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까지 마포구 이냐시오 야학의 학생이었던 안나 선생님(37, 직장인)에게 최근 고민이 한 가지 생겼다. 가까이 있는 젊은 동료들이 모두 불치병에 걸려 버린 것. 세계 최고의 의료진을 구성해도 고칠 수 없는 그 병의 병명은 ‘사랑 넘침병’이다.
'사랑 넘침병'에 걸린 야학 선생님들
“야학 학생일 때는 그저 고맙게만 여겼죠. 근데 좀더 가까이서 보니까 이 선생님들이 너무 걱정이 되는 거예요.”
딸을 키우는 부모의 심정으로 자신의 일은 뒷전이고 야학에 모든 걸 쏟아붓는 선생님들에게 그는 말한다. 1,2 학년 때까지만 하고 3,4 학년 되면 취업준비든 뭐든, 자신을 위한 일 좀 하라고. 이제 나같은 사람들이 좀더 움직이면 된다고. 하지만 “여기 아니면 갈 때도 없고 할 일도 없어요”라는 아무도 믿지 않는 거짓말로 젊은 동료 교사들은 야학에 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둘러댄다.
“사랑넘침병에 걸린 아름다운 바보들,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여느 대학생들과는 색다른 방학
요즘 대학생들에게 방학이란 없다. 몇 년 째 계속되고 있는 ‘취업대란’에 자격증을 따거나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이냐시오에 몸담은 야학 선생님들의 방학은 조금 다르다.
김가람 선생님(21, 서울대학교 04학번)은 ‘친구에게 끌려’ 새롭게 야학 식구가 되었다. 그에게도 방학은 중요한 시기일 터. “미쳤다는 친구들도 있어요. 공부포기했냐면서요” 하지만 김선생님은 야학 교사 임용기간이 끝나는 1년 후에도 후회 안할 자신이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제 겨우 며칠이 지났을 뿐인데도 가슴이 꽉 찬 느낌이 와요. 어떤 책, 강의가 이런 것을 줄 수 있을까요?”김가람 선생님을 끌어들인 그의 중학교 동창 조아라선생님(21, 숙명대학교 04학번)은 “야학 선생님이 되는 것은 포기가 아닌 선택이었다”고 말하고 “야학 때문에 자신의 일을 못한다는 것은 변명일거라는 것을 김가람 선생님도 알게 될 것이라 믿는다”며 야학 때문에 포기할 일은 없음을 강조한다.
학생들 “미안해요”, 선생님들 “오히려 저희가 배워요”
나이든 학생들은 이 자식뻘 되는 선생님들에게 그저 고맙고 미안할 뿐이다.
반장을 맡고 있는 노모씨(51)는 “하고 싶은 일도 해야할 일도 많은 나이인데 그 일 다 제쳐두고 무보수로 가르치는 일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냐”며 어떠한 칭찬도 모자란다며 젊은 선생님들을 치켜세운다.
이모씨(47)도 “우리가 하도 못 알아 들어서 송구스럽죠”라며 미안한 마음을 담아 감사를 표한다.
하지만 정작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칭찬에 손사래친다. “오히려 저희들이 배우는 걸요.”
김지연선생님(22, 이화여대 03학번)은 “솔직히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다는 거창한 생각을 가지고 왔는데 그것이 학생분들의 열정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서 “우리가 가르치는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더 많이 배우는 사람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이렇게 학생들에게 부드러운 시선을 가진 선생님들이 자신들에게는 엄격하다. 벌써 1년 넘게 이냐시오 야학에 몸담고 있는 윤지환(24, 서강대 01학번) 선생님마저도 “내가 능력이 없어서 학생분들을 쉽게 가르치지 못하고, 결국 필요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 힘이 들 때가 있다”고. 김안나 선생님은 “모든 학생들이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얼마나 감동 받고 있는지 알면 힘이 좀 생길텐데”라며 젊은 동료 선생님들의 자책에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하지만 “천사들만이 할 수 있는 고민”이라며 그러한 고민을 가질 수 있는 그들을 자랑스러워한다.
"선생님이 부족해서 야학 문 닫는 일은 없었으면..."
사람 덕에 행복한 그들은 사람들에게 서운하다. 2, 3년 전까지만 해도 ‘경쟁을 거친 선생님 선발’을 해야 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지원자 부족으로 남은 선생님들이 더한 짐을 나누어 짊어져야 한다. 학부생 시절 야학 선생님을 하면서 얻은 기억에 끌려 직장인이 된 후에 다시 야학으로 돌아 온 강변구 선생님(29, 직장인)은 말한다.
“더 이상 야학을 필요로 하는 학생이 없어서 야학 문을 닫아야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그 전에 선생님이 부족해서 문을 닫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더해 “물론 야학에 몸담는 것이 취업준비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살아가면서 그 어떠한 경험보다도 도움이 될 것이라 믿어요. 최소한 저에게는 그렇거든요”라며 야학 예찬론을 펼친다.
이냐시오 야학의 막내 장유진 선생님(20, 이화여대 05학번)은 야학이 “어떤 동아리보다 힘들고 많은 일들이 있는 곳이지만 가장 많이 배우고 얻어갈 수 있는 곳”이라며 “20대에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너무 즐거워요”라는 말로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이어 “사람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사람을 얻고 갈 수 있어요”라며 야학선생님의 매력을 표현했다. “사람이 그리운 이라면 한번 도전해 보는 게 어떨까요?”라고 말하는 이 나이어린 선생님의 표정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마포 이냐시오 야학을 빛내는 아름다운 열 세 개의 별, 야학 선생님들을 만나고 돌아서는 늦은 밤. 겨울밤의 차가운 공기가 전혀 춥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그 별들의 온기가 전해저서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