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소녀] 2. 태권도학과입니다 - 알랑님의 최신작품 ^^

비상숑 작성일 07.02.10 09:3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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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태권도학과입니다







2라운드에도 어김없이


10개의 공을 모조리 받아넘겨주고


맨 뒤로 가보니


귀여운 그녀의 뒤편에는


시커먼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안녕하세요?”


“아, 예.”





뒤에 줄을 서자


몸을 돌려 나를 한번 보고는


인사를 한다.



왜 나한테 인사하는거지?





“이 수업 어떤 것 같아요?”


“뭐가요?”


“할만한가요?”


“뭐, 글쎄요.”





나한테도 첫수업인데


그런걸 물어봐서 어쩌자는 건지.





“아.. 그냥 축구로 신청할걸 그랬나?”


“......”





..남자였나?





“아무래도 여자가 축구수업을 듣긴 좀 그렇겠죠?”


“여자축구도 있는데요, 뭘.”





여자가 맞구나.


그나저나 축구라니..


남자들도 웬만큼 운동에 자신이 없으면


신청하지 않는 수업일텐데.





“졸업하려니 학점은 부족하고...”


“......”


“머리쓰는 수업은 자신없고...”


“......”


“몸으로 때우는 수업을 듣긴 해야겠는데...”


“......”





묻지도 않은 말들을


순풍순풍 잘도 내뱉는다.


이 여자 나랑 친한 사람인가?





“그쪽은 왜 탁구예요?”


“그냥요.”


“남자들은 축구 좋아하지 않나요?”


“보는건 좋아하죠.”


“뛰는건요?”


“별로...”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여자를 어디서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잘 아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조잘조잘 말을 걸기 바쁘다.





“그래도 역시 스포츠의 꽃은 축구죠.”


“축구 좋아하시나 ??”


“거의 광적으로 좋아하죠.”


“뛰는 것도?”


“아니...뛰어본 적은 없어서 잘...”





뭐 나랑 비슷하군.


나는 군대스리가에서 잠시 뛰어봤었지.


이등병때는 센터백, 일병때는 수비형미들,


상병때는 중앙미들까지 보다가


병장때 탁구로 전향하면서 화려하게 은퇴.





아, 우리 중대는 주로 2-2-6 전술을 썼으니


상병때까지도 미들에만 머물렀다는건


결국 축구를 잘 못했다는 소리.





이윽고 보호본능 그녀의 차례가 되었다.


이제는 제법 라켓에 공을 맞추기 시작한다.


다만 제대로 넘어가지가 않을 뿐.


그래도 헛스윙은 두번밖에 없었으니


조금 전에 비해 상당히 빠른 성장을 보인다.





“아하하하하. 왜 그렇게 못해요?”


“......”





보호본능은 금세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어쩔 줄을 모른다.


나한테만 친한 척을 하는게 아니었군.





그나저나 처음 보는 사람한테 너무하잖아.


그것도 저렇게 귀여운 여자한테.





“잘?? 내가 하는거.”


“......”


“탁구의 진수를 보여드리죠.”





보호본능은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그냥 맨 끝으로 가버린다.


그럼 어디,


탁구의 진수를 한번 보여 주시지.





“다음분 준비하세요.”


“네, 준비 다 됐으니 공 보내줘요.”


“저...라켓을...”





라켓을 손바닥 전체로 움켜쥐고는


몸쪽 변화구를 기다리는 이승엽마냥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다.


저게 바로 탁구의 진수로군.


홈런은 펑펑 치겠어.





보다못한 조교가 직접 다가와서


그립잡는 법을 가르쳐 준다.


라켓도 잡을 줄 모르면서 잘난 척은.





“좋아요. 던져 주세요.”


“......”





잔뜩 웅크린 모습으로 눈을 빛내고 있다.


자세는 바로잡았지만 정신적인 부분은 바로잡지 못했군.





“으라차차차차!”





딱! 후우우우웅-





몸이 반바퀴 돌아갈 정도로


강력하게 풀스윙을 한다.


라켓에 제대로 맞은 탁구공은


바람을 가르는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조교의 뺨을 스쳐지나간다.





“어? 뭐야. 안 맞았잖아.”


“......”





물론,


테이블에 맞지 않고 아웃되었다는 뜻이겠지만


조교는 아마도 안 맞은 게 자신인 줄로 알 것이다.


얼어붙은 표정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아마도


“죽일 수 있었는데 아깝군.”


하는 소리로 들렸을 거다.





“그냥...받아넘기기만 하는 건데...”


“에? 뭐가요?”


“스매시는 나중에 배울 거고... 그냥 넘겨주시기만 하는 건데요.”


“엑? 뭐야, 그럼 재미없잖아.”





투덜거리면서도


조교가 넘겨주는 공을 넙죽넙죽 잘도 받는다.


보아하니 탁구는 처음인것 같은데..


외모도 운동능력도


앞의 그녀와는 확실히 대조적이다.





내 차례가 되어


나도 열 개의 공을 실수없이 넘기고는


다시 맨 뒤로 가서 선다.


이 여자는 또 뒤로 돌아 말을 건다.





“그쪽도 좀 하네요.”


“예전에 좀 쳐봤거든요. 전국대회 우승경험도 있죠.”


“앗, 그래요? 선수였어요?”


“뭐, 지금은 아니지만..”





추석맞이 중대장배 탁구대회 우승.


군대란 곳이 전국에서 남아들이 모인 곳이니


전국대회라고도 할 수 있지.


우승이야 짬밥 순으로 한거긴 하지만.





“저도 사실은 선수였어요.”


“그러시군요.”





야구선수였나보군.





몇 차례가 더 돌아오자


이제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이 조교는 언제까지 이것만 가르쳐줄 생각이지?





보호본능은 이제 제법 툭툭 넘긴다.


엄청난 성장력이군.


아마도 저 조교녀석이 그녀의 발전을 우선순위로 두고


이 지루한 연습을 계속 시키는듯.





다시 돌아온 야구선수의 차례.


아홉개의 공을 가볍게 넘기고


마지막 열번째,


대충 갖다댄 라켓의 끄트머리에


탁구공이 맞아 삑사리가 난다.





“......”


“다음분...”


“다...다시...”





마지막 하나를 넘기지 못한게 꽤나 억울한 듯.


자꾸 뒤돌아 나를 힐끔거리는 걸로 보아


상당히 의식하는 듯하다.


나는 지금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다 넘겼거든.


굉장한 승부근성.





“나 늦게 왔잖아요. 열 개 더 해요.”


“뒤엣분들 기다리시니까... 다음 차례에...”





억울한 표정이지만


의외로 순순히 자리에서 물러난다.


그러나 줄의 끝으로 가지는 않고


테이블 옆으로 가서 선다.





다섯 번째의 공을 넘기면서


이상한 낌새에 옆을 돌아보니..



후욱후욱-


하며 공이 넘어올 때마다 입으로 바람을 불어댄다.


내가 실수하도록 저주할 셈이군;


이런 사소한 걸로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입으로 부는 바람이


내 경기력에 영향을 줄 리가 없다.


여덟번째도 아홉번째도


어김없이 받아넘긴다.





마무리는 강스매시로 해야지.


조교가 좀 잔소리를 하겠지만


그래도 너무 지겹다구.





조교는 여지없이 정확한 위치에 공을 넘긴다.


딱 좋은 코스로군.


라켓을 쥔 손에 잔뜩 힘을 주고 날아오는 공을 노려본다.


공이 점점 크게 보인다.


시커멓고 커다란 공..





빠각-!




“아악!”


“헛...”





난데없이 내 앞으로 머리부터 들이미는 바람에


그녀의 면상을 풀파워로 후리고 말았다.


바람을 불어도 효과가 없으니


몸으로 방해할 생각이었던 모양.





“괘... 괜찮아요?”


“아우...씹...”


“......”





끝까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십새끼야!” 라고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우 십원만!” 이나


“아우 십자수!” 는


이 상황에서는 좀 어색하다.





이유야 어찌됐건


일단은 가해자의 입장이므로


아무튼 사과는 해야겠다.





“좀 조심하시지 그랬어요.”


“......”





적절하지 못한 사과였다;


무서운 눈으로 나를 쏘아본다.





“오늘은 마치겠습니다. 처음 모였던 자리로 다시 모여서 줄 서주세요.”





때마침 타이밍좋게 조교의 수습.


다행이었다.


그녀의 눈에는 살기가 담겨 있었다.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暠?/span>


앞서서 줄을 서는 곳을 향했다.





퍼억





“흐억!”





엉덩이쪽에 둔탁한 느낌이 들면서


테이블 위로 철퍼덕-


하고 존나 코믹하게 자빠졌다.


사방에서 낄낄대는 소리가 들린다.





“어이쿠, 좀 조심하시지 그랬어요?”


“......”





바로바로 보복하는 스타일이군;


억울하지만 할말은 없다.


최대한 안 쪽팔린 척 하고


잽싸게 일어나서 뒤따라갔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네, 뭐.”





솔직히 의심스럽긴 하지만


피가 배어나오는 그녀의 입술을 보니


딱히 뭐라고 할 마음은 없다.


애초에 내 잘못도 아니었지만.





줄을 서자 교수님이 슬그머니 들어오신다.


굉장히 편하게 수업하시는 분이군.


세 시간을 아주 날로 드셨어.





“출석 안부른 사람?”





그녀가 쭈뼛쭈뼛 손을 든다.





“이름이 뭐야?”


“전차남입니다.”


“풉;”





나만 웃은 것은 아니다.


다만 제일 먼저, 제일 큰 소리로 웃었을 뿐.


게다가 교수님마저 웃고 있으니


굳이 나를 향해서만 눈을 부라릴 필요는 없다.





그건 그렇고..


니가 전차남이었군.


남의 이름갖고 뭐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여자애가 전차남이 뭐냐 전차남이.. 큭큭.


어쩐지 생긴거랑 굉장히 어울리잖아.





“넌 차남이냐?”


“장녀인데요.”


“......”


“......”





교수님의 썰렁한 개그를


한방에 무마시킨다.


머쓱해하는 교수님의 표정에


여기저기서 키득거린다.





“그런데 왜 이름이 차남이냐?”



“네. 저희 부모님께서 저를 낳으시고는 크게 실망하시어


다음(次)에는 꼭 사내(男)놈을 낳자고 다짐하시며


제게 차남이란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그렇게 슬픈 사연이..


에휴, 이놈의 남아선호사상은


언제쯤 없어질런지..





“그래서 둘째는 아들이었냐?”


“딸인데요.”


“걔는 그럼 이름이 뭐냐?”


“필남이요.”


“푸하하핫.”





최대한 참아보려 했지만


어김없이 웃음이 터져나왔다.


물론 나만 그런 건 아니다.


단지 제일 먼저, 제일 크게 웃은 것뿐인데..


왜 나한테만 눈을 부라리고 그래;





아, 이거..


남의 이름가지고 웃으면 벌받는데..


근데 딸래미들 이름을 차남이 필남이..


이거 진짜 웃기잖아.





“꼭(必) 아들 낳자고?”


“아마도요.”





교수님은 허허, 하고 웃으시더니


다시 출석부로 눈을 돌린다.





“무슨 과냐?”


“태권도학과입니다.”





......





x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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