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메이커보다는 게임을 중점으로 보는게 당연하겠지만 아무래도 게임의 재미란 플레이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법이니
유저로선 게임구입시 게임제작사를 눈여겨 보기 마련이죠.
저도 좋아하는 게임 제작사는 여럿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 회사의 게임이라면 반드시 사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하는
제작사는 춘소프트밖에 없습니다.
춘 소프트 하면 드래곤퀘스트 제작에 참여한 것으로 유명하죠. 특히나 에닉스의 호리이 유지와 춘 소프트의 나카무라
고우이치씨가 만나 탄생한 것이 드래곤 퀘스트였습니다.초창기에는 일본식 RPG로선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습니다만
어느시점부터 춘 소프트가 손을 떼고 난 후속편들은 패드만 잡으면 졸려서 도저히 진행을 할수 없는 게임이 되고야 말았죠.
춘 소프트라면 정말이지 독특한 게임 스타일로 유명한 회사인데 그 회사의 대표작이라고 말할수 있는 게임은
이상한 던전 시리즈와 사운드나블 시리즈를 들수 있을겁니다.
이상한 던전 시리즈는 로그계열의 게임을 턴제 던전 RPG로 변형시킨 것으로서 사실상 돌네코의 모험이 시조라고 볼수
있겠죠. 그리고 가장 유명했던 게임이 풍래의 시렌이고요.
들어갈때마다 변하는 던전,정해진 플레이나 어떠한 공략도 통하지 않는 세계입니다.
도중에 죽으면 레벨도 1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고 아이템도 전부 잃어버려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죽을 고생을 해서 30층까지 올라갔는데 죽었다. 아이템도 경험치도 모두 처음상태로 돌아가면 플레이어는 모든것을
잃어버린 것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게임상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지만 플레이어의 경험은 플레이어 속에 살아있으니까요.
그렇게 캐릭터의 레벨을 키우고 더 좋은 아이템을 얻는 대신 게임에서 살아남는 법을 한가지씩 터득해 나가는 과정이
풍래의 시렌입니다. 그렇게 게임에서 게임의 요령을 터득해가면서 죽고 올라가고를 반복하면서 조금씩 던전을
정복하다가 천기를 얻어 최종층을 정복하는 것이 풍래의 시렌입니다.
아이템이나 반복된 레벨업으로는 죽었다 깨나도 최종던전 정복이 불가능한 게임입니다. 액션게임처럼 빠른 조작능력으로
해결하는것도 아니죠. 턴제게임이니까요. 처음부터 끝까지 요령을 터득하는 과정의 반복입니다. 머리를 굴리고 굴리다
보면 생존패턴이 하나하나씩 들어오는 것이죠. 그렇게 캐릭터의 레벨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레벨을 올리는 게임이었습니다.
사운드 나블 역시 기존의 텍스트어드벤처 게임을 변형시킨 것으로써 춘 소프트의 제절초가 사운드 나블의 효시가 된
게임입니다.소설과 드라마의 차이를 생각하면 알수 있겠지만 드라마는 모든것을 영상으로 보여 줍니다. 시청자의
상상력은 배제되고 시청자는 드라마에서 보여 주는 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소설의 세계는 작가가 적은
글은 독자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 됩니다. 그 차이가 사운드 나블과 3D어드벤처의 차이라고 할수 있을 겁니다.
왜 사운드나블은 거의가 호러게임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보기엔 독자에게 공포를 상상하게 만들어서
전달하는 것은 공포를 영상으로 만들어서 전달하는 것보다 효과있기에 사운드 나블이야말로 호러게임에 최적화된
장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공포 게임을 게임초보가 하는것도 아닌데 닳고 닳은 숙련된 게이머를 무섭게 만드는 것은 그리 쉬운 노릇은 아닐 겁니다.
호러게임으로서 화이트데이를 무섭다고 하시는 분도 있고 사이렌의 뷰재킹이 무섭다는 분들도 있고 영제로의 귀신이
무섭거나 클럭타워의 가위맨이 무섭다고 하는 분들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인 소감으로 볼때 가장 수준높은 공포감을 보여 주었던 것은 춘 소프트의 -카마이타치의 밤- 이었습니다.
캐릭터를 직접 움직이는 3D호러 어드벤처 게임을 할때 보여준 직접적인 화면보다 글을 읽으면서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상상속의 세계가 더 두렵게 다가 오더군요.
또한 카마이타치의 밤에서 느낀 공포감이 수준높은 공포감이라고 말하는 것은 계속해서 의심을 부추기는 구성 때문입니다.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한명 한명 연속으로 죽어갈 때마다 계속해서 누군가를 의심하고 만들어 옆에 있는 그 누군가가
살인마가 아닐까 단 둘이 있으면 살해되는것 아닐까 의심하게 만드는 과정이 너무 좋았습니다.
어찌 보면 평범한 스토리에 불과한 카마이타치의 밤에서 그정도로 수준높은 공포감을 구성할수 있었던 것도 계속해서
의심을 부추기다 결국은 여자친구마저 의심해 죽이게 되는 구성 때문이었습니다.
실루엣속에 감춰진 인물들, 독자의 상상에 의해 구성되는 세계, 그리고 계속해서 의심을 부추겨 옆에 있는 사람이
살인마가 아닐까 두려워하게 만드는 구성까지, 카마이타치의 밤은 사운드나블로 호러게임을 만들면 어떻다는것을
보여준 게임이었습니다.
뭐 그래서 그 이후로 다른회사에서도 주구장창 호러사운드 나블이 나왔지만 모두 실패했죠.
사운드 나블의 두번째 성공은 실루엣과 호러를 버리고 재핑이라는 새로운 길을 보여준 -마치- 운명의 교차점 이었습니다.
이 게임 또한 다른 춘 소프트 게임들 처럼 상상을 초월하는 게임입니다. 시부야라는 거리에 얽힌 8명의 주인공의
운명이 다른 캐릭터의 선택에 의해 좌우되고 운명을 바꾸기 위해 선택지를 계속해서 바꿔 나가는 게임입니다.
타인의 아무것도 아닌 가벼운 행동 하나에 나의 운명이 바뀔수 있고, 내 행동 하나가 타인의 운명을 바꾼다는 그 내용을
바탕으로 시부야 거리에 엮인 8인의 운명을 적극적으로 바꾸어 나가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그 과정은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죠.비인기장르인 사운드나블임에도 패미컴누계인기에서 8위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 게임성을 인정받은 게임입니다.
제가 가장 재미있게 했던 3가지만을 대표로 골라서 설명했지만 그 외에도 춘 소프트의 게임들은 정말로 재미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다른 게임에서 절대 보여 주지 못한 새로운 재미와 게임성을 구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신선함에 중독되어 춘 소프트의 차기작이 나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닌텐도의 게임도 신선한 재미는
있지만 닌텐도가 신선하면서도 가벼운 재미라면 춘 소프트게임은 신선하면서도 깊이가 있는 재미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