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미안하게 해서 미안해

맹츄 작성일 06.02.01 10:5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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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쿨한 외국 입양아들의 준비된 해피엔딩, ‘지금 만나러 갑니다’
부모에게만 고통의 책임 묻는 건 와 마찬가지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한국에는 자식을 버리는 부모가 왜 이렇게 많을까. 텔레비전을 보면 드는 생각이다. (SBS, 주말드라마)는 어머니가 버린 딸을, 재혼한 남편의 아들과 결혼시키려 한다. 버려진 뒤 구박받으며 산 딸에게 미안해서다. (한국방송 2TV, 주말연속극)은 아들을 떠난 어머니와 아들이 20여 년 뒤 만나서 푸는 애환이 극의 마지막을 이끌어가고 있다.



구태의연하다는 건 영원불멸하다의 비평적 용어일까. 이 ‘출생의 비밀’ 모티브는 세 드라마 건너 하나씩은 있다. 출생의 비밀을 적극적으로 다룬 교양·오락 프로그램도 인기다. 출생의 비밀이 시청자들을 끌 수 있는 ‘비밀’은 바로 ‘현실적’이기 때문이라고 들이대는 것 같다. 이 교양·오락극은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다. 드라마의 기승전결 중 절정에 해당할 ‘극적 재회’의 순간이 이 프로그램에서는 매회 나온다. 그리고 번번이 세월을 넘는 만남 앞에서 눈물을 참을 재간이 없다.

왜 아버지를 찾는 자식은 없을까

(문화방송, 금요일)는 일반인이 만나고 싶은 사람을 찾아달라고 제작진에게 부탁하고 스튜디오에서 당사자가 만나는 형식이다. 일반인판 다. 가 첫사랑을 주로 찾는 데 비해 의 출연자 대부분은 어릴 때 헤어진 부모를 찾는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한국방송, 일요일 코너)는 입양아들과 어머니의 재회를 다룬다.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두 프로그램에는 전형적인 스토리가 있다. 는 아버지가 폭력을 휘둘러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아버지는 계모를 들이고 계모는 아이들을 구박하고 아이들은 가출한다. 아이들은 생모를 찾는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아버지가 폭력을 행사하고 어머니가 아이들을 데리고 가출하고 아버지가 아이들을 몰래 데리고 가서는 고아원에 보내거나 입양시킨다. 두 프로그램 모두 찾는 사람이 아버지인 경우는 거의 없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 부모가 함께 등장한 단 한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어머니가 아이를 찾으러 갔다. 제작진에 따르면 접수된 사례 중 90%가 어머니라고 말한다.

출연자들이 버려진 상황은 비슷하지만 ‘외국 입양인’과 ‘국내 거주자’의 차이는 현저하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 입양인은 겉모습만 한국인일 뿐 완연한 외국인이다. 진행자는 입양인에게 기억하는 한국말, 한국에서의 생활을 꼭 묻는다. 그들 중 한국어 문장을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똥, 오줌, 변소, 떡, 밥 등 배설과 음식에 관련된 단어 몇 개를 소급해낼 뿐이다. 12살, 13살에 입양된 경우도 그렇다. 한국 땅에 대한 기억도 없다. 미국의 이선원씨는 “공항에 도착하기 전의 한국에서의 생활은 전혀 기억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들의 기억상실에서 엿볼 수 있듯 한국에서 날아온 어머니를 용서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성인이 된 그들은 자신에 대한 ‘정신분석’을 마친 상태다. 이지희씨는 “남자를 기피하는데 기억은 나지 않는 어릴 적 아버지의 폭력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하고, 프랑스의 김철기씨는 “자신에게 다시 버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정리를 끝낸 그들은 “미안하다”고 되뇌는 어머니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쿨하게 대답한다. 이들은 ‘회피적이고 부정적인’ 어머니를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로 맞는다. 프랑스의 엄진용씨에게 진행자가 조심스럽게 “이제 만날 준비가 되었느냐”고 묻자 “언제나 준비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미 연락을 주고받은 상태이거나 만날 의사가 있는 사람이 방송 대상이 되긴 하지만 이들의 여유로움 앞에서는 “입양돼서 잘됐다”고 주둥아리를 놀리고 싶을 정도다. 그래서 제작진이 밑에 까는 ‘상처와 용서’ 스토리는 가끔 집착처럼 보인다. “아이가 어머니를 용서하지 못했다”는 말을 부각시키지만 찾아간 아이들은 성숙하게 어머니를 안아준다. 만나러 가는 순간부터 해피엔딩인 것이다. 이들이 이렇게 여유로운 것은 (입양할 정도로) 부유하고 깨어 있는 ‘상류층’에 속하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의 만남에서 스튜디오에 나온 어머니의 얼굴은 대개 모자이크로 처리된다. 아이는 거리에 고아원에 할머니 댁에 버려져서 어려운 소년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들은 과거를 하나도 잊지 않았다. 여러 번 곱씹으며 되새겼을 것이다. 어머니는 용서를 구하지만 이제 다 큰 아이는 “어머니 그때 왜 그랬어요”라고 되묻는다. 시시콜콜 기억하는 과거에서 그들은 놓여날 수 없다. 프로그램의 게시판은 이런 사연들로 넘쳐난다. 그래서 감상문이 주로인 여느 게시판과도 많이 다르다. 그들은 자신의 사연을 올리며 만나고 싶은 사람을 목메어 부른다.

제도적 장치가 없었던 시대, 누굴 탓할까

이들의 심정은 에서 철환(백일섭)에게 큰딸 태희(윤해영)가 퍼붓는 말과 비슷할 것이다. 태희는 어린 시절에 버려졌다. 딸은 서러움이 북받칠 때마다 말한다. “2년은 깡통 들고 구걸 다녔어. 그때 아버지가 ‘미안하다, 고생했다’는 말 없이 손도 안 잡고 버스 타고 데려왔어. 오는 길에 호빵 사달랬더니 돈 없다고 집에 가서 밥 먹자고 한 게 우리 아버지야.”

이 프로그램들은 ‘한번 가족은 영원한 가족’, 나아가 ‘혈연주의’를 강조한다. 입양돼 잘사는 사람들을 그린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 진행자는 자주 어머니와 입양인이 ‘붕어빵’처럼 닮았다고 말한다. 그들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계속 되묻는다. 어머니의 용서를 갈구하는 것은 한국을 용서하라는 것과 비슷하다.

누구도 혼자 자라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부모가 한결같이 성실할 수도 없는 법이다. 이런 가정을 돌볼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전혀 없었던 시대에 대한 원망은 부모가 모두 뒤집어써야 하는 것 같다. 그들의 피치 못할 사정은 가슴의 한으로 남아버렸다. 그리고 외국인들은 털어버렸지만 유독 한국인만 털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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