나 허믄 되유. 아 글구, 마구리 처리 잘 혀유. 거진 다 짤라갈띠 힘을 더줘버리믄 부서져유. 고때는 줬던 힘의 반의 반을 주면 매끄럽게 잘 짤려유.”

...... 알았어유.”

옴마? 아조 삼민 사람 다 되얐네유?”

 

서투르게 따라해봤는데, 주설씨와 이봉학씨는 내 말에 낄낄대며 웃었습니다. 그들이 웃어보이는 걸 보니 저도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작업이 서투른 저와 주설씨는 서로를 도와가며 마름질을 했고, 이봉학씨는 마름질한 합판을 이리저리 못질을 해가며 결합을 해나갔습니다. 새끼 곰은 배가 불렀는지 우리를 보며 껌뻑껌뻑 눈을 깜빡이다가 잠이 들더군요. 우리 모두 5월의 봄날이 무색하도록 비지땀을 흘려가며 일을 했고, 그리고.......

 

다 됐네유. 난중에 칠만 하믄 완성이유.”

 

 

 

 

 

 

 

Channel 1. 로키

 

나는 주운에게 저 여자는 누구이며, 무슨 이유로 깨우지를 않느냐?’라고 물었지만,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매우 짧았다.

 

고거야...... 저년 성질머리가 장난이 아니니께 그러지...... 한 번 수틀리면 작정을 하고 지랄을 해버리니께......”

“...... 그런 것 치고는 안으면 깨질까 애지중지 하던데?”

고거는 영업상...... 비밀이여.”

 

주운은 소리를 죽여가며 그녀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았지만, 정작 험담의 당사자는 그가 험담을 하거나 말거나 잠에 푹 빠져 그의 말을 들을 것 같지는 않았다. 젖먹이나 다름없는 애의 눈치를 보는 그의 모습이 한없이 비루해져 보였다. 이런 작자에게 라스알하게인들은 위대한 혁명가’, ‘존경해 마지않는.....’이라는 수식어를 잘도 가져다 붙이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불편한 진실인가. 그는 내 얼굴을 보더니 자신이 상당히 민망한 행동을 했다는걸 깨달았는지 헛기침을 했다.

 

그나저나 에이욜프가 보낸게.......너여?”

고놈이 너를 갔다가 나헌티 보냈다는거는....... 아무래두 나한티서 물건을 받아야 헐 일이 생겼다는 거를 의미하겄구먼.”

네 아들이라는 작자가 그걸 미끼로 나를 왕창 부려먹더군. 덕분에 나는 살짝 열이 받아있는 상태고 말이야.”

허헛 참...... 갸가 그려? 놀라운 일이구먼...... 나가 기억하는 주우는 남을 이용해 묵는거는 생각도 못헐 벽창호 스타일인디 말여.”

지금 우리가 같은 인물을 놓고 이야기 하는거 맞는거지?”

 

내 말에 그는 껄껄 웃으며 내 어께를 두드렸다만..... 나로서는 도저히 그의 웃음에 동조를 해줄 수가 없었다. 그는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아들이 놀라운 성장을 한 것이 기특했을지 몰라도...... 이용당한 입장에서는 그걸 기특하다라는 수식어를 가져다 붙이며 칭송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어쨌거나, 주운의 웃음이 멎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덜이 공수표를 날렸으니...... 그걸 메꾸는건 아비가 혀야지...... , 니가 받아야 할 물건은 요거여.”

 

주운은 허공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그가 휘저은 궤적을 따라, 손톱에서 검은색 덩어리가 왈칵 쏟아져 나왔다. 세상에...... 저게 뭐람? 무슨...... 토사물 같이 생겨먹은 것 같은데. 나는 그 덩어리를 보면서 저것에 대해 묘사할 만한 단어를 떠올려보았지만, 내가 아는 어떤 단어로도 저 흉측한 피조물의 생김새를 나타낼 수 없을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요거는......니할이라고 허는건디...... 흑성왕이 가진 여러 속성들 중 파멸’......에서 비롯된 거여. ‘파멸이라는 관념이 실체를 가진다면...... 바로 요럴겨.”

 

주운은 흙 한줌을 쥐어 그것을 공중에 흩뿌렸다. 그러자...... 공중에서 꿈틀거리던 니할에서 촉수가 쭉 하고 뻗어 나오더니 흙먼지를 그대로 집어삼켜버렸다. 뻗어 나온 촉수는 흙먼지를 집어삼킨 뒤 유유히 본체로 돌아왔고, 그것은 꿈틀거리며 먼지를 소화시켜버렸다.

 

그덕에 청소엔 그만이여.”

“...... 모르고 넘어가도 될 것 같은 기능 하나를 알게 됐군.”

뭐 반쯤은 장난이구...... 여허튼 요 꿈속에 있으믄서 너는 니할허구 친해져야 할거여. 야가 생긴 거는 요래도 제법 도도한 넘이라...... 어줍잖게 덤벼들믄...... 니도 아까 그 먼지 꼴 나는겨.”

좋아..... 뭐 황당하긴 하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그런데......”

근디?”

저런 걸 어떻게 달고 다니지? 누가 봐도 토사물 같이 생겼는...... 아아, 알았어. 알았다고. 아까 발언은 내가 좀 심했던 것 같다. 취소할게.”

 

토사물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니할에게서 촉수가 쫙하고 튀어나오더니 그 징그러운 피조물을 내 눈 앞에다 대고 위협적으로 흔들어보였다. 그 모습에 나는 왼쪽 가슴이 서늘해졌다. 이거 참...... 작년 겨울 총리관저를 탈출하면서 느꼈던 공포라는 감정과 이런 식으로 다시 마주하게 될 줄이야. 주운은 손을 휘휘 저으며 니할을 달랬고, 니할은 삿대질 하듯이 나를 가리키며 촉수를 서서히 거두어들였다.

 

...... 가심 아프긴 허지만 맞는 지적이기도 혀...... 야도 고것이 콤플렉스이고 허니...... 일단은 니할하구 친해질 겸, 야를 니가 원허는 형태로 맹글어보자구. 고것이 니가 요걸 다루는데 있어서 첫 번째 관문이 될거여.”

 

 

 

 

 

 

 

Channel 2. 아이리스

 

새끼 곰을 위한 집을 지어준 뒤에, 우리는 그제서야 늦은 저녁을 준비했습니다. 이봉학씨는 사냥해온 것들 대부분을 새끼 곰에게 빼앗겼지만, 멧돼지만큼은 기어코 사수를 해냈고....... 덕분에 우리는 전골을 해 먹을 수 있었어요. 이봉학씨가 고기를 손질하는 동안 저와 주설씨는 푸성귀를 캐왔고, 그것들은 지금 같은 솥에 들어가 자신의 풍미를 국물에 풀어주고 있었지요.

 

여그 괴기 가지구 왔슈. 어여 담가유.”

예예.”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고기를 보노라니, 저도 모르게 손이 바빠졌어요. 성급함은 실수로 이어져, 고기를 국물에 담그는 동안 국물이 제 팔뚝위로 튀기도 했지만, 그런 사소한 문제가 제 손길을 막을 수는 없었지요. 저는 고기를 모두 부은 뒤에 젓가락으로 휘휘 적어 솥단지 이곳저곳에 골고루 퍼뜨려 놓았습니다.

 

이제 고기가 익을 때 까지 기다리면 될 것 같아요.”

...... 수고혔슈.”

에이 제가 뭘요.”

 

형식적인 인사치레가 끝나자, 우리 셋은 더는 할 말이 없어졌어요. 배가 고픈 것도 있지만....... 그 외에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거든요. 따지고 보면 참으로 어색한 관계이지 않겠습니까? 비록 진실이 밝혀졌지만 라스알하게인들에게 있어 공공의 적이나 다름없던 주설씨에, 녹림당에서도 과격한 노선을 걸었던 청석골의 두령, 그리고 라스알하게 인들의 숙적이나 다름없는 라스알게티인인 저까지...... 혹시나 이봉학씨도 주설씨의 정체에 대해서 알 수도 있지 않았을까 했지만...... 주설씨의 말을 들어봤을 때는 그럴 확률이 그리 높지는 않았어요. 주설씨의 아버지인 클라우드가 비밀은 알고 있는 사람의 수가 적을수록 힘을 발휘한다.’라는 말로 보안을 철저히 유지하는 걸 중요하게 여겼다고 하더라구요.

 

어쨌거나 고기가 익어가는 동안 이 어색한 침묵은 여전히 우리 셋을 휘어잡으리라는 불편한 확신 속에서 저는 모닥불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솥을 바라보았습니다.

 

“......”

“......”

“......”

아이 썅...... 어색해서 더는 못버티겄구먼. ...... 먄혔슈. 나넌...... 암것두 모르고 그저 희대의 개썅년이라고만 생각혔구먼.”

“......아녀유. 고만큼 울 오빠가 묵직허게 입을 다문거니께 이 혁명이 성공한 거 아니겄어유?”

...... 글게 긍정적으로 해석을 해주면 우덜이야 고맙긴 허지마는......근다고 우리가 댁을 욕헌게 지워지는 건 아니잖아유. 글고...... 나도 이번에는 용기내서 사과혀는 거라 꼭 좀 받아줬으면 좋겄구먼.”

그래요 주설씨 이봉학씨도 나름 용기내서 하는 걸 텐데. 받아줘야 마음이 편해지지 않겠어요?”

허 참...... 밥 숟갈 뜨기 전에 사람 손부터 잡는 거는 뭔 경우래유?”

 

주설씨는 헛웃음을 치다가...... 이봉학씨의 손을 맞잡아 주었습니다. 손을 잡는 그녀의 얼굴은 한없이 가벼워보였지만...... 이봉학씨의 고개는 점점 수그러드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지요. 하지만 그가 어떤 심정일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아, 더는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청석골 식구들이랑...... 하여간 내가 아는 사람들 헌티는....... 댁이 죄가 없다구 다 말허구 다닐께유.”

그럴거 없어유...... 나가 돈벌라구 여그저그 다녀보고 느낀 것이 있는디...... 사람들은 말여유.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 행복을 얻지마는, 증오하는 사람을 통해서는 살아갈 이유를 갖는 거 같어유. 나넌...... 증오의 대상으로 남아두 잘 묵고 잘 사니께 너무 걱정 안혀두 되유.”

혁명도 끝났는디 뭔 소리유? 물론 쩌그 각시의 바깥양반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구 야그는 혔어두......”

“...... 지도 잘은 모르지마는...... 아마 바깥양반 말이 맞을거 같네유. 삼민 혁명은 이제 막 닻을 올린거.유. 글고 그 나룻배는 머지않아서...... 거대한 풍랑을 만날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먼유.”

 

 

 

 

 

 

 

Channel 1. 로키

 

주운의 말은 대체적으로는 뜬구름 잡는 소리이긴 했지만, 나름 설득력을 갖추긴 했다고 생각했다. ‘토사물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아는 단어로는 도저히 그 형태를 묘사하기 어려운 이 기이한 물건을 달고 다닌다면...... 열걸음을 걷는 도중에 서너번은 시비를 걸릴 것이 분명해 보였거든. 굳이 눈에 띄여봐야 좋을 것 없는 입장으로서....... 저것이 가진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는건...... 지양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녀석의 지시대로 하려고보니..... 나는 하나의 난관에 봉착할 수 밖에 없었다. 난관이 무엇이냐고? 구구절절한 미사여구를 가져다 대는 것 보단, 단 하나의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어떻게?”

 

어떻게 해야 녀석에게 형태를 부여하는지 알려주어야 내가 그대로 해먹지를 않겠는가? ? 보다는 어떻게?라는 질문을 해왔던 요원에게 방법론을 제시하지 않고 지시만 하면, 요원 입장에서는...... ‘나보고 어쩌라고?’라는 사뭇 반항적인 의문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이 양반이 그런걸 모를 리가 없을텐데...... 주운은 내 질문에 아차차 하며 제 이마를 쳤다.

 

깜빡혔구먼. 나가 여그 바닥을 뜬지 꽤 돼갔고....... 요원덜이 자기 주관없는 꼭두각시라는걸 잊어버렸구먼.”

혓바닥 신랄한거 보면, 완전히 잊어버린 것도 아닌거 같은데?”

고거는...... 최후의 최후까지 남겨야 되는...... 정체성아녀?”

 

주운은 껄껄 웃고난 뒤에, 내게 저 토사물에게 형태를 부여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의 말은...... 앞서 내가 평가했던 뜬구름 잡는 소리보다 훨씬 더 뜬구름 잡는 소리의 수준을 넘어선...... 그래, 개똥 철학자의 개소리에 가까워 보였다.

 

앞서 말혀서 알겄지만...... 야넌 이데아계에 속한 것이여. , 눈에 보이는 요 형태는 말여....... 이데아에 빛을 비춘 그림자인 거지. 빛이 물체에 가까워 지믄 그림자는 크기는 커지구 멀어지믄 그림자는 작아지지...... 빛을 어떻게 비추냐에 따라서 현상계에 현현하는 형태가 다채로워 지는겨.”

 

이데아......현상계...... IATP에서 이런 비슷한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나긴 하는데...... 그런 회상기억은 내게 이데아현상계니하는 정보뿐 만 아니라, ‘매우 졸립다.’감정까지도 전달해 주었다. 그래...... 무슨 고대 철학인가를 다루는 강의에서 접한 적이 있는 단어였고...... 그건 한 손에 꼽을 수 있을정도로 지겨운 수업이었지. 그 과목을 수료한 뒤에, 나는 머리를 털어제끼면서 다시는 이런 개같은 단어와 마주하지 말자고 굳은 다짐을 했던 것 같다. 그랬었는데..... 그걸 이런 식으로 다시 대면할 줄이야. 오늘 무슨 날인건가? ‘공포라는 감정에 이어 이데아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과 다시 만나다니...... 이러다가 죽은 줄 알았던 펜릴과 다시 만나게 되는 게 아닌가 모르겠다.

 

저기...... 요점만 말하자고 요점만.”

아따...... 성질이 참말로 급허구먼. 그려, 그니께...... 그 빛이라는건, 너의 심상이여. 너가 야에 대해서 무엇으로 상상하느냐에 따라서 야가 그 형태를 구현하게 될거라...... 요거지.”

그런데, 녀석은 제법 까칠한 편이니...... 그 심상이라는게 녀석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거고?”

이젠 좀 이해가 되는 모양이구먼. 참고허자믄...... ‘우리는 알다시피 단검류를 즐겨 쓰잖어. 그려서 요것도 단검의 형태로 전승되는 경우가 많더라고...... 너가 즐겨 쓰는 단검 형태를 떠올리면 쉬울 것이여.”

......”

 

나는 당장 떠오르는 단검의 형태를 생각해봤다. 내가 즐겨쓰는 건 의료용 메스에 가까운 것이었지. 다른 요원들은 잭나이프라든가, 대거를 사용했지만, 나는 그게 그다지 실용적이지 않다고 생각했거든. 날카롭지만, 가볍고 휴대가 용이하게 크기도 적당하고...... 나는 그걸 떠올리며 니할을 보았다. 녀석은 내 생각을 읽었는지 꿈틀거리며 그것의 형태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편으로 굳이 단검의 형태로 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에게 있어 비정형성은 큰 장점이다. 내가 녀석을 두고 토사물 같다.’라는 말을 했을 때, 녀석이 보였던 반응을 떠올린다면...... 충분히 수긍이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 반응에 식은땀을 흘리며 공포감을 느꼈던 것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공격을 해올지 예측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으니까...... 이런 녀석에게 단검의 형태를 부여한다면...... 녀석은 그저 잘 드는 칼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리치도 짧아지고, 공격의 형태도 매우 단순해지겠지.

 

나는 생각을 그만두고, 다른 생각을 떠올려보았다. ‘구체물이 되, 형태를 특정하기 어려운 것.’ 그거라면 양 극단의 간극을 메울 수 있을 것이다. 구체물이되 형태가 정해지지 않는다...... 아마 그건 하늘거리는 모습일 것이다. 부드럽고, 가벼울 것이다. 이렇게 가볍고 부드럽다면, 아마 산들바람만 불더라도 이리저리 흩날릴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변칙적인 바람에 따라 움직인다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공격을 하는지 도저히 예측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한 생각을 하다 보니, 메스의 모습으로 변해가던 그것은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갔다. 넓적해지고, 흐늘거리면서....... 이리저리 흩날렸다. 그걸 보니, 어디서 많이 본 물건과 같아보였다. 그것은...... 목도리였다. 목도리의 형태로 현현한 니할을 보자 주운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특이허네? 왜 그렇게 생각을 혔지?”

 

나는 내가 생각한 니할의 본질과, 그것을 살리는 방향으로 내 상상을 이어갔다고 설명을 했고, 설명을 들은 주운은 껄껄 웃었다.

 

첨엔 토사물 같다구 혀놓구...... 이 녀석이 마음에 들었나 보구먼? 보기보다 감수성이 풍부하네잉.....”

살다살다 가슴에 비정한 마음이 박혀있는 인간에게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소리도 들어보는구먼.”

뭐 어뗘? 보아하니 금도 쩍쩍 다 갔구먼. 쨌든...... 첫 번째 스탭은 끝났으니 이제 두 번째 스탭으로 넘어가 보자고들.”

 

 

 

 

 

 

 

Channel 2. 아이리스

 

162469

 

로키군이 주운씨의 방에서 잠을 잔채로 발견된 지도 벌써 열흘이 지났습니다. 쓰러져있던 그를 발견한 우리는 얼른 그를 부축했고, 우리가 잠자던 방으로 옮기려고 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의 몸은 움직이지가 않았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주운의 몸에서 1미터 이상 떨어질 수가 없었지요. 그의 몸은 가벼웠기에 들어올리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그의 몸이 주운씨의 몸에서 1미터 이상 멀어지려고 하면 그의 몸이 순식간에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져서 도저히 들어올릴 수가 없게 되더라고요. 우리는 모두 이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에 혀를 차다가..... 어떻게든 그를 옮겨보려고 수많은 시도를 해보았고.......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무위로 돌아간 뒤에 다음의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잠에 빠져있는 것은 주운씨와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기 때문인 거고, 그 연관성이 지금의 불가사의한 현상과 관련되어서...... 그와 주운씨를 떨어뜨려 놓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걸요. 결국 저희는 주운씨의 방에 또 다른 침대를 가져왔고, 로키군을 그 위에 뉘여 놓았습니다.

 

그것도 벌써 열흘 전 일이에요.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는 알 도리가 없었지만, 그가 시간의 흐름을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시간은 자신의 발걸음을 멈출 생각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시간 속에 있는 저는 어땠냐고요? 뜻밖의 사태에 조금은 당황했지만...... 언젠간 그가 돌아올 걸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죠 뭐. 저는 이봉학씨와 함께 사냥을 다녔고, 가급적이면 딸린 새끼가 없는 동물들을 잡으려 노력했어요. 대부분의 소산물들은 두브헤의 입속으로 들어갔답니다. ...... 두브헤가 무엇이냐고요? 기억하려나 모르겠지만, 제가 삼민 혁명 전에 어미 잃은 새끼 곰을 거둔 적이 있었지요? 언제까지나 새끼 곰이라고 명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이름을 지어주었지요. 새끼 곰에게 두브헤라니 조금은 어색할 지도 모르겠지만..... 녀석도 더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는 큰 곰으로 자라나지 않겠습니까? 다분히 미래지향적인 작명이라고 해두자고요.

 

이번엔 뭘 잡았슈?”

아 오셨어요?”

 

역시 딱히 할 일이 없는건 마찬가지였던 주설씨는 저와 이봉학씨가 사냥을 마칠 때 까지 동구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저희를 제일먼저 맞이해주었습니다. 저희는 그녀에게 저희가 잡은 사냥감을 보여주었고, 함께 손질을 해나갔어요. 그녀의 적응력은 대단해서,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뒤에는 마치 처음부터 손이 없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해나갔답니다. 그녀의 오빠 주우씨의 말대로 그녀는 사막 한가운데에 속옷만 남겨놓고 던져놔도 잘 먹고 잘 살 것.’같았어요.

 

근디 매번 덫사냥만 하믄 그것두 효율이 떨어지지 않어유?”

효율이요?”

...... 덫사냥 말구 다른 식으로 사냥 하는 방법두 있잖아유. 예컨대 활을 쏴서 잡는다든가...... 덫보담은 훨씬 재료도 적게 들구 시간두 적게 들것인디......”

 

주설씨의 말을 듣다보니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마음 그대로 안고 이봉학씨를 올려다 보았지만, 왠일인지 이봉학씨는 고개를 슬금슬금 옆으로 돌리며 제 눈을 피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어, 그를 골탕먹일 생각으로 계속해서 그와 눈을 마주치려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고, 그는 역시 제가 고개를 돌리는 것 만큼이나 필사적으로 저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습니다. 한참의 신경전 끝에 그가 항복을 선언했어요.

 

전번에 꿀떡으로 적성 검사 혔잖아유! 댁언......그 뭐냐...... 새퍼가 더 어울린다니께유!”

그려두 새로운 경험을 혀봐서...... 나쁠건 없지 않어유?”

아니 말은 그리 혀두...... 솔직히 말하믄...... 지는 활쪽은 영 잼병이유. 창고 봐서 알잖아유...... 창고에 활이 있었어유?”

 

생각해보니 그의 창고에는 올무나 죽창은 봤어도 활같은건 보질 못한거 같았습니다.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에 대한 의심 따위는 한 적도 없었는데...... 막상 그의 자백을 받고나니 뭔가 퍼즐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럼 애초에 그는...... 대체 왜 제게 테스트를 운운했던 걸까요? 어차피 덫 잡이만 시킬 거였으면서 말이죠.

 

약간의 배신감에 그의 눈을 살짝 흘겨보는데 주설씨가 낄낄거리면서 이봉학씨의 어께를 툭툭 쳤어요. ‘이젠 내가 그녀를 데리고 가두 되겄쥬?’라고 그에게 속삭인 다음, 주설씨는 제게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래도 잡아온 고기는 마저 손을 봐야죠.’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완강했어요.

 

어차피 괴기손질허는건 이골이 났을 텐디, 이번엔 새로운 걸 경험 혀 보자구유. 쪼깐 믿기는 힘들겄지만, 나가 팔 두 짝일 띠는...... 활 좀 쏜다는 야그 많이 들었어유.”

 

그 말과 함께, 그녀는 제 팔을 낚아채 그대로 내달았습니다. 저는 다급한 마음에 이봉학씨를 불렀지만...... 이봉학씨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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