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참여] 현대자동차의 추억..

dugue29 작성일 09.02.21 05:4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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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 제네시스 쿠페는 제네시스와 쿠페의 합성어로 제네시스의 플렛폼을 변경 적용한 후륜구동 스포츠 쿠페로서....

럭셔리 세단(제네시스) 브랜드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유지하고 고성능 스포츠 쿠페 시장에 대한 현대차의 본격적인 진출을

알린다는 의미을 담고 있습니다.
 

 

1 [고객측면] : 현대자동차는 고객의 삶과 미래를 그들 자신의 방식 그대로 나아가도록 격려해 준다는 의미와 고객 개개인의

삶의 방식을 배려하고 존중한다는 의미를 담은 표현입니다.

 

2 [내부측면] : 현대자동차 내부 임직원으로서 자신감과 자부심을 갖고, 글로벌 Leading 브랜드가 되기 위해 본인이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자세를 갖도록 함을 의미합니다.

 

3 [기업측면] : 글로벌 시장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르는 현대자동차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고객들에게 자부심과 만족을 주는 기업이 되겠다는 의지를 표현합니다.

4 [자동차 산업측면] : 기존의 경제적인 자동차의 이미지를 넘어, 정제되고 세련된 현대자동차의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구축하여 자동차 시장에 있어서의 차별적 위상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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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만20살때 처음으로 차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산 자동차가 현대(스쿠프)차 였죠..^^

그때 당시엔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 스포츠카가 (스쿠프)였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여행을 좋아했던 나는 스쿠프와 같이

전국을 거의 안돌아 다닌데가 없었습니다. 같이 고생하고 같이 즐기고 같이 생각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정이란 정은 다 들었었죠. 그당시에는 여자친구 보다 더 사랑 했으니까요..^^

물론, 지금도 현대차(에쿠스)를 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현대차 외엔 탈 생각도 없고, 사지도 않을 겁니다.

나에게 있어 현대차는 어린시절 아름다운 추억 같은 존재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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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자동차의 역사]

2007년 12월 28일 현대자동차는 창립 40주년을 맞았습니다. 67년 12월 서울 무교동에 ‘현대모타’란 간판이 내걸린 게 바로 현대자동차의 시작입니다.  현재의 현대자동차는 해방직후인 46년 설립된 현대자동차공업사라는 정비공장이 그 뿌리입니다. 이 회사는 해방 전까지 자동차정비업으로 사업기반을 잡았던 고 정주영 현대회장이 현대자동차를 세운 발판이었습니다. 자본금 1억원으로 시작한 현대모타는 이듬해 현대자동차로 이름을 바꿔 달고 포드에서 기술을 들여와 코티나, 포드20M, 버스 등을 양산하기 시작했습니다. 국산화를 염두에 둔 설립이었기에 포드 본사에 기술진을 파견해 부품부터 꾸준히 국산화를 병행했습니다.

현대자동차가 첫 차종으로 내놓은 것이 바로 `코티나`입니다. 67년 현대는 포드와 손을 잡고 신진의 코로나와 경쟁할 수 있는 영국 포드 제품인 1,600cc급 `코티나`를 첫 작품으로 국내에 선보였습니다. 코티나는 길이/너비/높이가 4,267mm/1,648mm/1,389mm였고 뒷바퀴 굴림 방식의 차였습니다. 이 차는 배기량 1,598cc 직렬 4기통엔진을 얹고 최고출력 75마력, 최고시속 160km의 성능을 냈습니다. 이 차는 당시 국내시장에서 승승장구하던 신진 코로나보다 차체가 커 실내공간이 여유 있었고 배기량이 더 커 힘도 좋았습니다. 현대는 1년 만에 5,000대를 생산, 10억원의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값은 코로나보다 20만원 비싼 110만원이었으나 날개 돋친 듯 팔렸습니다. 그런데 69년 9월 영・호남 지역의 대 홍수 때 침수된 부품으로 조립한 차들이 말썽을 일으켰습니다. 70년대 중반부터 무더기 차 반납 소동이 일어나는 등 수난을 겪었습니다. 코티나의 잦은 고장은 한 때 ‘섰다하면 코티나’ ‘고치나’ ‘코피나’ ‘골치나’ 등의 헐뜯는 별명으로 현대의 자동차산업을 위태롭게 만들었습니다.

 

현대는 71년부터 코티나의 품질향상에 주력하여 새 모델인 뉴 코티나를 선보였습니다. 이 차로 다시 인기를 회복한 뉴 코티나는 76년까지 픽업, 밴, 왜건 모델 등으로 가지치기하면서 23,141대가 팔렸습니다. 71년 이전에 생산된 코티나 까지 포함하면 모두 31,450대가 팔렸습니다.
하지만 72년에 포드는 더 이상 현대차와 합작을 하지 않겠다고 나섰습니다. 이는 곧 본격적인 국산 완성차 제작의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정주영 회장 동생인 고 정세영 회장 주도로 4년간의 개발기간 끝에 후일 월드 베스트셀링카 대열에 올라선 ‘포니’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76년 1월의 일이었습니다.

그 해에 수출 길도 열었습니다. 에콰도르에 포니 5대를 시작으로 중동, 남미, 아프리카 등지에 총 1042대의 포니를 수출했습니다. 이후 수출은 더욱 불붙었습니다. 첫 수출 후 7년 만인 83년 10만대를 돌파하더니 88년에는 드디어 단일 브랜드로 100만대 수출에 성공 했습니다. 지난해 현대차는 1,970,747대를, 98년에 인수한 기아차 역시 지난해 1,088,461대를 달성해 현대·기아차

그룹은 총 수출 300만대 시대를 열게 됐습니다.  

기술발전 속도도 두드러집니다. 미쓰비시와 포드 등 해외 업체에서 기술을 배워오던 현대차는 1991년 국내 첫 독자엔진 ‘알파’를 개발해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2000년 정몽구 회장 아래 자동차전문 그룹으로 재출발한 현대·기아차는 ‘품질경영’을 앞세워 2008년 현재 벤츠를 비롯해, 미쓰비시 등 해외 업체에 오히려 로열티를 받으며 기술을 수출하는 위치에 올라설 만큼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세계 6위 자동차 업체로 우뚝 선 현대·기아차는 이제 세계 5대 자동차 그룹을 꿈꾸며 제네시스 등을 앞세워 고급차시장 진출을 도모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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