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의 집시 13

풍경운영자즐 작성일 07.07.03 23: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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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크 DNA (Junk DNA) 현상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잃어버린 탓인지 명근의 온 몸은 축 늘어진 채 기진맥진해 있었다. 반면 진오는 상처를 입은 몸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PDA를 고치러 무난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노트북은 완전히 박살이 나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1%도 없다지만 PDA는 그나마 희망이 엿보였기 때문이었다.

 

기계를 잘 다루는 쪽은 진오보다 명근이었다. 하지만 이미 의욕을 잃은 명근은 쓸모 없는 PDA 따위에 관심조차 없었다. 오히려 PDA를 붙잡고 끙끙대는 진오가 멍청하게 느껴졌다. 이제 곧 라면도 다 떨어질 것이고, 미리 챙겨두었던 물도 모두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이대로 가다간 수봉산의 비밀이고 뭐고 간에 수봉산 안에서 생을 마칠 것이 뻔했다. 몇 시간 전에 본 사내처럼 징그러운 뱀을 잡으며 생명을 연장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명근은 치가 떨려왔다.

 

‘무슨 대책이라도 없는 걸까?’

 

아무리 머리를 굴러보아도 별다른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기껏 생각해서 나온 거라면 또다시 水의 공간으로 찾아가서 사내에게 입구를 알려달라며 사정하는 것뿐이었다.

 

애타게 PDA를 만지작거리는 진오가 답답하게 보여서 명근이 큰소리로 외쳤다.

 

“그깟 것 있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어! 다 소용 없다고! 다!”

 

하지만 진오는 무슨 속셈인지 계속해서 PDA를 고치려 했다. 이 광경에 명근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진오에게서 PDA를 낚아채 발로 짓밟았다. 놀란 진오가 명근의 몸을 밀쳐대며 소리쳤다.

 

“무슨 짓이야! 너 미쳤어?!”

 

“그래, 미쳤다. 아니, 미친 것도 부족해서 돌았어. 미스테리고 초능력이고 뭐고 간에 그냥 평범하게 살았으면 이 상태까지 오진 않았잖아. 이젠 지푸라기 잡는 네 심정도 이해 못하겠어. 답답해 속이 뒤집힐 것 같다고!”

 

PDA는 완벽하게 박살이 났다. 이젠 PDA 마저도 포기해야 하는 상태였다.

 

‘바보 자식! 저 안에 주역에 대한 자료가 들어 있었는데……. 저렇게 눈치가 없다니…….’

 

진오는 입술을 깨물고 목구멍까지 올라온 이 한 마디를 곱씹으며 삼켜버렸다. 서로에 대한 불화의 씨를 만들어봐야 좋을 게 없기 때문이었다. 진오는 이런 난관에 부딪힐수록 이성을 잃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명근은 진오처럼 이성적이질 못했다. 안절부절못하며 계속해서 담배만 피어댔다. 그만큼 초조한 것이리라.

 

진오는 명근 옆에 앉으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한 개피 줘라.”

 

‘담배라면 치를 떠는 녀석이?’

 

명근은 적지 않게 놀랐으나, 애써 감추며 진오에게 담배를 줬다. 진오는 처음이 아닌 듯 능숙하게 담배를 피워댔다. 진오의 다른 면을 새로이 본 셈이었다.

 

“집에 가면 제일 먼저 뭘 할거냐?”

 

진오가 물었다. 명근은,

 

“후우……. 기집애 꼬시러 나이트를 가던가, 밀린 온라인 게임 레벨이나 팍팍 올려야지.” 라고 말했다.

 

명근의 말에 진오는 참으로 너다운 말이라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에는 명근이 진오에게 물었다.

 

“넌 뭐 할거냐?”

 

“난 전자상가에 들려서 새 노트북하고 PDA나 사야겠지. 아니면, 너 따라 나이트를 가든가. 솔직히 여자 엉덩이 한번 못 만져보고 썩기엔 인생이 아깝잖아.”

 

진오의 몇 마디에 마음이 풀어져서 명근은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 으하하! 자식. 여자 보기를 돌같이 보는 줄 알았는데 순 내숭이었잖아.”

 

명근의 기분이 조금이나마 풀어진 지금을 이용해서 진오가 말했다.

 

“이상하게도 火, 金. 세상으로 갈 수가 없어. 왜 그런 걸까?”

 

“혹시 火, 金. 세상이 원래 없는 건 아닐까? 흐음. 이렇게 보면 되겠군.”

 

명근은 눈에 띄게 큰 나무에 올라가 주변을 살펴보았다. 만약 흔한 건물이라도 보인다면 土 공간이 원래의 입구가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빌어먹게도 명근은 나무에 올라간 즉시 후회해야만 했다. 진오와 명근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고스트하우스에 워프가 되었는지 土 공간도 숲에 불과 했다.

 

진오가 한숨만 내쉬는 명근을 보고 미리 눈치를 챘다.

 

‘여긴 입구가 아니군.’

 

명근은 몸을 던져 땅 위로 착지했다.

 

진오가 말했다.

 

“내 생각인데 火하고 金은 동물들에겐 필요가 없잖아. 이 고스트하우스는 동물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 같아. 자연 그대로 절대 훼손되지 않게 할 속셈으로 만들어진 건가? 불이 있어야 인간은 음식을 구워먹고, 밤에 활동을 할 수가 있어. 또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선 불이 반드시 필요한 존재지. 그리고 도구를 만들어서 짐승을 내쫓던가, 사냥을 할 수 있잖아. 도구를 만들지 못하게 金이라는 것도 없게 해놓았어.”

 

그의 말에 명근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걸. 내가 木세상과 水세상을 오가면서 느낀 것은 이 놈의 고스트하우스에는 기어다니는 것과 날아다니는 것 밖에 없었어. 뱀하고 새 외에는 본 것이 없었다고.”

 

“잠깐! 뱀하고 새라니?”

 

“말 그대로야. 이 망할 놈의 세상은 뱀하고 새 종류 밖에 없어. 아까 그 사내도 뱀을 주식으로 삼으면서 이곳에서 3년을 썩었다고 했으니까.”

 

진오는 무언가 번쩍 떠올랐는지 다시 나뭇조각을 들고 땅 위에 주역방위표를 그렸다.

 

“우선 기본으로 土. 토지에는 물(水)이 흐르고, 물이 흐르는 곳에는 나무(木)가 자라지. 나무는 불(火)에 타겠지. 유독 불에 타면서도 다시 물로 변하는 것은 바로 금(金)이지. 너도 보면 알겠지만, 여기는 나무와 물로 이루어진 세상이야. 그리고 네 말대로 뱀과 새만 존재한다면 그건 오히려 잘된 거야. 뱀과 새는 여기 입구를 나타내는 방위표에 불과한 거지. 확실히 나갈 입구가 있음을 증명해 주고 있어. 전에 말했듯이 여기는 물이 흘러도 거꾸로 흐르고, 바람이 불어도 반대로 불어. 그러니 동서남북도 거꾸로 되어 있다는 거야. 북은 남이고, 남은 북이며, 동은 서이고, 서는 동이지. 水는 북쪽에 그리고 木은 동쪽에 있으니 이것을 거꾸로 하면 남과 서가 되겠지? 동양(東洋)에서는 서쪽을 지키는 것을 청룡(靑龍)이라 하여 일종의 뱀을 나타냈었고, 그리고 남쪽을 지키는 것을 주작(朱雀)이라고 하여 새를 나타냈었어!”

 

“나갈 희망이 충분히 있다는 거냐?”

 

“그래. 분명히 있어. 우리가 찾지 못하는 火, 金! 이 둘 중에서 한 개의 세상만 찾아도 그건 여길 빠져나가는 입구야. 火와 金은 진짜 입구라고.”

 

“후우. 火, 金을 찾기 위해 또 8시간씩 공간들을 헤매며 샅샅이 뒤져야 겠군.”

 

“번거롭지만 집으로 돌아가려면 그 방법 밖에……. 응?”

 

진오는 뭔가 다른 기운을 느끼고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후끈한 열기가 느껴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칼날 같은 바람이 분 것도 아니었다.

 

‘바람이 미지근하다?’

 

마치 물의 온도를 재 논 것처럼 바람의 온도도 재놓을 수 있을까. 진오는 갑자기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만큼 기분 나쁜 바람이었다. 이 때 텐트를 치고 있을 때의 명근의 말이 떠올랐다.

 

― 진오야, 움직이지 말아봐. 바람이 미지근한 것 같아.

 

진오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명근에게 소리쳤다.

 

“그래! 그거였어!”

 

영문을 모르는 명근은 엉겁결에 진오를 따라 벌떡 일어서고 말았다.

 

“뭐?”

 

“입구를 찾을 수 있어!”

 

“뭣?! 그게 정말이야?!”

 

진오는 가만히 서서 바람의 기운을 느꼈다.

 

“너가 전에 말했지. 바람이 미지근하다고?”

 

그의 말에 명근은 맞장구를 치며 소리쳤다.

 

“난 어제도 느꼈어.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으면 느껴지더라고. 그런데 이상한 것은 바람을 느낄 때마다 소름이 돋더군. 그런데 그게 나가는 입구와 무슨 상관이라고 호들갑이냐?”

 

진오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火의 공간! 火는 불을 뜻하잖아. 불이 있는 곳의 바람이 이쪽 공간까지도 불어오고 있다면?”

 

그제야 진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명근도 덩달아 호들갑스럽게 좋아했다. 진오는 말했다.

 

“일단 바람이 부는 곳으로 가자.”

 

진오는 일어서면서 바람이 부는 곳으로 서서히 걸음을 옮겼다. 이 바람은 자연이 만들어낸 바람이 아니었다. 인공적으로 느껴지는 바람이었다. 마치 사람이 숨을 내 쉴 때처럼 때론 거칠게, 때론 부드럽게, 때론 미세하게 불어왔다.

 

“여긴?”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한 그루의 나무였다. 얼마나 오래된 나무이고, 나무의 종류가 어떤 것인지 모를 만큼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믿을 수 없게도 바람은 나무의 몸뚱이에서 불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눈으로 보고 있어도 믿지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바람의 기운은 매우 미세해서 유독 신경을 쓰지 않는 이상 발견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게 火공간의 입구? 하지만 여기에는 아저씨가 걸레조각도 묶어 놓지 않았잖아. 거기다가 숨쉬는 나무라니? 헐…….”

 

진오는 나무를 더듬어 보았다. 사람의 손을 탄 흔적이 눈에 띌 만큼 확연하게 보였다. 매우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나무였다. 진오는 잘 익은 수박을 고르듯 나무에 귀를 대고 손으로 톡톡 쳐보았다. 몇 번을 그렇게 쳐보고서 명근에게 말했다.

 

“안이 비어있어. 아무래도 이것이 火공간으로 가는 입구 같아. 명근아. 원격이동으로 이 가운데 부분을 박살내 버려!”

 

진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명근은 두 눈을 부릅뜨고 바닥에 놓인 돌덩이를 쳐다보았다. 돌덩이는 몇 번 꿈틀거리다가 하늘 위로 용솟음치며 나무의 정 가운데로 돌진했다.

 

― 빠각!

 

나무가 부서지며 탁한 먼지가 두 사람을 에워쌌다.

 

이때 명근은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저게 뭐지!”

 

나무 안에 있는 것은 한 마리의 괴물이었다. 손톱과 발톱이 매우 길었고, 온 몸에 화상을 입은 듯 심하게 일그러져서 눈뜨고는 쳐다볼 수 없을 만큼 흉한 몰골이었다. 이미 거꾸로 돌아간 눈동자는 탁한 빛을 내었고, 입술이 몽땅 불에 탄 탓에 이빨과 잇몸을 모두 드러내 놓고 있었다.

 

“괴물인가?”

 

진오는 너무도 처참한 괴물의 모습에 한동안 넋을 잃고 있다가 명근의 고함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조심해!”

 

명근은 몸을 날려 진오를 보호했다. 괴물은 “히히히…….” 웃음소리를 흘리며 날카로운 발톱과 손톱을 이용하여 진오를 덮치려 했다. 괴물이 두 사람을 스치자 속이 거북해지며 참을 수 없는 악취에 정신이 마비될 정도였다.

 

진오는 먼저 코부터 막아버렸고, 명근은 심하게 인상을 썼다.

 

명근은 원격이동을 이용하여 괴물이 덤벼오지 못하게 돌덩이와 나뭇조각을 날려댔다. 괴물은 눈이 보이지 않아 바람소리로 상황을 판단하고 결정하는지 돌덩이가 날아오면 즉시 몸을 움직여서 척척 잘 피해내는 것이었다. 사실 기민한 몸의 본능이 오히려 무서울 만큼 신속한 것이었다.

 

명근은 염력을 이용해 놈의 몸을 터뜨려 죽여버릴까 생각했지만 차마 그런 잔인한 짓을 할 수가 없었다. 대신 원격이동을 이용하면서 쭉 방어를 취하는 것이 전부였다.

 

진오는 대담하게도 괴물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진오의 말을 알아들었을까 괴물은 가만히 서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명근은 진오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너 미쳤어? 괴물한테 말을 걸어봐야 좋을 게 뭐가 있어?”

 

진오는 말했다.

 

“괴물이 아니라 사람이야. 다만 심하게 화상을 입은 채 나무 안에 갇혀서 저런 몰골이 된 것뿐이지.”

 

괴물은 잠시 동안 낄낄대며 웃음을 터뜨렸지만 그 웃음은 점점 비명으로 변하고 있었다.

 

“날… 태…웠어…! 크악, 날… 태…웠어!”

 

괴물의 말은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뚜렷했다. 그것만으로도 괴물이 아니라 사람임을 증명한 셈이었다. 하지만 사람이라기엔 겉모습은 흉측하기만 했다. 명근은 사람임을 확인한 즉시 공격을 멈추었고, 괴물도 더 이상 공격하려 하지 않았다. 다만 괴물은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며 심하게 오열하고 있었다.

 

“다른…동료…처럼…살고…싶었어. 하…지만…죽지도…못해…꼼…짝…없…이…갇혀…서…날…죽여…줘”

 

괴물은 그렇게 말하며 코를 끙끙거리며 두리번거렸다.

 

명근은 괴물이 죽고 싶어도 죽지 못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고, 진오는 눈앞의 괴물이 도플갱어임을 알 수가 있었다.

 

“죽여달라면서 우릴 공격하신 이유가 뭡니까?”

 

진오가 차근한 어조로 묻자 괴물은 말했다.

 

“날…가…둔…놈…인…줄…알…고….”

 

“누가 당신을 가두었습니까? 나무 안에는 또 뭐가 있죠?”

 

“안에는…꿈을 깨게 하…는…바람…이… 입…구가 …있…다…하지만…난…나…갈 수…없…었…다…날 가둔…나를…죽…여야 …해!”

 

순간 진오는 띵한 충격을 먹었다.

 

‘꿈을 깨게 한다?!’

 

반면 명근은 눈앞의 존재가 무엇인지를 뒤늦게 깨닫고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도플갱어 놈!’

 

명근은 도플갱어를 살려둘 만큼 넓은 마음을 지니지 않았다. 오히려 화가 치밀어서 염력을 발휘해 놈의 온 몸을 박살내 버렸다. 끽 소리도 못한 채 도플갱어의 온 몸이 풍선처럼 펑, 터지며 내장과 뇌수가 땅바닥에 널브러지자 진오는 눈살을 찌푸렸다.

 

“너무 잔인한 걸.”

 

명근은 진오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침을 뱉으며 불쾌한 감정을 겉으로 드러냈다.

 

“퉤! 사람이 아니라 도플갱어야. 존재해선 안 되는 괴물일 뿐이지.”

 

“나도 알아. 다만 죽이는 방법이 너무 잔인했단 것뿐이었어.”

 

“잔인하긴 개뿔. 흥!”

 

진오는 문뜩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명근이 쳐다보니 그건 붉은 색의 보석이었다. 명근은 순간적으로 水 공간에서 만난 사내가 번쩍 떠올랐다.

 

“턱이 긴 그 양반의 도플갱어였군! 그냥 죽이는 것은 성에 차지 않으니까,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든다? 헐……. 나보다 더한 양반이야. 하여튼 괴팍한 양반다워.”

 

진오는 급히 집어 든 가넷 보석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명근에게 소리쳤다.

 

“이제야 알겠어. 고스트하우스의 정체가 무언지!”

 

순간 명근은 어이가 없었다. 진오가 무엇 때문에 갑자기 큰소리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으며, 미친 듯 혼자서 무슨 말을 중얼거리는 진오녀석이 걱정스럽기만 했다.

 

‘대체 뭘 알아냈다는 걸까?’

 

진오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넋을 잃은 채 중얼거렸다.

 

“깨어나라. 물이 흐르는 것은 흐르는 것이 아니다…그 아저씨의 말뜻은 바로 꿈에서 깨어나라는 거였어. 여기 고스트하우스는 꿈, 자체야…그래! 이제야 나사가 바로 맞춰지는 듯해.”

 

그러고는 명근을 향해 이렇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우리는 지금 꿈 안에서 꿈을 깨기 위해 발버둥치는 거야. 너와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거라고!”

 

명근은 순간적으로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말이 안되잖아. 꿈 안에서 이렇게 생생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어? 이건 완전 현실이라고. 볼래?”

 

명근은 손으로 자신의 볼을 철썩철썩 때려댔다. 진오에게 어느새 퉁퉁 부어오른 볼을 들이대며 말했다.

 

“만약 꿈이라면 이렇게 상처를 입을 수가 있을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야."

 

“어째서?”

 

“사람이 꿈에서 죽은 조상을 만나는 것과, 그리운 사람을 만나고,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것 모두 사람은 나선으로 연결된 존재이기 때문이지.”

 

“나선으로 연결된 존재?”

 

“나선은 모든 인간과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것, DNA를 뜻해. 그래서 우리처럼 꿈에서 현실을 헤매고, 서로 꿈속에서 대화를 나누며 활동하는 현상을 정크 DNA(junk DNA)라고 일컬어. 충분히 가능한 일이야.”

 

“뭐야……. 그럼 여길 빠져나가는 방법은 고작 꿈에서 깨기만 하면 된다는 거였어?”

 

명근은 허탈했던지 어이없어 했다. 그럴 즈음 진오는 라이터를 꺼내어 횃불을 만들어 냈다. 라이터는 어젯밤 명근에게 담배를 빌릴 때 챙긴 것이었다. 기왕 만드는 김에 명근의 것도 만들어서 나무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단단히 했다.

 

“고스트하우스 안에서 왜 하필 도플갱어가 우리를 공격한 것일까? 그건 아마도 꿈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겠지. 꿈을 꾸는 것 자체가 우리는 생명의 위협을 받는 거야. 지금 이 세상은 모든 것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어. 즉, 해가 서쪽에서 뜬다는 말이지. 시간을 제외한 모든 것들은 반대로 작용하고 있다고. 그러니 도플갱어는 우리가 지닌 반대의 마음을 지닌 또 하나의 자신이었어. 이러고 있을 시간에도 우리는 점점 어떻게 변할지 몰라. 빨리 꿈에서 깨어나야 해.”

 

명근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무엇인가 말을 하려고 하자, 진오는 횃불을 들이대며 나무 안으로 들어갈 것을 부탁했다.

 

“벌써 몸이 나아진 거냐? 상처 입은 사람 같지가 않구나.”

 

“그럴 테지.”

 

진오의 몸은 단 하루만에 상태가 매우 좋아져서 혼자서 움직여도 아무런 부작용이 없는 듯 했다. 강한 정신력이 주된 치료가 된 듯했다. 하지만 진오는 이 모든 것이 꿈임을 깨달은 순간 자신의 상처도 모두 허상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그렇게 간단히 결정을 내버리자 단호함과 성급함이 뒤섞인 쉽게 말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 일어났다.

 

진오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딛어 보았다.

 

“이 안에 꿈을 깨게 하는 바람이 분 댔어. 도플갱어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건 현실로 가게 하는 또 다른 워프현상일 지 몰라. 하여튼 명근아. 성급하게 움직이지 말고 잘 따라와라.”

 

“네가 앞장 설 거냐?”

 

“누가 앞장서든 마찬가지야.”

 

“하지만 너보다는…….”

 

명근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으아아-악!”

 

“진오야!”

 

갑자기 진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진오의 위치를 알려주던 횃불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나무 안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진오의 비명 소리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진오야! 박진오!”

 

명근은 황급히 횃불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진오를 찾았다.

 

“진오야! 어딨어?!”

 

이렇게 또 다시 진오와 헤어진단 말인가. 명근은 눈앞이 깜깜해지며 매우 조급하게 앞으로 달려갔다.

 

‘안돼! 이대로 놈을 잃을 수 없어!’

 

순간 명근은 땅 아래로 깊숙이 추락하고 말았다.

 

“으-아악!”

 

추락하는 아찔함에 명근은 절망해 버렸고 이대로 죽는 구나, 라며 여기는 순간 그의 온 몸에 흰 빛이 감싸 돌았다. 신비할 정도로 맑고, 환한 빛이었다. 빛은 붕 뜬 명근의 몸을 스펀지처럼 포근히 감싸주었다. 명근은 저도 모르게 편안함을 느꼈고, 동시에 이 빛이 진오가 말한 ‘꿈을 깨게 하는 바람.’ 이라며 생각했다.

 

‘대…대…체?’

 

명근이 놀라며 흰 빛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였다.

 

“악!”

 

누군가 그의 손을 강하게 잡아 당겼다. 그 순간 흰 빛은 산산조각이 나며 사라져 버렸다.

 

 

 


“푸학!”

 

가슴속까지 숨통이 탁 트여왔다. 명근의 온 몸은 끈적끈적한 액체로 흠뻑 젖어 있었다. 기분이 매우 불쾌했다. 악취도 상당히 심했다.

 

명근의 손을 잡아당긴 것은 다름 아닌 진오의 손이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한 손으로 끈적한 액체를 닦아내고 있는 진오가 보였다. 진오의 온 몸은 명근처럼 갈색의 액체로 끈적하게 젖어 있었다.

 

“이…제야 원래 세상으로 왔어.”

 

진오는 한시름 놓은 듯 차분한 어조로 말을 했다. 아직 뭐가 현실이고, 환상인지를 구분할 수 없는 명근은 우선 주위를 둘러보았다. 천장에서 물방울이 하나씩 뚝뚝 떨어지고 있는 동굴 안이었다. 악취가 나는 맑은 물이 명근의 발목까지 고여 있었다.

 

“대체 여기가 어디야?”

 

명근은 얼굴에 흐르는 끈적한 액체를 손으로 아무렇게나 닦으며 진오에게 물었다.

 

“그리고 이건 대체 뭐지? 물엿 같아. 으……. 악취도 엄청 심해.”

 

명근은 급한 대로 바닥의 물로 액체를 닦아내려 애를 썼다. 그리고 진오의 몸도 닦아주려고 고개를 번쩍 드는 순간, 그는 멍한 표정이 되었다.

 

“…이, 이건……. 맙.소.사! 대체…….”

 

명근은 너무 놀란 나머지 뒷말을 차마 잇지 못했다.

 

그는 보았다.

 

두 개의 잎사귀는 문어발처럼 유연하게 움직였고, 뿌리는 징그러운 모양새로 꿈틀대고 있었으며, 맛난 먹이를 향해 침까지 흘리고 있는 식인화(食人花)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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