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서 가장 큰 섬 중 하나인 로도스섬은 예전부터 고대의 격전지로 수많은 정복자들이 탐을 내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이 섬이 일반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청동거상이 건설된 섬이기 때문이다. 34m 높이의 청동거상은 바다를 응시하며 두다리를 벌리고 서 있는데 한쪽 다리는 단단한 땅 위, 다른 쪽 다리는 방파제 위에 올려져 있었고 그 사이를 거대한 함선이 지나 다녔다는 전설까지 있었다.
그러나 현대 학자들은 동상의 두다리 사이로 배가 지나갈 수 있기 위해서는 거상의 높이가 최소한 1백20m는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므로 거상의 두다리 사이로 배가 다닌다는 것은 모두 상상의 작품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로도스섬의 거상이 배가 다닐 정도로 규모가 컸다는 환상을 줄 만큼 사람들에게 인상적인 것은 사실이다.
태양신 헬리오스 청동상은 기원전 3백3년에서 2백91년 사이 조각가 샤레 드 린도스에 의해 로도스섬의 항구에 건설됐다. 청동상이 건립된 이유는 기원전 3백6년에서 3백5년 사이에 로도스에서 점령군 시리아와 치열한 전투를 벌려 그들을 완전히 축출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거상을 만드는 네가지 방법
거상을 만드는 방법 중 가장 보편적인 것은 서로 다른 재료를 사용해 거상을 여러 조각으로 나눠서 제작한 후 조립하는 방법이다. 거상의 얼굴, 손과 다리는 대리석으로 만들고, 몸체는 청동으로 만들거나 일부분을 나무로 만들어 각 부분을 조립한 후 매끈하게 마무리한다는 것. 두번째 방법은 보통 조각가들이 청동상을 만드는 것처럼 규모가 다소 크더라도 한번에 주물하는 것이다.
세번째 방법은 주물을 한번에 부을 수 없을 정도로 큰 청동상을 만들 때 사용하는 것으로, 몇단계로 나눠 주물한 후 하나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로도스섬의 거상과 같은 청동상을 단 하나로 만든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청동의 두께를 2.5cm로 만든다고 하더라도 34m의 높이라면 적어도 2백t 이상의 청동이 필요하다. 마지막 방법은 일부 학자들이 제기하는 것으로, 로도스섬의 청동상은 외형만 청동판으로 붙였다는 것이다. 프린느는 부서진 청동상 안에서 돌의 잔해를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로도스섬의 청동상 전체를 주물로 하지 않고 어느 부분은 돌로 만든 다음 청동판을 붙였다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정확한 위치와 구조에 대한 의문
로도스섬의 청동상이 유명하기는 하지만 거상이 실제로 어디에 설치됐는가 조차 아직 확실하지 않아 학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이와 같이 거상에 대한 자료가 전혀 없는 것은 우선 거상이 건설된 지 겨우 66년 후에 무릎 부분이 파괴돼 전복됐기 때문이다.
로도스인들은 곧바로 청동상을 재건하기 위해 델피의 신전에 ‘청동상을 재건해야 하는가’라는 질의를 했다. 그러나 델피 신전의 신탁은 놀랍게도 청동상 복원에 대해 부정적인 답을 줬다. 예상치 못한 답변을 델피 신탁으로부터 들었지만, 로도스인들은 신탁의 말을 그대로 존중했다. 그들은 로도스섬의 거상이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들어가는 역작임에도 더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복원하지 않은 채 그대로 방치했다.
그렇다면 로도스의 거상은 어디에 세워졌을까. 학자들은 실무적인 면을 고려할 때 만드라키와 항구의 입구를 보호하고 있는 셍니콜라스라고 불리는 원형으로 된 작은 교회를 거상이 세워졌던 곳으로 제시한다. 이 지역은 방파제가 있을 만큼 넓은 지역이었는데, 중세 시대의 자료에도 이곳에 로도스섬의 거상이 있다고 알려진 장소다. 더구나 이 지역의 바위는 로도스 거인상의 무게를 지탱할 수도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일반적으로 거상의 얼굴은 알렉산더 대왕을 묘사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알렉산더 대왕은 자신이 정복한 지역에서 평소에 듣고 보지 못한 새로운 것을 자주 발견하자 스스로 구세대를 탈피해 새로운 세대를 만드는데 힘썼다. 새로운 세대의 아이디어를 자신이 정복한 모든 지역에 알리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은 새로운 도시를 건설해 주민들에게 새로운 사상을 불러일으키도록 하는 것이다. 알렉산드리아, 로도스, 밀레, 에페스, 페르감 등에서 새로운 도시가 세워진 이유다. 새로운 도시의 주인공은 당연히 알렉산더 대왕이었고 조각가들은 수많은 알렉산더 대왕을 조각했다. 로도스섬에 있었던 청동상의 얼굴 모습이 알렉산더 대왕을 묘사했을 것이라는 가정이 여기에서 나온다.
현실적으로 거상에 대한 흔적이 전혀 나오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고대에 청동의 가격이 금과 같을 정도로 매우 비쌌기 때문이다. 653년 아랍의 칼리프 우트만의 지시로 현장에 방치돼 있던 거상은 잘게 잘려서 시리아로 옮겨진 후 경매에 내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유대인 에데스가 청동 조각을 모두 구입한 후 9백개의 청동 낙타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