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마을, 서리 9편

달콤상상 작성일 07.03.27 00: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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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딜 갔다와! 그것도 기다리지 못해!"
"소매치기가…"
"무슨 소매치기. 얘가 헛소리 하고 있네."
"어떤 아줌마가 소매치기라고 막 난리쳤는데 그걸 못 들었단 말야?"
"무슨 소리야."

투명인간. 젠장! 서리가 계속 떠오른다. 지금 당장이라도 무당을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지금 내가 본 것이 서리의 저주는 아닐까? 아니, 그럴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서리의 대한 암시 같은 것일까? 그럼 그것은 무엇을 얘기하는 거지?

"엄마."
"응?"
"그러고보니 나 할아버지의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어떤 사람이었어? 엄마는 알 거 아냐?"
"나도 잘 모르지. 너희 아빠랑 결혼 하기 전에 벌써 돌아가셨는데."
"그래도 아무것도 몰라?"
"평생 안 찾던 할아버지를 웬일로 묻는거야. 니 아빠한테 물어봐."

9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오늘 무당이 집에 없을게 뭐람." 희수가 소리쳤다.

엄마와 장을 보던 날 일찍 잠에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이틀 후였다. 그래서 난 할아버지 제사를 결국 지내지 못했던 것이다. 엄마가 나를 미친듯이 깨웠지만 왜인지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너무 놀란 나는 곧바로 희수와 혜영을 불러서 무당집으로 향했던 것이다. 그런데 무당은 집에 없었고 이웃집에 물어보니 오늘 아침에 어디론가 떠났다고 말했다.

"이러다가 삼고초려 하는 거 아냐?"

희수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것도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이웃집이 말하기를 어디에 나가면 한달이든, 일년이든 돌아오는 날이 일정하지 않다고 했다. 제갈공명이 세상을 떠돌다 다녔듯이 말이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우리는 그 후로 정확하게 두번을 더 찾아와서야 무당을 만날 수 있었다.

"누구시오?"

우리가 반갑게 인사를 하자 무당은 정색을 하며 처음 보는 것처럼 우리를 맞이했다. 표정은 말라죽은 은행나무 표면을 보는 듯 했다.

"저희 모르세요? 한달 전 쯤에 왔었잖아요. 서리에 대해…."
"몰라! 그딴 게 어딘지도 몰라!"

버럭 우리에게 화를 내더니 방안에서 소금을 가져와 우리에게 뿌려댔다. 훠이, 훠이.

"왜 그러세요? 우리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어요? 갑자기 모른다고 소금까지 뿌려요?"

아까부터 잠자코 있던 혜영이 흥분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무당은 두 눈을 부릅뜨고 혜영을 노려보며 소금 한웅큼을 얼굴을 향해 뿌렸다.

"이 미친년이!"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나와 희수는 신속히 무당을 잡아 끌었지만 머리칼을 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 내가 잡은 손을 풀으려고 힘을 써도 손을 놓지 않았다. 엄청난 힘이 무당에게 있는 것이 손을 통해 몸전체로 느껴졌다. 혜영의 끔찍한 비명이 내 살갗을 찢어놓는 듯 했다.

"하지말라고."
"미친년! 머리가죽을 벗겨줄테다."

나는 주먹에 힘을 주고 무당의 얼굴을 힘껏 쳤다. 그제야 무당은 혜영의 머리카락에서 손을 놓았다.

"혜영씨, 괜찮아요?"
"네. 그런데 어떻게…"

혜영이 무당을 생각해주는 게 화가 났다. 머리카락이 수없이 뽑힐 정도로 당해놓고 어디에 그런 마음이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당은 충격이 심했는지 한참이 누워서 "미친년." 이라고 중얼거렸다.

"젠장! 일이 왜 이리 꼬이는거야."

가슴이 시커먼 연기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답답하고 캄캄했다. 한참이나 아무말 없이 모두들 생각이 잠겨 있다가 무당이 졸도한 것을 보고 업어서 방안에 뉘어놨다.

"한참이나 힘 뺐더니 배고프네요. 밥 먹고 오죠. 어때요? 희수는?"
"난 좋아."
"저도요. 요 앞에 순대국집이 있던데 그곳에 가요."

사실은 배고프지는 않았지만 빨리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다.
날씨가 매우 추워졌다. 강한 칼바람이 스치고 간 살결은 세게 꼬집어도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순대국집에 가 자리에 앉았다. 순대국을 시키면서 혹시나 무당의 대해 아는 게 있을까 주인에게 물어봤지만 아는 것은 없었다. 하긴, 여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갑자기 왜 무당이 저럴까요?"

내가 말했다.

"잘 모르겠어요. 딴 사람 같아요. 무슨 저한테 한이라도 맺힌 것처럼."
"머리는 괜찮으세요?"

희수가 내가 아까 했던 말을 그대로 말했다.

"네, 괜찮아요."
"너무 이상하지 않아? 우리가 여기 처음 찾아왔을 때, 아니다. 처음이라고 하면 안되겠네. 무당이 어디론가 떠났다고 하던 날. 도대체 무당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희수의 그 말이 매우 소름끼쳤다.

"계속 해봐."
"굿을 한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달이나 연락도 없었고. 물론 우리가 안 한 것이 더 큰 잘못이겠지. 그래서 우리가 찾아가니까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갔단 말야. 그리고 우리가 두번이나 찾아왔을 때야 무당이 있었지. 그게 일주일이지? 무당은 뭘 하러 어디에 간걸까. 나는 그것때문에 무당이 변했다고 생각해. 엊그제 찾아왔을 때 무당이 없었으니까. 최소한 5일간 떠났었고, 최대한 6일이라는 거야."

희수의 말을 듣고 나도 무언가 떠올랐지만 잠시 접기로 했다. 나는 혜영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탐정 같은데요? 호호. 정말 저도 그런 거 같아요. 무당이 어디에 갔던 왜 무당을 변하게 했는지 궁금하네요."
"서리."
"네?"
"서리가 아닐까요?"

내가 계속 생각해두었던 것을 말했다.

"무당이 우리가 오지 않자 혼자서 서리에 간거죠. 무당이 굿같은 걸 하니까 서리에 붙은 귀신들이 난리를 치다가. 아, 뭐라고 말해야 하나. 이거 말빨이 딸려서. 하여튼 무당에게도 서리의 귀신이 붙은 게 아닐까요?"
"글쎄요."

혜영은 의문이 생기는 지 내 말에 동정하지 않았다.

"저번에 무당의 말을 들어보니까 그 마을과 관련된 사람만 귀신이 붙는다고 하지 않았아요? 그래서 저는 귀신이 안 붙는다고. 그렇다고 무당과 상훈씨가 무슨 관련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혜영의 말에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 없어졌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무당이 서리에 갔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때에 맞추어 순대국이 나왔다. 배가 고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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