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가는 기차를 이 새벽에 탈 일이 마라톤 아니면 또 있을까?
당일 새벽 4시반 보리차에 반공기 말아먹고 시흥에서 길을 나섰다.
용산에서 처음 타는 ITX는 겉보기로 전철과 별반 다르지 않게 생겼는데 2층 올라가는 계단이 재밌다.
춘천역에서 내려 공지천으로 걸어가는데 하늘은 잔뜩 흐리다.
며칠간 따듯하던 날씨는 많이 쌀쌀해졌는데 이곳은 서울보다 조금 더 춥다.
잘 쉬고 어제 푹 자고 나온 덕분에 컨디션은 매우 좋다.
2016 동아마라톤 기록 4시간 11분보다 빠르면 만족이라 목표를 정하고
준비를 많이 못한 나를 다스리며 D그룹 출발선에 섰다.
사회자 배동성 씨는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지만 목소리만큼은 스피커를 통해 쩌렁쩌렁 울린다.
곧이어 나는 출발했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 '배가 고프다...'
뒤춤에 찬 벨트에서 준비한 꿀 봉투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는데 진한 당 맛과 함께 허기는 날아갔다.
올해는 더운 날이 길어지면서 그 좋다던 춘천의 단풍을 모두 만끽 할수 없었는데 아쉽다..
달려가는 수많은 러너들은 좁은 길에서 더디 갈 수밖에 없었는데..
다행히 항상 범하고 말았던 오버페이스가 다스려진다.
첫 번째 터널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성을 질렀다.
내 목소리를 보태지 않은 것은.. 어디 숨어있던 내성적 성품이 나타난 듯한데
두 번째 터널에서는 결국 한참을 소리 질렀다..
막혀있던 마음을 풀어낸 듯 시원하다.
25km 지점..
물론 힘들고 지루하다. 속으로는 곧 만날 30km라는 숫자를 볼 때 어떤 기분일까를 상상하며
'아직 더 10km는 문제없지'를 되뇌고 있었다.
정말 30km까지는 계속 달리는데 몸 어디도 불편한 곳이 없었다.
점차 발바닥이 달궈지는 걸 알 수 있었고 특히 발목에 힘이 많이 들어가고 있었다.
주로에서 주는 젖은 스폰지로 무릎과 발목을 적셔 열기를 식혔는데 신발이 젖는것만 뺀다면 효과는 매우 좋았다.
장거리 레이스를 하고 나면 내 몸의 약한 부위를 알게 해주는데
허벅지는 스쿼트 보강운동을.. 발목은... 음 음... 장거리를 계속 달리면 좋아지겠지 싶네. ㅎ
골인 7km 앞두고 GPS 시계를 보며 예상 완주 시간을 머리에 그려본다.
48분 안에만 들어가면 SUB4인데...
이것은 넉넉하게 6분 30초/km 속도면 된다...
그러나 페이스는 계속 떨어졌다.
'그래 섭포 보다 안 걷고 완주를 하자'
걷지 않는 완주는 풀코스 세 번째 만에 처음이다.
(솔직히 아주 잠시 걷기는 했지만..)
기록 : 04:05;49
섭 포는 다음으로 잠시 연기~
아 개운하다 처음온 춘천의 아름다운 곳을 내 발로 밟을 수 있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난 축복을 받은 사람인것을.
달려서 행복한게 아니라 달릴 수 있는 몸을 가져서 충분한 인생인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