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마을, 서리 10편

달콤상상 작성일 07.03.27 00:09:49
댓글 0조회 816추천 3

순대국을 먹고 다시 무당집으로 갔더니 이미 깨어나 있는 무당 때문에 다시 심장을 조여야 했다. 최고의 공포영화로 평가 받고 있는 엑소시스트를 직접 내 눈으로 보는 것 같았는데 더 무서운 건 그 영화에 주인공 여자아이처럼 얼굴이 메마른 논두렁을 보는 것 같았다.

"오, 자네들 왔나? 참으로 오래 기다렸어."

정말 희안하게, 또는 이해할 수 없게 무당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고 있었다. 장농에서 화려하게 금빛문양으로 장식이 되어 있는 방석까지 꺼내주면서 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무당은 20층짜리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머리를 박아 지독한 치매에 걸렸던가, 귀신에 홀린 것이다. 지금 상황으로 보면 후자가 맞겠다. 아무리 지독한 치매에 걸린다 해도 순식간에 주름을 배로 늘릴 수는 없을테니까.
그래서 방석위에 쉽게 앉을 수 없었다. 또 언제 바뀌어 이번에는 혜영의 머리칼이 아니라 내 목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마음은 희수와 혜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것 참 방바닥 빵꾸나겠네. 거, 빨리 앉으라니까. 내가 좋은 얘기 하나 알고 있거든."

우리가 방석에 앉기가 무섭게 입안에 담고 있던 그토록 좋다는 얘기를 뱉어냈다. 마치 커다란 버튼을 누르니 호두까기 인형이 노래를 하는 것 같았다.

"내가 한…… 일주일 전 쯤, 서리에 갔었거든. 굿을 하려고 갔는데…."
"잠깐만요. 그러면 왜 저희를 안 부르셨죠?"
"그건 좀 있다가 얘기 하자구.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내가 중요한 걸 알아냈단 말이지. 역시 그 마을에는 뭔가 있었네. 마을 입구부터 귀(鬼)의 기운이 뼛속까지 파고 들었네. 원래 벼락맞은 은행나무에 굿을 하는 게 옳은 일이야. 하지만 서리에는 그런 건 없었고 그저 오래된 나무를 두고 굿을 준비하려는데 귀신들이 내 주위에 둘러싸고 나가라고 했다네. 내가 그럴 수 있나. 원래 귀신이라는 게 지들 맘에 안들면 멋대로 하거든. 귀신들이 날 이렇게 만들었다네. 날 이렇게 만들었어."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다.

"빨리 나가요!"

그러나 그보다 빠른 건 무당이었다. 내가 이렇게 소리치고 있지만, 가장 앞에 있는 내가 가장 위험했다. 다리가 쉽게 떨어지지 않아 공포에 떨고 있었지만 약간만 돌려 생각하면 너무나 간단한 것이었다. 상대는 힘없는 노인을 뿐이다. 아까 혜영의 머리카락을 잡았던 힘을 생각하면 늙은이라는 게 아직도 믿겨지지 않지만 그래도 노인이다. 그런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힘이…. 다리 밑을 내려다 본 난 기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얼굴의 형태가 미미한 사람 아니, 귀신들이 내 다리를 꽉 붙잡고 있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내 다리는 꼼짝하지 않았다.
으윽. 무당이 내 목에 손을 거의 뻗었을 때 빠른 발길질이 무당의 가슴턱에 박혔다. 무당은 뒤로 고꾸라져 숨을 컥컥 거리고 있었다. 발을 잡고 있던 귀신이 봄날 아지랑이처럼 소멸해버렸다.

"고, 고마워."
"빨리 가자. 기분 드럽게 더럽네. 애초부터 무당이 귀신이었을 지 몰라."

혜영은 미리 밖에 나와 있었다. 굳이 뛸 것은 없지만 나는 걸음을 제촉했고, 결국 뛰게 되었다. 거리차를 벌린 후에서야 걸음을 멈추고 숨을 가다듬었다.

"이게 무슨 일이래."
"그러게요. 무당이 없으면 어떻게 하죠? 다른 무당을 구해봐야 하나요?"
"아니요. 그럴 필요는 없어요. 그래봤자 똑같을 것 같아요. 젠장! 그냥 아무일 없었을 때 평소처럼 지낼걸. 괜히 와가지고."

나는 경찰에 신고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엎어져 잠을 잤다.
이젠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원했지만 그건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젠 집에서도 자주 귀신을 목격했다. 도대체 왜 난 서리에 갔고 이유없이 이런 일을 당해야 하지. 이유가 없었다.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이유가 말이다. 무당은 뭔가 있을 거라고 했지만 이젠 그 희망마저 접어버려야 한다.

요즘 시대 아파트화장실이 무서워서 가지 못하는 어린애가 몇이나 될까. 좌변기에서 손이 벌떡 올라와 엉덩이를 만지는 귀신은 어느 괴담책에도 나오지 않는다. 푸세식이라면 모를까. 그러나 난 하루에 한번 화장실에 가기가 힘들다. 거울속에 비친 귀신들은 언제나 끔찍했다. 귀신들은 항상 거울속에서만 보였고 나의 심장을 잔뜩 조여왔다. 몸둥아리는 없고 얼굴만 줄에 메달려 있는 귀신은 나에게 다가 오더니 입을 크게 벌렸다. 한쪽 눈은 숟가락으로 판 것처럼 허전했다. 일상한복을 입은 여인의 가슴에 커다란 칼이 깊숙이 박혀있다.

이러는 도중에 혜영이 열병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희수를 통해 받았다.


 

달콤상상의 최근 게시물

무서운글터 인기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