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 창살 ‘사랑의 편지’ 햇살에 열려

맹츄 작성일 06.01.06 19:3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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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써본 이들은 안다. 어렵사리 고른 편지지에, 꾹꾹 눌러 쓴 글씨에 얼마나 진솔한 속마음이 담기는지. 편지를 받아본 이들은 안다. 우편함에 꽂힌 낯익은 봉투를 발견할 때의 설렘과 마음을 읽으며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경기도 수원시 동수원우체국 사서함 49호에는 반가움과 설레임이 북적거린다. 교도소 수감자들과 편지로 마음을 주고받는 비영리단체 ‘편지로 여는 세상(cafe.daum.net/openarms20050528)’이 이 사서함의 주인. 지난해 12월 창립총회를 열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 ‘편지세상’은 현재 회원 60여명이 적게는 2명에서 많게는 7명의 재소자들과 정기적으로 편지를 주고받고 있다.



“아무리 디지털시대라고 해도 재소자들이 마음을 털어놓거나 사회와 연락을 취할 수 있는 통로는 편지밖에 없어요. 가족들은 외면하기 일쑤고.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으니까 편지를 쓰는 거죠.”

그렇다고 이들이 재소자들을 교화시키기 위해 편지를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회장 문영애(46)씨가 신입회원들에게 빼놓지 않고 하는 당부도 이것이다.

“그 분들을 교화하거나 삶 자체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환상과 오만을 버리고 따뜻한 마음만 품으세요. 지나가다 아름다운 새소리가 들리면 새소리를 담은 편지를, 사계절의 변화를 그렇게 전하면 됩니다. 그냥 마음을 다해 편지를 쓰세요.”

‘편지세상’의 활동은 자원봉사가 아니라고 손사래 치는 이유다. 문 회장은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교화시키느냐”며 “힘들 때 이야기 들어주고 열심히 사는 모습에서 기쁨을 얻는다”고 말한다. ‘재소자들에게 편지보내기’가 아니라, ‘재소자들과 편지 주고받기’이기 때문에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것뿐이란다. 이 일을 시작하면서 품은 한결같은 다짐이다. 6년 동안 무려 40여명의 재소자와 마음을 나눴다. 회원 중에는 36년 동안 재소자와 편지를 나눈 이도 있다. 출소한 뒤 ‘편지세상’에 동참한 이들도 있을 정도다.

회원들은 집안일부터, 드라마, 책 등 그 날 그 날의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편지지에 옮긴다. 가슴 절절한 노랫말을 인용하기도 하고, 봄소식을 알리며 봄꽃을 함께 실어보내기도 한다. 단 ▲‘편지친구’의 죄명이나 형량 묻지 않기 ▲섣불리 충고하지 않기 ▲개인연락처나 사진 주고받지 않기 등은 금기사항. 혹시 있을지 모르는 불미스러운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 있다.

‘편지친구’와의 인연은 그가 출소할 때까지 계속된다. 짧게는 몇 달을, 길게는 몇 십 년 동안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생일선물로 헌혈증을 보낸다거나 교도소 담장 밑에서 찾았다는 네잎클로버, 몇 년 만에 땄다는 고입검정고시 합격증까지 편지와 동봉된 것들에는 애잔한 사연이 담겨있다. 또 출소한 ‘편지친구’가 결혼소식을 전하기 위해 세발낙지를 들고 목포에서 찾아오는 감동도 있다. “뭔가를 받아서가 아니라, 그 마음이 고맙잖아요.” ‘편지세상’ 회원들은 이럴 때 보람을 느낀다.

그러나 요즘 문 회장은 걱정이 태산이다. 재소자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입소문이 퍼져 편지신청은 많아졌지만 답장을 해줄 일반인 회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문 회장은 “사람을 사랑할 줄 알고 편지쓰기를 좋아하면 된다”며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라면 누구나 ‘편지세상’의 회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편지는 속 깊은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어요. 편지지 고르는 일부터 우체통에 넣기까지 마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콩나물시루에 물을 부으면 다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여도 콩나물은 어느새 크고 있잖아요. 저희의 편지를 읽고 재소자들의 마음이 예뻐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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