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먹을 각오하고 쓰는 민족사학 비판(4) - 고조선

백승길 작성일 07.01.06 09:18:45
댓글 6조회 1,085추천 1
이제 정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단군 왕검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가 되었습니다. 단군 신화의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겠지요. 하늘과 땅의 아들로 태어나 아사달에서 조선을 건국하여 우리 민족 최초의 나라를 연 분입니다.

단군 왕검에 대하여 이야기하기에 앞서 국가의 발전단계이론을 간단하게나마 설명해야 겠습니다. 우리는 고등학교 교과서를 통해 다음과 같은 공식을 배우죠.

구석기 시대 - 씨족사회 - 수렵경제
신석기 시대 - 부족사회 - 농경경제
청동기 시대 - 국가 형성
철기 시대 - 중앙집권왕국

이 공식은 엄밀한 의미에서 말하면 틀렸습니다. 신석기 시대가 농경경제, 부족사회인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성립된 것은 엄밀히 말해 신석기 시대 중기 이후, 청동기 시대 초기까지이죠. 마찬가지로 청동기 시대에 국가가 형성되는 것은 거의 청동기 시대 중기를 넘어서서야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한마디로 청동기의 등장이 곧 국가의 형성이라는 등식은 틀렸다는 말입니다. 청동기가 없는 국가는 존재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청동기가 있다고 곧바로 국가가 형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신석기 시대에도 국가에 준할 수 있는 정치(?)적 세력이 있을 수 있죠. 우리가 잘 아는 이집트 문명은 이미 신석기 시대에 국가에 준하는 정치적 공동체인 여러 도시국가를 이룩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도시국가들이 청동기의 등장으로 우수한 무력과 권력 인식을 가진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통합되면서 진정한 의미의 국가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반도, 좀더 정확하게는 요동을 비롯한 만주 일대의 국가발전단계는 어떠하였을까요? 신석기 시대에 준 국가 단계의 문명이 존재하였는지는 아쉽게도 현재로는 알 수 없습니다. 반면 중국의 유명한 여러 고대 문명들은 분명 신석기 시대의 준 국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은 왕조가 건설되기 이전 하 왕조라 추측하는 시기에 청동기가 도입되었으며 그 이전 시대의 유적들은 신석기 시대이죠.

근래 학계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4대 문명을 부정하는 분위기입니다. 물론 4대 문명이 독자적으로 위대한 문명을 이룬 것은 사실이나 4대 문명 이외에도 세계 각지에 걸쳐서 4대 문명에 못지 않은 문명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죠. 다만 4대 문명이 조금 더 강해서 다른 문명을 흡수하였거나, 혹은 다른 문명들이 더 이상의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었을 뿐, 세계에 4대 문명만 존재하였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분명 4대 문명에 못지 않은 문명이 요하나 송화강 유역에서 이루어졌음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고조선으로 보는 것이 확정적입니다. 그러나 (고)조선이라 공식적으로 호칭되는 국가가 등장하려면 역시 청동기의 등장이 필수적이죠. 청동기 이전의 요하 유역의 문명은 작은 도시국가, 부족국가들이 완전 자치를 행하는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여기에 청동기를 사용하는 환웅과 같은 강력한 부족이 나타나면서 조선이라는 연맹왕국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만주 혹은 요동 일대의 청동기는 최대 연한이 어느 정도일까요.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대략 기원전 2,700년 무렵이죠. 그러나 현재 학계에서 추정하는 고조선 건국 시기는 2,700년은 물론 현재 단기의 시작 연원으로 잡는 기원전 2,333년도 부정하고 있습니다. 요동 일대를 전부 아우르는 강력한 국가 (고)조선의 등장은 기원전 1,200년 무렵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미 말하였듯이 청동기의 등장 이전에도 준국가 단계의 도시국가들이 존재하였으며 이들 국가들이 청동기의 등장과 함께 서서히 통합되어 강력한 국가를 형성하게 됩니다. 고조선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강력한 청동기를 바탕으로 한 환웅의 등장으로 요동 일대의 소국들은 서서히 복속되어갔으며 마침내 어떠한 시기에 완전한 통일을 이룩하고 단군이 등장하였던 것이죠.


민족 사학에서 말하는 단군 조선의 건설은 물론 이러한 일반론과 매우 다릅니다. 일단 민족 사학은 단군 조선 이전의 동아시아 초강대국인 신시 시대 1,500여 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단군은 신시 시대가 끝나고 그 뒤를 이어 나타난 새로운 동아시아 초강대국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론의 가장 큰 허점은 신시와 조선 사이에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차이점도 문제이고 신시와 조선의 교체가 과연 실질적으로 이루어졌는가, 혹 이루어 졌더라고 그것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즉 신시와 조선의 교체는 사료에서 나타나는 관념적인 의미에서 매우 중대한 문제일지 몰라도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러한 교체가 나타날 이유도 없으며 그 의미도 불분명합니다. 어차피 신시는 동아시아 전체를 사실상 총괄하는 초강대국인데 갑작스럽게 조선이라 국호와 왕조를 바꿀 이유가 없죠.

한단고기를 비롯한 민족사학 계열의 역사가 가지는 가장 큰 허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현실은 생각하지 않고 관념적인 명분, 사상만 내세우죠. 현실적으로 환국, 신시, 조선으로 이어지는 국가의 계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중국의 하-은, 은-주의 교체도 무력 혁명에 의한 것인데 환국, 신시, 조선의 교체는 무력 혁명은 커녕 나라 이름과 군주 이름을 빼고 도대체 무엇이 바뀐 것인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고조선을 우리민족 최초의 국가로 보는 것은 이제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현재 학계는 단군 왕검을 실재하는 인물이자 조선의 건국자로 보지 않고 상징적인 신화 속의 인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또한 고조선의 건국 연한도 천차만별입니다. 그로 인해 고조선을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로 보고 있으면서도 고조선으로부터 시작되는 어떠한 영향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실상 우리 민족은 삼국시대부터 완전히 새로 시작하는 것이죠. 그 이전 고조선의 모든 것은 백지상태가 되어버린 채로...
백승길의 최근 게시물

무서운글터 인기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