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마을, 서리 13편

달콤상상 작성일 07.03.28 03: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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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세상을 알기에는 어렸던 아버지는 자신이 곧 죽을 거라고 생각을 했기에 두려움에 몸을 떨며 앞으로 나아갔다. 나가는 길에 있는 키가 높은 나무들은 히히덕 거리며 아버지를 놀려댔고 야생동물이 당장이라도 살가죽을 갈기갈기 찢어 놓을 것 같았다.
그렇게 두려움에 몸을 떤 것도 잠시 뿐이었다. 숲을 빠져나오자 세상은 푸른 바다를 갖다 놓은 것 만큼 속이 틔이는 아름다움을 맞이 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곧 지금 이것들을 만끽하기로 했다.
며칠이 지나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이 우물 안 개구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단단한 쇠로 만든 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창문이 여러개 붙어있는 높은 집도 보았다. 저렇게 높은 집이 있다니. 겨우 2층짜리 건물을 보고 현기증을 느낀 아버지는 눈을 비비며 다시 땅을 내려봤다. 그중 아버지가 가장 놀라워 했던 것은 사람이 굉장히 많이 있었다는 것이다. 매일 같은 얼굴만 보던 마을과는 달리 얼굴이 모두 다른 사람들이 어디선가 계속해서 나왔다.
그곳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 가봐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세상에 비해 아버지는 갓 알에서 태어난 병아리와도 같았다. 아직 날개짓을 하지 못해 낯설게 새로운 세상에 기지개를 펴는 병아리.
사람은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며칠을 구걸을 하더라도 충분히 먹고 잘 수 있었다. 그러다 마을 사람들에게 이런 세상을 알려줘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곧바로 마을로 향했는데 두려움에 떨며 나올 때보다 훨씬 빨리 마을로 갈 수 있었다. 정말 가까운 거리에 다른 세상이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그것을 더 이상 다른 세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마을에는 아직 치우지 않은 검은 잿더미가 가득해서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저 입구에 써있는데? 이것이 뭔가. 왜 이렇게 사는건가. 도대체 이런 생활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가. 아버지는 잿더미를 보고 순식간에 이런 생각들을 했다.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 소리쳤다.

어머니! 아버지! 제가 돌아왔어요. 이리 나와 보세요.
누구시우?
저요!

할머니는 아버지를 쉽게 알아보지 못했고 아버지는 빨리 자기를 알아봐주길 바랬다. 할머니가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아니다. 문을 여는 순간 내 아들, 하고 껴안고 싶은 심정이었으니 아들은 이미 지옥길로 향한지 며칠이나 지났기 때문에 지금 눈 앞에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어머니, 저 이우라구요. 어머니 아들이요. 저 못 알아보시겠어요?
이우냐? 정말 이우구나. 아이고, 이우야.

지옥으로 떨어진 아들이 떳떳이 살아서 돌아오다니. 할머니에게는 축복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혹시나 마을사람이 볼까 두려움이 생겼다. 마을에서 처형을 당한 -직접 죽인 건 아니지만- 아들이 살아왔다면 가만두지 않을 게 분명했다.

얼른 방으로 들어오거라. 얼른!

방안에 들어 온 아버지는 동생들과 아버지가 곤히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울음이 터져나오려고 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 온 것이냐? 사람들은 물론 나나 너희 아버지도 모두 니가 죽은 줄 알고 얼마나 슬퍼했는지….
어머니 오늘 당장 저와 밖으로 나가요. 저 밖은 지옥이 아니라 천국이에요. 천국이라고요. 지금 아버지와 동생들을 깨워서….
놔둬라. 나는 네 말이 무슨 소리인지 도통 모르겠구나.
엄청 큰 집이 있어요. 그게 뭐냐면 하나의 집에 집이 두개 있는 것이죠. 무엇인지 모르시겠죠? 커다란 쇳덩이가 돌아다녀요. 그런 세상이 지금 저 밖에 있다고요. 아니, 우리가족 뿐만 아니라 마을사람들에게 모두 알려야겠어요.
그러다 화를 당하면 어쩌려고.

아버지는 한참이나 바깥세상에 대해 설명을 하더니 마을에 알려야겠다고 말했다. 당장은 안된다고 할머니가 말려 하룻밤을 어머니 곁에 자고 다음 날 마을에 나가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알렸다.

귀신이닷!

아직 10살이 채 안된 아이들은 아버지가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귀신이라며 줄행량을 쳤다. 더러 겁이 많은 어른도 가슴을 졸이며 멀리 뒤편에 서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죽었으면 지옥에나 떨어 질 것이지. 여기가 어디라고 와!

우람한 체격에 장비처럼 수염을 기른 사내가 작대기를 휘둘며 말했다.

저는 살아있어요. 죽지 않았다고요.

웅성거림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몇 안되는 사람들인데 몇 천이나 되는 듯 각자 뭔지 모를 말을 지껄였다. 아버지는 다시 한번 자신이 귀신이 아님을 설명하고 밖으로 나가자고 했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은 귀신이라고 생각해 분노가 더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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