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안방에서 본 어떤 남자의 모습... 그리고 이어서 바로 자기 귀 옆에서 속삭이 듯 한 목소리...
"괜찮아? 도데체 무슨 소리를 들은 건데 그러는 거야?"
"현우씨... 왠지 이 집... 예감이 좋지 않아... 아까 경비원 아저씨도 그렇고... 지금 내가 들은 이 목소리..."
"너가 새로운 집에 이사를 온다는 들뜬 감정 때문에 환청을 들은 거야..."
"아니야... 난 똑똑히 들었어... 아까 경비원 아저씨와는 다른... 어두 침침한 쉰 듯한 목소리..."
지현은 갑자기 현우를 바라보며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현우씨... 여자는 어느 정도의 직감이라는 게 있어... 내가 봤을 때 이 집... 우리에게 맞지 않는 것 같아... 현우씨, 우리 다른 집이면 안될까? 꼭 이 집이어야만 하는 걸까?"
현우는 공포에 질려 있는 지현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난... 너에게 이 집을 선물하고 싶었어... 물론 우리들의 사랑...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할 지 몰라도... 난 그게 아니었어. 너에게 따뜻하고 포근한 안식처를 마련해 주고 싶었어.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 그렇게 해서 어렵게 마련한 집이야... 내가 먹을 것 더 안 먹고... 사고 싶은 것 더 안 사서... 꼬박꼬박 모은 돈으로..."
"............"
"지현아... 너에게 직감이라는 게 있다면 나에게는 노력이라는 게 있어. 난 이 집을 내 노력으로 산 거야... 만든 거야... 마음으로 지은 거야. 그런 집을... 꼭 다른 집으로 옮겨야 겠니...? 물론... 너가 굳이 싫다면 어쩔 수 없겠지... 나도 더 이상의 이유는 없어... 하지만 내 노력으로 처음으로 사 본 집이야..."
지현은 그런 현우를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지현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직감은 이 곳이 좋은 곳이 아니라는 걸 말해 주고 있어. 하지만 당신 뜻이 정 그렇다면..."
"............"
"우리... 우리들의 사랑으로 극복해 보자..."
현우는 그런 지현을 와락 끌어 안았다.
현우는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내 뜻에 따라 줘서... 우리... 이 집에서 잘 살아 보자..."
하지만 지현은 현우에게 안기고도 계속 한 곳만을 바라 보고 있었다...
붉은 자국이 있는 그 곳을...
"아침 먹어... 현우씨!"
지현의 목소리가 집안 곳곳에 울려 퍼지자 현우는 졸린 눈을 비비며 안방에서 나왔다...
"어? 언제 일어 난 거야?"
"현우씨, 아침 챙겨 주려고 아까 일어 났지... 빨리 와서 아침 먹어..."
104동 607호로 이사온지도 이제 3일이 지났다...
처음에는 물건들이 불 완전하게 놓여 있었지만 지현이 집에 있으면서 계속 좋은 위치로 물건을 옮겨 이제는 왠만큼 집이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현우는 문득 달력을 보며 말했다.
"어? 우리가 이 곳에 이사 온 지도 3일이 지났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아... 우리에게 집이 생기다니..."
지현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난 너무 행복해... 현우씨. 당신과 이렇게 좋은 집에서 지내게 되다니..."
"뭐, 이 집 이사오기 전에는 기분 나쁜 집이다느니 뭐니 했으면서... 이제 마음이 바뀌셨나 보지요?"
"지금도 별로 마음이 편치는 않지만 당신과 함께 있어서 좋다는 거야..."
현우는 웃으면서 지현이 차려놓은 아침을 맛있게 먹었다...
지현은 그런 현우를 보며 만족스러운 듯 웃음을 띄다가 문득 생각난 듯 벌떡 일어나서 거실 베란다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 이리 좀 와 봐..."
현우는 아침을 맛있게 먹다가 무슨 일인가 하고 지현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그 곳에는 붉은 자국이 이사오기 전보다 더 커진 채로 있었던 것이다...
"어? 새로 도배 싹 했잖아? 그런데 왜 이런게 여기에 있지?"
"그 때와 똑같은 자리예요... 저도 어제 발견했는데... 이 붉은 자국... 이사오기 전보다 더 커져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