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울면 ‘눈물 자장’은 웃는다

맹츄 작성일 05.11.30 18:5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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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힘차게 밀고 들어온 머리 희끗희끗하신 수녀님이 앉자마자 큰 소리로 외친다.

“아저씨, 자장면 곱배기”

물어 보았다. “단골이세요?”

“아뇨. 처음 와요.”

“그런데 곱배기를 시키시나요?”

“문에 써놓은 글을 봐요. ’한 그릇 먹어보고 눈물을 흘려 줄 음식을 내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고 싶다’고….”

30분 차를 타고 이 중국집을 찾아 온 그 수녀님은 자장면 곱배기를 단숨에 드시곤, “그래, 바로 이 맛이야”라며 입가의 자장을 닦아 내신다.

이 중국집은 단골들에게 ‘눈물의 자장면’집으로 불린다.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담벽을 마주한 채 식탁이 단지 네개 밖에 없는 조그만 중국 음식집.

이 집에는 종업원이 없다. 남편인 이문길(48)씨가 주방장이자, 사장이다. 아내 지선이(46)씨는 종원업이자, 배달원이다.

이씨는 30년 경력의 손자장면을 뽑아낸다. 전체 중국집에서 기계면이 95%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씨는 직접 밀가루를 반죽하고, 주문을 받아야 뽑아내는 힘든 일을 묵묵히 해낸다.

술 안판다… 50m 넘으면 배달 사절
돈 댈테니 동업하자는 제의에
“주문 늘면 수타 감당못해” 거절
누구라도 맛있어 눈물 흘려줄
자장면위해 30년 원칙 지킨다

서울시내 택시 운전기사들이 ‘가장 맛있는 손자장면집’으로 꼽는다는 이 중국집은 단지 자장면 맛 만으로 손님을 부르는 것이 아니다.

벽에 붙어 있는 메뉴판엔 붉은 글씨로 ‘술 반입 판매 절대 금지’라고 써 있다. ‘고량주’ 가 상징인 중국 집에서 술을 팔지도 않고, 손님이 외부에서 사다가 먹는 것도 ‘절대 금지’하다니.

“동네 어린이들이 자장면 먹으러 옵니다. 아이들 앞에서 어른들이 술을 먹는 것은 비교육적입니다. 그래서 술은 팔지 않습니다.” 술을 팔지 않으니 당연히 매상이 올라가는 ‘안주 요리’도 없다. 안판다. 1만원짜리 탕수육과 1만1천원짜리 잡채가 요리의 전부이다.

그러고 보니 굵은 사인펜으로 써 비닐로 싸서 벽에 붙여 놓은 빛 바랜 메뉴판이 ‘재미’있다.

‘영업 시작 시간 오전 11시 37분, 영업 종료 시간 오후 8시 30분’

“왜 11시 37분인가요?”

“아침 8시에 출근해서 밀가루 반죽, 양파 다듬어 자장 만들고 하면 11시35분께 준비가 끝납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삿말도 영어와 일본말로 써 놓았다. 음료수는 ‘셀프 서비스’라며 어색한 중국말(水自給式)로도 써 놓았다.

문에 써 놓은 문구에 다시 눈길이 간다. “지구촌에 살고 있는 그 어떤 사람도 한그릇 먹어보고….”

비록 10평도 안되는 뒷골목 중국집이지만 혹시 들릴 외국인에 대한 배려인가 보다.

한 쪽 벽엔 둥근 벽시계가 두 개 나란히 걸려있다.

“동네 가내 공장에서 매일 오후 1시에 자장면 2개를 배달해 달라고 했어요. 시간을 꼭 지켜야 하는데 혹시 시계 한 개가 멈출까봐서 두 개를….”

이쯤되면 이 집 주인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경남 거창의 가난한 농민 집에서 6남1녀의 세째 아들로 태어났다.

중학교 졸업후 고교 진학을 포기한채 거창군의 한 중국집에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갔다. 취직하기 위해서였다.

취직 시험을 치뤘다. 시험은 자장면 그릇에 물을 담고, 그것을 나무 배달통에 넣어, 그 나무 배달통을 자전거 뒤에 싣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아 가장 적게 물을 흘려야 뽑혔다.

간신히 취직은 했으나, 주방장은 기술을 가르쳐 주질 않았다. ‘기술자’가 되면 월급을 많이 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주방장이 자는 동안 몰래 주방에 가서 반죽하는 것을 연습하다가 엄청 두들겨 맞기도 했다.

1년 고생하다가 서울 영등포 ‘홍콩’이라는 중국집에 취직해 요리를 익혔다. 나이가 돼 입대를 했다. 전방 취사병이었으나 부대 쌀 소비가 많아져 장교 식당으로 강제로 옮겨졌다. 이씨가 만들던 부대 사병 식당 음식이 갑자기 맛있어져 쌀 소비가 늘었기 때문이다.

제대 후 시골 아버지를 졸랐다. 아들의 간청을 모른채 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소 두 마리를 팔아 아들에게 장사 밑천으로 대줬다. 당시 250만원. 이씨의 월급이 3만원이었으니 큰 돈이다. “아버지는 팔려가는 두마리 소의 고삐를 잡으며 안타까워 하셨어요. 그때 아버지의 눈시울을 생각하면서 이를 악물고 일했어요.”

그 밑천으로 식탁 2개짜리 중국집을 차렸다.

25년전이니 그동안 두배로 가게를 키운 셈이다.

그동안 돈을 벌 기회도 많았다. 워낙 손자장면 맛이 좋다보니, 사업 자금을 댈 터이니 같이 식당을 크게 하자는 제의가 줄을 이었다.

“용산과 유성에 큰 건물이 있다는 그 사장님은 5년째 조르고 있어요. 얼마 전에 한 친척도 조르더군요.”

왜 안할까?

“양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손으로 뽑어낼 수 있는 자장면의 양이 한계가 있는데, 주문이 많으면 주방에서 살짝 기계로 뽑은 면을 섞어야 합니다.”

대개 이런 원칙주의자, 도덕주의자의 부인은 고생하기 마련이다.

이씨를 중매로 만나 결혼한 아내 지씨는 이젠 초탈한 표정이다.

“말하면 뭐해요. 싸우기도 많이 싸웠죠.”

이씨는 식당에서 50m 이상 떨어진 집에서 주문하면 배달을 ‘거부’한다. 아내 지씨가 철가방을 들고 배달하기 때문에 거리가 멀면 손자장면이 불기 때문이다. 한때 ‘느림 저속 배달’이라고 써 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씨는 고집스럽게 원칙을 지키는 남편이 미덥기만 하다.

식당 한 켠의 어항엔 물고기 대신 주인장이 아끼는 각종 물건이 담아져 있다. 7년 사용한 핸드폰과 삐삐, 등산용 버너, 자신의 군번줄, 등등. 그 사이에 메모지에 이씨가 젊은 시절 쓴 싯귀도 있다.

“눈을 감고 있으면 밤에서 곧바로 아침이다/ 난 늘 그랬듯이 주방에서 자장면을 만들고 또 설겆이를 한다/ 밤하늘 별처럼 수많은 단골 손님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잠깐씩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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