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다시 듣고 싶다, 진짜 그립다"

맹츄 작성일 06.01.07 23:5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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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지만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사랑을 간직한 이라면, 집 떠나와 열차타고 훈련소로 가던 날을 기억하는 이라면, 서른 즈음에 내 뿜은 담배 연기처럼 멀어져가는 청춘을 아쉬워한 적이 있는 이라면, 떠오르는 이름과 노래가 있다. 김광석과 그의 분신들.

10년 전 1월6일. 그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이튿날 한 조간신문은 “최근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과 사망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인기그룹 동물원의 전 멤버 김광석씨(32)가 집에서 목매 숨진 채 발견돼 충격을 주고 있다. 6일 오전 4시30분께 서울 마포구 서교동 98의12 원음빌딩4층 김씨집 거실 계단에서 김씨가 전기줄로 목을 매 숨져있는 것을 부인 서해순씨(31)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고 보도했다.

팬들은 귀를 의심하고 경악했다. 4집 ‘일어나’라는 곡에서 “…일어나 일어나/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일어나 일어나/봄의 새싹들처럼…”이라며 시계추처럼 매일 흔들리는 삶 속에서도 살아있음을 예찬했던 그가, 스스로 목을 맸다는 보도는 믿기 어려운, 인정하기 싫은 소식이었다. 팬들이 “기다려줘”하고 부를 새도 없이 그는 ‘불행아’처럼 스러졌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이제 김광석은 서른둘의 나이에 박제된 요절가수다. 그는 마음에서만, 기억에서만 떠올릴 수 있는 가객이다. 못 다 부른 그의 노래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고 1000회를 돌파한 라이브 현장도 더 이상 없다. 나이 마흔에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세계일주를 하고 환갑 때는 번개처럼 번쩍해서 정신 못 차릴 정도의 로맨스를 하고 싶다던 그의 바람은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산산이 흩어졌다.

그러나 ‘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 속밖에 없다’는 말처럼 김광석과 그의 노래는 사랑했던 팬들의 가슴에 남아 있다. ‘김광석다시부르기’(이하 다부기) 카페(cafe.daum.net/kimsagain) 회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지난 99년6월 김광석 노래를 좋아하는 4명의 음악가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다부기는 6일 현재 1만 명 이상의 회원으로 구성돼 김광석을 추억하고 기리고 있다. 카페 일부 회원들은 지난달 음력 기일에 이어 6일 저녁 김광석의 영정이 있는 ‘안양암’에 들러 생전의 그가 좋아했던 ‘마일드세븐’을 꽂았다.

다음은 다부기 회원들이 김광석을 떠올리며 읊조린 ‘부치지 않은 편지’다.


김광석의 노래를 사랑하는 화가로 그의 모습을 담는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카페 회원 김경태씨의 손가락 유화.
아이디‘그날들’

광석이형의 ‘불행아’를 들으면 늘 외롭고 쓸쓸한 느낌이 든다. 꼭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다. 그런 공감대를 느끼는 것이 나 혼자는 아니겠지만 살아가면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들도 자신에게만 유독 힘든 것처럼 생각되고 그렇게 신세 한탄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불행아’의 가사 속 인물 같아서 씁쓸한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그저 현실이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어느 시절, 어떤 사람이든 자신이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100% 만족할 수 없는 건 아닐까. 그래서 다른 사람의 처지를 부러워하게 되고. 유리잔 속을 박차고 나오는 붕어가 부럽다며 계속 부러워하다 보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던 형의 말이 떠오른다. 붕어를 따라 박차고 나가버렸던 마음. 그 알 수 없는 붕어에 대한 동경심도 어쩌면 같은 연유에서 기인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광석이형과 그 노래를 떠올리면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힘든 만큼 다른 사람들도 힘들다고 생각하며. 언젠가는 이 고난을 극복해 내고 광석이형처럼 다른 이들에게 길을 열어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남들보다 뛰어나진 않지만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도록 힘내서 열심히 살아가야겠다.

행복해지자. 형이 늘 콘서트에서 했던 끝인사처럼. 행복한 마음으로 시련과 고난과 역경에 맞서 싸웠으면 한다. 지금 힘든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은 마음일 수는 없겠지만, 또 다 같은 고통일 수는 없겠지만 희망으로 내일을 보며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소리쳐 봤으면 한다. 광석이형은 내게 이런 것을 가르쳤다. 그래서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미소 짓고 더욱 ‘사랑하자’고 말하고 싶다.

‘신발끈’

나는 그 때 버스를 타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무심하고 나른했다. 그는 김광석이 죽었다고 했다. 버스 안에는 햇살이 넘쳐나고 있었고 사람들은 모두 졸고 있는 듯 조용했다. 나는 크게 슬프지 않았지만 열이 나는 것 같아서 체온을 낮추기 위해 조금 울었다. 몇 해 뒤 어느 밤에 나는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를 들었고, 누구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을 도저히 혼자서 감당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김광석다시부르기’라는 이상한 이름을 가진 모임에 나갔다. 그랬더니 거기에, 그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심장을 가진 사람들이.

이 사람들은 만났다 하면 밤을 꼬박 새워가며 기타를 치고 하모니카를 불고 노래를 부른다. 주로 김광석의 노래를 부르지만 전혀 상관없는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사실은 김광석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가끔은 의기투합해서 무리 중 누군가의 바닷가 집으로 찾아가 비를 맞으며 밤새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새벽이 오는 게 보일 즈음이면 우리가 아는 노래가 바닥나서 캐럴을 부르고 있을 때도 있다. 노래와 비와 바다와 사람과 술과 또 노래와 바다와 사람이 한데 엉켜서 뭐가 뭔지 모를 즈음 잠이 들었다 깨고 나면, 우리는 모두 마음에 비밀을 품게 된다.

그러니까 우린 각자 ‘그’를 만난 것이다. 누구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복권의 1등 당첨금을 공정하게 나눠 가진 사이좋은 친구들처럼 음흉하게 웃으면서 일상으로 복귀한다. 입술이 간지러워도 절대 공개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비밀을 품고.

가끔 혼자서 김광석의 노래를 듣다 보면 십 년 전 버스 안에서 그랬던 것처럼 열이 날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그가 알게 해 준 나의 친구들이 생각나고, 노래를 부르지 않을 때도 기꺼이 친구가 되어 주는 그들 덕에 울지 않고도 해열이 된다. 그럴 때면 내가 그의 노래를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나의 친구들을 사랑할 수 있는 비밀스런 심장이 내게도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이것을 운이라고 불러야 마땅하지 않을까, 하면서 나는 김광석을 듣는다.




카페 '김광석다시부르기' 캡쳐
‘새벽아이’

나는 아직 서른을 채우지 못한, 그래서 광석님을 이야기하기에는 스스로 부족하다 여기는 이십대다. 그를 더 알고자 했을 때, 그는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에 꼭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광석님을, 혹은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것에도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희미하지만 중학교 다닐 무렵 삼촌에게서 생일선물로 받은 카세트테이프가 하나 있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었다. 솔직히 노래가 좋다기보다는 ‘이런 노래들도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을법한 나이였는데, 그 테이프가 계기가 돼 차츰 광석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김광석, 그의 노래가 내겐 ‘작은 종교’인 셈이다. 누군가 자신이 힘겹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을 때 기도를 하거나 종교단체를 찾아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는 것처럼, 나는 광석님의 노래를 듣는다. 가끔 따라 부르기라도 할 때면 감동적인 시 한편을 읽은 것보다 더 큰 감동으로 눈을 지그시 감게 된다. 마치 내가 광석님의 음악이 풍미했던 그 시절을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의 노래는 기복이 생긴 감정에 평정을 찾아주거나 다친 마음을 보듬어주기도 한다. 세상에는 참 듣기 좋은 소리들이 많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듣기 좋은 소리는 바로 ‘사람의 소리’다. 사람의 목소리, 그리고 노래. 이것은 광석님의 노래를 들으면서 느낀 것이다. 감동을 주니까.

비록 그는 이제 세상에 없는 사람이지만, 그의 노래는 지금까지 살아 내 부족함을 채워주니 고마운 사람이다. 대학생이 되면 꼭 한번 그의 공연을 찾아가보겠노라 다짐했던 소박한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오늘이다. 들을수록 그 목소리가 감동스럽다. 바로 이것이 그를 좋아하는,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인 듯하다. 방문을 닫고 초하나 켜둔 채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를 들어보면 내가 왜 ‘작은 종교’라 표현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갈매나무’

김광석의 노래를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동물원 노래를 들으며 저 가슴 저미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김광석이란 걸 알게 됐다. 동물원, 노찾사 시절의 노래, 그리고 솔로 데뷔 이후까지 김광석의 대부분 노래는 날 매혹시켰다. 한때는 그의 거의 모든 노래를 외우기도 했던 광팬이기도 했다.

90년대는 동구권이 몰락하고 서서히 운동의 잔치는 끝나가고 있는 그런 시절이었고 마지막 80년대 학번인 나로선 마음은 이념 지향적이나 속에서 꿈틀거리는 리버럴함과 80년대 용어로 쁘디적 잔재를 버리지 못한 어중간한 회색인이었던 같다. 대학 때 내 책상 위 작은 녹음기 옆엔 불법 운동권 가요 테이프와 김광석의 테이프가 굴러 다녔다.

노찾사 음반에서 김광석의 ‘녹두꽃’을 들었을 때 난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온전히 낭만적이고 슬픔의 바닥까지 갔으나 절망하기엔 아직 너무 젊은 듯한 그 소리. 하여 난 김광석 노래 중 그 정서를 간직하고 있는 ‘꽃’이란 노래를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동물원 시절의 김광석의 목소리 역시 갈 길은 보이지 않고 시대의 아픔을 혹은 젊음 자체가 버거운 그 나이의 아픔을 잘 드러낸 것 같다.

그의 얼굴을 직접 보며 노래를 들은 건 학전이었다. 콘서트를 두 번 정도 갔다. 그 전 대학에 초대 가수로 안치환, 김광석을 본 적도 몇 번 있었다. 95년 여름이 끝나갈 무렵 갔던 콘서트가 마지막이었다. 그 때 그가 했던 몇 마디 말들이 기억난다. 장마철이라 집에 비가 샌다고 했고,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싶은데 키가 작아서 고민이다. 약간 썰렁한 그의 유머.

그 사람 좋은 웃음과 진짜 아까운 그 서정적인 목소리. 다시 듣고 싶다. 그의 목소리로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진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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