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고픈데 돈 없으면 말만 하세요"

맹츄 작성일 05.12.13 19: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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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쩍 날이 차가워진 요즘, 퇴근 길 칼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저녁 시간이면 따끈한 어묵 한 꼬치가 부쩍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호호' 불어 먹는 국물 한 그릇을 손에 쥐고 있노라면 누구라도 추위를 잊고, 피워 오르는 연기 속에 성냥팔이 소녀의 하룻밤 꿈을 떠올리게 된다.

수도권 지하철 1호선 관악역 계단을 나서면 이름 없는 분식집이 있다. 딱히 분식점이라고 하기보단 과일과 두부 등도 함께 파는 작은 '점방'에 가까운 곳이다. 게다가 다른 가게들처럼 버젓한 간판 하나 걸려 있지 않다.

잠시 멈춰 주인아주머니의 머리 위를 올려다보고 있노라면 자그마한 안내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글귀를 읽어내려 가노라면 어느새 가슴 한편이 따스해짐을 느끼게 된다.

"돈이 없어서 못 사 잡수시는 분은 누구나 서슴없이 말씀하시면 무료로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한때는 세상을 등지고 싶을 때도 있었지요



▲ 늘 푸근한 웃음을 잃지 않는 박정남(59) 씨.

ⓒ2005 나영준
지난 9일 저녁, "무슨 대단한 일을 한다고요"라며 손사래를 치던 주인 박정남(59)씨는 "날이 추우니 일단 따끈한 어묵부터 하나 자시라"며 손을 잡아끈다. 어느새 전남 해남이 고향이라는 구수한 남도 사투리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제가 딸을 넷을 두었는데 그만 마지막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어 잃고 말았지요. 그때부터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는데, 정말 안 가 본 병원, 안 먹은 약이 없었어요."

한때 그녀를 지겹도록 따라다니던 것은 깊은 우울과 죽음에의 강렬한 유혹이었다고 한다. 실제 약을 사 모으고, 영원히 잠들고 싶어 한 입에 털어 넣기도 했다고. 하지만 결국 죽음은 그녀를 비켜갔고 이후 그 용기를 돌려 열심히 세상에 부딪혀 살아가게 되었다고 한다.

서울에 올라 온 것은 90년도, 하지만 2년 후 남편이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자 삶은 무서운 현실이 되어 입을 벌렸다. 그래도 어쨌든 '살아보자'며 오기를 먹게 되더라는 이야기를 꺼내는 박씨의 눈가가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의 수중에 남은 것은 단돈 8만 원, 그 돈으로 과일을 사 지하철 석수역 근처에 무작정 자리를 잡았다. 이어 늘 그렇듯 단속에 쫓기고 물건을 빼 앗기고…. 고생은 천형처럼 그녀를 따라 다녔다.

세상에,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녀가 본격적으로 어려운 이들에게 마음을 열게 된 것은 그때부터다. 노점을 하다 보니 노숙을 하거나 갈 곳이 없는 이들이 눈에 들어오게 되더라고. 최소한 '입성'만이라도 갖추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목욕을 시켜주고 내의와 기타 옷가지들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 사람들을 데리고 식당에 가 밥을 사 주거나 하면 '왜 그런 짓을 하냐'며 손가락질도 받고 그랬지요. 다른 손님들이 싫어한다면서. 그래서 밥을 사다가 저와 함께 먹기도 하고…. 아무튼 그렇게 해서 집도 찾아 보내주고 그랬으니 후회는 없어요."



▲ 어묵과 호떡이 주 품목이지만 귤과 사과를 팔기도 한다.

ⓒ2005 나영준

지금의 간판을 만들게 된 건 IMF 시절, 평소 잘 보지 않던 TV에서 한 중년 남자가 빵을 하나 훔쳐 먹다가 수갑을 차게 된 사연을 접하고 나서라고 한다. '세상에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하고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고.

그리곤 바로 시내로 향해 지금의 안내판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그녀의 작은 선행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단지 음식만을 무료로 제공해 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 옷가지들을 구입해 추위에 떠는 이들에게 전해주기도 하는 등 이미 지역 일대에선 그 마음을 모르는 이들이 없다고.

사진을 찍는 현장을 보고 걸음을 멈춘 동네의 한 아주머니는 "제가 늘 지켜봐서 알지만 정말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마음 그 자체"라며 "추위와 굶주림에 떠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식사를 따로 챙겨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힘들지요. 하지만 행복하답니다"

현장에서 지켜 본 가게는 결코 크지도 예쁘지도 않았다. 대신 가게 안으로는 연신 추운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하지만 아주머니의 넉넉한 웃음으로 좁은 공간에선 온기가 느껴졌다. 손님들 또한 작은 간판에 쓰인 사랑의 마음을 읽은 탓인지 표정이 따사로워 보였다.



▲ 돈을 벌지 못 해도 가난한 이들이 배불리 먹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쁘다고.

ⓒ2005 나영준

우연히 친구를 만나러 왔다 가게에 들렀다는 김영재(37. 회사원)씨는 "여태껏 살며 이런 문구를 내 건 집은 처음 보네요"라며 "아주머니 인상만 봐도 마음이 따스해지고 힘든 세상이지만 이런 분들 덕에 삶이 밝아지는 것 같아요"하고 행복한 웃음을 감추지 못하기도.

실제 하루에 이곳을 들러 무료로 음식을 제공 받는 이들은 10명 내외. 하지만 워낙 가게 규모가 크지 않고 벌이 또한 많지 않아 매출의 3분의 1 정도가 된다고 한다. 게다가 요즘은 밀린 임대료 때문에 걱정이 되기도 한다고.

"제가 돈을 많이 벌어 그러는 줄 아는 분들도 있는데 그건 아니고요(웃음). 잘 되겠지요. 그래야 더 많은 분들을 도울 수 있을 것 아니겠어요. 그래도 기쁩니다. 제가 기쁘지 않은데 어떻게 계속 이러겠어요(웃음)."

영하의 냉기가 스며들고 있었고 "그래도 기쁘냐"는 우문을 던진 기자에게 아주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난로를 밀어주고 있었다. 겨울밤이 깊어 가고 있었고 아주머니의 이야기는 끊길 듯 이어지고 있었다.



▲ 가게에 들른 이들과 지역 주민들이 입을 모아 아주머니의 마음을 칭찬하기도.

ⓒ2005 나영준

"이리 좀 앉으세요. 다른 건 몰라도 주위에서 불쌍한 사람들 이용해 먹을라구 그러는 거 아니냐 할 땐 참말로 가슴이 아프더라구요. 참, 이 국물 좀 더 드세요. 날이 왜 이리 추운지. 그러고 보니 이제 한 아저씨가 오실 때가 됐는데…."

그녀는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가게를 찾을 이를 기다리며 길게 목을 뺐다. 취재 내내 교회에 나간 이후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인생의 참 의미를 깨달았다고 강조도 했지만 박씨의 환한 미소가 그 어떤 십자가보다도 밝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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