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분노가 폭발한 사람들은 아버지를 완전히 감싸고 몰매를 했다. 귀신이라며 집안으로 꼭꼭 숨어있던 아이들도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하자 밖으로 나와 돌멩이를 주워다 아버지에게 던지기도 했다.
"너의 혼을 다시 한번 죽이기 전에 얼른 썩 꺼져라!"
"얼른! 우리보고 지옥으로 가라고!?"
아버지가 목청이 터져라 소리치며 사람들에게 더 좋은 세상을 알렸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할머니조차 아들이 저런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안쓰럽게 생각하며 슬퍼했다.
"그래! 한번 두고 봅시다! 내 말을 믿지 않을 걸 뼈저리게 후회하게 만들테니."
아버지는 마을을 뛰쳐나와 서럽게 울며 걸었다. 다시 걸어 나올 때는 처음처럼 나무들이 숙덕거리지 않았고 짐승도 없었다. 그리고 슬펐지만 썩 좋지 않은 밤은 아니었다.
그 후로 몇 달이 지나자 나라에 이상한 기운이 흘렀다. 그것은 아버지 뿐만 아니라 그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느꼈다.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웃고 대화하던 사람이 낯선 사람에 끌려가 고문 받고 목이 잘리는 사건들이 넘쳐났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것이다.
거지촌에 들어 가 구걸이나 구두닦이를 배우던 아버지는 처음에는 모르다가 갑자기 이상해진 분위기를 차츰 알아가면서 지금은 이 일이 필요없다고 느꼈다. 매일 우두머리에게 맞는 것도 싫고 하루에 한끼도 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거치촌을 도망나와 돌아다니다가 수상하다는 이유로 쪽바리새끼들한테 잡혀 끌려 갔다.
조사실로 끌려 온 아버지는 전기의자에 앉게 된다. 잔뜩 겁에 질린 아버지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을 했다. 아버지를 이곳에 앉힌 그들은 아무런 짓도 하지 않고 지들끼리 대화를 하다가 어떤 사람이 들어오는데 그 사람은 아버지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남는 땅 없는가?"
남는 땅이라면 어떤 걸 말하는 거지? 아버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곳을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땅, 땅이라뇨. 무슨 땅 말씀 하시는 것입니까?"
"지금 대 일본제국이 미개인 조선인을 구하고 있으니 우리가 그에 맞는 보답을 해야한다."
아버지에게 그런 게 있을 리는 없지만 아주 빠르게 마을을 생각했다.
"있습니다. 이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땅인데..."
"그런가? 내일 당장 그곳으로 안내해라. 보답은 섭하지 않게 해주리."
그 보답이라는 말에 아버지는 눈이 돌았다. 이 놈들이 마을에 무슨 짓을 할 지는 대충 감은 잡히지만 -지금까지 끌려 간 사람들을 보고- 아버지와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자신을 버린 마을이 어찌 되 건 상관할 바는 없었다. 차라리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굳게 먹고 다음 날이 되기를 기다렸다.
다음 날 열명정도 되는 군인들과 남자와 함께 마을로 향했다. 마을사람들은 지금 나라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전혀 모른체 평소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마을에 막 들어선 남자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흐음.. 아주 마음에 드는 땅이로구만. 땅도 기름졌고. 아주 좋아."
그러더니 남자의 뒤에 바짝 붙어 다니던 군인을 부르더니 흰봉투를 건네 받아 아버지에게 주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하하."
한 마을사람이 아버지와 남자를 발견했을 때 놀라 자빠지려고 하였으나 다시금 분노가 끌어올랐다. 처음에 매우 만족해 하던 남자는 마을사람을 보자 표정이 굳어지며 아버지에게 화를 내 듯 말했다.
"사람이 있지 않은가! 그냥 사람들이 없는 마을인 줄 만 알았건만."
아버지는 긴장했다.
"아, 아닙니다. 저 사람들은 죄를 짓고 이곳에 사는 사람입니다.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아주 중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이곳에 모아 놓고 못 나오 게 하는 것입니다. 아시잖습니까."
"흐음.. 그랬나? 그럼 몇 명이나 되지?"
"대략 30명정도 됩니다."
"크크크크. 모두 죽여야겠군. 자네는 근처에 구덩이나 파 놓으라고."
남자는 군인 몇 명을 아버지에게 붙여주고 근처 산에 구덩이를 파라고 명령을 했다. 아버지가 산에 올라 가는 중에 커다란 총성소리가 하늘에 울려퍼졌다. 뒤늦게 가족들을 생각했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