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철학요? 거창한 건 없습니다만 굳이 말하라면 버리는 겁니다. 자꾸 가지려고 하지 말고 버리려고 노력하는 거죠.
버려야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생기거든요. 모으려 하지 말고 버리는 것이야말로 모으는 길이죠.”
‘버리라고?’ 자격증을 52개나 가지고 있는 소병량(51)씨는 자신의 이력에 어울리지 않는 ‘비움의 철학’을 설파해 기자를 놀라게 했다.
지난 7일 서울 금천구 독산동 독산고등학교에서 소씨를 만났다. 소박하고 털털해 보이는 기술 교사. 어디서나 보임직한 평범한 동네 아저씨상의 소씨가 살아가는 법은 뭔가 특별한 데가 있다.
“자격증을 딴다는 건 자신과의 싸움이죠. 자기 자신을 다이어트하지 않고는 목표를 이루기 어려워요.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 가지고는 못 한다는 거죠. 술, 담배, 노는 것까지 다 생각하면서 자격증을 딸 수 있겠어요?”
그가 말하는 ‘버림의 철학’은 곧 ‘선택의 철학’이었다. 모든 것을 버리는 무소유가 아니라 필요없는 것을 과감히 버림으로써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논리다. 소씨는 자격증을 따기 위해 좋아하던 술과 담배도 끊었다고 했다. 술을 마시다 보면 하루저녁이 그냥 지나가 버리고, 담배를 피우다 보면 오랫동안 학업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2시간 정도 집중해서 공부해야 하는데 담배를 피우면 30분이나 1시간 앉아 있기도 힘들거든요.”
왜 좋아하는 것까지 포기하면서 자격증을 따야만 하는 걸까 의문이 생겼다.
“자격증을 취득한다는 건 자기 자신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징표거든요. 자기 자신을 측정할 수 있는 건 자격증밖에 없어요. 대학요? 요즘 누구나 갈 수 있는 게 대학 아닙니까? 대학을 나오면 그 다음 자기를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 없어요. 대학입학시험은 지나간 과거일 뿐 현재 자기 자신을 말해주는 성적표는 아니죠.”
수많은 자격증이 있지만 새로운 자격증을 받는 날이면 언제나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된다는 소씨는 ‘노력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단순한 명제의 신봉자다. 시험을 보고 결과를 기다릴 때면 학생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떨린다는 소씨에게 이미 자격증 시험은 생활의 활력소요, 삶의 영양제가 돼 버렸는지도 모른다.
“마약 하는 사람들이 그럴까? 공부하다 보면 지루하기도 하고 술을 먹고 싶을 때도 있긴 한데, 그렇다고 공부를 안 하면 오금이 저린단 말이죠. 어떤 때는 이제 그만 관둬야겠다 싶다가도 몸이 근질근질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시험을 하도 많이 봐서인지 이젠 공부하다 보면 어떤 문제가 나올지 감이 온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설레발치며 공부하진 않는다. 머리가 나쁘지만 집중력은 뛰어나다는 소씨는 언제 어디서나 틈이 나면 책을 편다고 했다. “주변에서 텔레비전을 보든 대화를 나누든 상관없어요. 주변 환경에 구애받지 않죠. 제가 뭐 하고 싶으면 그것만 집중하지 다른 건 쳐다보지 않아요.”
집중은 소씨가 말하는 ‘버림의 철학’의 실천 방법이다. 짧게는 석달에서 길게는 몇 년까지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 다른 것은 쳐다보지 않는 것이 단순하지만 그의 자격증 취득 비결이다. 뚜렷이 해야 할 일이 없을 때는 도서관을 찾는 소씨에게 심심풀이 오징어 땅콩 같은 건 필요 없다.
그렇다고 독불장군처럼 사는 건 아니다. 퇴근 후부터 밤 9시까지는 가정적인 아빠로 돌아간다. 교사인 아내와 집안일은 철저하게 50대 50으로 나눠서 한다. 밥도 아내보다 잘한다고 자부하는 소씨는 대신 텔레비전은 잘 보지 않는다. 그리고 9시 이후에는 자신만의 공부 시간을 갖는다.
“건강이 안 좋으신 아버지도 돌봐 드리고 가족들도 즐겁게 해 주려고 노력하죠. 그러지 않으면 아내가 공부를 못하게 하거든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건 제가 해야 할 일을 하기 때문이죠.”
소씨는 시험 볼 내용을 메모해 가지고 다니며 공부한다. 자가용을 이용하면 공부할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일부러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이골이 날만큼 시험을 보며 자신만의 감도 생겼지만 자격증 시험이 만만하지는 않다. 한두 번 떨어지는 건 다반사고 3년 걸려 딴 자격증도 있다. 지난한 작업이지만 한 번 따겠다고 마음먹은 자격증은 웬만해선 포기하지 않기에 50개가 넘는 자격증을 딸 수 있었다.
자격증의 종류도 다양하다. 처음에는 전기, 전자 등 학교 수업에 도움이 될 만한 분야의 자격증을 따기 시작했지만 그걸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싶어 중장비 운전 면허, 보일러 시공 기능사, 경비지도사 등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끊이지 않는 노력 덕에 소씨는 2000년 12월에는 한국기네스협회에 자격증 최다 보유자로 등록됐고, 2001년에는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신지식인’ 칭호를 받았다.
본격적으로 자격증을 따기 시작한 건 1990년 정교사로 취직하면서부터다. 지난 15년간 해마다 3∼4개의 자격증을 꾸준히 따온 셈이다. 지금은 “대학입학시험은 지나간 과거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그가 자격증을 따기 시작한 동기는 다름 아닌 학력 콤플렉스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전북 익산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지만 7남매 중 장남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초등학교 졸업 후 서울로 유학을 올 수 있었던 소씨. 중·고등학교 시절 공부도 곧잘 했던 그는 고교 2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면서부터 엇나가기 시작했다.
“아버지 사업보다도 제 마음이 망했던 것 같아요. 어려운 상황을 딛고 더 크게 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전 그렇지 못했어요. 껄렁하다고 하죠? 학교에 안 가고 친구들과 어울려 돌아다녔던 기억이 나요. 지금도 학생들에게 결석하지 말라고 말하면서도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죠.”
졸업 후에는 막일을 하며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전문대를 졸업한 후 전자통신학원 강사로 일을 했다. 운이 좋았을까? 그 당시는 흔치 않았던 텔레비전 수리 기술을 살려 ‘실기교사’로 학교에 취업하지만 정교사가 아니라는 열등감은 그를 다시 교문 밖으로 내몰았다. 개방대학을 졸업하고 교육대학원까지 졸업한 후 정교사 자격증을 받았지만 소씨는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했다.
“생각을 해 보세요. 사립학교 선생님들이 얼마나 쟁쟁한지. 최하 학벌이 연·고대인데 개방대학 졸업자라니 가당치도 않았던 거지.” 그가 학교로 돌아온 건 교사인 부인을 만나 결혼하면서다. 90년 교사임용 순위고사에 합격해 학교로 돌아온 소씨는 그때부터 자격증을 따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죠. 콤플렉스라는 게 스스로 갖는 거지 남이 주는 건 아니거든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대학이 전부가 아니더란 말이죠.” 보잘것없는 학벌 때문에 자격증을 따기 시작했는데 자격증을 따다 보니 학벌은 별것 아니더란다. 그래서 소씨는 요즘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대학을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나와서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하라”고 주문한다. 대학을 갈 필요가 없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대학이 전부는 아니라고 소씨는 강조한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노력하는 사람, 그리고 목표를 향해 무언가를 포기할 줄 아는 지혜를 가지는 것이 인생을 제대로 사는 법이라고 소씨는 자신의 살아온 삶을 통해 대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