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마을, 서리 11편

달콤상상 작성일 07.03.28 03: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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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영의 얼굴은 핼쑥했다.
집은 전에 갔을 때와 변함 없이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괜찮다는데도 혜영은 커피를 끓여서 내왔다.

"몸도 아픈데 끓이지 말라니까…. 어떻게 된 거예요. 갑자기 쓰러졌다는데."
"그게요. 저번 서리에 갔을 때 희수씨가 넣을 곳이 없다고 저한테 뭘 맡겼거든요. 워낙 그때 정신이 없다보니 희수씨도 잊었는지 오늘에서야 전화가 왔어요. 전화로 얘기하다가 제가 정신을 잃었어요. 이렇게 얘기하니까 우습네요."
"정신이 잃을 정도라면 그동안 계속 아팠다는 거잖아요. 그렇게 되도록 뭐했어요."

그러나 그것은 아니었다. 혜영은 아프기는커녕 밤새 책을 읽었는데 전혀 피곤하지 않을 정도로 컨디션이 좋았다고 했다. 희수와 전화통화를 하는 그 순간에 모호한 느낌이 들더니 갑자기 불기둥이 솟는 것 같았다고, 그 후로는 정신을 잃은 것이다.

"조금 무섭지만 한가지 더 얘기해드릴게요."
"네?"
"정신을 잃은 후 그게 허약해져서 그런지 몰라도 눈을 뜨니까 어떠한 잔상이 보이더라고요. 가위에 눌렸나 했지만 몸은 제대로 움직였어요. 혹시 귀신이 아닐까 말씀드리는거에요."
"이런. 괜히 저희 때문에. 하루 빨리 해결해야겠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입도 대지 않은 커피잔에는 더이상 김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나타난 현상들, 그리고 할아버지제사 전 날에 내게 나타난 정체모를 사람. 또 할아버지제삿날이 지나도록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점, 마지막으로 무당이 서리에 처음 갔을 때 본 할아버지의 모습. 이 것들을 생각하면 서리는 할아버지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할아버지는 다 낡아빠진 흑백사진 한 장 뿐이었다. 그 사진에서 할아버지는 짧게 자른 머리에 양복을 입고 있었다.
잠깐. 시장에서 본 남자. 어딘가 익숙하다 했더니 사진속에 할아버지와 분위기가 매우 비슷했다. 다른 건 몰라도 바위라도 녹일 듯한 강인한 눈빛이 너무나 똑같았다. 더군다나 그 남자는 실제 사람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젠 그것의 대한 확신이 된다.

"혜영씨, 저희 할아버지 궁금하지 않아요?"
"안 그래도 정말 궁금했어요. 무당이 얘기한 이후로."
"실은 저도 잘 몰라요,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아까부터 쭉 생각했는데 도저히 알아보지 않고는 서리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 할 것 같아요. 혜영씨는 제 연락이 올 때까지 몸조리 잘하세요. 제발 몸좀 신경써요. 걱정되니까."
"상훈씨……."

난 곧바로 나와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에도 엄마에게 할아버지에 대해 물어봤지만 전혀 모른다고 했으니 내 주위에서 할아버지의 대해 알고 있을만한 사람은 아빠밖에 없었다. 신호음이 가는 동안 아빠를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 매 한번 들지 않았고 언제라도 상담을 해주었던 자상한 아빠였다. 내가 아직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아빠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런 것에서 있었다.

"여보세요."
"어, 아빠? 어디야?"
"웬일이야. 전화를 다 하고. 용돈 필요하냐?"
"그런 게 아니니까 지금 어디냐니까."
"회사지, 어디야."
"알았어. 내가 지금 갈테니까 아무대도 가지마."

11

"과장님, A사에 가셨습니다."

가지 말라니까. 마음이 초조해졌다. 손님대기실에서 경리가 가져 온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면서 아빠를 기다렸지만 빨리 오지 않았다. 다시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어디야!"
"아이구,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나. 아빠 심장 약해."
"농담하지 말고. 진짜 중요하단 말야. 빨리 좀 와. 지금 아빠 회사 손님대기실에 있으니까."

나는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 후 20분이나 기다린 후에서야 아빠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와는 달리 아주 여유있는 모습이었다. 아빠가 내 기분을 생각해주기를 원하는 건 아니지만 괜히 기분이 상했다.

"계약이 아주 잘 성사되었어. 오늘 아빠가 한 턱 쏠게."
"일단, 내 얘기나 들어봐."
"밥 먹으면서 하자. 뭐가 그리 급해."
"안돼. 정말 급해."

난 아주 간절하게 부탁 아닌 부탁을 하면서 아빠를 잡아 놓았다. 아빠가 내 앞자리에 앉아 내가 얘기 하기를 기다렸다.

"할아버지에 대해 말해줘. 아빠가 알고 있는 전부!"
"왜 갑자기 할아버지에 대해 물어. 평소에 전혀 물어보지도 않던 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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