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가 된 사랑 - 공민왕과 노국공주

프리무라1 작성일 11.05.22 00:4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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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볼모로 잡히고, 원나라 공주들과 결혼해야만 했던 고려말 고려 태자들의 비극적인 삶.

    몽고 공주와 결혼한 고려의 태자들은 왕이 되고서도, 대부분 비극적인 삶을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외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고있는 사실이라면,

    보탑실리공주, 즉 우리나라 말로 노국대장공주라고 불리는 원나라 황족 여식과.

    13살때 중국으로 끌려가, 24세가 되어서야 고려로 귀국하기전까지 그곳에서 볼모로 잡혔던 공민왕.

    두 남녀는 보기드물게 국적을 초월한 깊은 인연으로 만났습니다.

 

    그리고 고려로 귀환후, 공민왕은 파격적인 개혁정책을 펼쳤고 노국공주는 공민왕을 적극 지지하며

    내조하는데 큰 힘을 쏟았습니다.

    공민왕이 가는곳에는 노국공주가 있었고, 공민왕은 노국공주의 지원에 힘입어 고려 제2의 부흥을

    이끌었다고 할수있을만큼 여러가지 개혁을 펼치며, 원(元)으로부터의 지배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복도 잠시, 노국공주가 공민왕의 아이를 낳다 산고로 숨지자

    공민왕은 지금껏 해오던 모든 정치를 내팽겨쳐버리고 밤낮 노국공주만 그리워합니다.

    노국공주를 그리워하는 우울증이 더욱 심해져, 말년엔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짓을 했고

    결국은 공민왕 자신이 만든 자제위의 소년들에 의해 무참히 난도질 당하고맙니다.

 

    <여기까지 우리가 알고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점이 생깁니다.

  도대체 노국공주는 공민왕에게 어떤 존재였을까요?

  어떤 존재였기에, 공민왕은 그토록 힘쓰던 개혁정치마저 내팽겨쳐버리고

  밤낮 노국공주만을 그리워하며- 말년을 허무하게 보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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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노국대장공주 라는 존재는 공민왕에게 어떤 존재였을까요?

역사를 통틀어서 미인(美人)에 홀린탓에 쾌락을 좇아 정사(鄭事)를 망친 왕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지만..

사랑하는 왕비(王妃)의 죽음으로 그를 그리워하다가 정사를 망친 왕은

손으로 꼽을만큼 드뭅니다..

 

그동안 역사 교과서로만 읽고 끄덕거리며 생각했던 사실이지만,

되짚고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면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참으로 미스테리 입니다..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깊었으면

정치도, 개혁에도 일절 관심이 사라지고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만이 남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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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료> 에서 소개하는 공민왕은 다른 고려 왕들과는 달리

 호방한 기질이 없었다고 합니다.

 말타기나 활쏘기, 사냥에 관심이 없었고 감성적이였으며 또한 내성적인 면이 강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공민왕은 말타기나 사냥같은 외향적인 취미보다는 다른 것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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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국 공주가 죽은뒤, 밤 낮 거문고를 뜯으며 슬퍼했다고 한 공민왕.

 

 감성적인 여성과 달리 이성적인 남성이 음악에 관심을 갖는건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공민왕은,

 감성적이고 내성적이였기에 공주를 잃은 슬픔이 어쩌면 다른 사람의 몇 배로 더 충격으로

 다가왔을지 모릅니다..

 

 두사람이 처음 만난것은

 원(元) 나라의 수도에서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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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동양은 몽고 기병의 말발굽 아래, 무릎꿇지 않은 나라가 없었고

공민왕이 속했던 고려도 예외는 아니였습니다.

몽고와의 화친 이후, 고려는 왕자들을 몽고의 수도로 보내 볼모로 삼게 해야했고,

고려 왕자들은 타국에서 외로움을 곱씹으며, 몽고의 풍습과 문화를 익혀 고국에 돌아가

몽고인들이 바라는대로 정치를 해야만 했습니다.

 

특히 공민왕의 형(충혜왕)과 아버지(충렬왕)은 몽고 황제의 비위에 거슬렸다는

이유로 두번씩이나 왕 자리를 서로 맞바꾸는 아이러니한 일까지 벌이게 됩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공민왕은 형과 아버지가 했던것처럼 몽고 황족의 딸과 혼인을 하게되는데

여기서 바로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운명적인 인연의 만남이 시작됩니다.

 

몽고 공주와 결혼한 다른 고려 태자들의 삶은 결코 순탄치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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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노국대장공주는 타지에서 생활하는 고려 왕자에대한 배려를 아끼지않았고

그러한 공주의 노력에 감동을 받은 공민왕은 원나라 황제를 설득시키며 세월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고려의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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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부부들은 결혼생활을 시작한지 3년만 지나도,

 처음의 마음이 많이 희석되고 서서히 틈이 벌어지곤 합니다.

 

 우리 주변에도, 그리고 TV 뉴스만 봐도 처음 사랑이 식어버린 채,

 이혼이라는 파극까지 치닫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요.

 

 공민왕과 노국공주 역시 감정과 이성을 가진 사람이며, 365일 마주하며 산다면

 서로에게 싫증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겠지요.

 그러나 공민왕과 노국공주에게는 두 사람의 사랑이 더욱 깊어질만한

 계기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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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 놋다리 밟기

(유래) -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피난길이 안동에 도착했을때,

            작은 개울을 건너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그때 노국공주를 태울만한 가마나 그 어떤것도

            없자, 안동의 부녀자들이 자진해서 나섰다.

            부녀자들은 일렬로 주욱 개울에 일자로 늘어선뒤, 등을 굽혔고

            노국공주는 부녀자들의 등을 사뿐사뿐 밟으며 무사히 개울을 건널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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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왕사의 변 -

1363년(공민왕 12)에 김용이 왕을 시해하려고 흥왕사 행궁(行宮)을 침범한 사건.

당시 왕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안도치가 죽임을 당하는등, 반대파는 공민왕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다. 반대파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노국공주가 총명과 기지를 발휘하여 공민왕의

생명을 지킬수 있었다.

 

노국공주와 공민왕 역시 여느 부부와 마찬가지로

이성과 감성을 지닌 인간이였지만 두사람의 사랑을 더욱 깊게 만든 것은

 '시련' 이였습니다.

 '시련'은 두사람의 몸을 위협했을지 몰라도 두 사람의 사랑만큼은 상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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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국공주는 공민왕의 연인이자 아내요, 정신적인 지주였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시련으로 사랑을 다듬었고, 사랑은 더욱 깊어져갔습니다.

 원나라 황족의 딸이였음에도 노국공주는 언제나 공민왕을 지지했고,

 또한 노국공주의 지지를 발판삼아 공민왕은 여러 개혁정치를 펼쳤습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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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국공주가 죽은뒤,

   공민왕은 정사에 더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요승 신돈을 등용했다가 그가 정사를 망치자, 그를 참형에 처하는가하면

   자제위를 설치했는데, 이 자제위는 미소년들로 이루어진 집단으로 왕을 보좌하는 일을

   맡았지만 사실 공민왕의 성 노리개나 다름 없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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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국공주가 죽은뒤

 황실에서는 공민왕에게 후처를 맞을것을 권했지만

 공민왕은 ' 노국공주만한 여자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라고 일축하며

 그뒤 9년동안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9년뒤, 허무한 나날을 보내던 공민왕은 결국 자신이 만든 '자제위'

 소년들에의해 죽음을 맞습니다.

 

 고려의 개혁군주로 24년

 노국공주의 남편으로 16년

 그리움에서 헤어나오지 못한채 9년.

 공민왕의 죽음은 매우 허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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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성시 개풍군에 있는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무덤.

 공민왕은 노국공주의 무덤을 만들면서 자신의 무덤까지 함께 만들것을 설계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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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민 왕릉은 고려의 왕들의 무덤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합니다.

 12지신이 왕의 관 주위를 지키듯, 벽화에 그려져있으며 그 분위기는 휘황찬란하다고 하네요.

 그런데, 저 구멍이 보이시나요 ^^;

 공민왕의 관 바로 옆에 아주 작은 구멍이 있습니다. 사진에서 보는것처럼..

 이 구멍은..

 죽음이 갈라놓지 못하도록, 죽어서도 사랑을 나눌것을 결심한 공민왕이 특별히

 설계한 구멍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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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쪽 노국공주의 관이 있는곳과 공민왕의 관이 있는곳.

그 가운데를 연결하는 작은 구멍.

그것은 단순한 구멍이 아닌, 공민왕과 노국공주가 죽어서도 사랑을 나눌것을 기약하는,

영혼의 길이였습니다.

공민왕은 후세의 세계에서도 노국공주를 만나 사랑을 나눌것을 생각했을만큼,

지독하게 노국공주를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역사의 신화가 된 세기의 사랑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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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왕과 왕비가 아니면 모실 수 없는 종묘.

 그러나 그곳에는 공민왕이 모셔져 있고, 노국공주가 함께 있습니다.

고려가 무너지고 조선이 들어선 뒤에도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사랑만큼은 절대 변하지않고 전해져내려왔다는거지요.

 

 <고려사>는 조선에 의해 쓰여졌는데,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위해서

 고려왕들을 상당수 폄하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공민왕 역시 말년의 비극의 결말을 부풀려서 집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선의 지식인들 조차 공민왕 자체를 깎아내렸을지는 몰라도,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사랑만큼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 남자가 세상에 태어나, 한 여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는 것.

 그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닙니다. 인간과 인간이 마주하는 일이기에 분쟁과 다툼이

 분명히 있을것이고, 처음 만났을때의 사랑과 결심이 어느세 부터인가 희석되어

 다툼과 분쟁만 남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공민왕과 노국공주는 끝까지 함께 했습니다.

 두 사람은 죽어서도 함께 할 각오를 할만큼, 열렬히 평생을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사랑을 굳게 다져준것은..

 

돈, 명예, 쾌락같은 누구나 꿈꿔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시련   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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