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종교의 교리는 사실 상당히 좋은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돌아볼때 "좋은게 좋은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국교로 인정되어 널리 퍼지는 경우는 단 한가지 경우 뿐이었다. 지배자(기득권)의 통치를 합리화 시켜줄때.
1. 기독교 - 중세 유럽국가들
시련은 하나님에 대해 예비된 것이며, 더 큰 행복과 천국이 기다리고 있다. -> 원뜻: 현실이 힘들어도 믿음을 지키며 남을 배려하고 용서하는 삶을 살자. -> 합리화: 가난한 사람들이여. 내가 해먹는 건 해먹는 거고, 너희 들은 천국가면 되니까 참고 살아라.
2. 불교 - 통일신라, 고려시대의 우리나라
인과응보 및 전생설 -> 원뜻: 나의 힘든 현실을 남을 탓하는 마음보다는 자기 성찰을 통한 반성으로 밝은 삶을 살자 -> 합리화: 내가 해먹는 건 전생에 잘해서고, 니가 못사는건 전생에 잘못해서야.
또한 계급의 분화는 대개 절대자(신)에게서 받은 은총정도나 신에게의 접근성으로 이루어진것도 다들 잘 아실거라 믿습니다. 본질이 희석, 왜곡된 부분이 있다면 충분한 참작이 있어야 마땅합니다. -------------------------------------------------------------------------------------
많은 반론이 예상됩니다. 하지만 국사나 세계사에 대해 조금만 공부하신 분들중에는 공감하시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근시안적인 소모성 논쟁이 아니라 편견없이 모두 각자의 진리와 구원이 임하도록 (^^) win-win하는 바람직한 관계가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에서 입니다.
바늘시험은 찔러서 피가 나오는가 나오지 않는가를 검사하는 방법입니다. 간단한 손조작으로 피가 나오지 않게 한 뒤, 마녀로 몰아붙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눈물시험은 눈물이 나오는가 나오지 않는가를 보는 시험입니다. 그런데 그 기도문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눈물이 나올 수가 없는 문장을 듣고 울어야 합니다.
시험에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마녀가 아니라고 끝까지 부정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고문이 행해졌습니다.
3. 고발한 사람에게 상을 주는가
마녀를 처형하고 남은 재산(처형에 드는 모든 비용은 마녀의 재산에서 몰수했습니다.)의 1/3은 교회, 1/3은 국가, 1/3은 고발자가 가질 수 있었습니다.
사실 초기 마녀재판은 다소 민사사건의 형식을 가지고 있어서, 상대방이 마녀가 아님이 밝혀진다면 고소를 한 사람이 마녀가 받는 형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밀고나 고발이 드물었습니다. 그러나 마녀재판이 형사사건의 형식, 즉 무고라 하더라도 고발자가 처벌을 받지 않는 방식이 되면서 마녀재판의 수는 증가합니다.
부모자식간에 고발했다는 것은 잘못된 말입니다. 보통 마녀의 주위 사람들은 모두 마녀로 몰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지요.
4. 가톨릭이 아닌 사람은 마녀로 몰리지 않았는가
마녀사냥이 심해지기 시작한 것은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입니다.(즉 중세가 아닌 근세에 마녀사냥은 절정에 달하게 됩니다.) 이때 많은 개신교도가 가톨릭 교회에 의해 마녀로 몰려 사형당합니다. 하지만 개신교는 개신교 교회 또한 가톨릭 교인들을 마녀로 몰아 처형합니다. 그 예로 신교도였던 엘리자베스 1세 잉글랜드 여왕과 스코틀랜드 왕이자 후에 잉글랜드 왕이 되는 제임스 1세를 들 수 있습니다.
종교가 가톨릭이든, 가톨릭이 아니든 마녀로 몰릴 위험은 모두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계층이 높은 경우라면 종교나 정치적 이유로 마녀로 몰릴 것이고, 계층이 낮은 사람은 기타 다른 이유도 모두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