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공포]섬뜩한 연극 공연

데이비듬백원 작성일 06.03.07 15: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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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한 연극 공연


나는 초조한 기분에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새벽에 되는데로 겉옷을
걸치고 소극장으로 향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연극이 끝난 무대는 항상 을씨년스럽다. 더욱이
새벽에 아무도 없는 무대 위로 올라서는 건 더없는 적막감과 고즈넉함
에 약간의 공포감마저 느끼게 하곤 한다.

-삐이꺽~-

낡은 소극장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새벽이라 그런지 문소리가 더욱 크
게 들렸다. 컴컴한 무대 위에 더듬거리며 올라서서 전기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켰다. 형광등 불빛이 몇번 깜빡이더니 이내 불이 들어왔다. 나는
조명실로 들어가 연습에 필요한 조명의 불들을 하나씩 켰다.

'휴~~ 다음주가 공연 시작인데...'

왠지 모를 불안감이 밀려왔다. 다음주 월요일부터 막이 오르는 이 연극
은 내가 연극배우가 되고 난 후 처음으로 배역다운 배역을 맡은 첫 작
품이었다.

더불어 연출과 적은 돈이나마 제작비까지 댔으니 이번 연극의 흥행 여
부가 나에게는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두달째 연습에
연습을 해오고 있는 중이지만 왠지 예전같이 만족한 연기가 나오지를
않았다. 그래서 결국 혼자서 조용히 연습을 해볼 요량으로 새벽에 소극
장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어쩌면... 혼자 진지하게 연습을 해보면 연기에 대한 느낌이 되살아
날지도...'

그것은 나의 바람이라기 보다는 간절함이었다. 사실 이번 연극을 하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얼마전 이 연극을 기획한 상규가 느닷없이
자고 있던 나에게 전화를 하더니 대뜸 자기가 제작비를 다 댈테니 이
연극의 연출을 맡아달라고 했었다.

상규는 대학교 연극영화과 동창녀석인데 한동안 연락이 뜸하다가 일년
만에 연락을 한 것이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연출을 맡아 달라니?"
"무슨 소리는? 말그대로 같이 연극 하나 만들어 보자는 거지."

나는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그래... 너나 나나 연극을 좋아하는 놈들이니 같이 해보면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기는 한데..."

상규는 잘됐다는 듯이 힘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희곡은 내가 이미 다 썼어. 2년전부터 생각했던걸 얼마 전에야 탈고를
했지. 너도 읽어보면 마음에 들거야. 내용도 좋고 구성도 탄탄하고..."
"참나... 지가 지은 글을 지가 칭찬하네..."
"할래 안 할래? 사실 너 아니더라도 부탁할 사람은 많아..."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승낙을 했다. 상규의 말대로 나 아니더라도 연출
할 사람이 많은 건 사실이니까... 괜히 더 사양했다가는 좋은 기회를
놓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전화를 받은 다음날로 상규가 운영하고 있는 소극장으로 찾아가 이번
연극에 대해 몇가지 의견을 나누고 자신이 썼다는 희곡을 받아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희곡을 살펴보는데 그 내용이 너무 재미있어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단숨에 세번이나 읽어버렸다. 연극은 일인 이역의 단순한
구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
었다.

나는 날이 밝는대로 상규한테 전화를 걸어 내가 연출은 물론 주인공까
지 하겠다고 우겨댔다. 예상외로 상규는 흔쾌히 허락을 했다. 나는
이번 연극이 꼭 성공할 것이라 믿고 없는 돈이나마 털어 제작비의 일부
를 댄다는 얘기까지 했었다.

그 일이 석달 전이었다. 그런데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연습을
아무리 해도 마음처럼 흡족한 연기가 나오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궁리끝에 내 자신의 연기를 비디오로 녹화를 해서 찬찬히 연구를 하기로
결심을 하고 새벽에 소극장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나는 가지고 온 비디오 카메라를 객석 한가운데 설치를 하고 이미 배경
설치가 끝난 무대에 올라섰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연기를 하자니 웃음
부터 '피식' 나왔다.

'젠장...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하겠구만...'

그러나 날짜도 촉박한데다가 이미 한번 결심한 일... 끝까지 해볼
셈으로 비디오 카메라의 플레이 버튼를 눌러 놓고 연기에 들어갔다.
간혹 실수를 하고 어떨 때는 만족스런 연기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마지막 결말 부분에 가서는 도저히 내면의 연기가 나오지를 않았다.

희곡의 내용상 마지막에 주인공이 자살을 해야 되는데 그것이 도통 실
감이 나지 않는 공허한 대사의 나열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두시간을
쉴새없이 연기를 하고 이마에 흐른 땀을 대충 닦고는 설치해놨던 비디오
를 들고 극단 사무실로 들어갔다.

나는 곧장 비디오 카메라를 모니터에 연결하고 처음부터 다시 틀어 보
기 시작했다. 화면에 나오는 내 모습이 웬지 어색하게 느껴졌다.

'훗... 영화배우를 하지 않은게 천만 다행이지... 영화에 나온 나를
보면 아마 웃겨서 다신 연기를 못했을꺼야...'

5분정도 녹화한 비디오를 쳐다보는데 뭔가 이상한 점이 느껴졌다.

'뭔가... 이상한데... 뭐지? 아...? 엇! 저... 저럴... 수가...'

분명히 처음에는 무대 위 탁자에 놓여 있던 재떨이가 께끗하게 비어
있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담배꽁초가 쌓여가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도
없는 썰렁한 사무실에 앉아 있던 나는 너무 놀라 비명을 지를뻔했다.

'어... 어떻게 된일이야... 저게?'

잔뜩 긴장을 하고 화면을 지켜보았다. 한 10분쯤지나자 탁자 위로 뿌옇
게 담배연기가 보이더니 내가 한창 연기하는 뒤쪽에 한 남자의 형체가
슬며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 세상에...'

그 남자는 내 뒤에 앉아 연기에 들떠 대사를 읊조리는 나를 담배를 물
은 채로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머리칼
이 쭈볏섰다. 아무도 없는 무대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니....

'이... 이런...'

나는 놀라서 극단 사무실 문을 벌컥 열고 무대로 뛰어나갔다. 아직도 조
명의 불빛이 희미하게 켜져 있었지만 아까 처음 들어왔을 때와는 분위
기가 달랐다. 은근한 담배 냄새가 풍겨오기도 했고... 또한...
나는 허겁지겁 무대 위의 탁자로 다가가 재떨이를 살펴보았다.

'아......'

그것은 현실이었다.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수북이 담겨 있었다. 그중
어느 한개는 방금 끈 것같이 따스한 온기 마져 남아 있었다.

'세상에... 이럴수가.'

섬뜩한 기분에 무대를 휘 둘러보았다. 그러나 나 자신의 느낌과는 달리
너무도 조용했다. 나는 무대 구석구석을 조심스럽게 살펴보다가 다시 사
무실로 들어왔다. 화면에서는 내가 한창 연극에 몰입되어 정신없이 연기
를 하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아까 나를 쳐다보던 그 남자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저으
기 안심을 하며 내 눈을 의심하는 순간 화면에 언뜻 그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조금 전 조용히 앉아 담배를 피던 얼굴이 아닌 잔뜩
일그러지고 흥분에 들뜬 묘한 표정이 되어...

순간 가슴이 콱 막혀오는 것 같았다. 바로 내 뒤에 이상한 남자가 서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줄도 모르고 혼자 연기를 하고 있었다니...

'이런... 도대체 저 남자는 누구... 란 말이야...?'

그 남자는 내가 하는 연기를 하나, 하나 따라하기 시작했다. 그가 하는
연기는 나의 연기보다 좀더 확실하고 완숙되어 보였는데 가끔 내가 대
사나 또 표정이 틀릴 때마다 자신이 하던 행동을 멈추고는 바로 내 뒤
에서 나를 잡아먹을 듯 이글거리는 눈으로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저... 저런 줄도 모르고 혼자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다리가 후들거렸다. 문득 아까 연기를 할때를 생
각하니 너무도 겁이났다. 희미한 조명 아래 나와 또 한명의 사람...
아니... 누군가가 있었다니... 넋을 놓고 화면을 바라보는데 그 남자가
갑자기 머리를 한번 흔들더니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스르르 사라져
버렸다.

'휴~~ 이 일을 어쩐다...'

다신 연기를 못할 것 같았다. 막상 화면에 나타난 남자는 나에게 아무런
짓도 하질 않았지만 만약 내가 이 연극을 할때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저런 행동을 한다면... 분명히 이 일에는 무언가 사연이 있을 듯 싶었다.

그러나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새벽에 어디에
전화를 건다해도 미친 놈 취급을 받는 것이 분명했기에...
하긴 보통사람같으면 이 시간에 혼자 연기 연습을 한답시고 소극장에서
이러지는 않을 것이다.

'큰 일이네... 앞으로 어쩐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비디오를 끄려고 다가서는 순간 갑자기
그 남자가 화면에 다시 나타났다.

'헉~! 세... 세상에..'

나의 연기는 마지막을 향해 치닫고 있었고 이 연극의 클라이 맥스인 자
살하는 부분이 되었다. 내가 막 과도를 가지고 나의 목을 향해 찌르는
시늉을 하는데 그 남자가 이죽거리며 내가 든 칼을 힘껏 내 목을 향해
미는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등에서 식은 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갑자
기 조금전 마지막 부분을 연기할 때가 생각이 났다.

'어쩐지... 과도를 든 손이 갑자기 차가운 느낌이 든다고 생각했더니만...'

화면속의 그 남자는 연신 히죽거리며 대사를 말하며 연기에 몰두하고
있는 나의 곁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이윽고 내가 자신의 목을 과도로
찌르고 바닥에 쓰러지는 연기가 끝나자 못마땅한 듯 한참을 서서 나를
내려다 보더니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고는 화면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비디오가 끝이나고 파란화면이 나와 '치지직' 거릴때 쯤에냐 겨우
정신을 차렸다.

'만약... 저 남자가 사람이 아니라면...'

물론 사람은 아닐 것이다... 내가 미치지 않았다면...

'이 연극과 아니면 여기 소극장과 관계가 있는..'

그러나 밖으로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만약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가는
데 무대 위에 조용히 서 있는 그를 본다면... 아마 나는 그 자리에서 숨
이 멎어 죽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휴~~ 난 귀신이라던가... 영혼이란건 믿지 않는데 말이야... 그러나
저기 보이는 남자는...'

그때 사무실 문 밖에서 구두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뚜벅,
뚜벅' 하는 소리가... 정신이 번쩍 들어 사무실 문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 문에 귀를 대고 밖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 저... 소리는...'

무대가 있는 곳에서 낡은 마루 바닥이 '삐걱' 거리는 소리와 함께 남자
의 기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그 목소리는 동굴 속에서 중얼거리
는 것처럼 은은하게 울려 퍼져 들렸는데.... 자세히 그 내용을 들어보니
조금 전 내가 한 연극의 대사와 같은 내용이었다. 온 몸의 피가 꺼구로
도는 것 같앗다. 그 남자가 사무실 밖 무대 위에서 혼자 연극을 하고 있
다는 생각을 하니 소름이 돋다 못해 싸늘한 기분 마저 들었다.

'어쩌지? 나가 볼까..?'

나의 생각과는 달리 내 몸은 이미 굳을 대로 굳어 말을 듣지 않았다. 나
는 용기를 내어 문틈으로 밖을 쳐다보았다.

"아~~~악!!!"

문 틈으로 밖을 보는 내 눈과 아까 화면에서 이글거리던 남자의 눈과
딱 마주친 것이었다.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와 동시에 문을 사이
에 두고 사무실 안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나는 머리가 찌릿해오는 것을
느끼며 바닥에 풀썩 주저 앉았다.

'아... 이런...'

너무 놀라 말도 나오지 않는데 문 손잡이가 조금씩 비틀어 지더니 마침
내 '딸깍, 딸깍'하고 심하게 흔들렸다. 엉겁결에 손잡이를 두 손으로 꽉
움켜 쥐었는데 내 손바닥에 전해온 감촉은 차디찬 금속성의 느낌이라기
보다는 한겨울에 유리창을 만지는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내 온몸은
한기가 엄습해왔다. 나도 모르는 사이 덜덜 턱이 떨렸다.

'어... 어떻게 하지?'

"끼... 히.... 히..."

그때 문 밖에서 괴상한 신음 소리 비슷한 것이 들려왔다. 나는 그만 그
자리에서 기절을 하고 말았다.



"정신차려... 형민아!"

혼미한 정신 가운데 상규의 걱정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억지로 두 눈
에 힘을 주어 살며시 눈을 떴다. 나는 어느새 소파에 누워 있었고 주위
는 온통 햇빛으로 환하게 밝아 있었다.

"왜 그래?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일어나 앉으려 해도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축 늘어져 뜻대로 되지
않았다. 상규는 눈만 간신히 뜨고 넋이 빠져 있는 나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더니 따뜻한 커피를 내 입속에 흘려 넣었다.

"정신 좀 차려봐... 어서..."

입속에 전해오는 뜨거운 감촉에 다소 정신이 돌아 온 것 같았다. 잠시후
나는 있는대로 입에 힘을 모아 더듬거렸다.

"저... 저... 비디오를 켜봐... 그리고... 처음 부터...한번 봐봐...."

상규는 겁에 잔뜩 질린 나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천천히 비디
오의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어제 내가 녹화했던 장면들이 다시 흘러나
왔지만 내가 본 그 남자는 보이질 않았다.

"어? 너, 연습하는거 녹화해 놨니? 그런데 왜?"

답답했다. 이런 젠장... 나만 완전히 미친 놈이 되겠구만...

"얘기 좀 해봐 도대체 왜 그런거야?"

나는 여전히 멍하게 앉아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 아냐... 기대도 안했어. 아직... 그 장면들이 있으리라고는.."
"무.. 슨 소리야?"

갑자기 머리 속에 스치는 생각들이 있었다. 나는 억지로 입을 열어
더듬 더듬 물었다.

"얘... 기... 그래 얘기 좀 해봐..."
"뭘?"

나는 마른 침을 한번 삼키고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이번 연극에 대해서... 아무거라도 좋으니까..."

상규는 잠시 내 얼굴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 보았다.

"어떤걸 얘기하라는 거야?"
"아무거라도 좋으니 말이야. 어서..."

내 말에 다소 놀란 듯 머뭇거리던 상규는 한숨을 '훅' 하고 내쉬더니
말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너도 이 연극을 하지 못하겠구나... 벌서 네번짼데..."
"뭐? 그게 무... 무슨소리야?"

상규는 담배를 꺼내 물더니 불을 붙여 길게 한모금 들이 마셨다.

"사실... 네가 처음이 아냐. 이 연극을 해달라고 부탁한게... 전에도
몇번 다른 사람들에게 이 연극을 해달라고 부탁했었어... 그런데...
그때마다..."
"그때마다...?"
"연극 연습을 시작한지 한달도 안돼서 미치거나 의문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지. 최근에 한 사람은 무대 위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을 했고..."

나는 화들짝 놀라 큰 소리로 물었다.

"뭐... 뭐라고?"
"그게... 이상하단 말이야. 처음에는 다들 흡족하게 승낙을 하고 적극
적으로 연습을 하다가 꼭 막이 오르기 며칠전이면 그런 일을 당하더라
고... 하지만 이 연극을 그만 두기에는 들인 돈이 너무 많고... 또
이정도의 훌륭한 작품을 그냥 사장하기에는..."

무언가 감추는 것이 있는 것 같은 상규의 표정을 읽고 다그쳐 묻기 시
작했다.

"도대체 뭘 숨기는 거야? 다 얘기해봐... 어서..."

상규는 머리를 두, 세번 절래절래 흔들었다.

"사실... 이 연극의 희곡은 내가 쓴게 아니야. 누군가에게서 구한 거라
고..."
"누군가...라니? 누군가...라면..."
"그래 까짓거... 너는 나와 10년 넘게 친구니... 다 얘기해 줄게. 그간
우리 극단은 적자에서 허덕이고 있었지. 하는 연극마다 실패를 하곤해
서... 그래서 어느날 내가... 우리 극단 소속 희곡 작가들을 불러 모아
놓고 얘기를 했지. 극단의 사활이 걸린 문제니 다들 한편씩 써오라고...
만일 누구것이 됐든지 간에 흥행만 한다면 수익금의 50%를 준다는 조건을
내걸고 말야..."

나는 다소 정신이 맑아져 자세를 고쳐 앉고 상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몇몇 작가들이 희곡을 써서 가져왔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 그
런데 한 작가가 -그는 우리 극단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내게 희곡을 가
져 온 거였어.- 바로 이 연극의 희곡을 가져 왔지. 한눈에 보기에도 정
말 훌륭한 작품이었어. 난 배우와 연출자를 섭외하고 당장 연습에 들어
갔지."
"그... 그런데?"

상규는 목이 마른 듯 책상 위에 놓인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연습은 순조롭게 진행됐지. 열흘만 있으면 막이 올라갈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주인공을 맡은 배우가 죽어 버린거야."
"어.... 어떻게?"
"연극의 마지막 장면 있지? 과도로 자신의 목을 찌르는... 바로 그 장면
이 됐는데 그 배우의 눈이 갑자기 공포로 가득 해지며 진짜로 자신의
목을 찔러버리더라구... 사방으로 피가 튀기고... 곁에서 지켜보던
스텝들이 달려가 그를 응급처치하는데.."

나는 상규에게 바싹 다가 앉으며 그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 배우가 숨을 헐떡이면서 이러는거야... '누... 누군가가 칼을 든 내손
을 미는 느낌이 들었어요... 갑자기... 이상한 감촉이 느껴지더니...
커억...' 그러더니 숨을 거두더군..."
"후~~ 저런..."
"그날밤 내게 이 연극의 희곡을 가지고 왔던 작가가 자신의 집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했는데... 그의 유서에 이상한 내용이 있더라고..."

잔뜩 긴장을 하며 초조한 목소리로 다그쳐 물었다.

"어... 어떤?"
"'더 이상은 견디지 못하겠다. 그놈의 희곡을 훔치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니 훔쳤다 하더라도 그놈을 죽이지는 말았어야 했는데... 매일 밤 내
곁에서 서성이며 이죽거리는 그놈의 섬뜩한 영혼과 더 이상 같이 있을
수 없다...' 라는... 내용이..."

나는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 그럼... 네게 이 연극의 희곡을 건네준 작가라는 사람이 남의
작품을...? 그것도 원작자를 죽이고 빼앗았다는 얘기야?"
"후~~ 그런 것 같아. 아무래도... 그렇지만... 난..."

갑자기 상규의 얼굴이 가증스럽게 보였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런 저
주가 붙은 연극을 기획했다니...

"어쨌든... 난..."
"됐어... 이제 알듯하다. 이 연극에는 그 죽은 원작자의 귀신이 씌운
거야... 저주받은 연극이라고..."
"후~~ 참나... 요즘같은 세상에... 그런... 어쩔꺼야? 물론 이 얘기를
듣고 나서 계속 연기를 할 리는 없을 테고?"

잠시 생각을 해 보았다... 만일 내가 하지 않는다고 해도 상규는 또
누군가를 섭외해 연극을 할 것이고 만일 그때 아무일도 생기지 않는다면
새로 맡은 어느 누군가는 분명히 흥행에 성공을 할테고...
문득 이 연극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의 희곡이면...

"아냐... 내가 끝까지 할거다... 설마 내게 무슨 일이 생기겠어? 정신만
똑바로 차린다면..."

갑자기 상규의 얼굴이 환해지며 내 손을 꽉 움켜 잡았다.

"그래... 고맙다... 남자라면 끝까지 해야지... 나도 네가 그렇게 얘기
하기를 바랬는데..."
"오늘 밤 다시 한번 연습을 하는 거야. 이따가 와서 내가 하는 연기 좀
지켜봐봐. 과연 그 남자인지... 영혼인지가 오늘밤에도 또 나타나나..."
"그래... 좋아..."



지금 나는 몹시 후회를 하고 있다. 상규는 연극의 마지막 장면을 지켜보
던 도중에 '스르르' 나타난 그 남자를 보고 놀라 마구잡이로 휘두른 내
칼에 목이 반넘게 짤려 무대 바닥에 쓰러져 피를 연신 흘리며 신음하고
있다. 그리고... 멍하니 칼을 들고 서 있는 내 앞에는 전보다 더 일그러
지고 흉칙해진 얼굴의 그 남자가 여전히 이죽거리며 칼을 든 내 손을
붙잡고는 나의 목쪽으로 천천히 들이 밀어 넣고 있다. 날카로운 칼날의
감촉에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나의 목 언저리에 따뜻한 액체가 타고 흐
른다고 느끼는 순간 그는 기괴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끼히히히... 넌 마지막 장면의 연기가 너무 부족해... 죽는 다는건 이런
느낌이라구... 끼끼끼... 그리고... 이 연극은 내꺼란 말이다...
누구도...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공연은 할 수가 없는... 끼히히히....
흡족하지 않으면.... 다 죽여버릴 꺼야... 다... 크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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