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공포]행운을 파는 외판원

데이비듬백원 작성일 06.03.07 15: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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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을 파는 외판원



"젠장 나같이 재수없는 놈도 정말 드물거야..."

형민은 다리 난간에 기대고 서서 중얼거렸다.

"쓰벌... '콱' 뛰어 내리면 모든게 끝이겠지?"

다리 아래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데 문득 가을 밤의 싸
늘한 강바람이 형민의 등줄기를 파고 들어왔다.

"휴... 쓰벌... 그래, 이제 이세상과 하직이다. 더럽고 지겨운 놈의
세상... 이제 안녕이다. 하. 하."

형민은 한참동안 강물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다리 난간 위로 발을 올려
놓더니 강속으로 뛰어 들려고 하였다. 그때 누군가가 형민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요새는 날씨가 쌀쌀해서 물이 꽤 찰텐데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검은 바바리에 까만 색안경과 검은 중절모를
쓴 어떤 사람이 까만 가방을 들고 '헤죽' 웃고 있었다.

"상관마요. 난 어차피 죽으려고 했던 몸... 물이 차든 뜨겁든...
그리고 설사 댁이 말린다고 해도 듣지도 않을 뿐더러..."
"말리진 않아요. 다만 제 얘기나 듣고..."

형민은 말리지 않는다는 그의 심드렁한 말에 다소 허탈한 생각이 들어
난간에서 내려와 검은 바바리에게 말했다.

"웃긴 사람이네. 사람이 자살을 한다는데..."
"죽는 건 좋은데... 왜 자살을 하려고 하시는지?"

대뜸 물어보는 질문에 형민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어이가 없는 듯 웃으
며 대답했다.

"'죽는건 좋다'라... 참나, 별난 사람이네.... 나야 죽을 이유가 충분하
죠..."
"어떤?"

형민은 얼굴에 전혀 감정이 섞이지 않은 무표정한 그의 얼굴을 바라보
다가 한숨을 쉬며 얘기했다.

"휴~~ 다니던 회사는 부도가 나서 짤리고, 좋아하던 애인은 다른 놈이랑
눈맞어 달아나고, 살던 집은 월세를 못내 쫓겨나고.... 더구나 나는
천애 고아에... 친구들도 나를 멀리하고..."
"흠... 나같아도 자살하겠구만... 그 정도면..."

검은 바바리의 말에 형민이 냅다 소리치 듯 대답했다.

"아니,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위로는 못할 망정... 어서 죽으라고?"

검은 바바리는 씨익 웃으며 명함을 한장 건네줬다.

"이, 이게 뭐야? 난데 없이..."
"읽어나 보시죠."

형민은 엉겁결에 검은 바바리가 건네 준 명함을 읽었다.


[고객 여러분이 원하는 행운을 뭐든지 팝니다.

제 2지역 담당자 올림

고객의 만족을 항상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주) 행운 클럽 ]


"이... 이게 무슨 소리야? 행운을 팔다니?"

형민이 의아해하며 묻자 검은 바바리가 미소를 띠우며 대답했다.

"말 그대로 손님에게 행운을 판다는 거죠... 저는 행운을 파는 이 지역
담당 외판원이구요..."
"미쳤군. 당신..."

검은 바바리는 고개를 한번 흔들더니 말했다.

"저희 회사의 철칙이 있습니다. 고객이 의심하면 절대 계약을 하지 않는
다는... 그럼... 하던 일 계속하시지요. 강물이 워낙 차서 익사보다는
동사가 될 것 같습니다만..."

형민은 말을 마치자마자 냉정히 돌아서는 검은 바바리를 다급히 불러
세웠다.

"자... 잠깐."

검은 바바리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이 있으신가요?"
"밑져야 본전이니... 어떻게 하는 건데요? 도대체..."

검은 바바리는 까만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더니 형민에게 건네줬다.

"저희 회사와의 계약은 간단합니다. 우선 그 계약서에 서명을 하시고...
손님이 원하시는 행운을 저희에게 알려주시는 겁니다. 그러면 저희 회사
는 그 행운을 손님에게 파는 거죠."

형민은 의아스럽다는 듯 되물었다.

"판다면... 제가 무엇으로 사는 건지...?"
"하하하. 물론 행운을 돈을 받고 팔지는 않습니다. 먼저 손님의 원하
시는 행운이 이루어지면 그 다음에 저희 회사쪽에서 시키는 대로 손님이
하시면 되니까요. 아, 그 서류를 읽어보시면 잘 아실겁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검은 바바리가 건네준 서류를 읽기 시작했다.


[ ===계약서===

당사는 순수한 행운을 공급하는 회사로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계약이
이루어 졌을 때만 그 효력이 발생됩니다.

1. 손님이 원하시는 행운을 저희에게 알려주시면 하루 안에 그 행운을
이루어 드립니다.
2. 손님의 행운이 이루지는 즉시 저희 회사직원이 그 사실을 확인하고
행운의 댓가를 지불할 방법에 대해 연락을 드립니다.
3. 손님은 연락을 받은 신 후 일주일 안에 그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4. 만일 손님의 행운이 이루어 지고서도 계약된 시일 내에 그 댓가를 지
불하지 않을 시에는 저희 회사에서 제재를 가할 것입니다.
5. 저희 회사에서 어떠한 제재를 가해도 손님은 항의하거나 거부할 수
없습니다.

저희 (주) 행운 클럽과 계약하게 된 것에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


형민은 계약서를 몇번이고 되풀이해 읽고 나서 검은 바바리에게 물었다.

"내용이야 뭐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운이 이뤄지고 그 지불의
댓가가... 어떤 것인지.."

검은 바바리는 큰 소리로 웃더니 품속에서 핸드폰을 꺼내 형민에게 건
네 줬다.

"자, 우선 이걸 받으시고... 손님은 그 핸드폰으로 저에게 원하시는 행운
을 연락하면 됩니다. 거기 '?'표가 붙은 단추가 보이지요? 그걸 누르면
저와 직통으로 연결되고..."
"그리고... 요?"
"원하시는 행운이 이루어지면 제가 확인 후 그 핸드폰으로 연락을 드릴
겁니다. 그 행운에 알맞는 댓가를 지불하는 방법을... 참... 손님이 그
댓가를 지불하셨으면 제게 다시 연락을 바랍니다. 간혹 착오가 생기는 수
가 있으니까요..."

형민은 아직도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 듯 눈망울만 굴리며 쳐
다보았다. 검은 바바리는 볼펜을 건네주며 속삭이듯 얘기했다.

"일단 계약서에 싸인을 하세요. 한, 두번 저희와 거래를 하다보면 저절로
알게 될겁니다. 자, 어서..."

검은 바바리가 건네준 볼펜을 들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계약서에 싸인을
했다.

"그래, 뭐 까짓거... 어차피 죽기로 했던 목숨..."

형민이 싸인을 하고 서류를 건네주자 검은바바리는 만족한 듯 가방에
서류를 집어넣더니 말했다.

"그럼... 저희 회사를 많이 이용해 주시길 바라며... 계약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오늘은 한건도 못하나 했는데... 그럼..."

형민은 검은 바바리가 천천히 사라지는 밤거리를 망연히 쳐다보다가 중
얼거렸다.

"흠... 뭐가 어떻게 된건지... 어쨌든 행운을 준다는 얘기니... 일단 해보
기나 할까? 뭐가 좋을까... 행운이라면... 그래, 복권이다.. 복권..."

형민은 검은 바바리가 주고 간 핸드폰을 들고 '?'자를 눌렀다. 잠시
신호음이 길게 울리더니 아까 검은 바바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 여보세요?"
"아, 방금 계약하신 손님이시군요. 자, 원하시는 행운을 말씀하시지요."

헛기침을 두어번 하다가 결심한 듯 더듬거렸다.

"저... 복권에 당첨되는..."
"좋습니다. 당사에 접수되었습니다. 그럼..."

검은 바바리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형민은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핸드폰을 한참동안 귀에 대고 있다가 허탈한 듯 중얼거렸다.

"뭐야? 이거... 장난하는 건가?"

그러나 장난치고는 좀 치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에 서류에...

"에라 모르겠다. 어쨌든 하루만 기다려보자. 복권만 당첨되면 자살할 이
유도 없으니까..."

형민이 중얼거리며 담배를 꺼내 물고 희미한 달빛을 받으며 다리를 건너
는데 발끝에 뭐가 '툭'하고 채였다.

"어? 이게 뭐지?"

허리를 굽혀 바라보니 갈색 지갑이 놓여 있었다. 형민은 무심코 지갑을
주워 들어 뒤적거렸다.

"누가 흘렸나 보네... 어? 이게 뭐야? 즉석복권이...?"

형민은 문득 조금전 전화 내용이 생각이나 서둘러 복권을 꺼내 동전으
로 긁기 시작했다.

"이... 이럴수가... 4000만원짜리가 세장... 헉..."

놀람과 기쁨에 말이 막혀 어쩔 줄 몰라 하는데 형민의 주머니 속에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형민은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받았다.

"여... 여보세요?"
"아, 접니다. 복권에 당첨되는 행운을 잡으셨죠?"
"예? 아... 예... 그... 그런데... 그 댓가는 어떻게...?"
"하. 하. 뭐, 이번 것은 첫 거래니 만큼 제가 써비스 차원에서 무료로
해 드리지요. 하지만 다음부터는 제가 말씀드리는 댓가를 꼭 지불하셔야
합니다."
"예?"

이번에도 일방적으로 검은 바바리가 전화를 끊어 버렸다. 형민은 잠시
멍하니 서있다가 손에 있는 당첨된 복권을 보고는 머리를 한번 흔들고
활짝 웃으며 소리쳤다.

"어쩐 일인지는 몰라도... 하. 하. 하. 어쨌든 난... 이제부터 인생이
활짝 핀거다. 필요할 때마다 전화를 걸면 행운이 이루어질테니...
하. 하. 하."


그 이후로 형민은 생각이 날 때마다 검은 바바리에게 핸드폰을 걸었다.
자질구레한 것에서부터 명예, 권력을 얻을 수 있는 일에 까지...
물론 그때마다 원하는 행운은 하루도 되지 않아 꼬박꼬박 이루어졌다.

그러나 행운이 이루어지면 어김없이 검은 바바리가 그 행운의 댓가를
원했는데 그 댓가라는 것이 언뜻보기에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떨때는 어느 건물 신축공사장의 쇠파이프를 몇개 뽑으라던가, 주유소
쓰레기통에 담배꽁초를 버리라던가 하는...

그러나 꼭 그 댓가(?)를 치룬 다음날은 형민이 한 일로 인해 커다란 사
건이 벌어지곤 했다. 무심코 뽑은 쇠파이프로 인해 새 건물이 무너져 무
수한 사람이 깔려 죽었다던가 주유소에서 엄청난 화재로 인해 여러명이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불에 타 죽었다던가 하는....

하지만 형민은 그리 양심에 가책이 가지 않았다. 자신에게 온 행운들이
그런 엄청난 일들을 잊어버리게 하기에 충분했으니까...

결국 수 많은 행운으로 주체할 수 없이 행복하게 된 형민은 급기야 훌
륭한 집안의 아름다운 아가씨를 원했고 그 행운이 이루어져 '미스코리
아' 대회에 나갈 만큼 멋진 외모를 가진 윤미를 만나게 되었다. 또한
만난지 일주일도 안돼 결혼얘기가 나올만큼 급속도로 사랑하게 된 건
물론이었고...


"윤미야, 축하한다. 정말... "
"어? 형민이 오빠... 고마워.."

형민은 오늘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진'으로 뽑힌 윤미의 집으로
축하 꽃다발을 가지고 갔다.

"야... 오늘따라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걸? 하. 하. 하."

윤미는 배시시 웃으며 형민에게 말했다.

"다... 운이 좋아 그런거지... 뭐.."
"운... 이 좋아? 음..그렇지.. 행운... 앗! 오늘이 며칠째지 ? 너와
만난지?"

윤미는 이상하다는 듯 형민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벽에 걸려있는 달력을
쳐다 보았다.

"응... 딱 8일 째네... 저번 주 토요일에 만났으니.."

형민은 갑자기 맥이 '탁' 풀리는 것을 느꼈다.

'이... 이런... 윤미와 만난 행운의 댓가를 아직 지불하지 않았는데...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니... 어쩐다..?'

윤미는 형민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 지는 것을 보고 가까이 다가와 물
었다.

"형민 오빠, 갑자기 왜 그래? 어디 아파?"
"어? 어... 아냐... 아무것도. 그나저나 우리 축배주나 들자."
"응, 그래. 그렇지 않아도 준비했어. 내가... 잠깐만.."

윤미가 술을 가지러 간 사이 형민은 생각에 잠겼다.

'후... 뭐 별일 있겠어? 겨우 하루 지났다고? 휴~~ 이젠 행운을 얻을
려고 전화하는 짓을 그만 두어야겠다. 더 이상 바랄것도 없으니...'

이윽고, 윤미가 와인을 잔에 가득 따라와 형민에게 내밀었다.

"자, 형민오빠. 우리 자축하자."
"그... 그래. 자, 우선 윤미가 '미스코리아' '진'에 뽑힌 것을 축하하고
또 우리의 영원한 앞날을 위해..."

둘은 건배를 하고 와인을 쭈욱 들이켰다. 형민은 잔을 내려 놓으며 윤미
의 볼에 가볍게 키스를 하였다.

"난 아직도 내게 연달아 오는 행운이 믿기지 않아. 돈도 명예도 얻을만
큼 얻었고 계다가 미스코리아 부인 까지 얻게 됐으니... 훗...
윤미 알아? 한때는 내가 너무 어려워서 자살까지 생각했었던거..."

윤미는 싱긋이 웃더니 형민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런 적이 있었어요? 음... 그랬구나... 그 소원이 오늘 이루어 지겠네...
요? 죽고 싶다는..."

형민은 윤미의 말에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무... 무슨 소리야? 그.. 게?"

갑자기 윤미의 표정이 싸늘해 지더니 형민의 어깨를 두어번 '툭, 툭' 치
며 말을 이었다.

"미안해... 아까 오빠가 마신 와인 잔에... 독약을... 그렇게 고통스럽진
않을꺼야. 치사량의 10배나 탔으니... 금방... 약효가 퍼질거고..."

형민은 그말을 듣자 마자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헉... 그... 그게... 무슨... 윽..."

갑자기 형민이 입에서 쉴새없이 붉은 피가 울컥울컥 흘러나왔다.

"윽... 사... 살려... 커억!!!"

윤미는 말을 다 끝맺지 못하고 썩은 나무등거리처럼 바닥에 털썩 쓰러
져 죽어버린 형민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바닥에 깔린 양탄자는 형민의
입에서 흘러 나온 검붉은 피로 빨갛게 물들었다. 형민의 숨이 완전히 끊
긴 것을 확인한 윤미는 묘한 웃음을 웃으며 핸드백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고는 '?'자 단추를 눌렀다.

"아, '행운 클럽'이죠... 아.. 예, 제 2구역 담당자님? 예. 오늘 제가
바라던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진'으로 뽑히는 행운을 이루었구요....
말씀하신 그 행운의 댓가는 방금 지불했습니다. 다음에 또 행운이 필요
하면 연락 드릴께요. 그럼...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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