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공포] 동굴속의 하룻밤

데이비듬백원 작성일 06.03.07 15: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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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민 오빠. 너무 힘들다. 언제 이 산을 다 넘어가지?"

윤미는 내 뒤를 힘겹게 따라오며 짜증을 냈다. 나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 보았다.

"후... 나도 힘들어. 그나저나 길을 잘못 들어선 것 같다. 어쩌지?"
"참나. 형민 오빠... 벌써 해가 지려고 한단 말이야. 어떻게 할려고 그
래?"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오늘 아침, 등산을 결심하고 이 산에 오른 것
부터가 잘못이었다. 원래는 이 산 아래 마을에 있는 친구 집에서 대학
후배인 윤미와 며칠 놀다가 갈려고 온 건데 갑자기 친구가 지방으로 출
장을 가게 되어 친구도 없는 집에서 죽치고 있느니 산이나 올라가 보자
하는 생각에서 결행된 일이었다.

"형민 오빠... 아침에 그냥 서울로 올라갔어야 했어. 괜히 길도 모르는 산
을... 넘자고..."
"윤미야. 난 이 산이 이렇게 험하고 높을 줄 몰랐다고. 내 생각에는... 이
왕 여기까지 온 거... 놀지도 못하고 그냥 서울로 올라가느니... 등산이나
하자는..."

윤미는 땅바닥에 털썩 주저 앉으며 투정을 부렸다.

"몰라. 이제는... 날 업고 가든지..."

나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윤미를 달랬다.

"조금만 가면 내려가는 길이 나오겠지. 자, 힘내... 나만 믿으라고..."

말은 그렇게 자신있게 했어도 약간은 걱정이 되었다. 급작스런 산행이라
텐트 같은 등산용품은 물론 먹을 것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
었다.

"어? 이젠 비까지?"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이건 좀 심했다. 조금 전까지도 해가 쨍쨍 났었는
데 난데없이 소나기라니...

"형민 오빠... 정말 이젠 어쩔꺼야? 비까지 내리니 날이 금새 어두워질텐
데..."

거의 울상이 되어버린 윤미를 바라보자니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흠... 어떻게 되겠지, 뭐. 혹시 알아? 가다보면 오두막집 같은 거라도 나
올지 모르고... 어쨌든... 어서 일어나기나 해..."

윤미도 체념을 했는지 투덜대며 일어나 나보다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더니 더 이상 산길을 가는 것은 힘들게 되었다. 천
상 어디서 비라도 긋고 가야겠는데 마땅한 장소가 눈에 띄지 않았다. 윤
미는 가을비에 옷이 다 젖어 그런지 조금씩 몸을 떨기 시작했다.

"형민 오빠... 나, 추워..."
"참나... 어떡한다?"

윤미에게 겉옷을 벗어주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온통 빽빽이 나무들로 뒤
덮혀 있는 산속이라 비를 피할만한 적당한 곳이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어? 형민오빠. 저기 봐."

윤미가 밝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어? 저거 뭐야? 동굴이네? 윤미야 잘됐다. 우선 저기서 좀 쉬었다가 비
가 좀 그치면 다시 산을 내려가는 길을 찾아보자."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윤미는 동굴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나도 윤
미를 따라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동굴은 밖에서 보던 것보다도 훨씬 크고 깊었다. 나는 동굴 안을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너무 컴컴해 한치 앞도 분간이 가지 않았다.

"일단은 여기에 앉아 있어. 내가 동굴 안을 좀 살펴보고 올께."

윤미는 썩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내 팔을 잡았다.

"어딜가? 벌써 어두워졌는데... 오빠... 그냥 여기 있어. 나, 무섭단 말이
야..."
"훗.. 겁쟁이... 동굴 안에 산짐승이라도 있으면 어떡해? 금방 둘러보고
올테니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나는 주위에 아직 젖지 않은 나무가지를 찾아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는
천천히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은 안으로 가면 갈수록 넓어졌고 이쪽 저쪽으로 작은 굴들이 많이
있었다. 더 이상 들어갔다가는 길을 잃어 버릴 것 같아 가던 발길을 돌
려 윤미가 있는 입구 쪽으로 나왔다.

"음... 동굴 안에는 별거 없는 것 같다. 자, 나무나 주워와 모닥불이라도
피고 옷이나 말리게..."

잠시후 윤미가 주워오는 나무를 모아 모닥불을 지폈다. 윤미와 나는 모
닥불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앉았다.

"벌써 7시네? 그런데 비는 그칠 생각을 안하니..."
"참나 어쨌든 오빠의 급한 성격은 알아줘야 해. 잘 알지도 못하는 산을
오르는데 변변한 준비도 안하고... 이러고 날 밝을 때까지 그냥 있을 거
야?"
"그럼 어쩌니? 뭐 뾰족한 수라도 있냐?"
"으이구, 따라 나선 내가 바보지.."

나는 윤미의 투덜거리는 평소의 성격을 잘 아는지라 더 이상 대꾸를 안
하고 동굴 벽에 기대 눈을 감았다. '혼자 짜증을 부리다가 제풀에 지치
면 그만 두겠지'라고 생각하면서...

"헉... 오... 오빠..."

잠이 얼핏 들었는데 윤미가 무엇에 잔뜩 놀란 얼굴로 나를 흔들어 깨웠
다.

"음... 왜... 그래?"
"오... 오빠... 동굴 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이미 밖은 해가 져서 캄캄하였고 동굴 안은 겨우 피어있는 모닥불 불빛
만이 아른거릴 뿐이었다.

"무...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 그래?"
"이상해.. 나도 잠시 졸고 있었는데... 여자 웃음 소리 비슷한... "

갑자기 머리가 쭈뼛해졌다. 갖다나 모닥불의 벌겋게 보이는 윤미 얼굴도
오싹한 참이었는데 그 얘기를 듣고 나니 한층 더했다.

"설마... "

윤미가 내곁으로 바싹 다가와 앉는 순간 동굴 속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
려왔다.

"끼... 히... 히... 왔네? 끼... 히..."

나는 너무 놀라 윤미를 꽉 껴안았다. 윤미도 거의 제정신이 아닌 것 같
았다.

"뭐... 뭐지? 저... 건?"
"오빠... 어떡해? 너... 무... 무서워..."

"끼... 히~~~"

잠시후 이상한 목소리가 한번 더 들리더니 동굴 안쪽에서 스산한 바람
한 줄기가 불어왔다. 모닥불이 금방이라도 꺼질 듯 아른거렸다. 나는 용
기를 내어 모닥불 하나를 집어들고 일어났다.

"어.. 어디가려구? 오... 빠..."
"살펴보고 올테니... 만약 이상한 일이 생기면 동굴 밖으로 무조건 뛰어
나가라구..."
"오... 오빠... "

윤미가 겁에 질려 나를 붙드는 걸 억지로 떼어 냈다.

"괜찮아. 너무 겁먹지 말고 여기 있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나도 겁이 났다. 그러나 여자 앞에서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겨 처음 동굴
을 들어올 때 살펴봤던 동굴 안으로 다시 걸어 들어갔다. 그러나 조금전
들었던 여자의 기괴한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동굴 안은 너
무도 고요한 침묵만이 감돌 뿐이었다.

"음... 그러면, 아까 그 소리는 뭐였지? 바람 소리였나?"

그러나 바람 소리라고 여기기에는 뭔가 께름직해서 잠시 더 둘러보다
가 다시 동굴 입구 쪽으로 나왔다. 나는 동굴 입구에 여전히 윤미가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다가가 윤미 곁에 털썩
주저 앉았다.

"동굴 안에는 아무것도 없어. 아마 우리가 잘못 들었나봐. 바람 소리였던
가... 아니면 날짐승 소리였겠지."

그런데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 윤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윤미는 촛
점없는 눈동자로 망연히 모닥불만 바라보고 있었다.

"윤... 윤미야... 왜 그래?"

윤미는 한참을 동상처럼 앉아 있다가 천천히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기괴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절... 만나러 오셨죠...?"
"헉... 윤미야..."

너무 놀라 심장이 멎는 듯 했다. 윤미의 두 눈은 빨갛게 충혈이 된 채로
입술 반쪽을 실룩거리고 있었다.

"저... 정신차려..."

나는 윤미의 어깨를 잡고 몇번을 흔들었다. 그러나 윤미는 야릇한 미소
를 지으며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절... 만나러 오신 거... 맞죠...?"

놀라 어쩔줄 몰라 하는데 느닷없이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엉겁결에 윤
미를 밀치고는 벌떡 일어났다.

"윤미야... 정신차리란 말이야..."

그러나 윤미는 여전히 멍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더니 갑자기 크게 웃
어대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나 같은 건 죽어야되. 크하하하"

윤미는 웃음을 그치고는 내가 말릴 틈도 없이 곁에 있던 커다란 돌을
높이 쳐들더니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뜨렸다.

"엇! 유... 윤미야..."

돌이 바닥에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윤미의 머리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곧이어 윤미의 머리에서 붉은 피가 샘솟기 시
작했다.

"이... 이런..."

너무도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정신이 없었다. 윤미는 땅바닥에 쓰러
진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나는 어쩔줄 몰
라하며 윤미에게 다가가 붉은 피가 연신 뿜어져 나오는 머리를 손으로
억지로 막으며 소리쳤다.

"윤미야... 윤미야!!!"
"캑... 헉!"

윤미는 고통스러운 듯 신음소리를 내다가 잠시후 조용해졌다. 나는 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손으로 훔치며 윤미의 가슴에 귀를 대어 보았다.

"주... 죽었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젠 어떻게 해야하나.. 어떻게... 그때 느닷없
이 찬 바람이 한줄기 불어 오더니 그나마 아른거리며 피어있던 모닥불
을 꺼버렸다. 순식간에 동굴 안은 칠흙처럼 어두워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피비린내가 내 비위를 건드려왔다. 나는 더듬거리며 일어나 빗소
리가 들리는 동굴 밖으로 냅다 뛰기 시작했다.

한참을 정신없이 뛰다가 멈춰서서 숨을 돌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갑자기 왜 윤미가 저렇게 행동을 했으며 또...
거세진 빗줄기가 속옷까지 적셔올 때쯤 눈 앞에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나는 이것저것 생각 할 겨를도 없이 그 쪽을 향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불빛을 따라 가니 조그마한 오두막집이 보였다. 무턱대고 안으로 들어가
큰소리로 사람을 불러댔다.

"누구 안 계세요? 아무라도 좋으니... 제발... "

너무 심하게 뛰어서 그런지 이상하게 어깨가 묵직해져 옴을 느꼈다. 그
때 방문이 '삐거덕' 열리며 할아버지 한 분이 얼굴을 내밀었다.

"누구슈? 이 밤중에..."

앞 뒤 생각할 틈도 없이 방안으로 뛰어 들어가며 소리쳤다.

"사... 사람이 죽었어요... 도와주세요... 저 위에 있는 동굴에..."

나의 다급한 심정과는 정반대로 할아버지는 너무도 담담하게 얘기했다.

"진정해요. 젊은이..."
"할... 아버지... 지금 진정하게 됐어요? 사람이... 죽었다고요... 사람이..."

할아버지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담배를 꺼내 피워 물었다.

"그 동굴은 처녀귀신이 나온다고 모두들 가기를 꺼려하는 곳인데... 거기
에 갔었던 모양이구만..."
"예? 귀.., 귀신이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할아버지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고는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
했다.

"4년 전이었수. 이 산골에 한 처녀가 살았었지. 그런데 그 처녀는 태어날
때부터 얼굴이 기형이었어. 입술 반쪽이 뒤틀려 있었고 두 눈은 토끼처
럼 빨갛고... 거기다가 머리칼은 반넘어 없었으니..."

이제는 어깨 뿐만 아니라 가슴까지 답답해짐을 느꼈다. 할아버지의 얘기
가 계속됐다.

"그 처녀는 나이가 들면서 더욱 자신의 그런 흉칙한 모습을 비관했지...
결국 그 처녀는 자신의 못난 얼굴을 탓하며 밖에도 돌아다니지 않고 저
위 동굴 속에서 숨어 살다시피 했어... 그러던 어느날이었지..."

나는 할아버지의 너무나도 진지한 태도에 기가 질려 아무 소리도 못하
고 얘기를 들었다.

"이 산에 등산을 왔던 어느 남자가 그 동굴에 무심코 하루를 머물렀는
데... 동굴 안에서 살다시피 하던 그 처녀가 한눈에 그 남자에게 반한 거
야. 하지만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고는 밤새 몰래 지켜볼 뿐이었지... 그
리고 그 남자는 다음날 떠나갔고... 그후 그 처녀는 혼자 상사병에 걸려
괴로워하다가 동굴 벽에 죽을 때까지 머리를 몇번이고 부딪혀 자살을
했지. 훗... 그 다음부터는 그 동굴에 이상한 소문이 퍼졌어. 남자만 들어
오면 그 처녀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나는 문득 의문이 생겼다.

"그런데 할아버지,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죠? 그 처녀 얘기를?"

할아버지는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그 처녀가 바로 내 딸이었거든? 그리고 그 애는 자신을 그런 몰골로
낳아준 것에 대해 나를 무척이나 원망하더니... 결국은 죽어서도 내 곁을
떠나지 않더군."

문득 할아버지가 미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내 어깨는
물론 가슴 그리고 양팔까지 무언가가 죄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하... 할아버지... 그런 말도 안되는..."
"풋... 그런데 그 애가 자네한테 반했나 봐... 자네 등에 착 달라붙어 있는
것을 보니..."
"예?"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조금 전 할아버지가 내게 얘기해 주었던 똑같
은 모습의 여자가 내 등쪽에 착 달라붙어 두팔로 나를 꽉 안은 채 비죽
이 웃고 있었다.

"아... 악!"

할아버지는 여전히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나지막히 내게 말했다.

"억지로 달아나려 하지 말게... 그 애는 죽어서도 지 애비를 괴롭히는 그
런 못된 애란 말일세... 예전에도 이미 그 동굴에 갔던 남자들이 여럿 죽
었어... 자네처럼 저 애가 뒤에서 꼭 껴안아 숨이 막히고 뼈가 으스러져
서..."

그 기괴한 모습의 여자는 머리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두 팔과 두 양다
리로 나를 더욱 더 꼭 껴안으며 중얼거렸다.

"끼히히히... 절 만나러 왔죠?"
"아... 안돼... 케... 헥..."

나는 조금씩 온몸의 뼈가 어긋나는 것을 느끼며 숨을 헐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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