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은 과학기술에 눈 뜬후 물질적 풍요를 완비하는데 힘쓴데 반해 중국은 상고 시대로 부터 내려오는 정신적 가치를 추구했다.'
이거 대학때 '동아시아 문화론'이던가의 강사가 했던 말인데요, 그때 제가 발끈해서 수업게시판에 올린 글이 아직까지 남아 있더군요. 괜히 새글 쓴다고 했다가 귀차니즘에 쩔어 있었는데, 조금만 손봐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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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제국주의 하면 일반 떠오르는 구도가 서양 vs 동양의 대립구도입니다.
현상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사실 그 이면의 더 근원적인 원리를 본다면 동서양의 만남이라기 보다는 근대와 전근대의 충돌(식민주의 전반을 통해 나타나는 경제적 수탈도 이러한 구도에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나는 듯 싶습니다.)이라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당장 일본만 해도 서양이 아닌 제국이었으니까요.
식민지 초기 제국의 일방적이고도 일반적인 시각은, 서양은 문명화 된 곳이고 발전된 곳이지만 식민지는 저속하고 저개발된 곳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더욱 상위의 문화를 식민지에 전파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위계를 가르는 이분법.
그런데 식민주의가 진행되고 탈식민의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이 서양의 이분법이 오히려 식민지의 독립을 위한 논리적 무기로 활용당하게 됩니다.
즉, 식민지는 하위의 문화를 지닌 곳이 아니라 오히려 고대의 진리를 담지하고 있는 곳이고, 무질서한 서양에 비해서 오히려 사해동포적인 평등한 공동체의 원형을 지니고 있는 곳이라는 민족주의적 움직임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서양과는 대비되는 동양의 전통문화라는 개념 자체가 탈식민화 과정에서 겨우 등장하게 된 개념이라는 말입니다.
간디의 경우 이 과정이 상당히 명확하게 드러나는데요, 간디는 영국에 유학하면서 영국의 최신 문명을 만끽하며 평생 그곳에 살고자 했던 모던보이였습니다. 그러다 기존의 민족주의 운동을 접하면서 불과 5년 사이에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민족운동가 간디로 변신하게 되는데요, 기존의 민족주의 운동이나 게릴라 무장운동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간디의 성공에 대해 이러한 해석을 내려볼 수 있습니다.
-간디가 민족운동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인도 전통문화의 대가였기 때문이 아니라 영국의 첨단 지식을 습득한(즉 서양의 논리에 정통한) 지식인 이었기 때문이고, 그가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을 수 있도록 인도의 산업가들이 엄청난 자본을 간디에게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또 아프리카 등지의 원시 부족 등지에서 지금 한의학계의 논지와 비슷한 주장을 하곤 했는데요,
서양의 선교사나 제국주의자들이 서양의 의료를 전파하려 했을때 부족장들은 거기에 반대했습니다.
그러한 원시 부족에서 족장이 행사하는 의료(=주술적인 제의의식)는 족장의 권위, 권력의 원천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때도 동일한 과정이 나타나는데요, 서양의 의료가 이 부족의 의료보다 뛰어나다는 논리에 대해 족장들은 서양의 의료와 자신의 의료는 '그 원리가 완전히 다르지만 서로 동등한' 것이라는 주장을 펼칩니다.
사실 이러한 주술의료는 그 뛰어난 효능보다는 딱히 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사용되어 오던 관습적인 행위에 불과했을 텐데요, 이 서양의 이분법과 충돌하는 순간 서양의 논리로 제단될 수 없는 고대의 지식을 담지하고 있는 전통문화로 부상하게 되었던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논리는 주술의료 자체의 이론적 완결성에 의해 뒷받침 되었다기 보다는 서양이 행사했던 이분법을 자신들이 역으로 차용함으로써 뒷받침 되었습니다.
솔찍히 양쪽의 주장 모두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니고는 있습니다. 영아살해, 높은 사망률, 열악한 위생, 후진적인 경제성 등등을 보면 분명 서양보다 후진적인 지역인 듯이 보이기도 하고 또 자본주의와 근대과학을 통해 파편화되기 시작한 서양의 혼란스러운 상황과 대비해 보면 동양이 심오한 진리를 담지하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하고 말이죠.
그런의미에서 제가 처음에 식민주의를 동, 서양의 대립으로 바라보아서는 안되고 근대와 전근대의 충돌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양측 문화를 우열성이 아니라 적합성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식민지 이전의 '전통문화'를 열등한 것으로 바라본다면, 그것은 분명히 서양의 입장에서만 바라보는 불공정한 시각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전통문화가 과연 탈식민 이후의 상황에 적합한 것이냐고 묻는다면 비교적 대답은 명확해 집니다. 근대가 전근대보다 뛰어나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단지 제국의 시대를 격으면서 전지구적 차원에서 근대화가 진행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해방이후 이 식민지를 경험했던 제3세계의 권력은 누가 장악했겠습니까? 바로 '전통문화'를 자신의 무기로 삼았던 민족주의 진영입니다. 여기서 제3세계 전반에 걸쳐 모순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이미 자신의 사회는 근대화 되어 버렸기에 더 많은 자본을 벌어들이는 것을 국가적인 목표로 삼고 있지만, 거기에 걸림돌이 되는 '전통문화'라는 것도 버릴 수 가 없기에 진정한 의미의 후진성이 나타납니다.(전통사회에서는 후진적인 것이 아니지만, 근대사회에서는 후진적 일 수 밖에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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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서없는 얘기이긴 한데, 한번 정리를 해 보자면요,
이 세상에 물질적 풍요를 위해 고민하지 않는 사회는 없고, 정신적 풍요를 위해 고민하지 않은 사회도 없다는 것입니다.
즉, 어떠한 사회가 되었던 현재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물질적, 정신적 토대 하에서 최대의 산출물을 수확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곡물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부분을 더 중요시 했기 때문에 백성들이 굶어 죽어 나가는 것을 방치했다는 말입니까? 혹은,
서양은 물질문명에 경도된 사회라 종교 문제로 그렇게 많은 피를 흘렸으며(동양에서는 이차돈이 목에서 막걸리를 뿜은 정도일까요...), 인문 철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들이 그렇게들 존재할까요?
제국의 시대 이전까지 중국은 '자칭' 세계 최고의 문명국가였습니다. 그것은 비단 정신적인 부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 문명 전반을 포함하는 포괄적 의미의 것이죠. 하지만 식민지배 이후 중국은 갑자기 '정신적 가치'를 추구했던 사회로 탈바꿈 됩니다. 식민지배 당시 서양에 대항하기 위해 차용한 이분법(오리엔탈리즘)이긴 한데, 식민 지배 이후에는 자신들의 과거에 대한 변명으로 치졸하게 들릴뿐이죠.(하지만 이런 이분법은 여전히 '제다이' 등으로 탈바꿈되어 성공적인 상업자본으로 환원되고도 있습니다.)
다른 이야기를 한가지 더 하자면, 인디언의 예를 들 수 있습니다. 인디언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싶니까? 자연과 함께하며, 안분지족을 알고, 어머니의 대지와 함께 어울려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던 사람들....정말 그랬을까요? 환경보호론자들이 창조해낸 페리 테일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자료도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인디언들 역시 다른 인간의 사회와 마찬가지로 게걸스런 탐욕자였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자료들은 충분하다고 합니다. 단지 그 기술수준이 미약해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죠.
대체 어느 사회가 의식주를 고민하지 않고,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지 않겠습니까? 서양의 물질주의...뒤집어 보면, 그 물질주의의 이면에는 시민사회의 성숙이 있었고 물질문명의 발달은 순전히 그 시민사회의 요구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전제 군주제였던 중국은 그럴 필요가 없었구요. 만약 군주제보다 지금의 시민사회가 더 이상적인 정치형태라고 생각한다면, 서양의 물질주의는 오히려 중국보다 성숙한 정신세계를 반증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마지막 문단에서 유물론을 읽었다면 '훌륭해!!')