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글이 종잡을 수 없다고 했는데, 그의 글 전체를 놓고 보면 종잡을 수 없는 정도를 넘어 내용이 서로 모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떤 주장 뒤에는 그것을 뒤엎는 주장이 따르고, 그 주장에는 그것을 뒤엎는 또다른 주장이 따른다. 그렇다 보니 처음의 주장으로 되돌아갈 때도 많지만, 그렇다고 그 뒤엎기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마치 둥근 고리에 처음과 끝이 없듯이 그의 뒤엎기도 끝이 없다. 같은 시기에 이곳에서 그렇다고 했다가 저곳에서 그렇지 않다 한 경우도 많다. 독자로서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가닥을 잡을 수 없음은 물론이요, 심지어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면서 그에게 심하게 농락당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갖게 된다. 그의 글을 읽는데에는 각별한 인내와 정성이 필요하다고 학자들은 말하지만, 거기에도 한계라는 것이 있어서 많은 독자들은 그의 사상의 넓이를 조망하고 깊이를 헤아려 보기 전에 그를 떠난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독자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는 것이 니체의 철학이다. (32p 중) ---------------------------------------------------------- 니체라는 이름에 우리는 수많은 이미지들을 갖고 있다. 그 이미지들은 사실 하나하나의 편린일 뿐 전체의 조망이 아니다. 책에서도 나오는 말이지만, 니체의 철학은 광산과 같아서, 다이아몬드를 찾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그것만 보이고, 니켈이나 텅스텐은 보이지도 않는다는 식으로 니체의 철학들을 봐 왔다. 때문에 일본인이 간추린 니체의 말 1,2 같은 책들은 사실 니체를 온전히 이해하는데 오히려 방해를 한다고 본다. 또한 일본은 니체의 위버멘쉬 개념을 한자로 초인이라고 바꾸어 여러모로 한국에서 니체를 오독하게 하는데 공헌한 곳이기도 하다. 영어권 조차 슈퍼맨인가 오버맨인가 그냥 위버맨쉬인가를 두고 이리저리 갈린다. 어떤 철학자든 시대의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한다는 것이 글쓴이 개인의 생각이다. 그들의 말에 맞는 현상의 편린들과 그것을 사색하는 재미는 있을지언정, 그것에 올인하고 심취하기엔 위험이 높다는 생각도 그것에서 유래한다. 예를 들어 하이데거도 비록 나중에 실망하나마 한 때 나치를 신봉했던 전력이 있고, 루소는 권력자들에게 쫒겨다니며 사느라고 그 고통에서의 회피를 위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주장하며, 이후의 포스트모더니즘조차 권력과의 미시적인 관계 부분들에만 집착했을 뿐 실질적인 거시에서는 그닥 성과를 내지 못하고 리차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같은 사람들에게 퍽큐나 쳐먹으며 살아가고 있다. 철학의 시작이었던 형이상학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의 상황적 비유는 당시의 사상과 환경, 미진한 자연과학들의 수준만큼이나 조악하다. 그런 니체 이전과 니체 이후의 철학들에 비해서, 니체는 거칠고, 야수적이며, 모든 것을 파괴하고, 일방적으로 단언하며, 우습게도 그 일방적 단언을 스스로 뒤집는다. 그러면서도 그걸 구차하게 변명하려 들지 않는다. 그 당시 그 상황에서는 그것이 맞았다는 듯 철판을 깔아버린다. 이런 것은 관점주의 (간단하게 이 단어를 설명하자면, 우리나라의 황희 정승의 에피소드가 이 개념을 가장 잘 설명한다)로서 다가가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어떠한 테제도 그것이 참이라는 것으로 참고요소의 하나로 삼아야 한다는 것. 이것은 비단 저자의 주장뿐 아니라 야스퍼스가 니체를 어려워 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관점주의에 의한 구성은 뭔가 하나의 논리로 결딴이 나야만 만족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행동이 될 수도 있다. 인내는 여기에서 필요하다. 신경을 건드리고,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이래저래 휘젓는다. 그럼에도 그의 편린들은 나름의 재미가 있다. 그의 말처럼 왜 그렇게 돌아가는 건지, 그의 말처럼 왜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건지를 생각하는 사이, 사색은 더욱 여러가지를 요구하고, 돌아보게 만든다. 이 책은 그런 니체를 둘러싼 연구들과 니체를 읽는 방법들에 조그만 길라잡이의 디딤돌을 놓고 있다. 니체 연구에 대해서는 국내에서조차 어느 정도의 학계적 권위게임들이 존재한다고 본다. 그리고 이 책의 작자 정동호님도 그런 파워게임 속에서 세를 이루는 사람들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권위는 있을 수 있으나, 그 권위 때문에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이 일백푸로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가치로 따지면, 니체가 어땠다 저땠다라고 단언하는 것에 치중하는 것보다 니체의 철학을 구성하는 키워드들과 그에 따른 논란들을 잘 정리해놓고 있는데에 더 점수를 주고 싶다. 니체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수많은 방편들 중 최근이고 다양한 것이라는 점. 그렇게 이 책의 신선함을 개인적으로 정의해본다.
책 내용에 관련된 사족으로, 1. 앙증맞은 아이러니 하나--- 니체는 나폴레옹을 자신이 가장 우월한 인간상이라 생각하는 영웅들 중 하나로 꼽으며, 위버멘쉬에 이를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로 그와 같이 신체건강하고 정신에 야심이 넘치는 인간이 이상적인 인간이라 칭하였다. 그런데 왠걸. 나폴레옹은 사실 건강하지 않았다! 신경과민에, 지병으로 치질에, 잠까지 줄여서 종합병원 꼴이 되어 건강을 스스로 더 해쳤다. 뭐냐고! ㅋㅋㅋ 2. <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했는가> 김진석, 개마고원, 2009 이런 책도 있는데, 이 책은 저자의 위세에 반하여 민주주의에 대한 상당히 조악한 전제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목숨걸고 지켜야 한다는 어떠한 사상적 교조로 전제했던 과거의 운동권적 전제라고 해도 될 정도의 인식인데, 우리가 아직까지 더 나은 것을 발견하지 못해 버리지 못하는 하나의 도구로 민주주의를 상정해본다면, 이야기는 천차만별로 달라지게 될 것이다. 다만, 니체에 대한 학계적 파워게임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 책으로 충분히 감지해볼 수 있다. 문제는 언제나, 배타성인 것이다. 3. 이 다음에는 니체 전집에 도전해볼까 한다. 물론 번역본이기는 하지만 ㅠㅠ 쉽지 않을 것이겠지...... 4. 본문에서도 말씀드렸지만.......노파심에........ㅋ<니체의 말 1-니체의 말 2>, 시라토리 하루히코, 삼호미디어 2010 같은 책은 비추천 드린다. 니체가 한 말 중 좋은 말만 추려 포장한 것이다. 니체는 단언컨대 좋은 말 10에 비난과 쌍욕 조롱 비아냥 격분의 말들 90으로 저서를 채웠다. 읽는 사람조차 격정적이고 혼란스러워진다. 심지어 바그너는 그의 유고노트 포함 내내 단골개껌이 되어 씹히고 씹히고 또 씹혀 가루가 된다.그런데 어쩌나. 비난과 쌍욕 조롱 비아냥 90 속에 그의 엔간한 사상적 기반과 그를 이해하기 위한 단초들은 다 들어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