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원래 이런종류의 논쟁에는 끼어들지 않을려고 했으나, 너무 내용이 양극화 되어 있어서.. 중간 의견이 하나정도 나오면 좋을 듯 하여 올려봅니다.
저기 밑에보면 리플이 거의 90개에 육박하는 글이 있지요? 거기 리플들을 보면 파라파라맨 님과 estern님.. 맞나? 갑자기 닉네임 철자가 생각이 안나는.... 어쨌든 두분이 긴 리플로 논쟁을 하셨는데... 두분 말씀 모두 어느정도 맞는 말씀들입니다.
우리나라 소프트웨어의 가격이 미주, 유럽에 비해 비싼것은 사실이지요. 하지만 일본에 비하면 되려 싼 편입니다(그래서 두분 말씀 모두 어느정도 맞다고 하는 것이죠 뭐...). 뭐 이 부분은 지금 정확한 자료가 제게 없어서 말씀드리기 힘들지만, 이 차이는 일본은 PC 패키지 게임보다는 콘솔 비디오게임이 시장의 주류를 이뤘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야 겠지요..
뭐, 제가 확실히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은 넘어가기로 하고... 일단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많은 분들께서 "값이 쌌다면 정품 샀을거다"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에 대한 반박입니다. 솔직히 이 부분은, 아마 우리나라 초기 게임시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갔었다면 어느정도 맞는 말이 되었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어느때인가 부터, "정품을 사? 돈지랄 한다"라는 인상이 강하게 대두되게 되지요. 솔직히 3, 4만원대면 게임 가격으로서는 적절한 가격대라고 판단을 합니다. 그런데도 다들 "비싸, 비싸"를 연발하시지요. 그 이유는 무었일까요..?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그런 이유 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친것이 바로 잡지 번들입니다. 지금도 그러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예전엔 잡지에서 "번들"이라는 형식으로 게임을 무상 제공하곤 했었죠. 그런데 그 번들경쟁이 격화되면서부터 국내 패키지 게임 시장에 "게임 4만원이면 비싸"라는 인식이 만연하게 된 것 같습니다.
사실 초반에는 잡지사 번들이란 것이 말 그대로 "책 사는 분들께 작은 성의를 표현하는 잡지사의 선물"이었습니다. 일본 게임잡지들 같은 경우 신작 게임의 체험판이나 (꽤 예전 일입니다만..) 개인, 또는 동호회가 만든 간단한 저용량 게임이 부록CD에 포함되곤 했었습니다만, 국내 개발사가 적은 한국의 경우 그게 힘들었죠. 그래서 좀 시간이 지난 게임중에 쓸만한 것들을 번들로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번들을 포함시키니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뭔가 있어보이는 부록이 포함된 잡지로 사람들이 몰린것은 당연지사. 그걸 본 경쟁사는 지지 않기 위해 역시 번들을 끼워넣습니다. 그 꼴을 본 회사는 당연히 저쪽 게임보다 더 나은 게임을 번들로 선택하고, 그걸 본 경쟁사는 또 그보다 더 나은 게임을 선택하고... 이렇게 악순환이 계속되게 되었지요.
제가 2000년에 폐간된 게임 매거진이란 잡지사에서 일할 때의 이야기입니다만(전 PC팀은 아니었고, 콘솔 팀 필자였습니다만 같은 사무실 바로 옆자리라서 사정은 좀 알지요..), 당시 게임 매거진에서도 번들을 부록으로 끼워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경쟁지였던 게임 챔프등에 밀리지 않기 위해 무리수를 두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게임 매거진 한달에 2만권을 뽑는데 인건비 포함해서 약 1억 3천만원 정도가 들었습니다. 그런데 번들 게임 라이센스 비로만 1억 5천만원이 나갔었죠. 즉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이 정책에 반대해서 기자분들이 "그런 거액의 번들 안 끼워 팔아도 충분히 책 팔 수 있다. 차라리 그 돈으로 책의 질을 높이는데 쓰자"라고 건의를 했었습니다만, 그 번들이 끼워 팔린 달이 제가 기억하는 한, 게임 매거진 월간 판매부수로 최고를 기록한 달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적자는 면하고 어느정도 흑자를 보기도 했지요. "이것 봐라. 돈 좀 써서라도 쓸만한 번들 넣으니까 이렇게 잘 팔리잖아" 라며 득의양양해 하는 사장('님'자를 붙여야 하겠지만, 솔직히 개인적 감정 때문에라도 그짓은 못하겠습니다.. 양해를..) 꼴을 본 기자분들은 전원 사표를 내고 회사를 떠나버리셨죠. 뭐 덕분에 제가 필자에서 기자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만, 그때부터였지요.
매거진에서 그렇게 나가니 다른 경쟁사들도 대량의 번들 공세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콘솔 게임잡지가 이모양이었으니 PC게임 잡지는 어땠을지 상상이 가실런지요? 심할 경우에는 정식 발매된지 채 3달도 안된 게임이 번들이라고 책 부록으로 나온 경우도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그것도 꽤나 인기 있는 게임이었던 걸로 기억을...).
이 당시 애독자 엽서들을 보면 "이번달 번들은 왜 이리 허접하냐? 매거진이 점점 쓰레기가 되어간다"라는 내용이 상당수였습니다. 즉, 책의 내용따윈 상관없이 번들의 유무, 그리고 그 게임의 질로서 책의 질까지 결정되던 것이었지요. 당시 만나본 타 잡지(PC쪽이었습니다) 기자분들께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었습니다.
이때부터였지요. 시장조사 등을 위해서 게임 판매점을 들리거나 게임 제작사 인터뷰등을 할 때마다 "유저들이 게임을 사지 않는다. 곧 번들로 나올지도 모르는데 뭐하러 비싼 돈 들여가며 정품을 사겠느냐?"라는 말들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시 복사게임 CD가 장당 1만원 하고 그랬었는데, 솔직히 생각해 보십시오. 책으로 산다면 비싸도 8,500원에 운 좋으면 게임이 2장씩 들어있곤 했습니다. 만약 그 달에 뭔가 대작 게임이라도 번들로 나올라치면 책들은 바로 매진됩니다. 그리곤 주변 쓰레기통에서 책'만' 발견되기도 했지요(농담이 아니라 진짜로요.. 퇴근중에 제 눈으로 CD만 챙기고 책을 버리는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사람들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돈이 좀 아깝다 싶은 사람들은 책을 주변 사람 주기도 하더군요).
이렇게 값싼 가격에, 또는(책을 메인으로 보는 사람들에겐) 거의 공짜로 게임을 얻을 수 있던 시기가 몇년이나 계속되었습니다(97년 정도부터 번들 공세가 격화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러니 유저들 생각은 어떻겠습니까?
게임=부록, 또는 값싸게(아니면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 이란 인식이 강하게 박혀버리게 된 것이죠. 아니라고 부정하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 당시 잡지사에 있던 제가 독자 및 유저들의 반응, 그리고 제작사나 판매상들의 이야기를 보고 종합한 사실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유명 연예인 콘서트 가는데 몇만원, 옷 한벌 사는데 몇만원, 십만원 넘는 운동화 사는 것은 예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유독 게임이란 물건에 대해서만 '비싸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이유 중 솔직히 50%정도는.. 바로 이 약 4-5년 가까이 이어진 격화된 번들공세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후 2000년대 부터는 PC통신으로부터 시작된 와레즈를 통해 거의 공짜로 게임을 구하게 될 수 있게 됩니다. 아니 공짜로 구할 수 있는 게임을 뭐하러 돈 주고 구입하겠습니까? 이미 게임은 "싸게, 또는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이란 사상이 박혀 버렸는데요..
결국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현재 한국 패키지 게임시장이 붕괴된 원인은 제대로 된 게임을 양산하지 못하고 결국 한국 게임시장 자체를 협소하게 만든 게임제작사와 쓸데없는 출혈경쟁으로 독자(즉 유저)에게 잘못된 인식이 자리잡게 만든 게임 언론, 여기에 온갖 이유를 들이대며 결국은 공짜로 게임하는 것을 정당화 하려는 유저 모두에게 잘못이 있다는 것이지요..
ps. 사실 게임이 비싸다... 라는 의견 저 개인적으론 납득이 가지 않긴 합니다. 하지만 제가 그분들의 주머니 사정을 일일히 모르니 뭐라 반박을 할 수가 없지요(아니 실제로 한달 용돈이 한 2-3만원이라면 비싸게 생각될 수도 있는 거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게임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만으로 와레즈를 옹호하는 것 또한 납득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저 밑에 다른 분께서도 리플로 다셨지만, 게임은 음식으로 따지면 기호식품.. 즉 분식 정도 되지요. 주식과는 다른 겁니다. 돈이 없으면 안하면 될 것을....
ps. 그리고 이건 다른 의미로 하는 말이지만.. 솔직히 "게임이 비싸다"라는 의견은 그래도 이해라도 가는데, "게임이 엉망이다. 돈 주고 살 생각이 안든다"라는 분들의 경우는 정말 이해가 안가죠. "돈주고 살 게임이 아니다"라고 평가되고, 실제로도 판매량 바닥을 기는 게임(전에 EA코리아 담당자에게 들은 적이 있는데, EA코리아 사상 가장 적게 나간 패키지 게임은 실 판매량 2장짜리였답니다. 물론 이건 가장 극단적인 예를 든 것입니다만..)들이 의외로 즐겨 본 사람들이 많더라는 거였죠. 돈 주고 살 정도는 아니지만 공짜로 즐긴다면 재미있다.. 라는 것은 왠지 이상하거든요.. 플레이 해서 재미있게 즐긴다면 돈 주고 살 가치가 있다는 것 아닐까요?
ps. 뭐... 제 고질병이자 불치병인 '글 길어지면 본인도 수습이 안된다'라는 문제 때문에 상당히 태클걸릴 요소가 많은 글이 되었습니다만... 뭐 결국 말하고 싶은것은 이겁니다요... 한국 패키시 시장이 망가진 이야기를 할 때, 제작사와 유저 이야기만 하는것도 이제 질렸으니, 다른 요소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 보시라... 뭐 이런거죠.. (뭐 글 내용을 보면 전혀 그런게 아닌듯도 하지만... 몇년이나 글 써서 벌어먹고 산 놈 글이 이모양이니..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