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했던 형 이야기 Vol.[完]

한국조폐공사 작성일 21.10.18 11: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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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이 있고 몇 주가 지나서야 형에게서 연락이 왔지만 왠지 모를 분위기상 그 날의 일은 서로 언급하지 않았다

 

형 : 이제 슬슬 공부 준비하고 있냐? 영어 아직 만료 안됐지?

 

덕훈 : 내년에 만료라서 올해까진 괜찮아요 ㅎㅎ. 형은 이제 졸업하시고 바로 인턴 하시는 건가요?

 

형 : 그래 이제 형도 바쁘고 너도 바쁘니까 다음에 시간날때 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내년 이맘때 쯤이나 한번 보자 ㅎㅎ

 

덕훈 : 네 형 알겠어요. 형도 화이팅하세요!

 

형 : 그려~ 너도 수고해라~

 

마치 그날 있었던 일이 없었던 것처럼, 아니면 없어진 것처럼 조용히 넘어갔고, 나는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지만

 

앞으로 준비해야 할 일들도 많았고, 굳이 다시 이야기를 꺼낼 만큼 넉살이 있는것도 아니였기에 궁금증은 내 마음속

 

한켠으로 치워둘 수 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부터 시험 전까지 형과 전화할 기회가 한두 번 정도 있었지만 그 때 역시 그날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눈치라곤 0.0001%도 포함되지 않은 내 추리력으로 형과 누나의 속마음을 알기는 힘들었고, 단순히 과거 형과의 대화를

 

통해 짐작해 본다면 십수년간 한사람과의 관계로 인한 매너리즘에 빠진 성생활에 변화를 주기 위해  내가 잠시 

 

끼어들었을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 역시 형과 오랜 시간동안 알고 지내왔지만 형과 누나에 관한 세세한 취향까진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이러한 비뚤어진 리비도가 병적으로 발전할 만한 상태까진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막 영상으로

 

남기거나 나 외에 다른 사람과 이런 이벤트(?)를 한 적은 없다고 했으니…

 

형이 NTR 기질이 있는것도 아니고, 누나 역시 상황으로 보아선 강제성이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이상 언급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어쨌든 내가 단순히 도구로써 취급되었든, 무슨 다른 이유가 있든 간에 앞으로 영원히 경험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이였고

 

이는 힘든 수험생 시절 담배 한대 피며 잠시 회상할 수 있는 소소한 간식거리 정도로 묻어 둘 수 있을 추억이 되었다.

 

적은 나이도 아니고 이미 청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20대 중후반이 되었기 때문에 성적 정체성이나 취향이 바뀌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어쩌면 나는 내 인생의 첫경험을 동경했던 이상형과 보낸 행운아일 지도 모른다는 자기만족에 빠진 것일

 

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앞으로의 수험 생활을 다시 준비해 나갔고, 수험 생활 와중 문득문득 떠오르긴 했지만 빡빡한

 

일정 때문에 곧 머리속에서 잊혀져 갔다. 

 

그렇게 해가 바뀌고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던 어느 날, 나는 형에게서 한통의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형 : 덕훈쓰. 오랜만이야~ 잘 지냈지?

 

덕훈 : 네 형, 이제 시험이 얼마 안남아서 버닝중이에욥 ㅋㅋㅋㅋ

 

형 : 그래, 공부하는데 방해해서 미안하다

 

덕훈 : 아니에요. 어차피 쉬는 시간인데요 뭘 ㅎㅎ 형은 잘 지내시죠?

 

단순히 그냥 안부를 묻는 전화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형의 갑작스런 이야기에 충격을 받았다

 

형 : 응… 형은 뭐 그저 그렇지 ㅎㅎ. 사실 형네 부모님이 미국으로 이민가시거든, 형도 준비해서 미국가는데, 그전에

 

덕훈이 생각나서 연락한거야~

 

덕훈 : 네??? 진짜요? 

 

형 : 그래. 이제 좀있다 출국하는데 그전에 잠시 시간내서 전화한거야 ㅎㅎ. 시험준비 잘하구, 형이 나중에 또 연락할게

 

덕훈 : 아 넵. 연락주…

 

출국수속 때문에 바쁜지 형은 급하게 전화를 끊었고 나는 그간의 정황을 물어볼 새도 없이 끊어진 전화에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지금 인턴 기간일텐데 어떻게 미국에 가는지, 형도 같이 이민을 가는건지, 갑자기 어떻게 그런 결정이

 

난건지, 언제쯤 돌아오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듣지 못한 채 형과의 대화가 끝났다.

 

그리고 그 전화를 마지막으로 더이상 형에게서 연락을 받을 수 없었다. 

 

시험을 치르고 며칠이 지나서 걸어본 형의 전화는 이미 없어진 번호였고 형의 카톡 역시 지워진 상태였다. 형과 내가

 

공통적으로 알고 있던 사람들은 연락이 끊긴 지 오래였기에 다리 건너 형의 소식을 알 길이 없었고, 형에게 메일 한번

 

보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메일 주소도 알지 못했다. SNS 역시 담 쌓고 살았던 형인지라 어떻게 알아보려 해도

 

단서조차 찾을 수 없었다. 

 

과연 지금은 무엇을 하고 살고 있을지, 누나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었을지, 미국에 갔다면 한번쯤은 초대해 주지 않을지

 

대한 생각들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 마음속에 묵혀두어야 했고, 형이 보고싶다는 생각은 사회 생활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니 점점 기억의 한편으로 밀려났다. 다만 형과 함께 보냈던 많은 경험들은 내 인생에서 절대 잊지 못할 

 

추억들이였고,그 순간 하나하나가 내 인생에 어떻게든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죽기 전까지도 아마

 

잊지 못하지 않을 그런 기억이 아닌가 싶다. 그것이 형도 기억하거나, 형의 의도했던 일이든 그렇지 않든…

 

그렇게 수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아직까지도 형에게서 연락은 오지 않았다.

 

 

내가 과연 형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떤 생황을 하고 있을까? 인생에 어떤 재미가 있는지, 어떻게 생활해야

 

남들과 잘 어울릴 수 있고 원만하게 생활할 수 있는지, 여자 앞에서 자신감 있고, 주눅들지 않을 수 있는지, 베푸는것이

 

받는것보다 더 행복한 일일 수 있는지, 그리고 이런 추억들이 인생에서 회자될 정도로 소소하게 즐거운 일이 될 수 있는지… 나는 과연 알 수 있었을까?

 

어쩌면 나는 형이 만들어 놓은 울타리 안에서 조종되는 실험체일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비약일 수 있지만…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에게

 

이정도로 생각해주고, 민감할 수 있는 부분까지 공유하려고 했다는 것은 내가 정말 좋아서일수도 있지만, 내가 반항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하위 단계의 존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형이 나를 어떤 식으로 생각했든 내 생각은 변함이 없을 것 같다. 아직 인생 2막으로 넘어가지 않은 이 시점에서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형이라는 것을.

 

 

 

 

언젠가

 

다시 한번 형과 만날 기회가 생긴다면

 

꼭 말을 해주고 싶다.

 

내 인생에서 가장 즐겁고 행복하고 보람있는 시간을 가졌던 것은 형과 함께 생활했던 캠퍼스 라이프였고

 

형을 만난 것은 내 인생 최고의 행운 중 하나였다고…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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